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85)
마지막 농경세대
현재 노인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대부분이 마지막 농경세대들이다. 아들이 50이 넘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아 자손이 끊겨 저승에 가서 무슨 면목으로 조상님들 뵈올 수 있을는지 하면서 우는 분도 계신다. 음력 제삿날만 되면 집에 가서 제사상 차려야 한다고 짐을 싸고 아들에게 전화를 하고 난리를 치는 할머니도 계신다.
농경시대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여 다산(多産)이 크게 장려되었고 자녀를 많이 낳은 여성들이 존경받았다. 농사는 언제 씨앗을 뿌려야 할지, 언제 서리가 내리고, 언제 수확을 해야 할지 축적된 경험이 중요했기 때문에 오랜 경험이 있는 노인은 공경의 대상이었고 장수(長壽)는 큰 축복이었다. 노인이 죽으면 화려하기 그지없는 꽃상여에 태워 먼저 간 조상들이 사는 곳으로 모셨다. 어릴 때 마을에서 노제를 지내는 꽃상여를 종종 보았는데 그때의 느낌이란, 죽음은 무서움이 아니라 조상들과의 반가운 재회 같은 것이었다.
어릴 때 사촌 형수가 우리 마을로 시집을 왔는데 사촌 형수의 어머니가 따라와서 넓은 들판을 보더니 땅을 치며 울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넓은 들판(논밭)을 니가 다 농사를 지어야 할 것 아니냐!”
논밭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지만 농사는 전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합심하여 지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한 줄로 늘어서서 오늘은 갑돌이네 논에 모내기를 하고, 다음날은 용팔이네 집 모내기를 하고, 다음날은 종칠이네 집 모내기를 하고….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제사는 삶의 터전을 잘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준 조상에 대한 감사의 축제로 가족, 친척, 마을 사람들을 횡적으로 연결시켜주고, 조상과 후손들을 종적으로 연결시켜주는 고리로 농경사회를 이어가는 버팀목 역할을 하였다. 농경사회에서는 학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끈기 있고 부지런하며 잘 어울리는 사람이 필요했다. 뛰어난 사람은 필요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마을의 화합을 해치는 해로운 존재로 여겨졌다.
나는 1956년생으로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66불로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수준이었다. 70~80년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2021년 국민소득 3만 5천 불을 돌파하였다. 불과 70년 만에 자그마치 5백 배가 넘는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지게를 메고 형과 함께 산에 가서 낙엽과 나뭇가지들을 긁어모아 땔감을 가득 지게에 메고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분이셨는데 어쩐 일인지 육체노동을 아주 신성시하여 자녀들에게도 부모와 함께 일하도록 하셨다.
집이 산언덕 앞에 있었는데 틈날 때마다 곡갱이로 언덕을 파서 집(뒷마당)을 넓히라고 하셨다. 산에 가는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한 시간 만에 지게 가득 땔감을 모아두고 산에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지게를 지고 강에서 물을 퍼담아 오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마을에 우물이 있었지만 식수로만 사용하고 생활용수는 강에 가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 물을 힘들게 길어오던 기억이 있어 물이 풍부한 요즘에도 나는 세수할 때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서 하고 샤워물을 버리지 않고 모아서 변기물로 사용한다. 아내는 어릴 때부터 도시에서 살아 내가 물을 모아 쫌생이처럼 쓰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 물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는 곧 물 부족 국가가 된다고 한다. 물을 아끼고 환경을 아껴 우리 자녀와 후손들이 이곳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
국민소득 66불 시대에도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소득 3만 불이 넘었는데도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가? 백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왜 외국 청년들에게 내어주어야 하는가?
허례허식을 버리고 성실하고 끈기 있는 삶, 육체노동을 신성시하고 과학자와 기술자가 우대받는 세상을 만들어보자. 작은 일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며 건강하게 사는 시대를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