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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절
최순희
박판석은 집이 가까울수록 조금씩 염려되는 마음이 된다. 자동차의 속도가 늦춰진다.현관을 들어서니 온종일 아들만 학수고대하는 노인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다.
“어무이 댕겨 왔심더.”
“아이고 아주바님 은자 오시요!”
하며 몸을 벌떡 일으키는 노인을 보고 판석이 피식 웃는다.
“예, 제수씨 그간 몸수나 편하신 기요?”
“나가 요새 죽지 몬하여 삽니더. 행님은요?”
“저기 오네요. 저기”
주방에서 정선이 손의 물기를 치마에 닦으며 나온다.
“어머니, 재선 아빠인데…….”
“누가 그걸 모르냐. 말이 헛나왔지.”
노인이 주름진 입술을 실룩이며 아들을 따라 방에 들어가는 며느리를 향해 눈을 흘긴다. 잠시 후 정선이 방에서 나오자 노인의 쇳소리가 깨진다.
“이것들이 그새를 못 참고 거시기 지랄하고 나오제.”
“무얼요, 무얼 하고 나와요?”
“나가 바본 줄 아나. 니는 서방만 왔다카마 딱 둘러붙는 거 나가 모를 줄 아나.”
“세상에 어찌 그런 말을, 일한다고 옷 다 젖어 속옷 챙겨주고 나오는데.”
정선이 얼굴이 벌겋게 되어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이어 우당탕 플라스틱 통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판석이 문을 확 열어젖히고 큰기침을 뱉었다. 노인은 태평하니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입이 댓 발이나 나온 정선이 남편과 시어머니 둘만의 밥상을 식탁에 차려준다.
“당신은 와 저녁 안 먹을 끼가?”
“시방 밥 안 먹어도 배가 불러 터지겠소.”
아들의 곱지 않는 시선이 노인을 째려본다.
“야야, 국이 와이래 짭노? 조선간장 들이붓나.”
“어디가 짭소? 허 참, 은자 입맛까지 변했소.”
정선은 두 사람 다 꼴도 보기 싫은 듯 밖으로 팽 나가버렸다.
“당신 힘든 거 다 안다. 그렇다고 저런 병든 노인네를 우짜겠노.”
“아무리 그래도 억울한 소리는 안 해야지. 낮에도 시장까지 나가서 찾느라 진을 빼놓고.”
“노인네가 마님같이 곱게 살았으며 미쳐도 곱게 미칠 건데.”
또 주방이 소란스럽다. 노인과 정선이 눈을 부라리고 원수 보듯 마주 서 있다.
“니가 말해봐라. 금쪽같은 내 새끼들 다 우짜고 없노? 니가 애들 쫓아냈제?”
“참말로 미치겠네. 재선이는 선생님 하러 갔고요, 재영이는 기숙사에 있다고 몇 번을 말해요. 옆에 있으면 애들 달달 시달려서 어찌 배기라고.”
“에고고 내 새끼들 보고지고! 할미가 보고잡다고 기별하거라. 그라고 사람 사는 집에 사람 새끼 없으마 강생 새끼라도 키우지 널럴한 집구석에 검불 하나 없이 말갛게 해놓고 설랑.”
그가 노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작은 방으로 데리고 와서 이불을 덮어주고 잠들기를 기다렸다. 노인의 손목에 찬 배회팔찌가 눈에 들어온다. 주소 이름 새긴 목걸이는 빼 버렸다. “이기 뭐꼬? 나가 소 새끼여? 고삐 채우게, 치우뿌라 나는 매여서는 몬 산다. 여태 바람맞고 살아왔는디.”
노인이 히죽 웃는다. 검버섯 덮어쓴 얼굴에 굵은 주름이 골이 졌다.
“몬 살아도 내 새끼들 옆구리에 끼고 살던 그때가 참 좋은 시절이었제.”
어무이, 나는 그때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았소.
노인의 눈이 움푹 꺼지고 청승스런 소리도 가는 비처럼 잦아들었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넓은 옥상 오른쪽에 튼실하게 지어진 난실이다. 전기를 켰다. 선풍기 두 대와 동그란 온도계가 걸려있다. 소나무 등걸에 올려둔 풍란들이 자잘한 흰 꽃을 소복하니 품고 있다. 그윽한 향기에 시름을 덜고 미소를 안겨준다. 춘란들이 윤기를 뽐낸다. 중투가 새끼를 내고 있다. 십 년 넘게 기른 중투호가 금년 꽃대를 올리지 못하더니 녹색 테두리 잎에 금색 줄이 두세 개씩 든 선명한 촉수를 넉 장이나 밀어 올리고 있었다. 금년에는 난들이 꽃대를 많이 올렸다. 설판에 점 하나 없는 깨끗한 순백색 꽃을 피웠던 소심도, 황화도 싱싱한 난 잎을 건사하고 있다. 꼭 설판에 붉은 점을 찍어 티를 내는 춘란은 아직도 꽃을 피운다. 돌연변이 난들도 더러 있다. 산을 찾은 이십여 년에 욕심내지 않았건만 난분이 100여분이다. 난에게 물줄기를 들이댄다. 쏴-난들이 물을 머금는 소리에 그는 자신이 더 개운하고 시원해진다.
한나절 배기려니 허리가 더 아프고 온 삭신이 쑤셔 일어나 마당을 서성이던 고복자 눈에 담장을 반이나 넘어온 이불이 딱 걸렸다. 지팡이로 용을 써 저쪽으로 넘겨버렸다. 잠시 후 이불이 다시 널렸다. 고복자는 이불을 이쪽으로 확 당겨버렸다. 늦게야 사태를 알고 이불을 가지러 온 옆집 여자가 이불을 주워가려는데 바닥의 흙 묻은 것은 고사하고 이불 홑청이 좍 째져 있잖은가. 노인이 수돗가에서 시침 뚝 떼고 한눈팔고 있다.
“재선 할머니 너무 하시네요. 널린 이불이 뭔 죄를 지었다고 이 꼴로 만들어요?”
“이 피사리 쭉지 같은 여펜네가 뭐 잘했다고 딱딱거리노?”
“딱딱거려요? 미친 노인이라고 좋게 봐주자니 해도 너무하네!”
“뭐라꼬, 니 시방 뭐라카노?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지. 쌔가 만발이나 빠질 화냥년아 나가 어째 미치더노? 너거 집에 가서 밥을 달래 술을 달래, 나가 미치는데 니가 보태준 거 있거들랑 말해 보거라. 무시래기 같은 년아!”
“어머머! 세상에 욕을 해도 어떻게 저런 쌍욕을 막 할까?”
“뭐 쌍욕! 히히 오냐 니년한테는 그래 욕도 양반 욕 올릴까. 그 째진 주둥이부터 확 밀어버릴라. 아침 댓바람부터 남의 집에 와설랑 뭐 미쳤다꼬, 미친년 맛 좀 보거래.”
방 청소하고 있던 정선이 악다구니 비명에 놀라 마당으로 달려 나왔을 때는 고복자가 이웃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이불에 둘이 쓰러져 있었다.
“손! 손! 제발 손 좀 놓으소. 그만! 그만요!”
겨우 떼어낸 고복자의 손에는 검은 머리카락이 정말 한 옴큼은 쥐어져 있었다.
“세상에 미쳐도 유분수지 사람 죽이려드네. 쭈굴망태 할망구야 정신병원에나 가지.”
“성철엄마 미안해. 내가 사과할게. 한 번만 봐주라!”
정선은 길길이 날뛰는 노인네 잡으랴 새파래진 성철엄마 달래랴 정신이 없다.
“저 빌어 처먹을 잡년이 뭐라카노? 가고 잡으면 니 혼자 가지 줄줄이 델꼬 갈라꼬. 만날 내 욕하는 줄 모를 줄 아냐, 꼬리 아홉 달린 여시 같은 년아!”
“욕 좀 그만하소. 욕 잘하면 누가 상 준답디까?”
“그래, 너거 두 년들이 해구녁만 올랐다 하며 담벼락에 달라붙어서 주둥이 맞추는 꼴 눈꼴시어서 못 보제. 철지난 메뚜기 뛰듯 시건방 떠는 이-년-들-!”
듬성듬성한 머리숱이라 댕기꼬리에 의지한 옥비녀는 이 와중에 어디로 빠져버리고, 쥐꼬리만 한 머리 꼬랑지가 목 뒤에 처져있다. 푸르죽죽한 몸빼 한쪽 가랑이는 쭈르르 올라가 뼈만 톡 불거진 앙상한 무릎에 걸쳐있고 한쪽은 자주색 슬리퍼에 뭉텅 밟혀있다. 푹 꺼진 눈꺼풀을 뒤집고서 게거품을 물고 침은 사방에 튀고 쭈글쭈글 늘어진 목살은 털 빠진 늙은 수탉이다. 사방팔방 찔러대는 살집이 쪼그라진 팔은 허수아비 팔이요 산골짝처럼 골이 패진 시퍼레진 얼굴로 그렁그렁 숨을 모두며 삿대질이다. 정선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옛날 정선이 시집왔을 때, 없는 집에 와줘서 미안하다 우짜든지 자손 쑥쑥 낳고 살림 늘캐가며 잘 살거래이! 하며 진심으로 반기던 시어머니였다. 그런 사람이 치매가 깊어지면서 사흘 도리로 며느리 속을 뒤집었다. 툭하면 굶긴다고 욕을 퍼붓고 따뜻한 숭늉은 입천장 벗긴다고, 찬물은 잇몸 시리다고 그릇을 내던졌다. 애착하는 것은 곡식이었다. 뒤주의 쌀을 집안 곳곳에 숨겨두어 아들이 쌀 한 포대와 찹쌀 한 포대를 환자 머리맡에 놔두었다. 저녁에 정선이 오늘 일을 몇 곱은 더 보태가며 얘기해도 판석은 눈도 꿈쩍 않았다.
“내가 수차 말했지. 싸움닭 할매가 쌈할 데가 없어 근질근질하던 판에 좋다 붙었구먼.”
“당신한테 말하느니 벽보고 말하겠소. 내가 죽지.”
“아지매요 죽기 전에 옆집 이불 값이나 물어주고, 돼지고기 한칼 끊어다 주게. 머리칼 뽑히고 기운 뺏으니 든든하게 먹어야 저 노인네랑 또 씨름 붙지.”
“아유 난 몰라!”
판석은 담배를 물고 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정선에게 말은 안했지만 요양원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도 아내도 저대로 두기가 불안하다. 옥상바닥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시멘트 바닥이 찹찹하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파트 건설현장 감독 일이 피곤하다. 새삼 그 옛날 유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어둠이 몰려온다. 밝은 빛이 부끄러워 그늘지고 어두운 길만 골라 다니던 유년의 쓰라림이 그의 가슴을 싸늘히 훑고 지나갔다.
가난했다. 방 한 칸 부엌 딸린 토담집이 전부였다. 아이 넷 달린 청상과부는 살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높새바람 불어오며 보릿고개 넘기기가 힘들어 쑥밥, 나물밥으로 때우고 마파람엔 꽁보리밥 뜸들이기도 힘들었다. 하늬바람 귓불 스치던 가을날에 남들이 캐고 간 밭이랑에서 이삭 주운 고구마로, 문고리에 손이 떡떡 들어붙는 추운 날에는 김치를 숭숭 썰어 넣고 식은 밥 한 덩이를 넣어 끊인 김치국밥으로 훌훌 점심을 때웠다. 동지섣달 긴긴밤에 고물고물 강아지 새끼 같은 어린 자식들이 잠 못 들고 껄떡이며 젊은 엄마는 커다란 양푼에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동치미국물과 아삭하게 삭혀진 무를 건져와 숭덩숭덩 썰어서 새끼들을 먹였다. 꽁꽁 언 냇가 얼음을 방망이로 깨고 마디마디 터진 손 호호 불며 남의 빨래 한 광주리 해주고 밥 한 양푼과 김치 얻어와 새끼들 입에 꼭꼭 넣어주었다. 허구한 날 나뭇단이고 댕겨 머리는 까치집이 되고 옷은 남루하였다. 젊은 남편은 폐병으로 피를 쏟고 죽었다.
함안양반 사랑채 뜰에는 추위도 가기 전, 잎 하나 달리지 않은 나무에 하얀 별꽃이 반짝였다. 별꽃을 따라 무심코 들어가 본 큰사랑 마루에는 길쭉한 그릇에 담긴 푸른 잎들이 바람을 당기며 살랑이고 있었다. 머리에 탕건을 쓰고 얼굴이 희고 수염이 산신령 같은 노인이 좁다란 그 잎들을 깨끗한 수건으로 하나하나 닦아주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아비 함자 말해 보거라.”
“아비는 죽었심더.”
“그럼 어린 신세로 심신이 고단할 터.”
“저 풀은 무슨 풀 인기요?”
“어허, 이놈아 풀이 아니고 난이라고 부른다. 춘란, 설한풍 이겨내고 핀 저 매화나 삼동을 지낸 난에서 이렇게 장하게 꽃대가 올라오고 있구나.”
“예?”
며칠 뒤 그는 뒷산에서 장하다는 그것을 두어 포기 캐어와 이빨 빠지고 금 간 뚝배기에 심었다. 어린 날 제일 부러웠던 게 이웃집들에 쌓이든 볏단들이었다. 윙윙거리는 탈곡기에 털려고 산처럼 쌓아지던 낟가리들이 얼마나 보기 좋았던지 한번은 알곡을 턴 볏단 두어 개를 주어와 그들의 나지막한 초가집 지붕 위에 겨우겨우 던져 올렸다. 판돌의 눈이 둥그레졌다.
“행님아 지붕 우에 짚단은 와 힘들게 던져 올리노?”
“우리도 농사짓는 집같이 하고 싶어서, 저거라도 올려놓으니 보기가 참 좋다!”
그가 여덟 살 때 양자를 갔다.
“판석아 니는 오늘부터 큰집에 살아라. 거기 가면 밥도 배불리 먹고 학교도 가고 한다.”
“엄마 내가 갈까? 행님아 여기 있고 내부터 보내주어.”
“큰집에서 너거 형만 보내란다. 소먹이고 소꼴이라도 베어오라 시키지 그냥 밥 줄까!”
어린 동생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큰집에 갔다. 바로 이웃 마을이다.
“아주바님 행님, 못나도 지가 어민데 나가 속이 편키야 하겠습니꺼. 우리 판석이 우짜든지 밥 많이 주고 행님 자식으로 거두어 주시소. 내 부탁은 이거 하나라예!”
“걱정을 말게. 정말 알몸만 끼고 왔네. 장에 가서 옷가지부터 장만해야 쓰것네.”
큰아버지는 때에 절어 시커먼 그의 손을 덥석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말했다.
“은자부터 여기가 너 집인기라. 알았제 판석아!”
“맞심더. 판석아 우야든지 배불리 먹고 잘 지내거라. 꼴머슴 주는 것보다 낫겄제.”
그는 콧물이 자꾸 나와 소매 끝으로 닦았다. 엄마는 선걸음에 일어났다. 엄마는 엉거주춤 따라나서는 그를 보고 손사래를 치며 뼛속까지 얼어붙는 갈퀴 같은 삭풍이 몰아치는 빈 논둑길을 검정 무명치마를 뒤집어쓰고 미친 듯 허겁지겁 달아났다. 큰아버지는 이따금 쇠죽 끓인 잔불에 고구마를 묻었다가 그에게만 주었다. 짚동 사이에 들어가 호호 불어 먹으며 동생들이 떠올랐다. 부지런한 큰아버지 큰어머니 덕택에 보리밥은 배불리 먹었다. 한 번은 큰어머니가 장에 가시고 누이들이 마을가고 없을 때, 정지 큰 단지의 보리쌀 두 바가지를 무명 보자기에 퍼 담아 허둥지둥 집으로 달려가 밥풀떼기 하나 안 붙은 부뚜막 가마솥 안에 부어놓고 왔었다. 판수가 씨부렁거렸다.
“우리는 만날 쑥밥 무시 밥이다. 진짜 묵기 싫은데, 큰집은 쌀밥만 묵제!”
“아니다. 쌀밥은 제사지낼 때 묵고 큰집도 만날 보리밥 묵는다.”
터덜터덜 집에 오니 큰어머니가 누이들을 족치고 있었다.
“누가 보리쌀 손댓노? 너들이 굶어봐야 정신 차릴래. 움푹 들어갔네. 누구 소행이고?”
명주색실이며 갑사댕기를 곡식 퍼주고 몰래 사는 누이들은 시침 뚝 떼고, 그는 겁이 나서 숨도 못 쉬었다. 밤에 아래채 큰아버지 곁에 누웠을 때 큰아버지의 한숨이 들렸다.
“내일 보리방아 마자 찧는데 보리쌀 반 가마는 너거 집에 보낼 거니 걱정 말거라.”
호롱불도 꺼진 캄캄한 어둠속에서 눈가에 맺히는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귓속으로 흘러들었으나 닦지도 못하던 어린 소년이 숨죽이고 있었다.
아홉 살에야 들어간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일 년 양식인 보리타작이 코앞인 때다. 들판의 보리가 황금빛으로 익어갈 무렵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가 날이며 날마다 끝도 없이 내렸다. 보리타작은 아예 할 수 없게 비가 끈질기게 내렸다. 하늘에 구멍 난 듯 쏟아지는 폭우도 아니고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장마도 그런 지겨운 장마는 없었다. 웃날만 들며 도리깨로 타작하려고 낫으로 베어놓은 보리에서 하얗게 싹이 올랐다. 하얀 새싹은 이내 새파란 싹으로 바뀌었다. 큰아버지는 물이 축축한 보릿단들을 황토물이 내려가는 둑으로 옮기느라 씨름을 하였다. 누이들도 그도 거들었지만 물에 푹 젖은 보릿단들이 어찌나 무겁던지 발이 푹푹 빠지는 논바닥에 뒹굴기 예사였다. 보리가 전부 엿기름이 돼버렸다. 큰아버지 큰어머니는 시커멓게 썩어가는 보리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는 보리 알맹이만 떼 와서 등짝 기댈 곳도 없이 축축하고 눅눅한 온 집안에 펴 널었다. 한줌이라도 말리려고 비에 젖은 나무로 검은 연기를 돋우며 군불을 지폈다. 베지 않고 서 있던 보리도 썩어내려 앉았다. 들판엔 거름더미가 쌓여갔다. 너나없이 다 지어놓은 보리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렸다. 어른들은 살다 살다 그렇게 긴 장마는 없었다고 탄식들을 하였다. 보리 한 말을 못 건진 집이 많았다. 큰집도 벼농사는 지어 지주에게 다 가고 보리농사 지어먹고 사는데 보리쌀 한 말을 못 건졌으니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밤낮없는 비에 외양간이 슬금슬금 내려앉았다. 누렁이를 아래채 부엌 쇠죽솥 옆에 매어두었다. 장마에 무너진 그 외양간이 나중에 큰아버지의 명줄을 재촉하리라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뒤란 구렁이보다 더 지긋지긋하던 장마가 물러간 후, 큰아버지는 참담한 일을 당했다. 무너진 외양간을 세우려고 근방 산에서 큰 나무 대여섯 개 잘라온 게 화근이 되어 산주 머슴들에게 끌려가 얼마나 맞았는지 실신이 되어 이웃 사람에게 업혀 왔다. 큰어머니는 방안에서 저주와 악담을 퍼부었다. 그리고 골병든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벌금이 나왔다.
“흉년에 굶어 죽는 백성은 외면하고 매타작에 껍데기까지 홀랑 벗기는 게 나라여? 녹두장군이 와 나왔던가!”
큰아버지를 따라 소고삐를 잡고 누렁이를 팔려갔다. 쇠전에서 누렁이를 보내고 장터에서 국밥을 사 먹었다. 큰아버지는 뚝배기 반도 못 드셨다. 그리고 누렁이를 판 그 돈으로 큰아버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산림계 벌금을 물었다. 그는 홍길동 같은 의적이 나타나 벌금 물은 그 돈이 큰아버지에게 밤새 돌아오길 빌었으나 점박이만 밤새워 울었다. 보릿고개 넘기고 흉년까지 들자 동네 인심도 팍팍해졌다. 어느 날 냇가에서 오디같이 새까매진 판돌과 판수를 만났다. 잡은 미꾸라지와 피라미를 찌그러진 양푼에 다 부어줬다.
“야 너거들 밥은? 집에 먹을 거 없제?”
판돌이 잠시 머뭇하더니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우리 오늘 이침 밥 묵었다. 엄마가 어제 밤에도 보리쌀 한 자리 이고 왔으께 걱정하지 말거라. 쑥밥해서 아껴 묵는다.”
이 흉년에 식구들이 굶지 않는다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엄마가 이고 왔다는 곡식은? 꿉꿉하니 짜증스레 더운 날, 우물가를 지나는데 칼날보다 모진 소리가 귀에 들어와 박혔다.
“소문 들었제?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 만든다고 과부 우사는 혼자 다 시키고 댕기제”
“하이고, 보리쌀 말이며 속곳 벌린다는 소문이더라. 암만 입에 거미줄을 쳐도 그렇지!”
“빙신도 문디도 안 가린다더라. 소문엔 댓 됫박만 앵겨도 치마 올린다던데.”
“저어기 그 바람난 년이 누구고 하니 떡실띠기 동세라면서?”
“아랫도리 바람 들어 인제는 과수로 몬살낀데, 새끼 버리고 사내 붙어 가겄제.”
동네 여자들이 상추 쑥갓 등을 씻으며 쑥덕이는 소리에 판석은 우물가에 늘어진 느릅나무 잎사귀에 몸을 숨기며 얼른 지나갔다. 그날 밤 큰어머니의 지청구가 크게 들렸다.
“원 창피해서, 발 달린 소문이라도 엔간히 나야지. 누구네 동세라고 대놓고 부르니.”
“아이고! 남사스럽네. 그래도 그 인간은 얼굴 빤빤하게 쳐들고 댕긴다카네!”
“하늘도 나라도 굶어 뒤지라고 외면하는데, 어미까지 이 흉년에 새끼들 한 구덩이에 굶겨 죽이는 게 그럼 장한 일이여?”
그는 쉬이 잠자러 들어가지 못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안고 빙빙 돌다 흐르는 도랑물에 북북 귀를 씻었다. 엄마가 달아나면 동생들은? 다 잡아서 목울대를 뽑아버리고 싶은 청승스런 개구리울음 속에서 헤매다 고양이처럼 방에 기어들었다. 새 옷을 차려입은 엄마가 집을 나서는 것을 울며 붙잡다 놀라 깨어 밤을 지새웠다. 큰아버지의 신음이 밤새 크게 들렸다. 큰아버지 심부름으로 옆 마을에 갔었다가 당집을 넘어올 때다. 해거름 녘이었다. 당집에서 다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얼른 당산나무 뒤쪽으로 숨겼다.
“아이고 이 흉측한 인간아, 쌀도 아니고 꼴랑 요놈 주고 거시기 더 하자꼬, 좀생이 영감아! 가다가 미나리꽝에 제발하고 퐁당 빠져 뒤지거라.”
“이 숭년에 곡식이 금쪽인디, 못 나가! 암 이대로는 못 나가제!”
“흥 내 몸이사 내 맘이제. 그 짝이 서방이여 남방이여.”
안에서 후다닥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희멀건 젖가슴을 드러낸 여자가 자루를 안고 튀어 나왔다. 여자는 재빨리 치마를 두르고 적삼을 걸치고선 곡식 자루를 머리에 헤깝게 이고는 살랑살랑 마을로 내려갔다. 남자는 내다보고 욕지걸이를 퍼부었다. 엄마였다. 비릿한 냄새가 바람이 날아왔다. 그는 당산나무에 매미처럼 딱 붙어버렸다.
막내 판수가 죽었다. 긴 장마로 보리흉년 들었던 그 해 초겨울에. 판돌이 걱정했다.
“행님아 판수가 요새 아프다 한다. 배가 자꾸 불룩해지더라. 우짜마 좋겠노?”
집에 가보았다. 핼쑥해져 누운 판수의 배가 유난히 불렀다. 판수가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행님아 군고구마 맛있겠다. 이따가 먹을게. 쪼매만 먹어도 도로 올라오거든.”
이튿날 표준전과 사고 싶어 모으던 얼마 안 되는 용돈을 가지고 학교 가는 길에 집에 들르니 엄마가 판수를 리어카에 태우고 있었다. 밤새 얼마나 아팠는지 판수는 기진해 있었다.
“세상에 니가 웬 돈이고? 우선 아픈 새끼 살리고 보자.”
엄마는 시오리 읍내 길을 재촉했다. 판수는 병원 약을 먹이자 덜 아파했다. 그러나 판수 배는 동산처럼 둥그렇게 부어올랐다. 엄마는 갈퀴처럼 거칠어진 손으로 판수 배를 쓸고 또 쓸었다. 판수는 병원 다녀온 지 닷새 만에 죽었다. 엄마는 미친 여자 같았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서 풀쩍풀쩍 뛰어오르다 마당을 뒹굴다 껌뻑 넘어갔다.
“내 새끼 죽어가도 병원도 몬가고 이게 어미여! 지 먹을 것은 타고난다는 하늘 말도 말짱 거짓부렁이여. 나 좀 죽여주소! 판수 대신 죄 많은 이년 데불고 가소!”
“굶을 때는 창자가 오그라지게 굶고 먹을 때는 배때기가 터지게 퍼 넣었으니 그 연한 창자가 우째 탈이 안 나것노. 에미 잘못 만나 내 새끼 죽였네!”
“서방 잡아먹고 지 새끼 남 주고, 인제는 자식 죽이고, 인간이 못 할 일을 모진 이년이 다하고 있네. 가슴에 불이 붙어서 뜨거버 뜨거버서 미치겠네 사람들아!”
이튿날 판수를 엄마가 지게에 지고 그는 삽과 괭이를 들고 산모롱이를 돌아갈 때 파리한 얼굴의 큰아버지가 나타나 판수를 졌다. 큰아버지가 구덩이를 파서 자기 옷 중에서 제일 새 옷을 입은 판수를 뉘이자 엄마가 엉금엉금 기어들어가 판수를 끌어안고 누워버렸다.
“우리 판수하고 같이 죽을라요. 묻어 주시소!”
“엄마! 엄마!”
“제수씨, 우째 산 사람이 죽은 사람하고 같이 가남요. 세상에 이런 법은 없지라!”
“지가 어디 사람입니꺼. 허물만 사람 탈을 썼지 짐승이라예. 어미 노릇도 사람 구실도 몬하는 지가 고만 죽어야 합니더. 소원이니 묻어 주시소!”
“엄마 나온나! 퍼뜩 안 나오며 나도 같이 들어갈 끼다.”
“죽은 새끼도 불쌍하고 산 새끼도 불쌍하고, 세상천지 어민데 하필 모진 이년한태로 찾아와 어미 업장 어린 것이 짊어지고 가다니, 이 노릇을 어이할고!”
엄마가 술을 마시고 싸움을 붙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불쌍한 엄마, 더 불상한 판수!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마 때 맞은 것이 장독이 되어 시름시름 아프시던 큰아버지가 판수 죽고 두 달 후 몹시도 추운 날 그의 작은 손을 쥐고 눈물을 비추고서 눈을 감았다. 태산 같은 존재가 사라졌다. 읍내 중학교도 보내준다 약속하셨는데, 엄마는 땅바닥을 치며 대성통곡하였다.
“아주바님 우째 이리 무심키 가시기요? 우리 판석이는 우짭니꺼, 책임진다 하시고서!”
큰어머니와 세 누이, 엄마까지 다섯 여자의 한 맺히고 피맺힌 곡성이 초상집 토담을 넘어 마을을 개울을 지나 산 너머 하늘까지 닿아 석양빛이 벌겋게 핏물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농사일이란 본디 끝이 없다. 논바닥 물꼬 돌보고 돌아서면 바랭이가 자신의 키보다 커져있다. 풀을 베다 낫에 손을 베이고, 나무를 하다 다리를 찢었고 지게와 함께 나뒹굴었다. 큰집을 나왔다. 가출이었다. 열일곱 살, 들녘의 벼들이 차랑차랑 여물어가고 멍석의 고추가 다홍색으로 곱게 말려지던 계절이었다.
“불 많이 지피거라. 날이 와이래 춥노. 이년이 대답도 없제. 밥도 안 주고 어디 마실 갔노? 날 굶겨 쥑일라고 작정하고 달아났제.”
정선은 마당에서 감나무 매실나무 떨어진 나뭇잎도 쓸고, 수돗가에 끼인 이끼도 닦으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손빨래 몇 가지를 하고 있는데 귀청 떨어지는 고함이 코앞에서 터졌다. 고복자 눈이 이마까지 올라붙었다.
“시에미 말은 썩은 보릿단만큼도 안 여기제. 뒷집 암캐가 짓나하고.”
그리고는 빨래가 담긴 고무대야를 휘딱 들어 엉거주춤 있는 정선의 머리에 부어버렸다.
“어머머 미쳤소. 이게 뭔 짓이요?”
“그래도 지가 잘했다고 주둥이를 나불거리제.”
고복자는 정선이 방금 마당을 쓸어 모아둔 찌꺼기도 들고 와 정선에게 확 끼얹어버렸다.
“난 못살아. 하늘 두 쪽이 나도 이젠 한집에서 못살아.”
정선은 견딜 수 없는 수치심에 수돗가에 퍼질고 앉아 울기 시작했다.
“시어미 어서 뒤지라고 곡하고 있네. 곡소리가 작다 더 크게 곡하거래이. 전신에 한기가 들어 불 세게 넣으라 캤제. 정지에 가본께 이즉 불 넣지도 않고. 작대기로 귓구멍 막아놨냐?”
“기름때는 집에 무슨 불을 넣어. 어제도 굿을 해서 다신 안 그런다고 하구선!”
정선의 악다구니에 앞집 미야 엄마가 뛰어왔다.
“재선 할머니, 아무리 병자기로서니 너무 하네요. 봉양하는 며느리 고생한다고는 못할망정 이게 뭣이요? 아저씨도 너무하네. 안식구 죽으라고 한집에 사는 거네. 아휴 답답해!”
“이 잘난 화상은 또 누고? 어디서 객귀구신이 튀어 나오노! 쎄가 만발이나 빠질 초랭이 기집년이 동네 시어미 할라꼬? 나가 니년 하나 못 잡을 줄 알고.”
고복자는 짧은 소매 둥둥 올려 미야 엄마 파마 머리채부터 낚아채려 했다.
“늙은이가 채신없이 입 더럽게 욕질이나 하고 툭하면 남의 머리채 잡더라!”
미야 엄마는 한번 벼룬 듯 고복자의 두 팔을 잡고 휙 둘러 땅바닥에 눕혀버렸다.
“또 사람한테 손질할 거요 대답하소? 다들 힘이 없어 당하는 줄 알아요. 재선 아빠 엄마보고 참는 줄이나 아시고 아 아악!”
멱살 잡고 있는 미야엄마 팔뚝을 고복자가 물고 늘어졌다.
“아악! 할머니! 입 벌려! 벌리란 말이야!”
비명을 지르던 미야 엄마가 악물고 늘어지는 늙은이의 뺨을 힘껏 후려갈겼다.
난실이 폭격을 맞았다. 고복자가 빨래 널러 가는 정선을 따라 옥상에 몰래 올라 간 것이다. 옥상은 위험도 하여 판석이 고복자의 접근을 철저히 막는 곳인데 사단을 내고 말았다.
“열무도 아니고 전구지도 아니여. 소 새끼도 없는데 무슨 소꼴을 사발사발 퍼 담았냐?”
말릴 틈도 없이 난들을 뽑아버린 것이다. 쥐어뜯기며 뽑힌 난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정선은 떨고 있었고 연락받고 달려온 판석은 망연자실 어이가 없었다. 여기저기 깨어진 검은 토기분과 허접스럽게 널브려진 난, 난들.
‘어무이!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나한테 나를 위해 투자한 거라곤 단지 이거 하나였는데. 고향 춘란 보면서 다시는 그렇게 안 살리라 맹세를 하고, 춘란 잎 닦아주며 사람답게 살려고 희망을 걸었는데, 어무이는 내 눈물을 아시오? 친가 양가 맏이로 양가 어무이 돌보고 동생들 결혼까지 내 책임 아니었소.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내 창자를 아시오? 집에 쌀 포대를 재여 놓아도 나는 배가 고파 허덕였소!’
판석이 손에 잡히는 춘란을 옥상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한 개 두 개·····. 가슴속이 시원하다 못해 상쾌하였다. 그는 잇달아 난분을 집어던졌다. 이까짓 게 뭐라고 내가 애착을 하나. 버리자 다 버리고 비우자. 고되고 힘들었던 옛날도 다 잊어버리자. 남은 인생 사람답게 살자. 옥상 바닥에 깨어진 난분과 멍든 난들이 포개져 갔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던 고복자가 난분을 집어 아들 손에 던지라고 쥐어준다. 판석은 기가 차서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어무이! 어무이는 죽었다 깨나도······.”
“죽었다 깨나도 판석이 니는 내 자슥인기라.”
“······!”
길을 간다. 갈 길이 바쁘다. 새 옷을 입었다. 저번 생일에 정선이 장만해 준 주황색 한복인데 입고 싶어 안달이 난 옷이다.
“암만 봐도 노을빛은 곱지라. 우째 내 옷하고 똑 같노? 희안하네. 요놈 입고 있으며 나가 안 보이것제. 판석이 니는 날 절대로 못 찾을끼라. 히히 가자. 내 집에 가자.”
어디선가 판석의 성난 고함이 날아왔다.
“정신 좀 차리소. 사람 꼴을 해가지고 그게 어디 사람이요.”
“암만 그래도 니한테는 안 미안혀. 내 자슥인께. 옛날 호강하고 살지는 못해도 그래도 그 때가 참 좋-은 시절이었제!”
고복자는 노을빛을 따라 허둥지둥 달렸다. 저만치 내 집이 보였다. 하이고 나가 빨리도 왔구먼. 순간 눈앞에 번쩍 불꽃이 튀었다. 팔과 다리가 우지끈했다. 공사하느라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버렸다. 고복자의 비명이 터졌다.
“오매 저 영감탕구가 날 쥑일라카네! 판석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