동전의 양면 / 양선례
내 사무실 한가운데는 진갈색 나무 책상이 있다. 둥근 테두리를 따라 세밀하게 조각이 되어 있고 그 위에는 0.7mm 두꺼운 유리가 덮여 있어 꽤 고급스럽게 보인다. 열 명이 빙 둘러서 앉을 수 있다. 시작과 끝, 높고 낮음, 주인과 손님의 경계도 없다. 누구나 고르게, 공평하게 각자의 생각을 말하면 된다.
그 원형 책상에서 건전한 토의나 토론이 일어나면 좋겠지만 현실은 바람과는 반대일 때가 많다.
며칠 전 부장 열한 명과 올해 현장 체험 학습 방향을 논의할 때도 그랬다. 강원도 6학년 학생 스물세 명이 테마파크장으로 체험 학습을 떠났는데 한 학생이 풀린 운동화 끈을 묶다가 움직이던 버스에 치여 사망했다. 약 2년을 끌어오던 재판의 결과가 지난 2월에 발표되었다. 재판부는 담임이 주의 의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당연퇴직(금고 6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현장은 들끓었다. 안타깝긴 하지만 본래 취지를 생각하면 추진해야 한다. 콘크리트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에게 숨 쉴 시간을 줘야 한다. 교실에만 있는다고 사고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다.
현장 체험 학습은 의무 교육 활동이 아니다. 판사도 그렇게 명시했다. 교사에게 오롯이 사고의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가겠느냐.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는 공간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여 사고 위험이 높다. 교원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폐지하거나 연기하는 게 맞다. 교사의 의견은 갈렸다.
결국 우리 학교는 ‘사고가 나더라도 예방하고 조치 의무를 다하면 민사, 형사상 책임지지 않는다’는 새 법이 시행되는 6월 21일까지는 밖으로 나가는 활동을 전면 취소했다. 대신 학교로 찾아오는 프로그램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정했다.
문제는 전남의 과반에 이르는 작은 학교 학생들이다. 그네들은 오래전에 나처럼, 교육의 전부를 학교에 의존하는 가정이 많다. 학교가 아니고서는 경기도의 유명한 놀이공원이나, 시설 이용료가 비싼 물놀이장이나 스키장을 가볼 일이 거의 없다. 이번 판결이 그런 아이들의 기회조차 빼앗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인공지능 시대에 좋은 콘텐츠가 넘쳐나도 직접 경험으로 배우는 것만 하겠는가.
주말이면 여행객이 도로를 메우고, 연휴나 방학에는 아이를 동반하여 해외로 나가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 어느 학교나 가족과 함께하는 교외 체험 학습을 학칙으로 정해 놓았다. 우리 학교도 열흘까지 쓸 수 있다. 굳이 학교에서 그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있다. 어느 쪽도 편들기 어려워 묵묵히 들었다. 마음이야 재작년까지 근무했던 작은 학교 아이들이 생각나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아주 작은 일부분으로 전체를 일반화하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꼰대와 라떼족을 넘어서 ‘틀딱’으로 매도당할까 두려웠다. 내 주위에도 동료 교직원이 ‘갑질’로 신고해서 중임 교장 발령을 받지 못하고 교단을 떠난 교장이 여럿이다.
2학기에 계획된 수학여행은 어떻게 할 것인지 말도 못 꺼내 보고 회의는 끝났다. 초등학교 생활에서 단 한 번뿐이며,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수학여행을 추진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첫댓글 선생님 글을 읽으면, 교단에서의 몰랐던 부분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습니다. '동전의 양면' 저도 현재 겪고 있기에 끙끙 앓고 있거든요.(양 옆 가게 때문에요)
아이들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선생님들 마음도 이해되니... 참 어렵습니다. 힘내세요!
그러네요. 그 사고는 너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현장 체험 학습을 전면 중지 하는 것, 그 또한 안타까워요.
그래서 손주들이 1학기에는 소풍가지 않는다고 말했군요.
교육 현장의 어려움이 아이들의 마음까지 옭아매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체험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모 아니면 도가 나오더라도 하늘 높이 던져야 그 다음이 있을 것인데,
어느 쪽도 편들기 어려운 침묵, 참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