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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생각하는 참빛의 영성과 인간다움
임 학 균
등대 그리스도의 교회
걱정하지 말자
“디지털 시대에서 생각하는 참빛의 영성과 인간다움”이라는 제목의 글을 부탁받고 나서 며칠간 그 의미를 찬찬히 생각하다 보니 드디어 글 주문의 의도가 보이는 듯하다. 컴퓨터, 플로피 디스크, CD, USB, 그리고 스마트폰, 인터넷, 게다가 버스·지하털 환승카드, 신용카드 결재 등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듣도 보도 못했거나 남의 일 같았던 신기한 물건들이 이 시대 이 사회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21세기 이 시대가 디지털 문명으로 접어든 만큼 참빛도 고전적으로 종이 잡지에만 머물지 말고 디지털 잡지를 병용하여 발간하면 좋겠다. 그런데 디지털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기계적인 도구를 통해서만 가동되는 시스템이다 보니 하나님, 신앙,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 등 인간의 머리와 가슴이 주제인 참빛의 입장에서는 너무 기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헛된 염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류에게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러한 이야기를 막 발간되어 나와서 잉크 냄새 그윽한 참빛을 손가락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며 채 식지 않은 따스한 감촉을 느끼는 순간, 그것이 인간적인 감성이리라.
3차원 세계의 종이에 쓴 글을 읽는 기분이 고전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참빛이 추구하는 기독교 영성과 인간다움일 수도 있다. 그런데 디지털 잡지가 주된 전달방법이 된다면 이 따스한 이야기가 기계 속에 갇혀서 너무 차갑게 느껴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실상 디지털 잡지에 대한 조바심은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가 만져지지 않는 가상 세계 안에 들어 있는 데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일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런 걱정일랑 다 집어치우고 자신 있게 앞으로 가자. 왜냐하면 ‘디지털 시대’든 ‘참빛의 디지털화’든 디지털의 존재 이유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시간을 보는 시계나 몸무게를 재는 체중계의 눈금이 어느 위치 어느 각도에 머물러 있는가에 따라 숫자를 대략으로 이해하였던데 반해, 디지털 시대에는 명확관화(明確觀火)하게 숫자로 알려주니 이 얼마나 편리하고 확실한가 말이다. 따라서 애매모호하던 과거의 지식 전달체계는 자연스럽게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 영성이나 인간다움의 보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디지털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뿐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조건은 과거부터 계속 변화되어 왔고 앞으로도 꾸준하고 신속하게 변화되었는데, 이 정보의 전달 매체를 어떤 방식과 어떠한 목적으로 활용할 것인가가 이 글의 주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말자. 참빛을 종이 잡지 외에 디지털 방식으로도 읽을 수 있는 재미, 이 또한 기독교 영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비인간적이지 않다. 진짜 문제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때의 그 생소함과 당황스러움을 하루빨리 탈피하여 가능한 빠른 시간에 극복해 내는 데 있다.
가능한 빨리 생소함에서 탈피하라
앞에서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때의 그 생소함과 당황스러움을 하루빨리 탈피하여 가능한 빠른 시간에 극복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이러한 경험은 인류 역사에 비일비재했던 일이다.
종이와 문자, 그리고 인쇄술의 발명은 인류문명의 발달에 획기적인 공헌을 하였다. AD 2세기 사람이었던 ‘채륜’이 문자를 기록할 수 있는 종이를 개발한 이후 2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이는 문명의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여 다양한 문명을 계승, 발전시켜 왔다. 그 이전에는 죽간(竹簡)이나 목간(木簡), 비단, 기타 물품에 기록하던 문자를 종이에 기록할 수 있게 되어 정보의 공유와 전파가 용이해 지자 인류의 문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읽고 은혜를 받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역시 이 종이와 문자 그리고 인쇄술의 발달로 인하여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종이 사용의 보편화, 문자 보급, 다량인쇄가 가능한 인쇄술의 발달은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하나로 공유하게 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이 종이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종이를 생소하게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이것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하며 혼란했을 것이 분명하다. 채륜 이전에도 종이 비슷한 것은 존재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자를 적어 넣기에는 매우 불편하여 글쓰기 용도가 아니라 물건을 포장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약 2-3백여 년이 지나서 채륜이 만든 종이가 보급되면서 드디어 종이에는 글자를 적어 넣으면 매우 편하고 좋다는 것이 알려졌다. 중국의 경우 종이의 생소함을 극복하는 데 무려 약 2세기에서 3세기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제국 시기에 ‘신문’이 발간되었다. 그런데 이 신문의 용도를 모르는 백성들은 도무지 돈을 내고 신문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조선 백성들은 이제껏 뉴스를 돈 내고 사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어느 신문 발행인이 아이디어를 내었더니 그제서야 신문이 팔리기 시작하였다 한다. 그 아이디어의 핵심 단어는 ‘신문(新聞)’이 아니라 ‘신문지(新聞紙)’였다.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여러분, 이 신문지는 질이 좋아서 구멍 난 창문의 찢어진 문풍지에 덧대어 사용하셔도 되고, 선물을 포장하셔도 좋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볼일을 보신 후 사용하시면 부드럽고 깨끗하게 마무리가 되어 좋습니다.” 초창기의 신문을 접한 백성들은 거기에 인쇄된 정보의 중요성을 모르고 생소함을 극복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어떤가? 엄청난 양의 뉴스를 담은 신문이 하루에도 수백, 수천만 부가 발간되어 배포되고 있으나 그 어느 누구도 뉴스를 돈주고 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빨리 생소함에서 탈피하자.
디지털에도 단점이 있다
그간의 디지털 기기는 기록과 정보를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나 CD, 그리고 USB, 그리고 인터넷 등에 저장하는 것으로 변화해 왔다. 디지털화의 최대장점은 막대한 분량의 종이에 작성하던 정보를 간편하게 저장할 수 있다는 편리함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종이의 원료인 수많은 나무를 베어냄으로써 자연환경 파괴가 불가피했지만 디지털화는 그 많은 종이를 한 장의 디스크나 USB에 담을 수 있기에 그만큼 벌목을 줄여도 된다. 그러나 디지털화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정보의 보호와 계승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것을 “디지털 암흑시대”라고 한다. 나무위키 사전은 “디지털 암흑시대(Digital Dark Age)란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도태된 방식의 디지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게 되면서 역설적으로도 디지털 시대의 역사적 정보가 부족해지고 지식이 매몰되거나 소멸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설명한다. 나무위키는 이어서 설명하기를 “이 용어는 정보가 디지털 형식으로 전송되고 원본 복사본이 손실되기 때문에 디지털 시대에 기록이 부족할 수 있다는 의미의 'Dark Age(암흑시대)'라는 용어에서 유래되었는데 1997년 국제도서관협회 및 기관연맹(IFLA) 회의에서 처음 언급되었으며 1998년 롱 나우 재단(Long Now Foundation)과 게티 보존 연구소(Getty Conservation Institute)가 공동으로 후원한 Time and Bits 컨퍼런스에서도 언급되었다.”고 정리한다.
위의 말을 쉽게 설명하면 디지털 기기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아주 짧은 기간에 저장 수단이 플로피 디스크, CD, USB, 인터넷 등으로 계속 바뀌었는데, 변화된 이후에는 과거의 저장 수단을 가동할 수 있는 기기가 없다면 저장된 그 정보는 읽을 수가 없어서 단절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디지털화의 가장 단순한 정보 중단 원인은 기계고장, 단전(斷電), 인터넷 활용 불능 환경 등이다.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이에 관한 다큐멘터리 촬영의 일환으로 2012년 7월 2일 루브르 박물관의 장서각 2층에서 난간 아래로 저서 '장미의 이름'과 함께 아마존의 전자책 기기 킨들을 떨어트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의 종이책은 조금 구겨지기는 했지만 멀쩡했고 반대로 전자 기기는 작동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에코는 이에 대해 '종이책의 소멸을 말하는 시대지만, 전자책 역시 내부에 100권이 들어 있든 1,000권이 들어 있든 이렇게 취약하다'고 해설했다.
디지털에게 디지털을 물어보다
디지털이 주제인지라 필자는 이 문제를 더욱 발달한 디지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중 일반 대중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최근 브랜드인 ‘ChatGPT’에게 질문해 보기로 하였다. 그 결과 단 1분 만에 나온 답이 기가 막혔다. 함께 게재한 ‘사진’이 바로 그 질문과 응답을 캡처한 것인데,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You(필자)
'참빛'이라는 기독교 종이잡지에 기고할 글인데 종이잡지를 디지털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화하더라도 참빛이 기독교의 영성과 인간다움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ChatGPT
참빛 종이잡지를 디지털화하면서도 기독교의 영성과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있습니다. 아래는 참빛 종이잡지의 디지털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제안 사항입니다.
1. 컨텐츠의 질과 의미 유지: 디지털로 전환하더라도 종이잡지의 핵심 가치와 메시지를 유지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영성과 인간다움을 강조하는 내용을 유지하고,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내용을 제공해야 합니다.
2. 인터랙티브 기능 도입: 디지털 플랫폼은 텍스트 이상의 다양한 매체와 상호 작용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기사에 댓글을 남기거나 소셜 미디어와의 공유를 촉진하는 등 인터랙티브한 기능을 도입하여 독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3.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 활용: 사진, 비디오, 오디오 등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활용하여 다양한 독자층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메시지를 미디어적으로 다양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4. 모바일 친화적 디자인: 모바일 기기에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용자 친화적인 디자인을 적용해야 합니다. 이는 독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참빛 디지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줍니다.
5. 개인화된 콘텐츠 제공: 독자들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콘텐츠를 개인화하여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더 많은 만족감을 느끼고 참빛과의 상호 작용이 강화됩니다.
6. 보안 및 개인 정보 보호 강화: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사용자의 개인 정보와 보안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신뢰성과 안전성을 유지하면서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독자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해야 합니다.
7. 소셜 미디어 통합: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홍보 및 공유 기능을 강화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참빛을 알게 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디지털화의 주요 목표는 전통적인 종이 매체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디지털 플랫폼의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참빛이 새로운 독자층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ChatGPT’가 알려 준 이 글을 요약 해석하면 ‘컨텐츠의 질과 의미 유지’는 참빛이 가지고 있는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고, ‘인터랙티브 기능 도입’은 인터렉티브(interactive)라는 단어가 말하는 것처럼 참빛이 일방이지 않고 독자들과 상호 대화가 가능한 쌍방 소통의 기능을 마련하라는 말이다.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 활용’은 단순히 글만 사용하지 말고 사진, 비디오, 오디오 등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여 시청각을 극대화하라는 뜻이고, ‘모바일 친화적 디자인’은 컴퓨터는 물론이고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라는 말이다. ‘개인화된 콘텐츠 제공’은 독자들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눈높이 콘텐츠를 제공하라는 말이고, ‘보안 및 개인 정보 보호 강화’는 디지털의 특징상 개개인들의 신상정보가 누출되지 않도록 보안기능을 강화하여 안심하고 접근하도록 하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여 홍보 및 공유 기능을 강화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참빛 접근에 용이하도록 하라는 것이 ‘소셜 미디어 통합’이다.
이렇게 했을 때 디지털화한 참빛이 기독교 영성과 인간적인 감성을 유지하면서 고유기능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CHatGPT가 제공한 이 정보에서 보듯이 사람들은 이처럼 세세하고 꼼꼼한 글을 단시간에 쓸 수가 없다. 기계가 써 준 이 글을 우리는 기독교 영성에 활용할 수 있을까? 또한 이 글에서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정답은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과 ‘부정’ 둘이다.
긍정은 CHatGPT가 제공한 답글 역시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것을 활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입력한 정보를 순식간에 학습하여 모아 놓은 것이기에 결국 그 정보도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입력한 지식과 정보를 디지털 기기인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전달해 주었기에 그렇게 경계할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요소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필자는 글 서두에서 “디지털 시대든 참빛의 디지털화든 디지털의 존재 이유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의 하나일 뿐”이기에 걱정하지 말자고 썼지만, CHatGPT 같은 AI의 경우는 단순히 수단이 아니라 글을 쓰고 수많은 정보를 모아서 자신만의 주장을 할 수도 있으므로 어쩌면 예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참빛은 기고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생각을 글로 담아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사명으로 존재하는데 디지털 기구의 하나인 AI가 인간과 관계없이 자신의 말을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이 역시 크게 걱정은 하지 말자. 참빛이 AI의 말을 그대로 답습할 일은 없을 것이다. 잘 훈련된 참빛의 일꾼들과 지성인들인 많은 독자들이 AI의 말에서 잘잘못을 판단하여 걸러 낼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는 분명히 이 시대의 흐름이 맞으나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참빛은 디지털화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접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더 쉽게 복음과 진리로 다가올 수 있도록 도울 의무가 있다. 종이 잡지든, 디지털 잡지든 이 모든 것은 훌륭한 전달 수단이 되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는 참 빛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디지털화 시대에 생각해 보는 참빛의 영성이고, 인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