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정이 2022년 7월 10일(다해) 연중 제15주일) 제2615호 <유익한 심리학>
성격과 신앙생활 13 : 부부 대화에서 존경과 연민(1)
ME는 혼인한 부부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널리 알려졌다. 수많은 사람이 이 프로그램을 경험해서 잘 알겠지만, ME는 부부간의 대화를 공부하고 실습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검증된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특이점은 ‘느낌 대화’다. 우리는 대화 중에 자기 생각과 느낌, 감정을 나누게 되는데, 친밀한 관계일수록 생각보다는 정서와 느낌에 관한 대화를 주로 나눈다. 서로의 생각이 주된 대화의 내용이 될수록 결말은 논쟁과 분열로 끝난다. 어지간히 토론에 숙련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생각’을 중심으로 한 대화는 많은 경우 갈등을 만든다.
어떤 사람들이 부부가 될까? 그들은 어떻게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걸까? 정략적인 결혼이 아닌 경우 대부분 부부에게는 서로에 대해 이끌림이 있다. 이 이끌림은 순수한 느낌이며 어떤 세속적인 계산이 들어있지 않다. 그런데 사람은 ‘느낌’만으로 살 수 없기에 느낌에서 감정과 생각을 함께 나누며 공유하는 대화의 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부부의 깊은 인격으로 나아갈 수 없다. 많은 부부가 로맨스에서 환멸까지 도달하는데 채 몇 년이 걸리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 관리하고 돌봐야 한다.
부부 대화는 부부 사이에 존재했던 로맨스 ‘이끌림’을 관리하고 돌보는 일이다. 많은 부부가 이 일을 가볍게 여기고 소홀히 여기다가 삶과 에너지를 허비한다. 부부뿐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 대인 관계에서 대화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기본자세인 것 같다. 사람은 서로 다른 존재일 뿐만이 아니라, 특히 ‘자아’가 비대해진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그런데 상대방이 존중받을 만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필요한 것이 ‘연민’이다.
성숙한 사람은 ‘존중’ 받을 만한 모습을 가진다. 존중하면 존중할 줄 안다. 하지만 미숙한 사람은 내면의 상처와 같은 것으로 인해 온전한 상태가 아니기에 존중해도 존중을 받지 못하고 존중할 줄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때 대부분 ‘갈등’이 시작되고 갈등은 ‘환멸’로 치닫는다. 다른 길이 없다. 연민의 마음으로 끊임없이 상호작용(언어적, 비언어적 대화)하는 것뿐이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마태 18,22) 대화하고 또 대화하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하는 대화는 ‘동등성의 원칙’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연민의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치료적인 원칙’에서 진행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도 우리에게 그 자비를 입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비의 힘으로 우리의 상처가 나아 보다 성숙해지도록 ‘치유하시는 하느님’이신 것이다. 부부 사이든 어떤 인간관계든 서로에게 ‘치유적’ 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인 ‘사랑’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존경과 연민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대화는 사랑이다. 이 사랑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이 세상에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늘나라를 세우는 원동력이 된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그리고 나와 너 사이에 얼마나 많은 악의 세력이 우리를 분열시키고 있는가? 말씀이신 하느님께서는 본질적으로 대화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대화도 우리의 본질을 더욱 실현하도록 해줄 것이다.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대화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 없이 사는 사람이다. 사람은 대화를 통해서 사랑을 통해서 살아간다. 무조건 존중받다 보면 누구든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간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새 계명인 사랑이 가르치는 바다.
첫댓글 88올림픽이 한창일때 ME에 참여하기 위해 교리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
그때, 그 느낌!
사랑은 결심이다.
TEN & TEN
대화와 연민의 마음 ❤️ 따뜻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