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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 지역의 목자들이 들에서 밤을 새우면서, 자기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는데,
9.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주의 영광이 그들에게 두루 비치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해 준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12. 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적이다."
13.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14.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눅2:8-14)
8 There were some shepherds in that part of the country who were spending the night in the fields, taking care of their flocks. 9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to them,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over them. They were terribly afraid, 10 but the angel said to them, “Don't be afraid! I am here with good news for you, which will bring great joy to all the people. 11 This very day in David's town your Savior was born—Christ the Lord! 12 And this is what will prove it to you: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in cloths and lying in a manger.”
13 Suddenly a great army of heaven's angels appeared with the angel, singing praises to God:
14 “Glory to God in the highest heaven,
and peace on earth to those with whom he is pleased!”
8. 그 지역의 목자들이 들에서 밤을 새우면서, 자기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는데,
8 There were some shepherds in that part of the country who were spending the night in the fields, taking care of their flocks.
군청 앞에 성탄절 장식들이 번쩍번쩍합니다.
제가 거창에 처음 왔을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군청 광장에서 거창교 쪽으로 수십m를 천사들이 날개를 휘저으며 날아다녔습니다.
물론 그것은 LED 등으로 만든 가짜 천사입니다.
그것이 한 달이었는지 두 달이었는지 밤새 날아다녔습니다.
사람들은 그 밑에 서서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광장의 중심에서는 LED 눈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런 것을 또 처음 구경했습니다.
포트와싱턴의 성탄 장식은 50m마다 서 있는 전봇대에 여덟 개인가 가지 달린 작대기를 붙여 놓은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것은 눈의 결정을 확대한 모양이었습니다.
내가 거기 살았던 8년 내내 똑같았습니다.
몇십 년 사용했던지 한 작대기는 불이 들어오지 않은 눈
희미하게 맛이 간 눈
그것은 다양한 색깔의 LED 등도 아닙니다.
반짝거리지도 않는 하얀 등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최신 2018(?)년형 천사들이 날아다녔습니다.
그 수만 개인지 전구 중에 단 한 개라도 불 안 들어오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원색의 불빛들이 출렁거렸습니다.
12월 초쯤 우연히 그 앞을 지나다가 트리를 준비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에 썼던 대형 철탑을 기중기로 들고 왔습니다.
그러더니 뺀찌를 들고 오는 것입니다.
그 반짝이들을 여지없이 두 동강이 세 동강이로 토막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쓰레기통으로 던져졌습니다.
지난 해의 빨강 예수님은 쓰레기 통으로 갔고 올해 초록 예수님이 등장했습니다.
이런 열심은 종교적 소명 의식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믿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나 봅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또 예루살렘이나
연말의 이 때만 되면 빈민가를 찾아가서 정치인들은 얼굴에 검댕을 일부러 살짝 바르고 연탄을 들고 사진을 찍습니다.
성탄 맞이 쑈를 하는 것입니다.
초대형 교회 목사들은 작년에 써먹은 메시지의 토씨만 바꾸어 그것들 들고 또 뉴스 시간에 등장합니다.
소외된 자 어쩌고저쩌고
또 교회마다 청년부는 성탄 전야에 돌릴 선물 준비하라고 합니다.
얼떨결에 소시민들은 군청에 걸린 가짜 천사 밑에서 V 자 싸인하며 사진 찍느라 바쁩니다.
2,000년 전 목자들은 군청 트리 밑에 가서 사진이나 찍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일부러 빈민촌을 찾아가서 쑈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어제도 그제도 짐승 똥 냄새에 범벅이 되어 거기서 밤을 지샌 사람들입니다.
늑대가 나타날지 곰이 나타날지 몰라 졸린 눈을 비비며 경계했습니다.
그것들이 나타나면 작대기를 들고 가서 그것들을 때려잡아야 합니다.
그런 일을 했던 목자들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천대받았습니다.
유대에는 잘난 사람들이 수두룩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잘난 사람들은 다 빼고 이 못난 사람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못난 사람들을 부르려 천사들을 그런 황량한 들판에 보내신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 목자들은 군청 광장에서 거창교로 날아다니는 가짜 천사들을 본 것이 아닙니다.
진짜 천사를 본 것입니다.
진짜 기이합니다.
잘난 사람들은 다 빼고 그리스도 탄생의 자리에 초청된 유대 대표자들에서는 똥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그들이 초청받은 곳에 가보니 거기에 엉뚱한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여러분 군청에서 가짜 천사들을 만나고 그렇게 좋아하지 마세요.
교회 청년부 모임에서 선물 돌리기나 하며 좋아하지 마세요.
정치 쑈에 속지 마세요.
성경은 실재 역사책입니다.
우리도 목자처럼 진짜 천사를 만나자는 것입니다.
물론 진짜를 만나려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목자들이 있던 그 똥 냄새나는 밤의 들판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천사를 만난 그 곳을 가야 진짜를 볼 것 아닙니까?
“다윗도 또 아브라함도 목자였지 않냐? 그래서 목자들이 선택된 것이다.”라고 주석하는 것은 너무 종교 상투적인 해석입니다.
그런 식의 해석은 성경의 본의를 흐려놓는 해석입니다.
혹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두고 다윗과 아브라함을 들어 해석하면 몰라도.......
당시의 목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딱 들었던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이 사람들은 미련을 가질 세상 것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진짜를 만난 것입니다.
번쩍거리는 가짜로 말하자면 헤롯입니다.
그는 스룹바벨의 제2 성전을 번쩍거리는 성전으로 확장했습니다.
가짜 천사를 만든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 가짜 밑에서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가짜들은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돌멩이와 금붙이로 가짜 성전을 만들었던 헤롯 왕으로 인해 일이 터졌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상상할 수 없는 반응을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제 세속 왕권에 대한 도전자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특징이 있었는데 자신들이 바이든이라고 말해놓고는 날리면이라고 들으라는 것입니다.
7. 그 때에 헤롯은 그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캐어 묻고,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기를 "가서, 그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하였다.(마2:7,8)
여기서 경배하겠다는 말을 우리 같은 평민들은 날리면이라고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이 아기를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경배할 생각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의 수하에는 SKY 대를 졸업한 간신배들이 있었습니다.
4.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5.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6.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통치자들 가운데서 가장 작지 않다. 네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일 것이다.'"(마2:4-6)
머리 좋은 간신배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탄생할 장소를 알아낸 것입니다.
그 권력자에게는 또 총칼을 든 하수인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쏴 명령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총질하는 자들입니다.
정의?
사랑?
그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16.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마2:16)
그래서 아기 예수님은 다른 나라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에, 주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서,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고, 내가 네게 일러줄 때까지 그 곳에 있어라."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 사이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마2:13,14)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자 끔찍한 일이 더 일어났던 것입니다.
요한도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씀했는데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두고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시라고 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그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1:1-3)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11.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요1:11)
그렇다면 헤롯 왕은 아주 상식 밖의 인간이라고 치고 상식 있는 여러분이 그 때 그 땅에 살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은 똥 밭을 찾아가서 두 손을 들고 예수님을 환영했을 것 같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런 데를 가!
내 양심이 비틀어져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니 말씀 한 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어디 질퍽거리는 똥 밭에서 태어나십니까?
거기 말 밥통 위에 누워계신다는 말입니까?
더러운 죄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시며 죽자사자 도망 다닙니까?
그런데 요한은 이 예수님을 두고 그 아기가 하나님 자신이라고 합니다.
당시에 어떤 목사님이 설교하느라 요한복음 그 첫 절을 읽으면 저는 저 정신 나간 이단자라고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이 좀 되야 믿든지 말든지 하지.......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 첫 시작부터 열 받을 소리를 한 것입니다.
당시 보수적인 유대 사회에서 살인 날 소리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리를 한 요한복음의 저자가 바보입니까?
그 소리가 얼마나 위험한 소리인지 몰랐을까요?
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요1:1,2)
그 말씀의 뜻은 지금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창조의 때를 말하지 않으면 이 아기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요한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 소식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는 뜻입니다.
9.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주의 영광이 그들에게 두루 비치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9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to them,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over them. They were terribly afraid,
주의 천사가 그 목자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전봇대에 걸쳐져서 한 달인가 두 달인가 날개 치며 날아다닌 가짜를 본 것이 아닙니다.
진짜로 주의 천사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9.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9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to them,
여러분 주님의 진짜 천사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영적인 존재에 대해 뭔 소리냐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완고한 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셨는데 저로 하여금 얼떨결에 목사가 되게 하신 일입니다.
제가 일생을 시골 오지 교회로만 쫓겨 다니다가 배운 것입니다.
진짜로 영적 현실이 있구나!
진짜로 천사가 있네!
제가 오지 미자립 교회만 다니다가 진짜를 본 것처럼 그들이 주의 천사들을 본 것입니다.
그 진짜가 그들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그들은 주의 영광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헤롯이 세운 돌탱이들이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1.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막13:1,2)
돌탱이도 나름대로 그 위엄을 과시합니다.
하지만 돌탱이의 영광은 곧 무너질 것입니다.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교회를 봤을 때 처음에는 와 하고 소리질ㄹㅆ습니다.
하지만 다시 보니 뭐 그랬습니다.
그것은 가짜였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에게 나타난 것은 주의 영광이었습니다.
9. 주의 영광이 그들에게 두루 비치었다.
9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over them.
그것이 몇 톤짜리 돌탱이와 확연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현실인 주의 영광이 비칠 때였습니다.
9.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9 They were terribly afraid,
가짜 밑에 서 있으면 사람이 흥분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진짜를 만났을 때는 두려워했습니다.
여러분이 진짜 천사 앞에 서면 어떤 반응을 할까요?
2,000원짜리 가짜 목걸이를 목에 걸고 무도회에 참여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음악에 맞추어서 짝꿍 바꿔가며 가볍게 춤추다가 왔을 것입니다.
이제 200억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춤추러 갔다고 생각을 해 봅시다.
이번에는 경호원을 채용해서 다녔을 것입니다.
그들이 영적인 실재 존재를 만났을 때 그 무게가 달랐습니다.
이 영적인 실재를 뜬금없이 대면하고 두려움을 느꼈던 것은 스스로 영적인 책임을 자신에게 물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을 이렇게 가볍게 살아도 되나?
정의고 사랑이고 싹싹 피해 다니면서 세상 처세하면서 살아도 되나?
마치 부자처럼
날마다 잔치 베풀면서
세모시로 제 몸을 치장하는 일
오늘은 불고기냐 돼지 삼겹살이냐?
오늘은 누구를 초청하나?
하지만 나사로는 달랐습니다.
아직도 부잣집 대문 앞이냐?
여기가 죽음 너머의 그 하나님 나라냐?
개들이 와서 자신의 상처를 핥아대도 쫓아내는 일이 힘에 겨운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삶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그는 날마다 진짜를 맞대면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이 두 사람의 질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참 이상도 하네 어떻게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존재의 질이 같겠습니까?
그렇게 진짜를 본 나사로는 천국에서 전혀 다른 대우를 받은 것입니다.
나사로를 보면서 저렇게 사느니 캭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말하는 사람들과는 확실하게 구별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출생을 축하해줄 사람을 목자로 고르신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주님은 그 사회의 왕따를 고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천사를 보내신 것입니다.
여기서 목자를 두고 다윗 운운하는 것은 아주 종교 상투적인 주석 행위입니다.
당장에 목자들은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이시지 목자가 다윗의 후손일 리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석을 하다 보면 우리는 성경의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하고 엉뚱한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은 예수님도 목자가 아니라 목수이셨습니다.
그들은 사회 약자로써 그리스도를 맞을 사람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존재의 중심을 보셨는데 그것은 이 사회 현실과 깊은 관계를 가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방식이 너무 의외여서 나같이 못난 사람을 하나님이 택하셨을까? 의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똥 냄새 풍기는 나를 그 귀한 자리에 선택하셨을까?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이셨습니다.
반대로 나 아니면 누구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큰 오해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택하셨습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여러분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8.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2:8-10)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우리에게 구원의 어떤 자질도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선택의 원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목자뿐 아닙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그 사회의 가장 낮고 천한 자 되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7.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눅2:7)
하다 보니 구유에 눕히게 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비참한 장소는 첫째로 사람들이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 장소를 택하신 것입니다.
누가는 마리아의 입을 통해 그 사회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을 말합니다.
51. 주께서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눅1:51-53)
하나님께서는 권력의 서열을 뒤집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빈부의 서열을 뒤집으실 것입니다.
하필 목자들이 그리스도 탄생의 초청자가 된 데에는 그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해 준다.
10 but the angel said to them, “Don't be afraid! I am here with good news for you, which will bring great joy to all the people.
목자를 만난 천사가 그들에게 한 첫 마디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바로 전까지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면서 늑대가 오나 곰이 오나 그것만을 관찰했습니다.
내 양들이 오늘도 무사하겠지
그래도 혹시 이 밤에 물질적 손해는 안 보나?
오직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눈앞에 영적 현실이 펼쳐졌을 때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영적 현실로 그 극적인 전환 앞에서!
그들이 어떤 영적인 준비를 했던가?
그런데 천사가 전한 것은 바로 그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요지는 온 백성에게 이를 큰 기쁨의 소식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문제의 해결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처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기쁨의 소식을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산타클로스로 바꾸면 안 됩니다.
정말로 안 됩니다.
이 기쁜 소식을 청년부 선물 교환하는 일로 바꾸면 안 됩니다.
기독교 연합회가 소명감을 가지고 붙여둔 전봇대의 가짜 천사로 바꾸면 안 됩니다.
오로지 구유에 누인 아기의 소식입니다.
하지만 그 소식은 당장 사람들에게는 기쁨의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천사들의 그 소식 때문에 헤롯이 음모를 꾸미더니 군대를 몰고 와서 그들을 죽였습니다.
그렇다보니 그 기쁨의 소식은 당장에는 재앙의 소식이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이 모조리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전하는 요한은 생명을 건 것입니다.
마태도 그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 기쁨의 소식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소식입니다.
그 기쁨의 소식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진지한 주제였던 것입니다.
그 기쁨의 소식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소식입니다.
그 기쁨의 소식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소식입니다.
그 기쁨의 소식은 죽을 사람을 살리실 예수께서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천사가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이 소식 때문입니다.
토인비는 역사를 HIS STORY 라고 했습니다.
바로 HE 즉 예수 그리스도가 이 역사 내용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분에 우리 동네 안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이 아기 예수님을 통해 이 땅의 역사 현실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11 This very day in David's town your Savior was born—Christ the Lord!
기쁨의 소식이란 역사적인 사건을 두고 이르는 것입니다.
그 기쁨의 소식은 역사적인 그 시간이 있습니다.
오늘입니다.
그 오늘이란 그들이 알고 있던 오늘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오늘!
구원자가 역사의 시간 안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한 아기가 우리 동네 안에 뉘어계셨습니다.
그 기쁨의 소식에는 그 정해진 역사적 장소가 있습니다.
다윗의 동네입니다.
구원자가 이 역사의 장소를 차지하신 것입니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11 This very day in David's town
다윗의 동네임을 성경이 지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사7:14)
하나님의 예언이 그 시간 오늘 그 장소 다윗의 동네에서 이 아이를 통해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죄를 지었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사람들을 또다시 생명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을 죄인들을 구하시기로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일은 사람들의 죄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사람을 구하시기 위해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아기를 사람에게 나게 하신 것입니다.
11.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11 your Savior was born
남들은 게임을 할 때 나는 잠 안 자고 책을 보아서 좋은 대학교 갔습니다.
남들 여행 갈 때 밭을 갈아서 돈을 벌었습니다.
내가 드러누워 있는데 당장 밥을 누가 해결해 준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이 역사 가운데 의외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임당하셨습니다.
죽으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그 일로 내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남의 한 일로 내가 득을 본 것입니다.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사53:4,5)
그들은 구주를 통해 엄청나게 다른 세상을 볼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큰 특징은 이타성입니다.
12. 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적이다."
12 And this is what will prove it to you: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in cloths and lying in a manger.”
그리스도는 먼저 갓난아기로 뉘어 있었습니다.
갓난아기는 옷을 스스로 챙겨입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포대기로 싸주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젖을 주어야 합니다.
똥을 싸면 어머니가 처리를 해주어야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갓난아기를 물애기라고 합니다.
그 표현이 뜻하는 것은 절대 나약하다는 것입니다.
이 갓난아기에게 무엇을 기대한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갓난아기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12. 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12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in cloths
우리 상식으로는 갓난아기를 말 구유에서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 곳은 정말로 황당한 장소였습니다.
그 황당한 말구유 위에 한 아기가 누워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현실이셨습니다.
당시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인구 조사 때문입니다.
1.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서 온 세계가 호적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2. 이 첫 번째 호적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3. 모든 사람이 호적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동네로 갔다.(눅2:1-3)
그렇게 되다 보니 없는 사람들은 방을 차지하지 못 한 것이 분명합니다.
방 하나를 두고도 돈이 있나 빽이 있나?
갓난아기와 구유에 누인 아기란 사회적 무기력을 말합니다.
당시의 몰인정을 말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세상과의 첫 대면인데 그 분은 이 사회로부터 철저히 왕따 당하신 것입니다.
이 사회는 어떤 내용성을 가졌는지 우리로 하여금 날카롭게 반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 부분을 교정하실 것입니다.
즉 죄에서 의로 전환시키실 것입니다.
25.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민족들을 통치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마20:25-28)
저는 성경의 이 부분을 그러려니 하며 읽고 넘어갔습니다.
봉성에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한 발을 절뚝이며 노상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다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저 멀리서부터 그 사람을 슬슬 피해 다녔습니다.
그 분은 가끔 교회 사택에 놀러 왔습니다.
그 날도 한 잔 걸치고 사택을 찾아왔습니다.
내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자신의 과거를 나에게 술술 이야기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계모의 학대를 받았습니다.
추운 겨울밤에 집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당장 잘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 꼬마 아이가 소 우리로 들어간 것입니다.
소거름을 덮고 겨울밤을 넘겼다는 것입니다.
그 초등학생이 소거름 썩는 온기로 그 밤을 견뎌냈던 것입니다.
마음의 추위는 소거름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제 온몸이 발발 떨렸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바로 내 눈앞에 그런 삶도 있었구나!
그 때 오늘 말씀이 깨달아진 것입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는 과장 없는 현실이었구나!
12.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12 and lying in a manger.”
갓난아기가 말 밥통 위에 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육신적으로 나약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출산을 위해 방 하나를 마련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현실이었습니다.
소거름으로 이불을 삼는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 표적입니다.
12.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적이다.
12 And this is what will prove it to you:
주님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나약함의 방식입니다.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원수들에게 죽임을 당하심으로 원수를 이기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1:18)
정말로 기이한 표적입니다.
이런 나약함으로 강한 자를 이기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표적입니다.
13.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13 Suddenly a great army of heaven's angels appeared with the angel, singing praises to God:
세상의 폭력에 쫓겨 말구유에 누이신 나약하신 이 세상의 창조자!
그리스도는 자발적으로 그 낮아지심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그는 이 땅의 가장 비참한 자리를 택하셔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이런 낮추심으로 그 분은 삶을 일관하셨습니다.
그 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14.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13:13,14)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너희도 나처럼 남의 발을 씻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나약하심에 대해 누가 이해조차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볼 수 없는 죄인들의 이런 지적 한계뿐 아닙니다.
죄인 중 누가 스스로 나약해질 의지를 갖겠는가!
죄인들에게는 이런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수용할 마음의 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약함의 수용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 나약함을 부인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와 기쁜 소식을 부인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그 소망의 위치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소망하지 않는 일을 두고 믿음이라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에게는 이 땅에 소망 둘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현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실천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강한 힘을 통해 약한 자를 이기지 않을 것입니다.
나약함을 통해 강함을 이길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스스로 나약함을 택한다는 말입니까!
주님의 나약함을 부인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제 죽음을 스스로 택하는 현실에서 하나님은 그 교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천사를 동원하셨습니다.
천사 무리들은 목자들로 하여금 말구유에 누인 그리스도를 향해 떠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기쁨의 소식의 목격자로 하나님은 그 사회의 약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세상은 이 말구유의 예수님을 통해 완전한 방향 전환의 교정을 요청받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물구나무를 서서 세상을 거꾸로 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예수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이 높은 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이 하나님께서 찬양받으실 내용입니다.
14.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14 “Glory to God in the highest heaven,
and peace on earth to those with whom he is pleased!”
이 말구유에 누인 갓난아기의 사건은 하늘의 사건이며 동시에 이 땅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사건이며 그리스도를 말구유로 몰아낸 사람들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며 인간에게는 평화를 이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이런 것입니다.
18. 그 때에, 모세가 "저에게 주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9. 주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의 모든 영광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의 거룩한 이름을 선포할 것이다. 나는 주다.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20. 주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21. 주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너는 나의 옆에 있는 한 곳, 그 바위 위에 서 있어라.
22. 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나의 손바닥으로 가리워 주겠다.
23. 그 뒤에 내가 나의 손바닥을 거두리니, 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출33:18-23)
모세도 진짜를 대면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 현실인 그 영광을 사람은 맞대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경우 모세도 죽게 될 것입니다.
모세가 본 것은 하나님 영광의 등만 보게 된 것입니다.
구유에 누이신 그 나약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 영광이 드러났을 때 비로소 사람들에게 평화가 임했습니다.
21. 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사57:21)
그러나 평화는 악인들에게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거짓말이나 해대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평화가 없습니다.
더욱이 거짓을 강요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들이 평화를 고백한다면 그것을 거짓 평화입니다.
평화는 악인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려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시고,
16.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려는 것입니다.(엡2:14-16)
그것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평화란 결국 이 아기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죄용서의 사건이 없는 사람에게 평화란 존재하지 못합니다.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믿음이 없다면 그에게 평화가 없습니다.
바로 이 일이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통해 일어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