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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출애굽기3장1~12절
제목 :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은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오래전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거라고 말씀하시고, 이 일을 위해 모세를 부르십니다.
1. 모세를 부르심(1~4절)
1) 모세가 양 떼를 치더니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릅니다(1절)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가 되기에 앞서 약 40년간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로서 지속적인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을 애굽 총리로 등용하기 전, 그를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의 신분으로 가사(家事)일을 돌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맥을 같이 합니다.
광야(마드바르) - 이곳은 시내 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나 매우 비옥한 골짜기들이 있어 목초지로서 안성마춤이라 합니다.
인도하여(나하그) - 이 말은 이스라엘을 장차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
나안 땅으로 인도할 모세의 사명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이 시80:1 에서는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시80:1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 성경 기록에 의하면 호렙산은 종종 언약의 산으로서, 십계명을 부여받았던 시내산과 혼용되고 있습니다.
즉 성경은 두 산의 지리적 구별을 엄밀히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견지에서 두 산의 관계에 대한 몇몇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산의 총칭은 호렙인데 특별히 정상 부분만을 일컬어 '시내'라 한다. (2) 한 산에 두 봉우리가 있어 하나는 호렙이고 다른 하나는 시내이다.
(3) 두 산은 동일한 산으로서 두 가지 이름을 갖는다.
이처럼 각 견해를 종합해 보더라도 두 산의 관계를 엄밀히 구분하기란 어렵습니다.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오늘날 호렙(시내)산은 시내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해발 2,291m의 '예벧 무사'(jebel Musa,모세의산)에 해당한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이곳을 특별히 하나님의 산이라고 명명한 것은 혹 자의 주장처럼 이곳에 '이드르'의 신전이 있었기 때문(pulpit commentary)도 아니고,
그 이전부터 거룩한 곳으로서 그렇게 불려왔기 때문(Knobel)도 아닙니다.
그것은 출애굽 직전 모세가 이 산 정상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소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고, 나아가 출애굽 직후에 하나님께서 이 산에 현현하사 언약의 증표로 율법을 수여했기 때문입니다(Keil).
따라서 이 산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신 현현의 장소로 간주되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산으로 성별되어 영영히 기억되었던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꼿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2절)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여호와의 사자(말라크 여호와) - 여기서 '말라크'는 '파견하다'란 의미의 어근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파송된 '특사'(왕하 5:10),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대하 36:15), '천사'(시 148:2)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소위 신 현현(Theophanic Angel)으로서 삼위일체의 제2위이신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Calvin,Pulpit Commentary).
자세한 내용은 창 16:7 주석을 참조하라.
떨기 나무 - 학명은 '아카시아 닐로티카'곧 시내 광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종의'가시덤불'(thron bush)을 가리킵니다.
이 나무는 주위의 고상하고 당당한 나무들과는 대조적으로 앙상하고
아주 볼품없이 생기 나무로서 곧 노예로 전락하여 곤핍하고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현 생활을 상징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에 거룩,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임재하신 것은 이스라엘 위에 머물러 있던 모든 고통의 멍에를 끊고 해방과 기쁨을 제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하는 계시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임재 사건은 후일 죄 중에 신음하던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육화(Incarnation)하셨던, 예수의 임마누엘 사건을 예표한다(마1:21-23;요 1:14).
불꽃(벨라바트-에쉬) -이는 모든 불의한 세력을 태워 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성을 상징합니다(Kurtz,Keil, 사 10:17).
특히 이 불꽃이 떨기나무로부터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임을 암시합니다.
나타나시니라(라아)- 이 말은 '주목하다', '제시하다'(보이다)란 의미도 내포합니다.
모세는 낙심 가운데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를 지켜보고 계셨으며, 이제 때가 차매 그에게 위대한 비젼을 계시하시기 위해 초자연적 현상 가운데 모세의 시선을 '주목 시키시면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렀습니다(3~4절)
(1)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3절)
“[3]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2) 모세야 모셍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4절)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하나님(예호와...엘로힘) -
'자존자' 또는 '영원한 자'를 뜻하나 '예호와'(야웨)라는 이름과
'전능자'나 또는 '위엄을 가지신 자'를 뜻하는 '엘로힘'이 동시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모세에게 계시된 신이 절대 유일하신 분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보려고(라아) - '면밀히 관찰하다', '깊은 주의를 기울이다'란 뜻입니다.
불러 - '명하다', '초대하다', '선포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에 참여케 하시기 위해 일꾼을 불러 소명(召命)을 부여하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삼상 3:6).
특히 이 말 속에는 일꾼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일꾼으로 부름받은 자의 고귀한 특권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 모세의 이름이 거듭 불려짐으로써 상황의 긴박성과 사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삼상 3:10).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초자연적 불꽃 가운데서 들리는 음성을 듣고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감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본절의 대답은 지극히 초라한 자신에 대한 고백과 겸양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습니다(비교, 창 3:10;삼상 3:10).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모세야 모세야" 하셨으니, 그것은 모세에게 크게 은혜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참으로 아시고 개인상대로 이름을 불러 개인적으로 접촉하여 주시는 사랑의 음성이었습니다(사 40:26).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단체적으로 취급하실 뿐 아니라, 보다 먼저 개인 별로 불러주십니다.
그가 사무엘을 부르실 때에도 그의 이름을 불러 주셨고(삼상 3:4-10),
엘리야도 그의 이름을 불러 찾아 주셨습니다(왕상 19:9).
부활하신 주님께서도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 찾아 주셨고(요 20:16),
그가 바울을 부르실 때에도 "사울아 사울아" 하셨습니다(행9:4).
초라한 떨기나무는 모세에게는 너무 강열하였습니다.
초라하고도 불쌍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떨기 나무는 타지 않고 있었습니다.
2. 언약의 하나님(5~8절)
1)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5절).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 이 말은 죄악 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에덴 범죄 이전, 인간은 하나님과 대면하며 교제할 수 있었으나,
범죄 이후 인간은 자력으로는 하나님께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열악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창 3:24).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간격을 좁히시기 위해,
구약 시대에는 예표적 의식으로서 피흘림 있는 제사 제도를 제정하셨고,
신약 시대에는 그 제사의 절정이요 완성으로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요일 4:10).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거룩한 땅(코데쉬-아다마) - '코테쉬'는 '성별된', '성결한'이란 뜻이고, '아다마'는 '붉다'란 뜻의 '아담'에서 유래한 말로 이는 팔레스틴 지경의 땅이 대체로 붉은 색을 띰을 반영합니다.
한편 언약 백성이 정주했던 가나안 땅, 예루살렘, 혹은 하나님의 성전이 각각 성지, 성도(聖都), 성소 등으로 불리웠거니와(느 11:1;시 18:2;슥 2:12),본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바로 그곳은 어디나 거룩한 땅이라 하겠습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여호수아에게도 반복된 명령으로(수 5:15) 여기서 신(Sandals)은 인간의 타락된 품성과 행위를 상징합니다.
즉 죄악된 장소를 두루 다니고, 죄악 된 행위를 하느라 더러워진 신에는 온갖 냄새나는 더러운 먼지나 때가 끼여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신을 신은 채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거룩한 땅을 밟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상의 의미를 좀더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허물과 죄로 오염된 인간은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설 수 없으며 그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속사람이 강건하게 무장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엡 3:15).
*엡3: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16]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2) 인간 스스로의 재능, 자존심 등을 과감히 버리고 겸손히 순복하는 자세를 지니라는 뜻입니다-고대에 노예는 신발을 신지 않았다(눅 15:22).
*눅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도 각오하라는 뜻입니다(롬 8:17)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4) 거룩하신 하나님께 마땅히 경외와 경배를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5) 부패한 인간은 중보자의 피가 없이는 감히 거룩한 하나님과 동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6절)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네 조상의 하나님(아비크 엘히) - 본절에서는 대표적인 믿음의 조상들의 이름이 언급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이 추상적 관념 속에 국한된 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일찍이 선민을 대표하여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 되시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3대 족장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항상 이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자신을 계시하셨고
또한 백성들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세 족장들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이 각각 연계된 것은
(1) 그들 각자가 단독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으며,
직접 후손과 기업에 대한 약속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2) 각자에게 거듭 허락하신 언약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그 언약의 계속성과 불변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창 15:1-21; 26:2-5; 35:1-12).
한편 이 부분이 제공하는 중요한 의미는 천지를 지으시고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민족과 약속하신 한 분 하나님에 의해서 모세가 부르심을 받고,
또한 이스라엘 벡성들이 출애굽 하게 되며, 그리고 그 백성을 통해 만방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상을 나타내는 데 있습니다.
두려워하여(야레) - 이 말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유한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외경심을 뜻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9:30;느 1:5;시 99:).
얼굴을 가리우매 - 얼굴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허물 많은 인간이 취하게 되는 지극히 생래적인 태도입니다(Keil). 엘리야(왕상 19:13) 도, 심지어 하나님을 호위하는 천사들조차도(사6:2) 이러한 행동을 취했습니다.
3) 언약을 기억하시고 실행하십니다(7~8절)
“[7]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해 내실 작정이 계심을말씀해 주십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특별히 애굽에서 당하고 있는 그들의 고통을 하감하셨다는 것과 또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2:23-25). 특별히 그들이 기도로 부르짖을 때에 그는 기쁘게 들어 주십니다(눅 18:1-8).
시 9:9-10,12,18,10:14,19 참조.
애 3:30-32에 말하기를,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 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그 때에 가나안 땅에는 풀이 무성하였기 때문에목축업이 성행하여 "젖"이 많이 생산되었습니다.
또한 그 땅에는 꽃이 많았으므로 "꿀"도 많이 생산되었습니다.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 - 여기서 팔레스틴에 거주하는 여섯 민족만 말하기도 하고(출 23:28),
또 혹은 열 민족을 대표적으로 듭니다(창 15:19-21).
어쨌든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한 민족을 정복하기도 어려울터인데, 이렇게 많은 민죽들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정복하게 하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대로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모든 민족들을 정복함은 침략이 아니었고, 그 민족들의 더할 나위 없는 많은 죄악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 뿐이었습니다. 창 15:16 참조.
3. 거절하는 모세(9~12절)
모세에게 다시 사명을 주십니다.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반듯이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을 줍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일을 하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하려하니까 힘이 듭니다.
믿음과 순종하는 자에게 일을 맡깁니다(고전2:3)
1) 이제 가라(9절)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아타) - '이제부터는', '곧장'이란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에 개입하셔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시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를 담은 표현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 경륜에 따라 당신의 때에 개인적으로든 민족적으로든 한 때를 마감하고 새로운 때를 여시는 바, 그 경륜의 가장 두드러지는 구획선은 예수의 강림입니다.
그러므로 히9:26에는 이러한 사실이 '이제', 곧 '그러나 이 제는'(but now)이란 말로 나타납니다.
*히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10절)
보내어 - '임명하다',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여 멀리 파송하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파송하신다는 표현으로도 사용된 말입니다(사 6:8;렘 7:25).
한편 여기서 모세가 보내어져야할 곳은 모세의 생명을 찾던 왕이자 고대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던 애굽의 바로 왕 앞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온 세상을 대표하는 세속적 힘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권력자에게 가는 것은 일개 목자인 모세 혼자만이 아니라, 그 목자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며 온 세상의 왕들을 폐하기도, 세우기도 하시는 권력과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대상29:12;시 22:28;단 2:21;롬 13:1).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그를 바로왕에게 보내시고자 하실 때에, 모세는 겸손히 사양하였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한 말이, 그의 겸손을 보여 줍니다.
그가 일찌기 자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도우려고 했을 때에는 온전히 실패하였습니다(2:11-15).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겸손히 사양하는 것은, 그의 정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겸손이란 것은 정직인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전적으로 부패하였는데, 그것을 직시하는 자는 언제든지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3) 모세의 겸손입니다(11절)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누구관대 - 여기서 '...관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는 겸양과 자기 비하(卑下)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40년 전 모세는 자신을 스스로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재판관으로 내세웠으나(2:14), 이제는 초라한 한 목자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무능감을 절실히 통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그는 미디안 이라는 학교에서 겸손의 덕을 배웠던 것입니다(Keil).
한편 또한 이 말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바로에 대한 모세의 두려움과 의기소침을 반영한 탄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은 철저히 자아를 부인하는 자를 들어 귀하게 쓰시는 역설적 방법을 많이 사용하십니다(욥 5:11;고전 1:27)
*욥5:11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가며(엘레크...웨키) - 이 말은 사지(死地)로 가서 애굽 왕을 만나는 일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데 거기다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키는 사명까지 감당해야 한다니 도대체 내게 무슨 능력이 있어 그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란 뜻입니다.
4)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12절)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 문자적으로는 '내가 너와 함께 있는 한에는'입니다.
출애굽은 단지 피지배 민족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일 수는 없으며 또한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성취될 성질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심으로써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지레 낙담에 빠진 모세에게
'임마누엘'의 약속을 해주신 것입니다(수 1:9).
*수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실로 이 약속이야말로 막강한 100만 대군을 얻는 것보다 더 확실한 보장으로서 그 어떤 세력에도 담대하며 능히 무찌를 수 있게 하는 힘이 됩니다(사 35:3;고전 1:27;히 12:12)
*사35:3,4 “[3]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4]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히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섬기리니(아바드) - (하나님께) '예배드리다'(말 3:14), '종살이하다'
(렘 27:7), '봉사하다'(창 29:15)등 다양하게 사용된 말로서 신앙 생활 전반을 일컫습니다.
진정 인간이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곧 만군의 주이신(사 28:22) 하나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 땅의 우상 숭배에 깊이 물들어 있었습니다(32:1-18).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들의 해방을 주도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제 일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섬김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증거(오트) - '신호', '표시'란 뜻입니다.
당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언약)이 역사상 구체적인 성취로 나타난 것은 당신의 신실하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거룩하신 분입니다(2~5절).
하나님은 모세와 대화하시기 전에 당신의 거룩함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발을 벗고 두려워 얼굴을 가립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대로 실행하십니다(6~8절).
언약의 내용은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아름답고 전과 꿀이 흐를 정도로 비옥한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애굽이 죄와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이라면 가나안은 안식의 자리요, 구원의 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시는 참되고 영원한 안식에 대한 보장이기도 합니다.
나를 위해 독생자를 주시고, 믿는 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은 사람을 불러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10절).
오래전 모세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 나섰을 때는 가만 계시던 하나님이 때가 되자 모세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을 맡기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랑의 삶, 세상과 구분되는 거룩한 삶을 통해 빛을 비추고 그 생명의 빛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라고 부름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2) 모세는 자신이 그런 큰 일을 맡을 능력이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11,12절).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겸손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실패와 상처로 인한 불순종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거절과 물음에 반드시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누군지”를 말하기 이전에 “나를 부르시고 나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의 대답이 겸손으로 꾸민 불순종이 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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