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그린시티, 그 개명에 대해
한때 이 나라 젊은이들이 음악다방에 떼 지어 몰린 적이 있었다. 음악다방에는 DJ 박스가 있어 스카프를 맨 멋진 DJ가 달콤한 멘트를 날리며 음악을 틀어 주었다. 손님들이 메모지에 신청곡을 적어 DJ에게 전달하면 DJ는 신청자 이름과 신청곡을 알려주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만나기로 한 사람과 통화하려면 다방에 전화해야 했는데, DJ가 “◯◯씨 전화받으세요”하고 알려주면 카운터 옆으로 쪼르르 달려가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이래저래 여기저기서 이름이 많이 불렸고, 이름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많이 나온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자신이 직접 개명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 절차도 갈수록 간단해져 개명을 원하면 누구나 신청해서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사람에 이어 지명도 바꾸는 추세다. 일제강점기에 비틀어진 지명을 바로잡는 수준에서 차츰 그 영역을 넓혀 지역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지명을 바꾸기도 한다. 반여동의 ‘위봉’이 ‘주봉’으로, 기장 ‘대변초등학교’가 ‘용암초등학교’로 개명했다.
하지만 개명하면 뭐 하나, 사람들이 불러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개명을 했는데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데에는 필경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억지춘향으로 지어진 이름이 그 짝이다. 해운대의 경우 ‘구남로’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7년 해운대구는 구남로 확장공사 후 구남로에 좀 더 친숙하고 대중성 있는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 전국에 도로명을 공모했다. 공모 결과 ‘해운대광장’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했다. ‘해운대광장’은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애칭으로 상징성과 대중성, 명확성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이날까지 ‘구남로’를 ‘해운대광장’으로 부르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공모를 주관한 해운대구청조차도 ‘해운대광장’ 대신 ‘구남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 언론에서도 ‘해운대광장’은 찾아볼 수가 없어 구남로라는 지명을 바꾸려고 했던 전국 공모전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12월 해운구청에서 의욕적으로 시행한 ‘해운대신시가지 네이밍 공모’에서 ‘해운대그린시티’가 선정되었다. 그린시티라는 지명과 그 뜻에 동의하는 공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심사위원들 역시 ‘그린시티’를 선택했다. 앞으로 ‘해운대신시가지’를 ‘해운대그린시티’로 칭해야 한다. 이미 지난 일이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굳이 신시가지 이름을 ‘그린시티’로 바꿔야 했는지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 생각한다. ‘그린시티’란 이름을 떠나 신시가지 이름을 변경하는 일에 주민들의 의사를 살폈어야 했다. 신시가지가 노화되었다고, 그래서 이름이 맞지 않는다는 논리로 몰아 일방적으로 개명에 나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실제 신시가지 주민 중 얼마나 많은 이가 “새 이름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했을까? 주민공모라는 미명하에 그 필요성에 대한 주민의견은 너무 간과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름은 한 번 바꾸면 다시 바꾸기 어렵다. 이미 정해진 이름이라 열심히 ‘그린시티’로 불러야겠지만 신시가지에 뿌리를 내린 주민들이 ‘그린시티’라는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게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해운대라이프>와 더불어 구청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해운대신시가지의 새 이름 ‘해운대그린시티’를 홍보해 주길 바란다.
이무성 / 해운대를사랑하는모임(해사모)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