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 외 1편
김혜영
은행나무는 노란 은행을 달고
대추나무는 대추를 달고
너는 눈동자가 풀린
무녀처럼 혀가 굳어간다
오래 전 아버지 무덤가에 심은
수국은 키가 훌쩍 자라고
대추나무는 어린 대추를 달고
누군가 건드릴까봐 가시를 품었다
동그란 대추를 따다
가시에 찔린 후
결혼은 가시 면류관이 엮어지는
시간 여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앞집, 뒷집, 옆집
낯선 공간으로 변하는 우리 집
가족이라는 고리 안에서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처럼
서로의 볼을 쓰다듬는다
대추나무는 아무 말이 없고
여름이 다 지나간 식당에서
평양냉면을 주문하고 돈 걱정을 한다
보험을 해약해야 하나
반 토막 난 주식을 팔아야 하나
노후에는 어떻게 사나
노란 은행나무는 오백년을 살고
주목은 죽어 천년을 살고
고양이는 그루밍을 하고
대추나무는 허리가 휘도록
대추를 매달고 웃는다
굴복하지 않는 식물의 영혼을
훔쳐본 후
가만히 낮아지는 가을 날 오후
꽃이 시든 아침에
일요일 오후에
꽃 만원어치를 샀는데
밤새 네 송이는 시들어버렸네
때로는 조금
손해 보는 것도 좋아
일요일에도 나와
꽃집을 지킨 그녀에게
나는 행운의 천사였을까
시들시들한 꽃을
팔 수 있었으니
그렇게 월요일이 가고
화요일엔
아름다운 언어가 맴돌기를
김혜영
1997년 <현대시> 등단, 시집 <프로이트를 읽는 오전> 외
평론집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 외, 산문집 <아나키스트의 애인>
제8회 애지문학상 수상
카페 게시글
Poem&Poetry
시간 여행 외 1편 / 김혜영
김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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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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