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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아 동 문 학 사 [3]
남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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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강릉아동문학 이해의 관점
1. 시대 구분 및 인물, 작품의 등재 범위
1)시대 구분
2)인물과 작품의 등재 범위
2. 역사적 배경과 강릉아동문학
1)아동문학의 개념
2)강릉아동문학의 역사적 배경
3)일제암흑기에 민속적 질감을 형상화한 작품
제2절 강릉아동문학의 변전(變轉) 과정
1. 조약돌아동문학회와 솔바람동요문학회
2. 1960년대, 아동문학의 개화
3. 1970년대 1980년대, 발아와 성숙
4. 1990년대 2000년대, 변환과 확장
5. 2010년대, 전환과 회귀
6. 미래, 기술 융합과 강릉아동문학의 아이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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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아동문학가인 남진원은 동시와 시, 시조, 평론을 넘나들며 경계를 없애고 있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
남진원(南鎭源 1953 - )은 동우재(動友齋)라는 호(號) 이외에도 이당(伊堂). 물내 등을 쓴다. 1977년 2월엔『아동문예』로 아동문학 문단에 등단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76년 1월에는 샘터사에서 발행하는 『샘터』지에서 ≪샘터시조상≫을 수상함으로써 시조 등단은 아동문학보다 1년 앞섰다.
남진원은 1953년 10월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골지리 양지마을에서 아버지 남기혁 어머니 전영숙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태어난 고향에서 다니고 그때 할머니의 포근한 사랑 속에서 보냈다. 그랬기에 1973년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을 태백시에 받았지만 태백 화전 국민 학교 근무를 끝내고 고향인 정선의 문래 초등학교에 부임하여 교사로 근무하였다. 강릉의 명주초등학교와 남강초등학교를 끝으로, 사직하고 창작에 전념하는 생활을 하였다.
강릉시 명주초등학교에 근무할 당시(1990년) 국정교과서 4-1 읽기책에 동시「 어머니」가 수록된 이후 2015년에는 5-1 국어책 읽기에 동시 「뒷걸음질」이 수록되는 등 4차례에 걸쳐 교과서에 등재되었다.
교과서 수록 작품은 ‘어머니’, ‘산골버스’, ‘그때 그 고향집’, ‘뒷걸음질’ 등이었다. 이런 작품들 속에는 인간에 대한 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자연에 대한 경도(傾倒), 따뜻한 인간 사이의 정과 사랑을 문학의 가치로 생각하며 글을 쓰는 작가이다.
신현배는 2015년 여름호 『새국어 생활 제25권 제2호』에서 남진원의 작품 「산」을 예로 들면서 작품 세계를 말하고 있다.
산은 옹달샘이 콧구멍이다. / 산이 숨 쉬는 모습을 볼래? / 산은 하늘을 들이마시고 맑은 노래를 물길로 내보내지. / 날마다 산이 푸르고 건강한 이유를 알겠다.
- 남진원, 「산」전문 -
남진원의 「산」 역시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상상력의 눈으로 산을 바라보면서 “산은 옹달샘이 콧구멍”이라고 했다. 그리고 “산이 숨 쉬는 모습을 볼래?”라고 말하면서 “산은 하늘을 들이마시고 맑은 노래를 물길로 내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 작품을 읽으면 ‘시의 이미지는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언어의 그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만큼 독창적인 상상력을 통하여 산이라는 시적 대상을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했다. 이 시는 산을 신격화된 산이 아닌 인간화된 산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예부터 산은 신이 내려오는 곳이자 산신이 사는 신의 공간이었다. 고려 때나 조선 때에도 특정 산들에 신격을 부여하여 국가의 수호신으로서 나라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정기적으로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 그려진 산은 전통적인 숭배의 대상인 ‘성스러운 산’이 아니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똑바로 누워서 콧구멍으로 숨을 쉬는 산이다. 산은 옹달샘이 콧구멍이기 때문에 옹달샘에 비치는 하늘을 들이마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숨을 내쉴 때에는 맑은 노래를 물길로 내보낼 수 있다. 숨쉬기 운동만 잘 해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날마다 산이 푸르고 건강한 이유”가 산이 숨쉬기 운동을 하기 때문이라는 마지막 구절이 공감 을 준다. 이 시는 산도 숨을 쉰다고 밝힘으로써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숨 을 쉰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작품으로 시인은 생명의 소중함과 우리 가 잊고 사는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 이하 줄임 -
어머니
남진원
사랑스런 것은
모두 모아
책가방에 싸 주시고
기쁨은 모두 모아
도시락에
넣어 주신다
그래도 어머니는
허전하신가 봐
뒷모습을 지켜보시는 그 마음
나도 알지
- 국정교과서 4-1 읽기 교과서 수록. 서울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게시 -
박두순은 이 작품을 2005년 5월 6일, 조선일보의 <엄마 아빠랑 함께 읽는 동시> 란에 작품을 소개한 후에 다음과 같이 감상을 달았다.
어머니의 마음을 한마디로 요약하려면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어머니는 끝없이 주고 싶은 마음, 사랑스런 마음, 기쁜 마음으로 책가방과 도시락을 채워준다. 어머니의 모든 것을 자식에게 주고도 무얼 덜 주었는지 허전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자체가 넉넉한 사랑의 마음이다. 어버이날 아침, 가슴 가득 남실남실 밀려오는 사랑의 물결.
아동문학평론가 김재용은 2017년 가을호『아동문학평론』‘남진원 작품론(동심으로 누리는 행복)’에서 동시 「교실」을 다음과 같이 거론하였다.
교실
남진원
이곳에서
국회의원, 법관, 장관이 나왔다고
자랑이지만
공부가 끝나면
그와 맞먹는 쓰레기를
선생님은 늘 치우셨다.
그래서 쓰레기 의원, 쓰레기 법관, 쓰레기 장관 …
이런 말들이 나오는 건가
시의 제재가 교실이다. ‘교실’은 ‘가르침’을 상징한다. 인간의 됨됨을 가르치는 장소의 대명사가 교실이다. 시인은 그 시대의 예언자요 선지자다. 그런데도 뒤돌아보니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 쓰레기들을 낳고 말았다. 2연에서 가르치는 자의 대명사격인 선생님은 쓰레기를 늘 치우셨다. 그래서인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도 존칭어 ‘님’자를 잘 붙여 부르지 않는데도 유독 ‘님’자를 붙인 선생님들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3연에서, 존경받아야 할 국회의원, 법관, 장관을 쓰레기로 표현하고 있다. 대통령도 탄핵하고 보니 쓰레기 대통령은 없어야 함을 예견하고 있다. 시대정신이 낳은 걸작 동시다.
2025년엔 아동문학의 동시 부문으로 한국문인협회에서 주는 ㅊㅚ거이 영예로운 상인 <한국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70년, 1980년대의 작가로 김진광은 가장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한 작가이다.
김진광(金振光 1951 ~ )은 강릉교육대학을 다닐 때와 교직에 있으면서 관동대학교 국어교육과를 다니는 동안 강릉에서 생활하였다. 그리고 강릉에 소재한 강릉원주대학교에서 교육대학원을 다녔다. 김진광은 동시, 시, 문학평론 등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김진광은 1951년 2월 21일 삼척군 시루뫼마을(증산리)에서 4남 3녀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 후에는 1년간 아버지로부터 농사일과 고깃배 타는 법을 배웠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강릉교육대학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첫 발령을 받은 학교는 남진원이 73년부터 근무하던 태백시 화전국민학교였다. 그곳에서 남진원은 최도규를 만나 문학적 영향을 받고 김진광은 남진원의 영향을 받아 문학공부를 함께 하였다. 그후 마석규가 이 학교에 오는데 마석규는 김진광의 영향을 받아 글을 쓴다. 김진광이 화전국민학교로 왔을 때 최도규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간 후였다. 당시 인근학교에 김완성과 최도규가 있었기에 김진광은 남진원, 최도규, 김완성 등과 어울리며 자주 문학 모임을 가졌다. 그 당시 서울 『소년』편집부에 근무하던 김원석을 초대하였다. 김원석은 2010년 대 후반,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김원석, 최도규, 김완성, 남진원, 마석규 등이 한데 어울려 문학 정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최도규는 강원도의 특색을 살린 문학단체를 만들었는데 ❰감자❱동인이었다. 1집에서 5집까지 냈는데 감자 동인에는 최도규, 김종영, 권영상, 장영철, 김진광, 남진원, 마석규 등이 참여하였다. 권영상은 강릉교육대학을 졸업후 강원도에서 교직에 있다가 곧 서울로 올라갔다. 권영상이 ❰감자❱동인으로 활동할 당시 권영상은 서울의 초등학교에 근무하였다. 그러나 이 모임은 최도규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망한 후부터 없어졌다.
김진광은 교단작가로써 다른 교사 생활을 한 문인들처럼 교직에 몸 담으면서 글을 공부하고 문단에 등단함으로써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1964년 삼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삼척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71년 삼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를 위해 강릉으로 자리를 옮긴다. 1971년 고등학교 졸업 후, 강릉교육대학 부설 초등교원양성소를 수료한다. 1972년에는 다시 강릉교육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1974년 졸업한 후, 태백시 화전국민학교에 발령을 받아 근무하였다.
1981년에는 관동대학교 국어교육과에 편입한 후 1984년 졸업을 한다. 이를 발판으로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로 전직을 한다. 1985년부터 중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교감으로 승진한 후, 하장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을 한다.
문학적 성과를 보면, 1979년 기독교아동문학상에 동시 「콩고르기」, 「물새 알」이 당선하였다. 1980년『소년』에 동시 「해돋이」외 4편이 추천완료 되었다. 이해에 『새교실』에도 동시가 3회로 추천완료를 하였다. 1982년 월간문학신인상에 동시 「감나무골 아이들」이 당선되었다. 1984년 매일신문신춘문에에 동시 「그네」가 당선되었다. 1984년 동시집 『바람개비』를 아동문예사에서 상재하였다. 1986년『현대시학(전봉건 주간)』에 시 「김옥균」외 4편이 추천되었다. 1987년 강원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88년 서사동시집 『시루뫼 마실 이야기』를 아동문예사에서 출간하고 한국동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1년 동시집 『물새는 이쁜 발로 시를 쓴다』새남출판사에서 상재하였다. 한정동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엔 시집 『벽은 가슴에 박힌 못을 사랑으로 만든다』 문예사조사에서 출간한다. 1996년 강원문학상을 수상한다.
1999년 강릉원주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을 졸업한다. 석사학위 논문 「박목월 동시의 형태적 특성에 관한 연구」이다. 1999년 동시집 『참 매미는 참 말만 한다』붓다가야 출판사에서 출간한다. 2001년에서 2005년은 중고등학교 교감(정선군의 함백중고등학교, 삼척여자고등학교)으로 근무한다. 2004년에는 시집 『모시나비』(오감도)로 관동문학상 본상을 수상한다. 같은 해 삼척시민상(본상)을 받는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는 중,고등학교 교장(삼척시 미로중학교, 삼척여자고등학교, 하장중고등학교)으로 근무하였다.
2007년에는 삼척문인협회 회장(2007-2009)을 지내고 월인문학상을 수상한다. 2008년에는 이육사 문학상, 강원도지사 공로패 수상을 하였다. 2009년에는 강원예술문화상, 라이너마리아릴케 창작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에는 동시집 『아이, 깜짝이야』를 아동문학세상에서 출간한다. 이해에 한국아동문학창작상, 어효선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한다. 2011년에는 검정교과서 중학교 2-1 국어교과서(금성출판사)에 시 「담쟁이 넝쿨」이 수록된다. 2013년에는 한국동시문학회 부회장을 맡는다. 2월에는 하장중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 퇴임을 한다. 녹조근정훈장을 받는다.
2016년 아동문예에서 발간한 『한국 현대 동시 논평과 해설』은 중량감있는 비평서이다. 또한 〈대한민국환경예술축제 환경부장상(노래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한다. 2017년 6월에는 시집 『시가 쌀이 되는 날』(시와 소금)을 발간하였다. 제28회 찬불가 가요 가사 현상공모에서는 가곡 부문에 「산사의 풍경소리」가 당선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김진광은 ‘일상적인 삶과 고향’을 자기만의 독특한 렌즈와 신선한 기법으로 시를 형상화한다. 시인은 시인의 얼굴과 소리가 아닌 빛나는 언어로 그의 몸짓을 대신한다. 거울에 비친 부끄러운 모습 들여다보기, 아픔을 치유하는 환상의 소리와 사물에 눈뜨기, 철저한 자기반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정화, 세상을 향해 보내는 그리움의 눈빛 등은 그가 언어로 빚어낸 환상적 꿈꾸기와 색깔들이다. 꾸준히 진행해 온 일련의 작업 속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지적 순환의 긍정적 의미와 배반적 의미를 축으로 하여 시적 진리를 신화적 물음에 의해 환상으로 선택하는 작업을 하는 일이다.
김진광은 강원도 삼척의 시루뫼 마을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유년기 소년기를 고향 마을에서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벗하며 살아왔다.
엄기원은 김진광의 동시세계를 동시집『아이, 깜짝이야!』에서「동시에 덧칠하지 않은 소박한 자연미」라고 하였다. 그리고 김진광의 문학세계는 소박한 서민의 모습과 마음이 그대로 배어있다고 하였다.
김진광은 자신의 고향인 시루뫼 마을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그린 동시집도 내었다. 본인은 동해안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어촌 풍경들과 어부들의 원초적인 인간 냄새, 끈질긴 생명력, 노동의 현장, 가난, 죽음, 전설, 인정 등을 산문서사시로 처음 시도해보았다고 말한다. 엄창섭은 김진광의 시루뫼마실 이야기는 동시로 해양문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들은 역사성과 시골의 전통적 특징들을 그대로 들어내었고 하나의 어촌 마을 내력을 감성적 언어와 역사적 이미지로 그린 작품들이다. 아동문학의 작품 중에서 위인들의 이야기를 시로 형상화한 동시들은 많이 있지만 지역적 특색을 살려낸 이런 신화와 설화를 끄집어내어 동시로 형상화 한 글은 좀처럼 보기 드문 동시들이다. 동시의 역사적 흐름에서 볼 때 매우 유의성이 있고 높은 가치성을 지난 작품들이라고 보여진다. 김진광은 시인으로, 아동문학가로,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하는 작가이다. 여기서는 김진광의 아동문학적인 입장에서만을 중점으로 다루었다.
아래의 작품들은 2011년 발간된『삼척문학 통사』에 수록된 김진광 본인이 수록해놓은 작품과 해설을 참고하였다.
옥수수 밭에 가면
김진광
옥수수 밭에 가면
울며 보채는
아기를 업은
우리 어머니들을 만난다.
아기만이 아니다.
배고파 우는
형도
누나도
나도
데불고
비탈밭에 섰다.
7월의 옥수수 밭에 가면
울며 보채는
아기를 업은
땡볕의 어머니를 만나다.
1950년, 1960년 대 우리 국민들은 기아에 허덕였다.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가장 큰 고민은 배고파 우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는 것이었다. 신라시대 ‘석종 이야기’도 배고픔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아니던가. 옥수수 밭에 가면 어릴 때 가난 속에서 아이들을 위해 고생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5,60년대를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기도하다.
위의 작품은 ‘한국동시 100년에 빛나는 동시 100편에 선정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은이는 ’한국동시 100년에 발자취를 남긴 동시인 100명에 선정되었다고 하였다.
그네
김진광
동산 위로
아이들이
해를 차 올린다.
한 번 구르면
언덕.
또 한 번 구르면
연이 되어 펄럭인다.
햇살을 문 아버지
열 두 살 골목이 떠오른다.
두 손에 힘을 모아
두 발에 힘을 모아
내딛는 발길.
우리 할머니 설움을 밀어내고
우리 어머니적 가난을 밀어내고
동산 위로
튼튼하고 빛나는
해를 차 올린다.
시인 김진광은 사물과의 만남에서 가난과 질곡의 삶을 들여다본다. 동시 「그네」에서도 그네타기는 우리 할머니 설움을 밀어내고, 우리 어머니적 가난을 밀어내는 일이다. 동산 위로 튼튼하고 빛나는 해를 차 올리는 것은 가난을 밀어낸 자리에 새로운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위의 작품은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작이며 구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고 하였다.
담쟁이 넝쿨
김진광
무척 궁금한 가 봐
누구한테서
편지가 왔는지.
담쟁이 넝쿨이
발돋움으로
대문의 편지통을
들여다보고 있다.
일학년 아이들처럼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글자를 읽고 있다.
동시 「담쟁이 넝쿨」은 담쟁이의 움직이는 모습을 그려내면서 문학의 본질적인 요소인 ‘새로움’이란 맛을 자아내고 있다.
위 작품은 2011년 현재로 중학교 2-1학기 국어교과서(금성출판사)에 실린 작품이라고 하였다.
1970년대 또 한사람의 동시 작가로는 밝고 따뜻하며 깊이 있는 글을 쓰는 조무근이 있다.
조무근(1941 - )은 함북 성진에서 출생하였지만 강릉에서 성장하였다. 1970년대 후반 초등학교 교사로 직장인 경상도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1977년 경남아동문학회를 창립하고 사무국장과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1979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고 이어 월간문학 신인상에도 동시가 당선되었다. 아동문학평론에도 동시가 천료된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83년엔 거제문인협회 사무국장과 부회장을 지낸다. 이 기간에 영남아동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0년엔 포항문인협회 부지부장을 맡는다. 여러 문학 단체에 소속하여 글을 쓰며, 펜클럽 한국본부 경북지역위원회에서도 활동하였다. 2000년대까지 경상도에서 지내다가 직장을 그만 두고 강릉으로 거주지를 옮겨 강릉에서 활동한다. 2010년엔 강릉의 솔바람동요문학회 회장을 맡아 많은 활동을 벌였다. 강릉문인협회, 한국동요음악협회 회원이다.
1989년 한국아동문학 작가상(한국아동문학회)을 수상하고 1993년엔 영남아동문학상, 2007년엔 한정동아동문학상을 수상, 2012년엔 한국동요음악대상 작사부문을 수상한다. 2012년엔 한국아동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2000년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6년엔 강원아동문학상을 받았다.
개인 저서로는 1979년에 『하늘을 도는 굴렁쇠』(새로출판사), 1983년에 『동그란 욕심』(해조문화사), 1989년 『허물 벗는 아이들』(대일출판사), 1996년에 『꿈나무들아』(윤진출판사), 2000년에 『허물 벗은 집』(한국아동교육원), 2003년에 『질러서도 가 봤다가, 돌아서도 가 봤다가』(도서출판 그루), 2006년에 동시 선집『자연의 버릇』(도서출판 그루), 2009년에 『엉덩방아 찧는 빗망울』(파스텔 출판사), 2013년에 『생명 발견』(도서출판 순리), 2011년 영역동시집인『이슬의 비밀』(소년문학사) 등이 있고 그 외 노랫말 동요곡집, 전래동화집, 위인 전기 등이 있다.
조무근은 강원아동문학상을 수상하며 밝힌 소감 중에 동시쓰기는 생활의 필수라고 말하였다.
조무근은 40여 년간 경상도 생활을 청산하고 귀향 10여년 만에 고향땅에서 받은 첫 상이라고 하며 기뻐하였다. 퇴직하면서 만성신부전과 2급 장애인으로 이틀에 한 번 꼴로 4시간 넘게 혈액투석을 받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동시 쓰기와 독서가 투병생활을 완화시켜 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서야 깨달았다면서 병을 고치는 것도 문학 활동이 한몫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본인에게는 동시쓰기와 독서가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하였다.
연잎 마당
조무근
연잎 마당에서
빗방울이 구슬치기 한다
비오는 날 골라잡아
구슬치기 한다
또르르르 …
또르르르 …
하얀 웃음 굴리면서
구슬치기 한다
연꽃 등 아래에서
연잎 마당에서
- 제 35회 강원아동문학상 수상작 -
조무근의 동요집 속에 담긴 내용과 이미지를 살펴보면 밝고 따뜻할 뿐만 아니라 건강미가 넘치는 글들이다.
거미줄(2)
조무근
미술시간인가 봐요
꽃잎도 나뭇잎도 몇 장씩이나
저녁놀에 물든 구름 몇 조각이나
뜯어 붙인 모자이크 아름다워요
공작시간인가 봐요
이슬 방울 조롱조롱 꿰어 달고서
바람이 살랑살랑 흔들어 보면
해님도 모빌 작품 감상하지요.
동요이면서도 동시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거미줄에 걸린 꽃잎과 나뭇잎 그리고 이슬방울 들을 보고 미적 충동을 일으킨다. 사물을 대하면서 사물에 대한 미의식을 느끼는 것은 순수한 동심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감각적 아름다움을 살려내는 것은 동시의 효용적인 측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사물 자체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 준다. 이밖에 많은 동요작품에서도 감각적 아름다움을 노래하여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조무근의 작품에서 또 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들이 많다는 점이다. 읽고 난 후 되돌아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은 정신의 깊이를 더해준다.
작은 꽃밭은
조무근
이렇게 높은 곳
작은 꽃밭은
이슬이라도
제대로 받아먹고 자라야 되는데
물이라도
추기면서 자라야 되는데
할머닌 손주 돌보듯
며칠마다 한 번 씩 물을 주신다
파란 하늘 맘껏 바라보고
수많은 별 친구와
얘기 나누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단다
고층 아파트 베란다
작은 꽃밭은.
위의 동시 「작은 꽃밭은」 을 읽으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텃밭이나 담장 가에 화단을 만들어 온갖 꽃들을 가꾸던 풍요로운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할머니로부터 귀여움과 사랑을 받으며 자란 유년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이 생각나기도 한다.
어제보단 오늘을
오늘보다는 내일을 위해
잎을 떨굴 줄 아는
벌거숭이 겨울 나무
용기 좀 보려부나
우리 허물일랑 땅에다 묻고
저 울창한 숲 사이 사이
글러오는 아름다운 새소리까지
감상하는 나무
나무야
- 「나무야」의 끝 부분 -
내일을 위해 잎을 떨굴 줄 아는 벌거숭이 겨울나무는 바로 참다운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허물일랑 땅에다 묻고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삶은 어찌 보면 달관의 경지에 오른 삶이 아닐까.
또한 조무근의 동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연과의 친교이다. 여러 편의 자연을 소재로 한 동요에선, 자연은 위대하며 사람들에게 친근한 벗이라는 점을 신선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
동요의 내용은 어린이의 희망찬 마음을 담은 것과 자연을 대상으로 한 것 등이 대부분이다. 요즘은 유달리 이상한 대중가요가 등장하여 청소년들은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가수와 노래에 마취 당해 가고 있다. 노래의 내용도 의미 있는 것이 드물고 행동도 난잡하여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활력이 넘치는 건강한 동요들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무근의 동요와 동시는 쉽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어린이들이 한 번 씩은 꼭 읽고 거기에 담겨있는 좋은 노래들을 많이 불리게 하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권영상(1952 - ) 또한 강릉이 낳은 아동문학가이다. 그는 오랫동안 호수와 바다와 산과 가까이 지내왔고, 오랫동안 동시를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아왔다. 이 일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권영상의 동시엔 어머니가 없어.” 그런 말을 더러 듣는다. “어머니 자리에 아버지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아.” 그런 말도 종종 듣는다. 그의 산문집 ≪뒤에 서는 기쁨≫을 읽고서야 비로소 어머니가 들어설 자리에 왜 아버지가 들어와 있는지를 알겠다는 이들도 있다.
권영상은 1952년 3월 1일(법적으로는 1953년 4월 10일)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361번지 아랫말에서 태어났다. 아랫말은 아버지 네 형제분이 한데 모여 사시는, 안동 권씨 집성, 권촌마을이다. 아버지를 포함해 백부님들은 모두 유교의 가풍을 지키셨고, 어머니를 위시한 백모님들은 부처님을 받들러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의 절간을 신봉하셨다. 요즘에야 알았지만 조선을 달려온 주자의 학문은 중국으로 들어온 인도 불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 까닭에 한 집안에서 유교와 불교가 공존한 듯 하다.
아버지는 권정수, 길러 주신 어머니는 영산 신씨 신재화. 두 분은 아들 셋, 딸 셋을 낳으셨는데 6남매의 막내아들이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동명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보고 싶어 나이 여섯 살 접어들던 해에 10여 리 학교로 보내셨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은 굉장히 성실하셨다. 분가를 해 나오신 두 분은 그가 중학교에 다닐 적에 이미 농토를 크게 넓히셨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대가족 4형제 막내로 평생을 세 분 형님들 밑에서 숨죽여 사셨다. 그런 습성이 자식들에게도 미쳐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 번도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셨다. 이를테면 공부해라 마라, 학교 가라 마라, 일해라 마라, 그 말씀을 일절 하지 않으셨다. 그 덕분에 오로지 스스로 세상일에 부딪혀 보며 갈 길을 만들어 왔다. 그런가 하면 1911년에 태어나신 영산 신씨 어머니는 훈장이신 외할아버지 밑에서 글공부를 마치고 열아홉에 시집을 오셨다. 오실 때는 고전소설 『박부인뎐』, 『임진록』 등과 다양한 종류의 화전가(花煎歌)를 손수 필사해 오셨다. 어머니는 그걸 귀가 닳도록 수십 수백 번을 읽어 주셨다. 또한 총명하셔서 남의 집 굿을 보고 오시면 그 사설을 일거에 다 외우실 정도였다.
그러던 어머니가 나이 열네 살 강릉중학교 2학년 시절, 형수님의 요절로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그 후로 어머니는 무려 15∼16년 동안 이승과 저승을 오가듯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권영상의 신산한 삶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중학교 3학년 동안은 어머니가 입원하신 읍내의 1인 병실에서 학교의 절반을 다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3년 동안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빈둥거렸다. 그때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거나 공사판을 전전하며 막노동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집 뒤 경포 호숫가에 나가 남으로 내리달리는 대관령을 바라보며 무료한 세월을 보냈다. 그 무렵부터 기다리는 법을 익혔고, 외롭다는 게 무엇인지 절실하게 알았다. 그때 나이 열여섯 살이거나 아니면 열일곱 살이거나.
산다는 게 외로워 경포 호숫가에 주로 나가 배회했다. 나이 또래의 넝마주이 친구를 알았다. 그 친구는 유원지의 종이와 넝마를 주워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와 만나 자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주먹질을 잠깐 잠깐씩 배우고 익혔다. 그러던 넝마주이 친구는 짐 지워진 저의 생애가 너무 무거워 어느 가을날 경포 호수 맑은 물에 꽃다운 몸을 던졌다.
그 후 고향 초당에 서울에서 허균을 공부하러 온 대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때 그들로부터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아랫말에 포도밭을 만들기 위해 내려온 경섭이 아저씨(동화집 『개미꼬비』 속의 「남종이 아저씨네 포도밭」 주인공)를 통해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문학 쪽으로 깊이 경도 되었고, 신산했던 어린 시절도 그쯤에서 끝을 냈다.
열여덟 살 되던 1971년, 강릉상업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 후 강릉교육대학을 마쳤고, 다시 관동대학교 국어교육과에 편입학하였다. 이때의 학과 분위기는 지도교수나 학생 모두 문학지며 신춘문예 열병에 빠져있었다. 문학 근처를 얼쩡대던 권영상도 그만 어쩔 수 없이 그 대열에 들어서고 말았다. 졸업과 동시에 경북 영주시 소재 대영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교직에 첫발을 디뎠다. 이어 강원도로 돌아와 초등학교 7년 근무를 마치고, 다시 근무지를 서울로 옮겼고, 1987년에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마쳤다. 서울시 소재 사립 배문중학교와 서문여자중학교에서 27년여를 근무했고, 2013년 2월 문득 당신의 땅을 당신 손으로 갈아엎어 농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인생이 부러워 교직을 파하고 안성에 작은 일터를 마련했다.
1977년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함백초등학교 근무 시절이다. 그때 거기 도서실에서 엄기원선생님의 동시집 『아기와 염소』, 윤석중 선생께서 엮으신 『물소리 새소리』, 유경환 선생님의 『겨울 들새』를 만났다. 그 길로 동시에 손을 댔는데 1979년 『아동문예』에 동시 「새」가 천료되었다. 이듬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길」이 당선되었고, 1982년 소년중앙문학상에 유경환 선생님 심사로 동시가 당선되었다.
그 후, 1990년 『한국문학』에 수필 「난」이 당선(윤모촌, 박연구) 되었고, 1991년 『시대문학』에 시 「발」이 당선(성춘복)되었다. 그리고 1993년 MBC동화 대상 단편 부문에 동화 「주라기 아저씨와 구두」가 당선(조장희, 신지식)되었다.
오랫동안 글을 써 오면서 그는 가끔씩 드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결핍 많던 소년 시절, 술꾼이 되거나 주먹잡이가 되는 길로 들어서지 않고, 아무 힘없는 미약한 글쟁이가 되었을까. 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내가 되어 있을까.’ 인생의 뒤에 숨어있는 이 비밀 같은 의문의 대답이 그는 궁금했다. 그가 하는 이 문학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도정이 아닐까 싶다.
(『권영상 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5. 4. 15 재수록 된 글을 참고하였다.)
코딱지를 돌돌돌 말아서. 꼭꼭꼭 눌러서. 빈대떡처럼 납작납작 눌러서. 그래선 강아지 밥그릇에 뚝뚝뚝 수제비처럼 뜯어 넣었어. 그랬더니 강아지가 밥을 먹다 말고 그러잖겠니.
-오늘은 밥이 짭짤한데. 왠지 간이 맞어.
이 이야기 동시는 10번째 동시집 『신발코 안에는 새앙쥐가 산다』(문원, 1999)에 실려 있는 동시,「나만 모르게」이다. 어린이들이 참 재미나게 읽었다는 동시다. 이 동시집엔 이야기 동시 63편이 실려 있다. 이 동시집을 내고 권영상은 많은 어린이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주로 그들이 들려준 찬사는 ‘근데 왜 이렇게 재미난 동시를 쓰셨어요?’ 였다. 때로는 엄마 손을 잡고 근무하는 학교로 찾아온 어린이들도 있었다고 하였다.
아동문학 강의를 듣는 대학생도 여럿 찾아왔었다. 어린이들과 달리 이미 어른이 된 그들의 질문은 달랐다. 동시는 어린이들이 읽는 시이니까 행과 연이 있어야 하고, 주제를 음미할 수 있는 의미가 있어야 하고, 교육성도 고려해야 하는 건데 동시가 이래도 되느냐는 거였다. 그를 찾아온 독자들은 이미 가장 경계해야할 동시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당시의 동시들은 대개 지나치게 의미추구에 전념하느라 독자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동화는 약진하는데 동시는 장르 자체의 존립이 불안했다. 1996년, 한 달간의 인도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달라졌다, 그럴 듯한 말로 그럴 듯하게 점잔을 빼는 동시를 버렸다. 동시에 나를 지배해온 동시에 대한 고정관념도 버렸다.
떨어진 감잎에 강아지가 똥을 눈다. 감잎이 그 순간 두 눈을 꼭 감고 온몸을 옹크린다. 콩, 강아지 똥이 떨어진다. 강아지 똥에서 찡, 흩어지는 냄새. 강아지가 침을 뱉듯 쨀끔 오줌을 눈다. 바람이 강아지와 함께 코를 막고 저만큼 달아난다. 그 사이 감잎이 강아지 똥을 받아 돌돌돌 감싸 안는다. 오, 귀한 것! 하고.
역시, 같은 동시집에 실린 동시 「감잎은 정말 착해」이다.
동시가 일회용 반창고쯤이면 안 될까,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장난감쯤이면 안 될까. 별 영양가는 없어도 껌처럼 달콤하고 가벼우면 안 될까. 배꼽 잡고 한번 웃어볼 정도면 안 될까. 그런 질문 끝에 만든 동시집이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신발코 안에는 새앙쥐가 산다』이다. 근데 의외로 어린이들이 좋아했다. 두 편 모두 교사용지도서에 실렸고, 같은 해에 출간된 『월화수목금토일별요일』 (재미마주)의 「그애 앞에 서면」은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밥상을 들고 나간 자리에
밥풀 하나가 오도마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바깥을 나가려든 참에 다시 되돌아보아도
밥풀은 흰 성자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바쁜 발걸음 아래에서도 발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밟히면 그 순간 으깨어지고 마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도 없이
이 아침, 분주한 방바닥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이 어린 성자의 얼굴로.
이 동시는 1991년에 출간된 6번째 동시집 『밥풀』(동화문학사)의 표제시다. 이해인 수녀님이 중앙일보 ‘나를 흔든 시 한 줄’에, 또한 그분 저서 『기쁨이 열리는 창』(마음산책)에 소개하면서 알려진 동시다.
이 시에는 언제 밟힐지 모르는 약자인 밥풀과 언제 밟을지를 예고하지 않는 강자인 발의 대결구도가 있다. ‘발’은 군부와 연계된 권력자들이다. 군부독재 시절 나는 퇴근을 하면 남대문로나 세종로에 나가 매일같이 시위 대열에 끼어들었다. 직장에선 ‘데모꾼’ 소리를 들었다. 길고 긴 시위는 명동성당 옆 중앙극장 골목 계단에 은신해 밤을 새운 이튿날, 대통령 직선제 선언으로 끝이 났다.
그 무렵 그의 고민은 억압받는 약자들의 삶을 어떻게 동시라는 그릇 속에 담아낼 수 있을까, 그것이었다. 동시집 『밥풀』의 부제는 ‘작은 것을 아끼는 시집’이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약자들을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물들에 비유했다. 동시집의 중심 제재들인 길바닥에 떨어져 밟히는 단추, 구겨진 종잇조각, 몽당연필, 아무렇게나 쓰여진 낙서, 밥풀, 깃털, 하루살이, 성냥개비, 목장갑, 개미, 말뚝 등이 그들이다.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 한 목소리
―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역시 같은 동시집 『밥풀』에 수록된 「담요 한 장 속에」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이불 속에서 나란히 누워 잠을 자고 있다. 한밤중 눈을 뜬 아버지는 이불을 내차고 자는 아들의 발을 덮어준다. 잠을 자던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기척에 잠에서 깬다. 아버지의 따스한 부정에 꼼지락 돌아눕거나 다리를 오므리거나 하는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하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권위로 상대를 지배하고 굴종을 강요하던 사회가 그 무렵의 우리 사회였다. 그러나 권영상이 꿈꾸던 이상은 서로 잠자리를 보살펴 주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기를 바랐다.
구방아, 목욕 가자.
아빠는 뭐가 무섭다고
혼자 가도 될 목욕탕을
꼭 나랑 같이 가자 하시지요.
구방아, 산에 가자.
아빠는 뭐가 무섭다고
만날 가는 산을
꼭 나랑 같이 가자 하시지요.
넌 이거도 못하냐,
그러며 날 놀리는 아빠는
어디 갈 때면
꼭 나를 앞세우려 하시지요.
구방아, 이모네 가자.
이것 좀 봐요.
사계절출판사에서 2009년에 나온 『구방아, 목욕 가자』의 표제시다. ‘아버지’가 ‘아빠’로 변한 걸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암만 살가운 부정을 보여준다고 해도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가 갖는 권위자로 남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좁히기 어렵다.
이 시 속의 구방이와 아빠는 그 이전의 부자관계와 사뭇 다르다. 아버지의 권위나 체통, 위엄을 다 내려놓고 있다. 목욕탕에 갈 때도, 산에 갈 때도 같이 가자고 한다. 아니 길 건너 이모네 갈 때에도 혼자 못 가고 나랑 같이 가자 한다.
아빠는 아들 구방이의 명실상부한 친구가 되었다. 그 친숙미를 살리려 이름도 거꾸로 읽으면 ‘방구’인 구방이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던 국가부도 위기 사태는 1997년에 일어났다. 기업이 연쇄 도산되고,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가계가 휘청거리더니 끝내 그 폭풍이 가정으로 몰아쳤다. 이혼이 급증하면서 가정은 파산되고 어린 자녀들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무너지는 가정을 지키자는 심정으로 출간한 동시집이 『구방아, 목욕가자』이다. 구방이를 중심인물로 하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탄탄한 연대의식과 사랑을 중심 테마로 삼았다. 동화로 읽는 동시집을 만든 셈이다.
2012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동시집 『엄마와 털실뭉치』가 나왔다.『엄마와 털실뭉치』는 기획예산부가 후원하는 ‘우수도서’로 선정 되었다.
아주 옛날, 여우는
숲에서 태어나 마을을 오가며
부지런히 살았다.
그간 자식도 여럿 두었다.
벵골여우, 검은여우, 모래여우, 은여우, 삼손여우, 티베트여우……
그러면서도
제 임무를 충실히 다 했다.
그 결과 여우는
이 땅에 이런 말을 남겼다.
여우비, 여우볕, 여우사이, 여우오줌풀, 여우콩……
여우에 홀리다,
여우같다,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
2015년 계간 『오늘의 동시문학』에 실렸던 동시 「여우에 대하여」이다. 한국아동문학인 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동시’다.
여우는 이 세상에 태어나 인간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오해를 받아왔지만, 여우는 여우로서 여우에게 맡겨진 하늘로부터 받은 임무를 충실히 다 했다. 그 결과 여우는 수없이 많은 인생의 지침과 명언과 교훈을 이 땅에 남겼다. 여우의 생명이 더없이 아름다운 이유다.
그는 시대와 함께 문학의 길을 같이 걸어왔다. 그러는 동안 맡겨진 임무처럼 동시를 썼다. 아프게 살아왔건, 추운 땅에서 꿈 없이 살아왔건 그의 동시들은 시대와 함께 그려낸 빛과 그림자의 무늬들이다. 그는 말한다. “내게 주어진 이 길을 오래 걷고 싶다. 동시 쓰는 일이 좋다.”라고 ….
( 『동화 읽은 어른』 어린이도서연구회, 2017. 11 재수록한 글을 참고하였다.)
권영상의 동시집은 『단풍을 몰고오는 바람』, 창조의 샘, 1981.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 아동문예, 1985. 서사동시집 『동트는 하늘』, 아동문예, 1987. 『한해를 살면』, 대교출판, 1987. 『버려진 땅의 가시나무』, 도서출판 남광, 1988. 『밥풀』, 동화문학사, 1991. 『벙어리 장갑』, 계몽사, 1992. 『납작납작한 코끼리』, 상서각, 1993. 『아흔아홉개의 꿈』, 미리내, 1996. 이야기 동시집 『신발코 안에는 새앙쥐가 산다』, 도서출판 문원, 1999. 이야기 동시집 『월화수목금토별요일』, 재미마주, 1999. 『실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 국민서관, 2004. 『구방아, 목욕가자』, 사계절출판사, 2009.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 문학동네, 2009. 『엄마와 털실뭉치』, 문학과 지성사, 2012. 『권영상 동시선집』,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아, 너였구나!』, 국민서관, 2015. 『나만 몰랐네』, 문학과 지성사, 2016 . 등의 저서가 있다.
동화집에는, 장편동화집 『숨쉬는 말촉마을』, 대교출판, 1994. 장편동화집 『내별에는 풍차가 있다』, 두산동아, 1995. 장편동화집 『춤추는 원숭이 치치』, 중앙일보사, 1995. 장편동화집 『나무도 시를 좋아하지요』, 학생과학문고, 1996. 단편동화집 『도시로 날아온 꽃씨』, 학생과학 문고, 1996. 단편동화집 『다락방 코끼리 아저씨』, 책만드는집, 1996. 단편동화집 『물오름 마을의 겨울눈』, 국민서관, 1997. 단편동화집 『대장장이 작은 옹당씨』, 오늘, 1997. 단편동화집 『아버지가 데려온 쑥곰』, 대원사, 1997. 단편동화집 『개미꼬비』, 도서출판 문원, 1998. 단편동화집 『순복이 할아버지와 호박순』, 대교출판, 2001. 장편동화집 『우리도 어른이 된다』, 두산동아, 2001. 단편동화집 『형, 모래모치한테 인사해』,진선출판사, 2003. 단편동화집 『수피』, 도서출판 문원, 2005. 장편소년소설 『둥글이 누나』,사계절출판사, 2007 등이 있다.
(이상 권영상에 대한 글은, 본인이 보내온 자료를 위주로 하였음)
1980년대 처음 등장한 작가는 장영철이다.
장영철(1947 – 2006)은 1947년 강원도 삼척시 원덕면 임원리에서 출생하였다. 삼척공업고등학교를 거쳐 부설 교원양성소를 졸업하여 교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교직에 있으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초등교육과를 졸업하였고 평생을 초등학교에서 봉직하였다. 지병으로 옥계 남양분교장에서 명예퇴직을 한다.
장영철은 1981년 『기독교 아동문학』에 동시가 당선하여 등단한다. 이후 남진원의 주선(周旋)으로 1987년 월간 『아동문학』 신인상에도 당선하였다.
장영철 동시의 특징은 탄광촌의 슬픔을 그린 점이다. 장영철은 때로는 어두운 현실을 직시하며 극복하는 어린이의 상을 부각시키고 희망과 꿈을 키우는 작품으로 승화하였다. 탄광촌인 정선 고한초등학교 교사 시절에는 산촌이 갖고 있는 특수한 환경인 사회적 현실을 모성적인 생명력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탄광촌 노동자와 그 가족이 겪어온 삶의 현장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동시를 형상화하였다.
고한리 아이들
장영철
앞을 보아도 산
뒤를 보아도 산
바람 속애 자고 새는 아이들
오늘도 우수수 빠져나간다.
지영이는 부천으로
선희는 동해로
민수는 성남으로
모레도 가고
가출한 엄마 때문에
못 떠나는 순이는
자꾸만
창 밖만 내다본다.
탄광촌에서 사는 아이들의 슬픔을 그리고 있다. 장영철에게 오면 동심천사주의는 없다. 다만 부모를 잃고 슬퍼하는 아이들의 커다란 눈망울만 있을 뿐이다.
장영철은 솔바람동요문학회 회장을 맡기도 하며 동요 보급과 창작에도 힘을 기울였다.
장영철의 동요 「언덕에 오르며」(정금자 작곡)는 1988년 제6회 MBC창작동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한다.「아카시아 피는 언덕」은 TV에 동요곡으로 방영되는 유명세를 탔다. 또 1996년 동요 「나의 꿈은」(이동재 작곡)은 국악동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솔바람동요문학회 4대 회장, 조약돌아동문학회 회원, 삼척에서 출생하였기에 두타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장영철은 강릉의 남강국민학교에 엄성기와 같이 근무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퇴근을 하고나면 음식점에서 술을 들며 정담을 나누곤 하였다. 많은 동료가 있었지만 같은 문우로 한 학교에 근무하였기에 더욱 정이 두터웠던 것이다. 장영철은 고향이 삼척의 바닷가 마을인 임원이었다. 그래서 바다를 소재로 한 동시가 많았다.
온화한 성품으로 항상 미소 띈 얼굴의 주인공, 장영철. 대인관계에서는 늘 원만하여 누구든지 가깝게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이호성은 회고했다.
장영철은 이호성과 각별하였다. 장영철이 아산병원이 입원했을 때 이호성이 문병을 가면 “형님!”하고 불렀다고 한다. 그 말이 조금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장영철은 삼척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쳤는데 이호성의 동생과는 동창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호성은 장영철에 대해 말한다. “솔바람동요문학회 회장을 맡으면서 헌신적인 활동으로 발전을 이끌었고 회원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고 하였다.
장영철의 많은 동시들은 모두 불태워져 남아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
장영철이 첫 동시집을 준비하는 동안 암 진단을 받고 생을 달리하였다. 본인이 유언으로 남은 작품을 모두 불태우라고 하였기에 모두 태웠다고 하였다.
장영철은 주로 초등학교에서 경험한 사실들이 시적 체험의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예는 비단 장영철 뿐만이 아니다. 강릉아동문학사에서 김원기, 엄기원, 김완기, 엄성기, 최도규, 남진원, 김완성, 권영상, 김진광, 이호성, 전세준, 장병훈 등 대부분의 작가들이 초등학교 교원이었음을 감안할 때 교원문단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교원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이들에겐 산자수려한 강원도의 자연 환경이란 배경이 크게 작용하였다. 특히 장영철은 어린 시절 바다와 산을 중심으로 한 성장과정이 있었다. 고향과 아이들에 대한 마음은 성인이 되었을 때 원초적인 그리움으로 움돋았다.
장영철은 동요를 통해 ‘그리움’이란 서정의 사진을 언어로 찍어놓았다.
복사꽃 필 때
장영철
고향집 산 언덕에 곱게 핀 복사꽃
달려온 강바람이 흔들고 가면
눈송이 내리듯 꽃잎을 타고
그리운 친구가 달려옵니다.
고향집 뒷동산에 수줍게 핀 복사꽃
지나가던 산바람이 간질거리면
함박눈 내리듯 꽃잎을 타고
헤어진 친구가 달려옵니다.
위의 작품을 읽으면 아름답고 감미롭기까지 하다. 서정의 꽃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멀리 간 친구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람에 대해 ‘잊지 않고 그리워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서정성이다. 장영철은 동시 동요를 통해 순박하고 질박한 농촌 정서를 시 속에 녹이며 향토성과 서정성을 뽑아내었다.
달님
장영철
달빛 가득한
한 여름밤
누나가 길어오는
두레박 안에
달님이 사알짝
담겨 왔어요.
갈바람에
파란 잎이
이울어 갈 때
강건너 꽃마을로
시집가는
누나의 꽃가마에
실어 보냈다가
새 형수가 오던 날 밤
형의 신방에
어머니는 달님을
걸어두었다가
먼 하늘나라
찾아서 가는
할머니의 꽃상여 위에
띄워 보냈어요.
장영철은 우리의 옛 정서를 잘 살려내고 있다. ‘누나의 꽃가마’, ‘신방’, ‘할머니의 꽃상여’등 전통적인 언어를 즐겨 사용한다. 위의 작품 역시 정통적인 서정성이 나타나 있다.
장영철의 작품을 볼 때, 장영철은 이상과 꿈을 간직한 영원한 소년이었다. 그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과 들판이 보이는 언덕을 오르는 것을 즐거워하고 동경 하였다. 하늘만큼 마음이 넓어지고 가슴이 활짝 열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가슴에 간직하고 산 영원한 어린이 마음의 동시작가였다. 특히 고향과 전통, 향수 등을 통해 편안한 서정을 노래하였다. 다소 어른의 입장에서 쓰여진 정서이기에 어린이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둘 수밖에 없는 시어들이었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함께 열어가고자 하는 소통의 동시 작가로는 이호성을 든다.
이호성(李鎬成1941 - )의 호(號)는 산호(山湖), 삼척시 원덕읍 호산에서 태어났다. 1954년 호산초등학교, 1957년 원덕중학교, 1960년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한 후에 초등학교 교단에서 교편 생활을 하였다. 1986년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엔 강원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삼척시 임원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하였다.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호성은 강원아동문학회가 발족(1972)된 해에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영동지역 회원으로는 이호성 외에도 김종영, 김지도, 전세준 등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호성은 1972년부터 문학활동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이호성은『교육자료』에서 동시가 천료되고 1986년 『아동문학연구』3집에서 동시 「산골짜기에서」외 1편으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을 하였다. 엄기원이 한국아동문학연구소를 세우고 발간한 후 첫 문인을 등단시킨 첫 주자였다. 이후 이호성은 1999년 ≪강원아동문학상≫, 2003년 ≪한국아동문학 창작상≫, 2008년 ≪관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17년 강원아동문학회에서 수여하는 ≪좋은 작품상≫을 작품 「대문」으로 수상하였다. 솔바람 동요문학회에서 활동하며 많은 동요 작품을 발표하였다. 동시집으로 『해망산이 있는 바닷가 아이들』(아동문예, 1991), 『별이 내리는 밤이면』(아동문예, 2001), 『솔바람이 사는 산 밑 집』(아동문예, 2003), 『바람과 나뭇잎』(아동문예, 2005), 『파도가 속삭이는 말』(아동문예, 2008), 『나뭇잎들이 다른 것처럼』(아동문예, 2010) 등의 저서가 있다.
한국아동문학연구 부회장, 한국아동문학회 강릉지부장, 강원아동문학회 이사, 강원펜문학 동시분과위원장 등을 지냈다. 솔바람동요문학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호성은 강원아동문학회 초창기 발족회원으로 활동한 후 14년이 지난 1986년, 정식으로 등단의 과정을 밟는다. 그는 왜 이리 늦은 등단을 하였던 것일까? 사람들이 약삭빠르게 글을 써서 등단을 했지만 이호성은 천성이 자연을 닮아 그런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그냥 아이들이 좋아 글을 쓰는 데만 노력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은 그의 동시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마음이 따뜻하고 자연과 같은 사람, 바다와 고향을 사랑하고 어린이들을 깊이 위하는 사람, 그런 분이 바로 이호성이다. 이런 마음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난다.
대문
이호성
집을 돌아오는 길에
대문이 활짝 열린 집을 보았다.
꽃밭에 접시꽃이
빨간 옷 차려 입고
큰 키를 자랑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밝아졌다.
얼마 쯤 오다
닫힌 대문 앞에서
컹 컹 컹 사나운 개가
마구 짖고 있었다.
내 심장이 콩알만해졌다.
우리 집은
마침, 대문이 없다.
봉숭아 꽃잎 따러 오는 분도 있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분도 있다.
그래서
우리 집이 좋다.
대문이 없는 집에 사는 사람, 누구든지 꽃잎도 따고 화장실을 드나들 수 있게 하는 사람, 그런 분이 이호성이다. 강릉의 도시에서 살지만 순박한 고향 같은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며 자연과 사람들과의 소통을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요즘 보기 드문 분임을 알 수 있다.
다음의 글은 「대문」으로 2017년 강원아동문학회에서 ≪좋은 작품상≫을 받고 소감을 밝힌 일부이다.
뜻밖이란 말을 이때 사용하는 말인가 봅니다. 요즘 능력을 갖추고 힘차게 성장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아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는데, 그 자리를 빼앗은 기분입니다. 요즈음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하늘을 자주 쳐다보고 구름들이 참 아름답다고 감탄을 합니다. 이따금 듣는 까치 울음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여름철이면 으레 듣던 뻐꾸기 노래, 꿩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던 모습, 전깃줄에 악보처럼 앉았던 제비들 다들 어딜 갔는지…. 어린이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잃은 것 같습니다. (이하 줄임)
위의 소감을 읽으면 이 분의 마음이 얼마나 맑고 순수한지를 알 수 있다.그리고 발간한 동시집의 동시들을 읽고 있으면 고향집처럼 푸근하고 편안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마음이 동심 속에서 티 없이 깨끗하게 살아왔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가습기
이호성
첫눈 오던 날 어린이공원에 뛰어 나가
친구들과 눈사람 만들며 신나게 놀았지
그날 밤 감기 몸살로 열이 불같이 오르자
약 먹이고도 엄마 아빠 걱정은 태산 같았지
가습기도 잠 못 이루고 밤을 꼬박 새웠지
하얀 입김으로 호호 하며 열심히 간호했지
- 동시집 『파도가 속삭이는 말』에서 -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강릉의 아동문학가들이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고 그 성과 또한 눈부셨다고 할 수 있다.
엄성기, 김종영, 김지도, 권오훈, 전세준, 최도규, 김완성, 남진원, 김진광, 조무근, 권영상, 장영철, 이호성 등이 괄목할만한 활동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이동운, 정태모, 심복수, 박영규, 조영주, 고성주 등도 기억할 수 있는 작가들이다.
이동운(李東雲 1917~ ?)은 197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고니」가 당선되며 주목을 받는다. 그는 조도전대(早稻田大)에서 교외교육(校外敎育)을 수료했다. 같은 해에 작품 「에밀레」,「가시랑비」,「학」등으로 윤석중이 운영하는 새싹문학상을 수상한다. 이해가 그의 나이 61세였다. 그의 집필 특징은 매우 특이하다. 햇볕이 나지 않으면 붓을 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1948년 무렵 그는 병으로 쓰러진 후 실명상태에서도 글을 썼다고 한다.
고니
이동운
흰구름 건져 먹고
별 건져 먹고
새하얀 꽃이 된다
연꽃이 된다
갈대숲에도 한 송이
조으는 듯 동동
바윗 그늘에도 한 송이
꿈꾸는 듯 동동
흰구름 건져 먹고
달 건져 먹고
떠다니는 꽃이 된다
연꽃이 된다
이 작품은 경포 호수에 나타나는 고니들을 보고 형상화한 작품인 것 같다. 경포 호수에는 매년 고니들이 찾아온다. 호수에 떠다니는 고니들을 보고 떠다니는 새하얀 꽃, 연꽃으로 본 심미안이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하다. 어린이와 어른 할 것 없이 미적 감동에 젖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작품이다. 유미주의(唯美主義) 작품으로 1970년대의 새로운 동시문학의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경포 호수에 새로운 시비를 세운다면 이동운의 「고니」가 적절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78년 윤석중은 이동운의 「고니」를 보고 단번에 당선작으로 뽑아 올렸다. 이 작품은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적 감동을 주고 있다. 뛰어난 시 한 편은 수많은 시집보다도 더 큰 무게가 있다. 바로 이 작품이 그러 작품일 것이다.
정태모(1927 – 2010)는 1927년 평창에서 태어났다. 시조시인이며 아호(雅號)는 무염거사(無染居士)이다. 1949년부터 교직생활을 하다가 1988년 퇴직한다. 1988년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으셨다. 평창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퇴직을 한 후에는 강릉으로 내려와 살며 창작 활동을 하였다. 강릉에 온 후로는 ≪솔바람동요문학회≫에 가입하여 많은 동요를 창작하였다. 196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새 판도를 그려야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77년 강원도 문화상을 받았고, 1988년 제7회 강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 수필, 평론 분야에서도 활약하고 있으며 시조집 『새 판도를 그려야지』(예문관,1977), 시집『착한 나귀를 오해 마시오』(예문관,1977),『회복기 전후』(삼진사,1978),『산을 타는 사람』(동녘신문,1991),『산행서곡(육필시집)』,시조집『장편108』(강남인쇄,1987),『귀소』(동녘신문,1991) 등이 있다. 동시집에는『초롱꽃』(합동인쇄,1988),『아기손』(동녘신문,1991),『아기학』(동녘신문,1993) 등이 있다.
정태모는 한국불교문인협회 고문, 해동문인협회 고문, 남한강문학회 고문, 한국농민문학회 이사, 문학동해안시대 고문, 관동문학회 자문위원, 돌기와문학회를 창립하였고 회장을 지냈다. 영월이 벗지문학회를 창립하였고 회장을 지냈다. 백오(白烏)문학회를 창립하고 회장을 지냈다.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강원시조문학회 고문, 한국교단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조약돌아동문학회, 솔바람동요문학회, 해안문학회 회원, 평창의 돌기와 동인 등 많은 문학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강원도문화상 문학부문, 강원문학상, 관동문학상 본상, 강원시조문학상, 한국농민문학상 본상, 한국불교문학상 대상 등을 받으셨다.
정태모는 줄곧 내곡동 한옥에서 기거하면서 집필 활동을 하였다. 길에서 가끔 뵈올 때에는 우편물을 부치려고 힘든 다리를 절면서 강릉우체국으로 가는 길이었다. 인근 청탑다방에 모시고 가서 차를 대접해 드렸다. 정태모는 당시 강릉문단의 원로로 후배 문인들에게 늘 강조하신 말이 있다. 문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관한 일이었다. 문학회 모임이 끝나고 나면 문인들이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그때 문단의 후배가 앞 자리 중앙에 먼저 자리를 잡고 떡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얼굴을 붉히시던 일이 떠오른다. 늘 후배 문인들을 만나면 글보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 준엄함이 있으면서도 후배 문인들을 아끼는 따뜻한 분이셨다. 돌아가시기 전후하여 강릉시 내곡동에서 경기도 파주시에 임시로 기거하시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불교적 세계에 닿아 있다. 평소에는 집에서 불교에 심취하셔서 불경을 읽으며 지내신다고 하셨다. 아호가 무염거사인데 무염(無染)이란 말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청정불심을 상장하는 말이다. 정태모는 그런 마음으로 한 평생을 시조, 동요, 시를 쓰며 문인의 길을 걸었다.
사실, 정태모는 강릉문학사에서는 1960년대 작가로 시조 부문에서 거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동문학사에도 빠질 수 없는 이유는 정태모는 2000년대 무렵부터 솔바람 동요문학회에 참여하여 동요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나 시조를 쓰다가 다른 장르로 뒤늦게 활동하는 작가로는 또 한 분, 장병훈이 있다. 장병훈은 197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지만 아동문학은 2016년『아동문예』에 「제비」외 4편이 당선되면서부터였다.
각설(却說)하고, 정태모는 시조시인이면서도 동시조 창작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1985년, 시조문학 42호에「동시조 중흥의 가능성」이란 아동문학평론을 기고하였고 1986년 시문학 187호에 「동시조 중흥을 위한 제문제」를 발표하였다.
말년에는 동요에 전념하여 많은 동요 작품을 남겼다. 정태모는 동물에 대한 사랑을 형상화하여 생태 환경적인 작품을 쓴 것이 적지 않다. 정태모의 동시 ‘아기잠자리’가 그 하나이다.
아기 잠자리
정태모
새로 돋은 풀잎이다
가만 앉아라
이슬도 옥구슬로
맺혀가는데
날개가 여리구나
조심하여라
새로 피는 꽃잎이다
사쁜 앉아라
안개가 마알갛게
걷혀 가는데
실바람 불어온다
나풀 날아라
- 정태모의 동시 ‘아기잠자리’(솔바람 169호, 2001.8) -
잠자리에게 말을 건넨다. 새로 돋은 풀잎이라고 가만히 앉으라고 주문하고 꽃잎 위엔 사뿐이 앉으라고 말한다. 잠자리의 날개가 여리니 앉을 때에 조심하라고 한다. 자연에 대한 사랑의 눈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하늘
정태모
여름내 참매미가 우는 소리로
말갛게 닦여진 하늘은 호수
저녁노을 붉게 물든 창가에 서니
기러기 남매들이 헤엄쳐오네
여름내 참매미가 우는 소리로
말갛게 닦여진 하늘은 호수
흰구름 한떨기가 돛단배 되어
파란 호수 위로 헤엄쳐오네
이미지가 선명하여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동요 작품이다. 여름 내 참매미가 우는 소리로 하늘이 닦여지는 푸른 하늘은 그대로 호수가 되었다. 그 호수에 기러기가 헤엄쳐 오고 구름은 돛단배가 어 밀려온다. 꿈과 상상의 아름다움을 어린이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
가을 산길에서
정태모
바람이 잠잠하기로 사방은 고요하다
샛노란 은행잎이 포로록 내려 앉는다
한 마리 노랑 나비로 사뿐 내려앉는다.
- 솔바람동요문학회보 264호, 2010.1 -
동요이지만 선(禪)적인 세계에 닿아 있다. 고요하고 그윽하며 시의 향기를 전한다. 동요로 발표하였지만 동시조 작품이다. 은행잎이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내려 앉는다는 것은 단순해 보이는 표현이지만 불교적 세계인 윤회사상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매 미
정태모
대추나무 가지에서 매미가 웁니다
대추 익는 소리로 참매미가 웁니다
빨갛게 물감들이며 차매미가 웁니다
매애앰 매애앰 맴 맴 맴 맴 맴
고얌나무 가지에서 매미가 웁니다
고얌 익는 소리로 유지 매미 웁니다
노랗게 물감들이며 유지 매미 웁니다
지이루 지이룩 지이룩 지이룩 지룩 지룩 지이룩
- 솔바람동요문학회보 265호, 2010.2 -
이 작품은 소리를 중점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의도가 보이는 작품이다. 매미 소리를 통해 청각적 이미지를 최고조로 표현하려고 하였다. 동요는 노래하기위한 노랫말이기에 이 동요를 읽으면 저절로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동요의 특성을 잘 살려낸 작품이다.
정태모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2004년 〈한국시사〉에서 발간한 『한국 현대 시인 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문학관의 기본을 인간성 회복에 두고 성정을 맑게 하며 자연 사랑과 진리 탐구 등 진선미의 예술성 높은 작품 창작에 힘쓰고 있다. 따라서 작품 경향은 다분히 인본주의적이며 자연주의적으로 흐른다. 초기 작품은 유교적 윤리 도덕의 성격을 보이다가 중반기 이후부터는 불교적이며 차츰 노장의 자연주의 경향으로 흐른다. 처음에는 시조로 시작했으나 이후로는 주로 자유시를 쓰고 동요, 동시, 동시조 등 아동문학 창작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작품 소재를 농어촌의 서민층에서 구하고, 시편에는 자연에 심취된 흔적이 보이는데, 이것은 그만큼 그의 문학이 원숙함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 한국 현대 시인 사전, 한국시사, 2004. -
조영주는 춘천교육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 대에 『아동문학평론』지에 동시 추천을 받았다. 한동안 교직에 있다가 퇴직한 후 홀로 살다가 언제 작고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동물에 대한 사랑은 조영주 시인의 눈에 담긴다. 동시 ‘제비’, ‘뻐꾸기’ 등은 동물에 대한 따스한 눈길이 있었기에 쓴 시라 할 수 있다. 섬세한 이미지가 매우 돋보인다.
다음은 『교육자료』1977년 5월호에 발표한 『제비』작품이다.
제비
조영주
한입
봄을 물고 와
처마 밑 둥우리
담아 놓고
빨랫줄
봄 내다거느라
지지배배-
지지배배-
티끌 발린
부신 눈을 굴리며
풀빛 바람
귀연 숨결에
깃을 보듬다
보듬다가
첨벙거릴 하늘 속
어디론가
봄을 물어 나른다.
봄날을 열며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제비에 대한 감각적 이미지가 돋보인다. 다소 기교에 치우친 점이 있다.
뻐꾸기
조영주
아가 업고 자장자장
앞마당 돌 때
앞산 위 뻐꾸기
뻐꾹 뻐꾹
아가는 등에 업혀
잠이 들어요.
강아지랑 쫄랑쫄랑
심부름 갈 때
앞산 위 뻐꾸기
뻐꾹 뻐꾹
강아지도 따라서
방울 흔들죠.
- 조약돌 11집.1983 -
위의 작품 「뻐꾸기」는 60년대, 70년대, 80년대의 한 사회문화적 특징이 보인다. 아기를 등에 업고 엄마를 기다리는 모습은 이제 역사적인 한 페이지가 된 것이다. 아가를 업고 마당을 돌고 있는 시적 인물의 배경으로 뻐꾸기와 강아지가 설정되어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박영규는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교원으로 재직하였다. 1980년 월간문학에 동시가 당선하여 등단하였으며, 1981년 월간문학사에서 발행한 동시집 『초여름 바다』가 있다. 박영규의 동시에는 ‘자연과의 교감’을 바라는 동심이 담겨있다.
산 도랑에서
박영규
돌돌돌돌
돌틈 사이로 흐르는
아무도 없는 산도랑
발긋한 햇빛만
오르며 내리며
하루를 놀다 간다.
속까지 환히 뵈는
물이 맑아서
조용히 발 담가놓고
마음 확 터놓고
심심한 이야기랑
나누다 간다.
- 박영규, 「산도랑에서」, (관동문학 창간호, 1987) -
강릉아동문학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동극부문에 창작을 한 작가로는 고성주(1942-2008)가 있다. 고성주는 1987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동극이 당선하였다. 강원도 양양 출생으로 강릉사범학교와 명지대학을 졸업하였다. 초등학교에 계시면서 아동 극본을 많이 집필하였다. 받은 상으로는 대한민국 문학상, 한국어린이도서상, 한국동극문학상, 눈솔상, 창작희곡상, 박홍근아동문학상, 한국희곡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동극집『희망의 속삭임』,『노란 은행잎의 꿈』,『외로운 별』,『슬픔이 가득한 가을이야기』,『1등이 있으면 꼴찌가 있어야 할 텐데』등이 있고 이론서로는 『아동극의 이론과 실제』가 있다. 서울 반포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었다.
한국희곡작가 협회 부회장,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부회장, 한국동극작가협회 회장을 지냈다. 고성주는 우리나라 몇 안 되는 동극작가로 우리나라 동극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4. 1990년대 2000년대, 변환과 확장
1990년대와 2000년대는 강릉의 제3기 아동문학을 여는 시대로 전환과 확장의 아동문학시대라 할 수 있다. 이 무렵 등단한 중진 아동문학가들의 활동은 두드러졌다. 특히 동화부문에서도 새로움을 향한 동화쓰기로, 다양하고 신선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동요 부문에서도 활발하였다.
김교현(金敎鉉1945–2002)은 1945년 2월 28일 충청북도 단양에서 태어났다. 1967년 춘천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서 활동하였다. 1967년 3월 1일 운양초등학교에 첫 부임하며 교사 생활을 하였다. 1998년 8월 남강초등학교에서 명예퇴직을 하였다. 초등학교 교직에 봉직한 기간은 1967.3.1. -1998. 8. 김계순 여사와 결혼하여 1남 1여를 두었다.
1991년『아동문예』지에서 아동문예 문학상을 받으면서 등단하였다. 동요 동시집 『활짝 웃어라』(1993)를 아동문예사에서 발간하였다. 1996년에는 동요 동시집 『참 예쁜 무지개야』를 도서출판, 윤진에서 발행하였다. 1996년 〈한국아동문예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이어 1998년에는 〈한국글짓기지도상〉을 수상하였다. 2001년 동시집 『말할까 말까』를 아동문예사에서 출간하였다. 동시 「고추장」이 초등학교 6-2 국어 읽기교과서에 수록되었다. 1995년부터 2001년 까지 ≪솔바람동요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김교현은 사실주의 기법의 동시를 쓴 매우 획기적인 작가이다. 그가 쓴 동시 「연탄불」은 리얼리티 기법으로 보인다.
연탄불
김교현
어머니와 다투시고
아침도 안 뜨신 채 나가시며
막장 탄구덩에서
칵 죽어 버릴 거다.
그날 가스 폭발로
아버지는 정말
막장 탄구덩에서 돌아가시고
이 년의 소갈머리가
멀쩡한 사람 죽였지.
어머니는
앓아 누우시고
내가 갈아 넣던 연탄불도
꺼져 버렸다.
이 작품에서는 리얼리티적인 표현이 잘 드러나 있다. 시어 하나 하나에 세심하게 심리적인 면에 대한 통찰을 하고 있다.
TV가 안 나와요
김교현
저녁시간
텔레비전이 안 나왔다
뭘 하지?
엄마는 몇 번이고
스위치를 켜 보시는데
동생은 징징거리며 울어버린다
팔도 다리도
눈도 입도
할 일을 잃었다.
그런데도
꼼짝없이
앉아 있는 식구들
텔레비전이
우리 몸을 꽁꽁 묵어버렸네.
엄마의 행동과 동생의 행동이 대조를 이룬다. 그 사이 행간에는 심리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기계 문명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심리적 대화로 그려놓은 점이 돋보인다.
고추장
김교현
고추장에 보리밥 빨갛게 비벼
장닭에게 먹이면
닭싸움에서 이겼지.
피 흘리면서도 이겼지.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
고추장 한 숟갈 먹으면
힘이 솟았네.
금메달 땄네.
남의 나라 이민 갈 때도
중동 당 모래밭에서도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 할 때도
항아리에 고추장 싸매 들고
보릿고개 배고플 때도
달랑 고추장 한 종지면
밥 한 그릇 꿀맛이었지.
고추장은
을지문덕 장군의 함성이다.
계백 장군의 부릅뜬 눈이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다.
고추장은
조상의 빨간 피.
억센 힘줄이다.
- 초등교과서 6-2 읽기 수록되었던 작품 -
이 작품은 초등학교 「읽기」 6학년 2학기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작품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식품인 ‘고추장’에 접맥하여 우리 민족의 역사성을 그려 놓았다.
박성규(朴聖奎 1946 - )는 호(號)가 동하(東河). 1992년 『아동문학연구』신인상에 동시가 당선하여 문단에 나왔다. 또 1995년에는 『시와 시인』에서 시로 등단하였다. 2004년 강원문학작가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는 관동문학상, 2014년에는 강릉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동시집 『별과 들꽃』(아티스트), 1993. 시집『그곳에는 시계가 없다』(예찬출판사), 2004 등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강릉지부장, 강원문인협회 부회장, 강원예총 감사 등을 지냈다. 2017년엔 강릉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솔바람동요문학회≫ 동인으로도 참여하고, ≪열린시≫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평창 주진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퇴직하였다.
박성규는 어린이 마음속의 감정을 담은 생활동요와 민요가 눈길을 끈다.
동요 「뱃노래」가 2009년 개정 교육과정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렸다.
뱃노래
박성규
어기여차 어기여차 훈풍이 불어온다
어기여차 어기여차 하늘 높이 돛을 올려라
우리들의 푸른 꿈을 하늘 높이 활짝 펼치러
출렁이는 파도 헤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자
배띄워라 배띄워라 어기여차 어기여차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어기여차 어기여차
두 팔에 힘을 주어 어기여차 어기여차
배저어라 배저어라 어기여차 어기여차
우리들의 높은 뜻 어디에다 펼치리
(어야디야 어야디야)
저 푸른 바다로 힘차게 나아가자
저 푸른 바다로 힘차게 나아가자
(어야디야 어야디야)
내 친구
박성규
언제나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실바람이 지나 듯 얌전한 내 짝
때로는 용용죽겠지 놀려도 주고
얼굴이 빨개지며 화도 냈지만
이제 다시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지난날의 내 모습이 부끄러워요.
- 솔바람 회보 132호, (1998.3.28.) -
동요 「내 친구」는 얌전한 짝을 놀려준 게 미안해 반성하는 동요이다. 교육적인 효과도 높이고 어린이의 마음을 잘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다.
동요 발표로 널리 알려진 이복자(1954 - )는 강릉에서 출생하였다. 1977년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직에 근무하였다. 36년 동안 교직에 근무하다가 남양주시 동화중학교를 끝으로 명예퇴직을 하였다. 솔바람동요문학회원이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아동문학연구소 운영 위원. 풀꽃아동문학회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회, 한국교단문인협회, 한국글사랑문학회, 한국기독교 문인협회, 한국동요음악협회, 한국동요 작사 작곡가 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받은 상으로는 1994 한국아동문학연구 동시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울기연습」, 1997 『시마을』 시부문 신인상 수상 「등잔불」 외, 제1회 한국글사랑 문학상 「가을 숲에는 배울 이별이 있지만」, 제25회 한국아동문학작가상 「참 아름다운 동시」, 제3회 교단 문학상 「가을 숲에는 배울 이별이 있지만」, 제18회 대한민국 동요대상 수상 「새짝궁」 외, 2004 KBS창작 동요제 노랫말 부문 우수상 「재미 쏙쏙 주말농장」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별과 나 사이』, 시마을, 1998. 『가을 숲에는 배울 이별이 있지만』, 교단문학, 2000. 『내안에 태워둔 불꽃』, 라토피아, 2002.『배꼽에 다시 탯줄을 세우고』, 푸른사상, 2004. 『그가 내 시를 읽는다』, 푸른사상, 2016.
동시집으로는, 1997년 ≪익산출판사≫에서 동시집 『떡볶이 친구』, 1999년 ≪대한≫에서 『한눈 팔지 말 걸』, 2000년 ≪아동문예≫에서 『입장 바꿔 생각해 봐』, 2003년 ≪영림카디널≫에서『참 아름다운 동시』, 2011년에는 ≪아동문학세상≫에서 『나는 항해 중』등을 상재하였다.
노랫말 동요곡집도 내었다. 2007년 ≪한국음악교육연구회≫에서 『8분음표로 걸어요』, 2016년 ≪드림뮤직≫에서 『콩닥콩닥 두근두근』을 상재하였다. 2017년 ≪소야 쥬니어≫에서『참나무가 나에게』를 상재하였다.
교과서에도 많은 작품이 수록되었다. 2013년 ≪YBM중등음악교과서≫에 동요 「열려라 참깨」(이복자 요, 김형자 곡)가 수록되었다. 2014년 ≪해법에듀 음악 3-4학년≫, ≪세광음악출판사 음악 3-4학년≫에 동요 「새 짝꿍」(이복자 요, 이성복 곡)이 수록되었다. 2014년 ≪동아출판사 음악 3-4학년≫에 동요 『콩닥콩닥 두근두근』(이복자 요, 김진숙 곡)이 수록되었다.
또 KBS, MBC, EBS 등 각종 창작동요대회에 40곡 가까이 발표되었다.
콩닥콩닥 두근두근
이복자
1.큰일났어요 (마음이 콩닥콩닥) 병이 생겼어요 (콩닥 콩닥)
친구에게 알사탕을 받던 날부터 내 마음이 콩닥콩닥 콩닥
콩닥콩닥 큰일났네 얼굴이 저절로 빨개져
친구 마음 알고부터 콩닥콩닥 병이 났네 어머나
큰일 났어요 (마음이 콩닥콩닥) 병이 생겼어요 (콩닥콩닥)
친구에게 알사탕을 받던 날부터 내 마음이 콩닥콩닥 콩닥
2.큰일났어요 (가슴이 두근두근) 병이 생겼어요 (두근두근)
친구에게 초콜릿을 주던 날부터 내 마음이 두근두근 두근
두근두근 큰일났네 마음이 저절로 설레어
내 마음을 주고부터 두근두근 병이 났네 어머나
큰일 났어요 (가슴이 두근두근) 병이 생겼어요 (두근두근)
친구에게 초콜릿을 주던 날부터 내 마음이 두근두근 두근
설레이는 내마음을 알고 있을까 딸기가 된 내 얼굴 랄라
동요를 통해 어린이들의 사랑을 표현한 점이 매우 귀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 노래는 김진숙 작곡으로 널리 어린이들에게 불리어지고 있다.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최갑규(崔甲圭1924 – 2017)는 호(號)가 심영(深影)이다. 많은 수필을 저술하였지만 솔바람동요문학회에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84년 『교육자료』에 수필이 3회 천료되었고 1995년 『아동문학연구』에 동시 「바람」외 2편이 신인상에 당선하였다.
최갑규는 정태모 등과 함께 1990년대와 2000년대 솔바람동요문학회원으로 참여하였다. 매월 한 번 씩 모여 합평회를 하는 자리에 가면 제일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후배 회원들의 모범이 되었다. 최갑규, 정태모 시인도 모두 돌아가신 후에 그 자리를 이호성, 전세준 시인들이 채우고 있다. 매월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솔바람 모임에 가 보면 정태모, 최갑규 어른 대신 전세준, 이호성 시인들이 먼저 그 자리에 앉아 후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동요 「꼬마 잠자리」에 보면 잠자리의 비행 모습을 보는 티 없이 맑은 소년, 소녀를 그려보게 된다.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잠자리의 움직임을 통해 극명하게 표출하고 있다.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공간처럼 짧은 동요로, 매우 넓은 공간적 구성이 돋보인다.
꼬마 잠자리
최갑규
위잉 위잉 잠자리 꼬마 비행기
짝을 지어 나란히 공중을 가네
푸른 하늘 흰구름 머리 닿을라
올라갔다 스르르 내려오면서
잠자리 비행훈련 재미있네요
위잉 위잉 잠자리 꼬마 비행기
산너머 잿마을에 넘어도 가고
강 건너 들마을에 건너갔다가
우리집 마당으로 돌아와서는
빨랫줄에 엎드려 쉬고 있네요
- 솔바람 회보 136호. 1998. 9. 26. -
1995년 『해동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학근(1942 - )은 강릉에서 출생하였다. 시조와 아동문학 작가이다.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속초 청호초등학교 교감, 영랑초등학교 교감, 양양 남천초등학교, 인구초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문학 활동으로는 영동시조문학회 사무국장을 지냈고 백오문학동인회장을 지냈다. 수필집으로 『우리 선생님 내 친구들』, 시조집『갈매기가 모여 선 운동장』등이 있다. 중앙일보 지상백일장에서 차상을 하기도 했으며 한국아동문학연구소에서 동시조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동시조 「교실에서」는 어린이들의 천진함을 새에 비유하면서 선생님 또한 큰새로 비유하여 즐거움을 표출한 작품이다. 김학근의 동시조는 교실에 모여드는 햇빛처럼 밝고 따스하다.
교실에서
김학근
활짝 연
창문으로
재잘대는 참새 떼
선생님도
새가 됐네.
훨훨훨 큰 새 됐네.
교실은
포근한 둥지
햇빛 가득 머물고.
- 동해안시대 8집 『안개주의보』(2002년)에서 -
박순정(1950 - )은 1993년『포스트모던』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경희여자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강릉지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며 솔바람동요문학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99년 도서출판 한국음악교육연구회를 통해 펴낸 노랫말 동요곡 『별이야기』가 있다. 《한국문인협회》, 《조약돌아동문학회》, 《솔바람동요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2009년 개정교육과정에서 동요「신바람 나는 날」이 초등학교 음악 6학년 교과서에 실렸다.
신바람 나는 날
박순정
오늘은 정말정말 신바람 나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빠 엄마 칭찬에
숙제 참 잘했다 선생님 칭찬까지
라랄랄라랄라 콧노래가
야호 야호 파이팅이
와 와 와 와 내일은 더 잘해야지
정말정말 신바람 나는 날
오늘은 정말정말 신바람 나는 날
내가 제일 좋다는 내 친구 편지에
큰 사람 되겠구나 선생님 말씀까지
으쓱 으쓱 어깨춤이
얼쑤얼쑤 흥타령이
와 와 와 와 다음엔 더 잘해야지
정멀 정말 신바람 나는 날
공병호(1951 - )는 강릉에서 태어나 시와 동시를 쓰는 작가이다. 1996년에 『문학공간』에는 시로, 『아동문예』에는 동시로 각각 당선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1995년, 전북 무주 양수발전처 준공 기념 시비 공모에 당선하여 시비가 서 있다. 1999년에는 한국수력원자력(주) 사가 작사에 당선하였다. 와우코리아(신문사) 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공병호는 많은 동요를 창작하였다. 아래의 동요 「재롱잔치」와 「숲속 이야기」 중에서 「재롱잔치」는 우리의 전통 문화인 효 사상이 녹아 있다. 또한 「숲속 이야기」에는 모성애 같은 자연의 보호와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재롱잔치
공병호
설날엔 설날엔 재롱잔치 하는 날
우리들 재롱에 할아버지 웃는 날
노래도 부르고 장기자랑 하는 날
하하하 웃으며 손뼉치는 할머니
추석엔 추석엔 재롱잔치 하는 날
언니랑 오빠랑 나랑 셋이 어울려
할머니 앞에서 율동체조하지요
할머니 하하하 할아버지 빙그레
어른들 앞에서 재롱잔치를 하는 모습을 그렸다. 점점 인간성 상실로 위기의 시대에 경로효친 사상의 확인이라는 점에서도 ‘효’사상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효 사상을 저변에 깔고 있는 이 동요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요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흥겨움을 준다.
숲속 이야기
공병호
울창한 숲속에 산새가 찾아왔어요
더워요 잠깐만 쉬었다 가도 되나요?
배고파 열매를 따먹고 가도 될까요?
마음껏 따먹고 마음껏 쉬어 가세요.
울창한 숲 속에 노루가 찾아왔어요
그늘에 잠깐만 쉬었다 가도 되나요?
목말라 옹당샘 마시고 가도 될까요?
마음껏 마시고 마음껏 쉬어 가세요.
숲이 동물에게 베푸는 넓은 마음은 마치 어머니의 마음과도 같다. 흥미를 주면서도 교훈을 담고, 즐겁게 노래로 부를 수 있는 동요이다.
숲과 산새의 대화, 숲과 노루의 대화가 재미를 더하고 있다.
아름다운 서정성과 민족의 기개를 동시로 형상화한 시인으로는 요절한 시인 최정애(1963 – 2005)가 있다.
최정애 시인은 1963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강릉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춘천교육대학을 나온 이후 줄곧 교직에 몸담았다. 1997년 아동문예 8월호 아동문예문학상에 당선 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심사위원은 박종현 시인과 남진원 시인이 하였다.
최정애 시인은 이후 강릉초등학교 등 교단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창작활동을 하였다. 조약돌아동문학회, 솔바람동요문학회원으로 활동하였다. 2005년 4월 30일 지병으로 짧은 생애, 43세로 세상을 마감한다.
최정애 시인의 본격적인 문단 활동은 아동문예 문학상에 동시가 당선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4월에는 첫 동시집 『감꽃 목걸이』를 아동문예사에서 출간하였다.
2004년 1월에는 두 번 째 동시집 『할아버지 나라』를 아동문예사에서 출간하였다. 그리고 이 해에 ‘할아버지 나라’외 4편으로 한국동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2005년에 영면하였다.
최정애 시인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초등학교 때 동시인 엄성기 선생님이 펴낸 동시집 『산골아이』를 읽으면서부터였다고 자서에서 말하고 있다.
동시 ‘산골아이’를 읽고 동시에 대한 희망을 가졌듯이 그렇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동시집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바람으로 동시집을 냈다고 하였다.
최정애 시인이 자서에서 밝혔듯이, 그의 시심은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새봄에 느끼는 벅찬 감동을 느끼는 마음. ②소리 없이 피고 지는 들꽃들의 고귀함을 눈여겨 볼 수 있는 마음. ③아무 의심 없이 쳐다보는 아기들의 맑은 눈동자 같은 마음. ④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이다.
제1동시집 『감꽃 목걸이』에 나타난 작품 성향은 다음과 같다.
1부에서는 생활경험을 담은 이야기들이 동시로 형상화되었다. 2부에서는 한국의 전통적인 꽃을 대상으로 쓴 글이다. 즉,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들이다. 3부는 봄을 중심으로 하여 따뜻하고 신선한 정감이 그려져 있다. 4부는 사람과 자연물에 대한 아픔과 연민, 사랑이 담겨 있다.
최정애 시인의 동시집 발문에서 남진원은 작품세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시어를 사용하여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 하였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은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언어의 특징은 부드럽고 힘차며 싱싱하고 희망적인 기운이 담겨 있다.
제2동시집 「할아버지 나라」에 나타난 작품 성향은 다음과 같다.
두 번째 동시집 『할아버지 나라』에서는 우리 민족의 뿌리를 동시로 써서 어린이들에게 민족의 얼을 심어주고 있다. 최정애 시인은 할아버지나라의 참다운 어린이는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지극한 선(善)의 세계에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백결선생’과 ‘지구야 사랑해’ 등의 작품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신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었던 / 충신 박제상 // 기다림에 지친 아내와 두 딸은 / 치술령 고개에서 석상이 되고 / 둘째 딸 아영이 남동생을 기르니 / 그가 바로 / 백결 선생 박문량이라네 // 그의 성품 맑고 깨끗하여 /벼슬을 버리고 시골에 살며 / 해진 옷 수없이 꿰매 입으니 /사람들이 백결선생이라 부르더라 // 평생의 품은 한을 / 거문고로 달래며 / 신선처럼 사시다가 / 신선되어 가셨다네
- 백결선생 -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사는 백결선생의 삶의 모습에서 한민족의 뿌리를 이어받은 정통성을 이미지로 표출시키고 있다. 동시 속에 민족의 혼을 불어넣으려는 지난한 몸짓을 알 수 있다. 우리 어린이들이 어떤 정신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백결 선생은 평생에 품은 한이 있어 거문고로 달래며 신선처럼 살다 가셨다. 어쩌면 백결 선생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최정애 시인은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평생에 질병을 안고 살아가며 마음껏 활동하지 못한 모습은 백결 선생이 한을 가지고 사는 모습과 비슷하다. 백결선생이 거문고로 한을 달랬다면 최정애 시인은 동시를 쓰며 한을 달랬다. 그리고 선녀처럼 살다가 이승을 떠났다.
개천절 행사 때 / 지구공을 받았다 // 말갛고 부드러운 지구를 / 내 품에 안고 / 가만히 귀를 대어 보았다 // 지구가 따뜻해지며 /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 왔다 // 곱게 잠든 아기처럼 / 지구도 / 모두가 보살펴 주어야 하는구나 / 모두가 사랑해 주어야 하는구나 // 사랑으로 보살펴야 / 더 튼튼하고 아름다운 지구로 / 자랄 수 있다는 것을 / 우리 모두 잠시 잊었단다 // 지구야 미안해 / 그리고 사랑해
- 지구야 사랑해 -
개천절 행사장에서 지구공을 선물 받고 지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시의 내용이다.
민족의 뿌리를 알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음을 느낀다. 우리의 조상인 단군에서부터 나를 찾고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사랑의 힘은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발전한다. 홍익인간 이화세계로 나갈 때 전 지구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뿌리는 단군시대에는 천지화랑, 고구려시대에는 조의선인, 신라시대에는 화랑도로 내려왔다. 최정애 시인은 단군에서 발원된 사랑의 에너지를 전 지구적 나눔의 사랑으로 연결시켰다.
수필가이면서 동화작가인 김백신(金栢伸1960 - )은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하였다. 문학 활동의 근거지는 강릉보다 춘천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1994년 『오늘의 문학』에서 수필 신인상을 받으며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1997년 〈서울신문신춘문예〉에 동화 ‘선영이’가 당선되었다. 소양문학상, 강원공무원문학상, 춘천여성문학상, 제28회 동포문학상, 강원아동문학상(2015)을 수상하였다. 저서에 수필집『선무당이 사람 잡네』(오늘의문학사,1997),『바글바글』,『말썽쟁이 크』등이 있다.
전국공무원문학회 강원권 이사, 강원문인협회 회원, 강원아동문학회 회원, 강원수필문학회 회원, 춘천여성문학회 부회장, 춘천문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김백신의 동화 세계는 강원아동문학상 수상작인 「달려라 맑은 강」에 잘 표현되어 있다. 강마을 작은 학교 운동회날, 장애가 있는 어린이 ‘맑은 강’이 포기하지 않고 전교생이 이어달리기에 참여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다음의 내용은 강원아동문학상 수상자 선정 심의(남진원 심의위원회 의장, 박유석, 진호섭, 최복형, 김종영, 김진광, 이화주 등) 결과에 대한 내용이다.
김백신 작가는 주인공 어린이 ‘맑은 강’을 통해 너희 편, 우리 편의 경계를 허물고 너와 내가 우리로 하나가 되는지를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아이들의 응원이 ‘이겨라’에서 ‘달려라’로, ‘달려라’에서 ‘맑은 강’으로 바뀌는 세부 묘사는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가독성이 있으면서도 가슴에 새겨지는 빛나는 문장들은 독자들에게 밑줄을 긋게 만든다. ‘장애아 어린이’라는 일상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동화 속으로 들어오게 하고 동화 속 인물들과 함께 ‘맑은 강’을 응원하게 만든다.
(이화주 글)
강릉아동문학사의 동화 영역에서 볼 때, 지금까지 많은 동화들이 교훈성에 머물러 한 단계 도약의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면 김백신은 「달려라 맑은 강」에서 사랑과 감동이라는 새로운 정형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