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魯) 희공26년(기원전634)
여름. 제효공이 노나라의 북변을 쳤다...
제효공이 다시 물었다. '집집마다 경을 달아놓은 듯이 비워놓고 들에는 청초가 하나도 없는데 무엇을 믿고 두렵지않다고 말하는 것이오?' 전희가 대답했다.
'선왕의 명을 믿기 때문입니다. 옛날 노나라의 시조인 주공(周公)과 제나라의 시조인 태공은 왕실의 고굉지신으로 함께 주성왕을 보좌했습니다. 이때 주성왕이 두분을 위로하고 맹세문을 내리면서 이르기를, '대대로 두 집안의 후손들은 서로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를 기록한 맹세문을 맹부에 수장한 뒤 태공이 태사가 돼 관리했습니다.
제환공도 이것으로 제후들을 규합한 뒤 제후들 간의 분쟁과 부족한 점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제후들의 재난을 구원했습니다. 이는 모두 태공의 옛 직책을 밝힌 것입니다. 군주가 즉위할 때 큰 기대를 걸고 말하기를, '제환공의 공업을 계승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노나라는 감히 병력을 모아 성을 지키는 보취를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말하기를, '제환공의 뒤를 이어 사세한 지 9년인데 어찌 선왕의 명을 버리고 태공의 옛 직책을 폐기하겠는가? 만일 그리 된다면 제환공을 어찌 뵐 것인가? 군주는 반드시 그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효공이 곧바로 회군했다...350 - 351쪽
제나라의 시조 강태공에 관해서는 예로부터 여러 얘기가 동시에 전해졌다. 가장 그럴싸한 내용은 <사기>의 기록이다. <사기>[제태공세가]에 따르면 그의 성은 강(姜), 이름은 상(尙)이고, 조상이 하(夏)나라 때 여(呂)땅헤 봉해졌다고 한다. 그는 훗날 주문왕이 고대하던 인물이라는 의미에서 태공망으로 불렸다. 자가 자아(子牙)인 까닭에 강자아로 불리기도 한다.
노(魯) 양공29년(기원전544)
6월. 오나라의 공자 계찰이 노나라로 가 숙손목자를 만나고는 크게 좋아하게 됐다...
공자 계찰이 노양공에게 주왕실의 춤과 음악을 들려줄 것을 청했다...
그를 위해 [제풍(齊風)]을 노래 부르게 하자 이같이 평했다.
'아름답습니다. 굉대한 것이 대국의 풍도인 대풍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동해 일대의 제후들을 대표하는 태공의 나라 노래일 것입니다. 나라의 운세가 한량없습니다.'...하권 145 -146쪽
춘추좌전 상하, 좌구명, 신동준 역, 2017년, 도서출판 인간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