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모든 과목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학생들의 삶이 매우 무기력하게 되었다. 둘째 녀석이 도저히 집에만 머물며 다람쥐 챗바퀴 도는 것 같은 삶이 힘겹다면서, 자신이 평소에 배우고 싶어하든 것을 배우려고 학원에 등록하고자 했다. 당연히 아내는 이 시국에 학원등록을 한다는 것이 염려가 되었다. 실갱이가 있었고, 나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나는 당연히 둘째가 하고자 하는 것을 허락해 주라고 했다.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매우 엄중한 사실이 분명하다. 그러나 걸릴지 안 걸릴지 알 수 없는 아주 낮은 확율의 두려움 때문에 삶이 무너지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 독감으로 사망하는 매년의 평균사망자는 코로나 보다 더 많다는 통계가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많은 경우 "코로나 때문에..."라는 이유는 사실 핑계거리다. 만일 이 같은 이유로 삶이 무너지고 있다면 이는 마치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담그지 못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논리와 비판적 사고>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이 비판적 사고의 내용에 현시사적인 문제(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 있어서 처음에는 매우 불편하였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정치와는 무관하게 오직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를 위해 예를 든 것에 불과하는 것을 알고는 안심이 되었다고 했다. 불편할 수 밖에... 누구나 자신의 삶이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현상황을 애누리 없이 정면으로 바라보면 불편한 것이 정상인 것을... 하지만 불편하다고 해서 무조건 외면하게 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이는 마치 암에 걸린 사람이 '암'과 관련된 그 어떤 이야기도 불편하게 들리니 암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자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그 결과는...?
상담을 하러온 철학과 새내기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상가나 사상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니, '쇼펜하우어'라고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또 물으니,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세상이 사실은 허상이고, 거짓이고, 정의도 없고, 도덕이라는 말도 다 만들어 낸말이고... 하면서 이때까지 자신이 들어온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이것이 오히려 현재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고, 마음이 훨씬 편한 것 같았다"라고 대답하였다. 한 마디로 혼란하고 불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자신에게 현실에 관심을 끊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근거를 준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곧 염세주의의 핵심이다. 세상에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래서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평소에 알고 있던 한 교수에게 " 한국적 상황이 매우 위기에 처한 것 같지 않느냐고 물으니, 위기가 아니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 같다. 해봐야 소용이 없다!"라고 했다. 그 분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 분의 마음에서 어떤 심리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싫고, 또 그럴 힘이 없으니, 스스로 '이미 끝난 사실'로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거의 동일한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다. 즉 "염세주의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음의 편함을 구하기 위해서 거짓과 위선 그리고 불의와 악을 계속 외면하게 되면, 결국 나 중에는 그 불편했던 진실이 우리들의 모든 실존과 자유와 삶 그 자체를 삼키고 말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내리막 길은 참 편하고 그 끝은 결국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각에는 한 가지 오류가 있다. 그것은 진실을 바로잡고자 노력하거나 혹은 외면하거나 하는 두 가지 중 선택만이 있다고 하는 그 생각이다. A와 B 중에서 중간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어쩌면 보다 중요한 것은 양자 사이에 놓여 있는 중간이다. 그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나의 자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 겠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것이 곧 '자아의 모습'이라고 고중세철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죽음 이후에도 내가 생전에 형성하였던 나의 자아의 모습은 단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다고 하였다. 소멸하는 것은 오직 질료적이고 육체적인 것 뿐이라고 하였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든지, 나의 내면에 있는 나의 세계, 나의 자아, 나의 가치관, 나의 세계관은 오직 나 자신에 달린 것이고, 이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자유이고 나의 책임이다. 세상의 어둠이 무서워서 나의 자아 마저 외면하는 어리석은 일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나의 자아는 오직 '행위(acte)'를 통해서만 형성이되고 구성이 된다. 염세주의나 냉소주의는 나의 자아를 형성하는데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마음으로나마 빛을 추구하고, 선을 지향하고, 정의와 진실을 갈망하는 그 갈증만이 오직 건강하고 행복한 나의 자아를 이룰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오늘 진실과 정의 그리고 진리에 갈증을 느낄 수 있는 공복을 주옵소서!"
-가스통 바쉴라르-

<루오 : 파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