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현 숙
예전에는 매주 일요일마다 동네 목욕탕에 갔다. 뿌연 수증기 속에 비집고 앉아 서둘러 씻다 보니 옆자리 아주머니께서 ‘내가 등 밀어 드릴까요?’라고 했다.
어깨 한쪽을 수건으로 덮은 한쪽 팔 없는 아주머니였다.
섬뜩한 생각에 깜짝 놀라 ‘괜찮다’ 하고 싶었지만, 아주머니가 무안해 하실까 봐 등을 내밀었다. 씻은 후에 내가 아주머니의 등을 밀어주겠다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괜찮다고 사양했다. 자신의 불편함을 참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주변의 안타까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머니가 가진 한쪽 팔 전부를 선뜻 내민 배려에 고마움을 떠올렸다. 그동안 멀쩡한 두 팔을 가진 나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까?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어릴 적 일요일은 친구들이랑 동네 시끄럽게 뛰어노는 날이었지만 부모님은 교회에 가면 하나라도 배우라고 헌금할 동전을 주시며 주일학교에 보내 주셨다.
언니는 꼬박꼬박 헌금을 내며 주위 친구들도 잘 데려 다녔지만 나는 교회 가는 길 햇살 바른 길목에서 헌금할 돈으로 연탄불에 설탕을 녹이며 소다처럼 부풀어 오른 삶을 추구했다. 달고나 같은 세상에 현혹되어 적당히 타협하며 하느님은 나몰라라 했다. 언니는 무엇이든 양보하며 교회에 열심히 가자고 했다. 세월이 흘러 목회자와 혼인한 언니는 궁색한 살림에도 주일학교 학생들이 찾아오거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가진 것 다 내어 주고도 늘 감사하다고 기도를 했었다. 교회 사택을 전전하며 청빈한 삶을 맘껏 누리겠다는 언니를 보며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인 듯 원망했었다.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생활을 하던 동생도 생각지 않은 신학을 공부하면서 목회자의 아내가 되었다. ‘빈 주머니 채워주시는 우리 주님’이라며 늘 기도하고 감사하는 신앙생활에 충실했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컸었다. 내가 하나를 주면 언니나 동생은 둘, 셋을 주는 남다른 우애였다.
사랑과 정은 나눌수록 더 커지고 행복해진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기뻐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 삶을 진실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늘 부족하고 욕심에 매달렸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가족과 함께하면서 나도 모르게 욕심을 줄이며 감사의 마음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부모님께 감사하면 자라서 효도하게 되고, 형제자매로 자란 것을 감사하면 우애 있게 지낸다.
크고 작은 가르침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좋은 이웃으로 서로 도우며 알콩달콩 살다 보면 살 만한 세상이 되는 것처럼 그동안 보이지 않는 가족들의 기도와 사랑 속에 건강하게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안경 낀 두 눈이지만 날마다 깨어나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고, 두 귀로 사랑하는 사람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거칠어진 손이나마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식탁을 차릴 수 있어 행복하다.
느린 걸음에도 앞산 뒷산 꽃구경을 하러 갈 수 있고, 따뜻한 가슴으로 기쁨과 슬픔을 안을 수 있음을 또 감사한다. 나를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기며 아끼게 된다. 서로가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기 능력에 맞게 스스로 해결해 성취에 이르면 그것이 곧 만족이며 감사이다.
무슨 일을 하든 욕심을 가지게 되면 원망도 미움도 커지게 된다.
소소한 일에도 감사함을 간직한 사람은 나쁜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일상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기뻐하고,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며, 건강한 몸과 마음에 감사하는 것이 나와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고 나를 기다려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보잘것없는 집이라도 내가 편히 쉴 곳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즐겁게 사는 일이 가장 큰 행복이다. 행복은 감사할수록 더 커지는 것이다. 욕심으로 가득 찬 나를 비우고 겸손한 마음을 채우며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를 배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으니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고 했다.
길가에 피어난 꽃들은 길손을 즐겁게 하고 제멋대로 자란 풀들이 물길을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 되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길이다. 아무리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내 능력껏 도전하며 노력하는 삶이 아름다운 것이다. 수십년 전목욕탕에서 만난 한쪽 팔의 아주머니께서 내민 따뜻한 손길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감사하는 마음은 크기에 상관이 없으며 시간과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물이다.
첫댓글 메마른 마음을 감사로 채우면 더 큰 감사 할 일이 생기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삶이 넉넉해집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형제와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선물같은 하루하루가 고맙습니다. 글쓰기를 함께 할 기회가 주어져 또한 감사합니다.
본인은 밀지 않고 남에게는 호의를 베푼 아주머니는 천사이시네요.
그런 분이 계셔서 세상은 살아갈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귀힌 글 잘 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