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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자객을 만난 오삼계 오삼계는 황급히 한걸음 다가서며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공주께선 뭐라고 말씀하셨소?] [공주는 고집이 세어 아무리 권해도 듣지 않고 반드시 죽고 말겠다고 하십니다. 저는 궁녀들 보고 절대 공주 곁에서 떠나지 말고 공주를 잘 감시하라고 분부했지요. 왕야, 그녀가 독약울 먹지나 않을까 걱정입니 다.] 오삼계는 안색이 변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소. 그 점을 반드시 방비해야 합니다.] [왕야, 공주님께 어떤 변고가 생기면 저 역시 공주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으니 이 작은 목숨을 보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 왕야께서는 저에게 살길을 열어 주십시오.] 오삼계는 흠칫 놀라서 물었다. [살길이라니 무슨 살길이오?] [그 말은 지금은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공주께서 무사하기를 빌 뿐입니 다. 그래야 서로에게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그녀가 한사코 죽으려고 한다면 며칠은 저지할 수 있어도 언제까지나 저지할 수는 없지요. 저로 서는 공주가 하루 빨리 왕야의 왕부로 시집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삼계는 기뻐서 말했다. [우리 빨리 잔치를 열도록 합시다. 모두 내 아들놈이 멍청한 짓을 하여 생긴 일이오. 위 형제께서 애써 덮어 주시니 소왕은 뭐라고 감사를 드 려야 할지 모르겠소. 결코 위 형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은 없도록 하 겠소.] 그는 음성을 낮추어 물었다. [공주가 시집을 오려고 할까요?] 그 말을 하며 오삼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 아들은 이미 폐인이 되었다. 공주가 나이 어리고 견식이 얕아 남녀 간의 즐거운 일을 모르기를 바랄 뿐이다. 조금 전에 칼질을 하였으나 그녀는 어디를 잘랐는지 모를 것이다.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을 오면, 나무는 이미 배로 만들어진 셈이니 시집살이를 해야 할 것이고 그녀는 이 세상의 남자들이 모두 응웅과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 다.) 위소보는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공주는 아직 어리니 남녀간의 일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녀는 귀하신 몸이니 남녀간의 일을 입에 담지도 못할 것입니다.] 오삼계는 크게 기뻐 속으로 생각했다. (영웅의 견해란 역시 비슷하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제기랄! 이 꼬마 녀석이 무슨 영웅이란 말인가? 감히 나와 함께 논하 면 안되지.) 오삼계는 이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맞았소. 우리들이 잘 해보도록 합시다. 우리들은 감히 황상을 속이려 고 하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만세야께서는 하루에 만 가지 일을 처 리하셔야 하며 나라일을 걱정하시느라고 밤잠을 못 이루고 계시니 얼마 나 바쁘시냔 말이오. 우리 신하들이 군주에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한 어찌 황상을 번거롭게 할 수 있겠소? 태후와 황상께서 는 공주를 사랑하시는데 만약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시면 매 우 마음 아파하실 것이오. 위 형제, 훌륭한 벼슬아치가 되는 비결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경사스런 일은 보고하고 근심스런 일은 보고하지 않는 것이지요.] 위소보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고 곧이어 자기의 모자를 손가락으로 두 번 퉁기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왕야께서 저를 돌봐 주시고 키워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일은 저 의 목숨을 걸고 왕야의 분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오삼계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그러나 오늘 밤의 일을 본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누설하 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렇죠.] 오삼계는 속으로 좋은 계책을 강구해 보았다. 부하들을 강도처럼 꾸며 광서성 경내에 매복시켰다가 위소보 일행이 북경으로 돌아갈 때 모조리 잡아 죽여 버리는 계책이었다. 광서성은 손연경(孫延慶) 이 다스리는 지역이다. 손연경의 처 공사정(孔四貞)은 정남왕 공유덕 (孔有德)의 딸이었다. 태후는 그녀를 수양딸로 삼고 화석격격(和碩格 格)에 봉했고 따라서 조정에서는 그녀를 총애하고 있었다. 오삼계는 광 서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죄명을 공사정에게 덮어씌우려는 것 이었다. 위소보는 눈치가 빠르기는 하나 먼 앞일을 내다보고 심사숙고해서 계책 을 세우는 일은 오삼계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오삼계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그가 이번 일이 누설될까 봐 걱정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웃으 며 말했다. [왕야, 부디 안심하십시오. 소장은 철저하게 부하들을 단속하며 그들이 함부로 오늘의 일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위 형제가 오늘 이토록 나에게 큰 협조를 해주시니 금은이나 보석으로 는 이루 다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 형제가 거느린 관병이 적지 않으니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금은을 보내드리 지 않을 수 없겠소. 그러니 나중에 사람을 시켜 보내 드리겠소.] [정말 고맙습니다. 세자의 상처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가 가서 살펴보 는 게 어떨까요? 상처가 심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오삼계와 그는 함께 오응웅을 보러 갔다. 오응응을 치료하고 있던 의원 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만.... 그러나....] 오삼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명에 지장이 없으면 됐소.] 그는 위소보가 아들을 사로잡아 감금을 할까 봐 시종들에게 분부해서 즉시 세자를 세자의 저택으로 옮겨가서 치료하도록 하고 그 자신은 친 히 위소보를 붙잡고 늘어져 시간을 보냈다. 오응응이 안부원에서 나간 후에야 오삼계는 위소보에게 작별을 고했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나이 어린 매국노는 정신을 차린 후에 진상을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런 소용도 없다. 금지옥엽의 공주가 남편의 그것을 잘랐다고 그 누가 믿겠어? 대매국노 자신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아들 을 크게 꾸짖을 것이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공주를 시집보내고 북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가를 잘 토닥거려야 되 겠다. 정성을 많이 기울여야 할 게야.) 그가 처소에 돌아오니 서천천과 현정 도인 등은 이미 소문을 듣고 손뼉 을 치며 통쾌하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그들에게 사실대로 설명하지 않 고 기녀원으로 놀러 갔던 일을 물었다. 군웅들은 그의 계책대로 일을 처리했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생각했 다. (오늘 밤 이와 같은 큰 사건이 벌어졌으니 북경으로 사람들을 보낸다면 큰 매국노는 내가 황상에게 고자질을 하려는 줄 알고 의심할 것이다. 이 일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몽고의 털보를 보내자.) 갑자기 어전시위 조제현이 총총히 와서 말했다. [총관님께 보고드립니다. 평서왕이 자객을 만났답니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물었다. [죽었는가? 자객은 누구지?] 조제현이 천지회의 군웅들이 깊온 밤에 그의 방에 모여 있는 것을 알게 될까 봐 위소보는 즉시 문 밖으로 나가며 다시 물었다. [대매....대....평서왕은 죽었소, 죽지 않았소?] [죽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자객은 당장에 체포되었습니다. 범인은....공주를 모시는 궁녀였습니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물었다. [공주를 모시는 궁녀라고? 어느 궁녀 말이오? 그녀가 어째서 평서왕을 찔렀단 말이오?] [자세한 사정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속하는 평서왕이 자객을 만났다 는 소문을 듣자마자 달려와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빨리 가서 자세히 알아보고 다시 보고하시오.] 조제현이 대답하고 막 몸을 돌려 몇 발짝을 때기도 전에 장강년이 황급 히 다가오며 말했다. [총관님, 평서왕을 찔러 죽이려 했던 궁녀의 이름은 왕가아(王可兒)라 고 합니다.] 위소보는 몸을 비틀거리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그녀가....무엇 때문에 그랬지?] 왕가아는 바로 아가의 변명(變名)이었다. 바로 가(珂) 자를 둘로 나누 어 만든 이름이었다. 장강년은 말했다. [평서왕은 그녀를 왕부로 데리고 가서 친히 심문하여 누구의 사주를 받 았는지 알아내려 합니다.] 위소보는 사랑하는 사람이 체포되었다는 말을 듣자 정신이 흐리멍텅해 져서 좋은 계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장강년은 말했다. [그러나 모두들 그녀를 사주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왕가아는 십육칠 세의 나이 어린 소저로 공주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는데 공주 가 그와 같은 모욕을 당해서 자걸하려고 하는 것을 보자 마음속으로 크 게 분노를 느껴 공주님을 위해 화풀이를 하려고 했을 거라고 말들 하고 있지요.] 그 말이 귓전에 들어오자 위소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한 줄기의 광명을 발견한 듯하여 재빨리 말했다. [맞소. 맞소. 그 말이 맞소. 그와 같이 아름다운 소저가 평서왕에게 무 슨 원한이 있었겠소? 우리들이 평서왕을 찔러 죽이려고 했다면 결코 나 이 어린 소녀를 보냈을 리 없을 것이오.] 조제현과 장강년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위 부총관께서는 말하는 데 두서가 없구나. 우리가 어째서 사람을 보 내 평서왕을 찔러 죽이려고 한단 말인가?) 장강년은 말했다. [아마 평서왕은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소문이 퍼 진다면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가니 그는 십중팔구 몰래 그 궁녀를 죽여 이 일을 마무리 지을 것입니다.] 위소보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죽이면 안 돼! 죽이면 안 돼! 그가 만약 그 궁녀를 죽이면 나는 그와 목숨을 걸고 싸우겠소. 늙은 자라인 대매국노의 배때기에 흰 칼이 들어 가 붉은 칼이 나오도록 하겠소.] 조제현과 장강년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서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하니 위 부총관이 공주가 욕을 보자 화가 나서 그 궁녀를 보내 평 서왕을 찔러 죽이려고 한 건 아니겠지?) 그러나 두 사람은 공손히 서서 그런 말을 뱉어내지는 못했다. 위소보는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해야 좋겠소?] 장강년은 그가 여전히 제 정신이 아닌 것을 보고 위로의 말을 던졌다. [위 부총관, 이 일을 크게 확대하게 되면 황상께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오삼계 부자의 잘못으로 귀착됩니다. 공주를 강간하려고 한 것은 엄청난 짓이 아니겠습니까? 오삼계가 자객을 보낸 사람을 알아 냈다고 해도 우리가 한사코 부인하면 그로서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 다.] 위소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지시한 것은 아니오. 내가 두 분 형제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있겠소?] 조제현과 장강년은 그 말에 마음을 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소 보는 말했다. [두 분 형은 아무쪼록 수고를 해주시오. 나의 명첩을 가지고 가 평서왕 을 만나서 왕가아가 왕야를 해치려 한 것은 매우 잘못한 일이고 내가 매우 화를 내고 있다고 하시오. 하지만 왕가아는 공주를 시중 드는 궁 녀이니 왕야께서는 그 계집애를 내주어 이 일을 조용히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전하시오. 내가 공주에게 품해서 그 궁녀에게 무거운 벌을 내려 왕야의 화풀이를 해주겠다고 하시오.] 조제현과 장강년은 대답을 하고 떠나면서 마음속으로는 위소보가 쓸데 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오삼계가 그 궁녀를 몰래 죽여 버리면 서 로가 무사하게 되는데 왜 일을 복잡하게 벌이느냐고 생각했다. 위소보 는 즉시 구난의 방으로 달려갔다. 이때 그녀는 침대 위에 앉아서 막 운 기행공을 끝내고 있었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사저가....사저가....큰일을 저지른 것을 알고 계십니까?] [무슨 일이냐? 왜 그리 당황해 하지?] [사....사저....그녀가 매국노를 죽이려 하다가 사로잡히고 말았습니 다.] 구난은 눈빛을 번뜩이며 물었다. [그래 찔러 죽였느냐?] [죽이지도 못하고 사저가 그에게 사로잡혔습니다.] 구난은 싸늘히 코웃음 치며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차갑게 말했다. [쓸모없는 것 같으니.] 위소보는 생각했다. (그녀는 사부님의 제자가 아닌가? 그녀가 매국노에게 사로잡혔는데 사 부님은 걱정을 하시지 않는 것 같구나.) 그는 다시 말했다. [사부님, 사저를 구할 방법이 있겠죠?] 구난은 그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다. 쓸모없는 계집애!] 위소보는 길을 오는 동안 사부가 사저에게 냉담하고 자기에게 대하는 것보다 훨씬 차가웠던 것을 보아 왔다. 그는 사부가 정말 아가를 아랑 곳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다시 애원했다. [매국노가 그녀를 죽일 것입니다. 모진 고문을 당해 지금쯤 그녀는 반 쯤 죽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매국노는....그녀를 고문하여 사주한 사람 을 알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구난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지시한 것이다. 매국노가 재간이 있으면 나를 잡아보라지 뭐.] 구난이 제자를 시켜 오삼계를 찔러 죽이라고 지시한 데 대해 위소보는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명나라 숭정 황제의 공주였 다. 대명나라의 금수강산은 바로 오삼계에 의해 오랑캐에게 넘어가고 말았으니 그녀가 오삼계를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녀 자신 역시 오대산에서 강희를 찔러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 나 아가는 무공이 평범하고 오삼계의 신변에는 위사들이 구름처럼 늘어 서 있으니 찌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도망치기 어려웠다. 아가에게 그와 같은 일을 시킨 것은 그녀를 죽으라고 보낸 것과 다르지 않았다. 위소보는 많은 의문을 느꼈으나 물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이 렇게 말했다. [사저가 배후의 인물을 실토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불지 않을 것입니다.] 구난은 시큰둥한 음성으로 말했다. [글쎄다.] 그녀는 그 말을 하고 눈을 감았다. 위소보는 감히 더 말하지 못하고 밖 으로 나왔다. 조제현과 장강년이 오삼계에게 갔으니 빨리 돌아올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되어 그는 대청에서 서성거렸다. 날이 점 점 밝았다. 그는 세 번이나 소식을 알아보라고 시위들을보냈으나 달려 간 시위들은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 더는 참을 수 없어서 그는 결 국 한 떼의 효기영 군사들을 착출해서 친히 평서왕부로 달려갔다. 왕부에서 삼 리쯤 떨어진 법혜사(法慧寺)에 이르자 효기영의 군사를 멈 춰 세우고 그는 다시 시위를 보내 말을 타고 달려가 소식을 알아보게 했다. 한식경이 지나자 말발굽 소리가 촉급하게 울려퍼지며 장강년이 말을 달려 다가와 위소보에게 보고했다. [속하와 조제현이 부총관님의 명을 받들고 평서왕을 만나러 갔으나 왕 야는 줄곧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조제현은 아직도 왕부의 바깥채에 있 는 방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위소보는 초조하고 화가 나서 발을 구르며 욕했다. [제기랄! 오삼계가 감히 왕의 거드름을 피우다니!] [그는 한 지방을 다스리는 위세당당한 왕야가 아닙니까? 천하에서 황상 을 제외하면 그의 권세가 가장 클 것입니다. 그가 우리같이 하찮은 시 위를 만나 주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내 친히 그를 만나러 가겠소. 모두 나를 따라오시오.] 위소보는 한 명의 효기영 좌령에게 분부했다. [우리의 군사들을 모조리 출동시켜 오삼계의 소굴 밖에서 진을 치고 있 으면서 명을 기다리도록 하시오.] 그 좌령은 명을 받들어 달려갔다. 장강년 등은 그 말을 듣고 놀람과 두 려움을 느꼈다. 위소보가 다급해 하는 양을 보니 오삼계와 싸움을 벌일 것을 각오한 것 같았다. 평서왕의 휘하에는 명마가 많고 북경에서 공주 를 호송하여 운남에 온 명사들은 이천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서로 싸 운다면 반 시진(時辰)도 되지 않아 모조리 섬멸되고 말 것이었다. 장강 년은 말했다. [위 부총관, 부총관께선 흠차대신이십니다. 황상의 명을 받들고 곤명으 로 오신 몸이니 평서왕은 부총관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을 수 없을 것 입니다. 속하는 천천히 일을 해결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위소보는 벌컥 화를 냈다. [제기랄, 오삼계가 뭣하는 물건이오? 일을 천천히 해결하려고 하다가 그가 나의....왕가아를 죽여 버리면 그 누가 그녀를 살려 놓을 수 있단 말이오?] 장강년은 그가 호통을 내지르는 것을 보자 감히 더 말하지 못하고 속으 로 이렇게 생각했다. (궁녀 한 명 죽이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래? 그녀가 친 누이 동생도 아닌데 일을 크게 확대할 필요가 있느냔 말이다.) 위소보는 외쳤다. [말을 대령하라! 말을 대령하라!] 말을 끌어 오자 즉시 몸을 날려 말 위에 올라타고 질풍같이 말을 몰아 평서왕부를 향해 달려갔다. 평서왕부의 문공(門公)과 시위들은 흠차대 신이 온 것을 보자 재빨리 대청으로 맞아들이고 즉시 안으로 들어가 보 고했다. 총병으로 있는 하국상과 마보(,男寶) 두 사람이 위소보를 맞이 했다. 하국상은 오삼계의 사위인데 열 명이나 되는 총병 가운데 우두머 리였다. 그는 위소보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위 자작 나으리, 왕야께서 자객의 칼에 찔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 시리라 믿습니다, 왕야의 상처가 가볍지 않아 친히 마중을 나오지 못하 시니 용서하십시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말했다. [왕야께서 상처를 입으셨다니?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하던데?] 하국상은 침울한 얼굴로 나직이 말했다. [자객이 왕야의 가슴팍을 찔렀는데 그 상처는 약 서너 치나 깊이 났습 니다.] [아이쿠,근일났군!] 하국상은 말했다. [왕야께서 이번에....이번에 생명을 건지실 수 있는지 아직까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인심이 동요할까 봐 그와 같은 사실을 누설하지 않고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위자작 나으리게서는 한집안 사람이니 속일 수 없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가서 왕야를 위로해 드려야 되겠소.] 하국상은 말했다. [소인이 안내를 하죠.] 오삼계의 침실에 이르자 하국상은 말했다. [장인 어른, 위 자작 나으리께서 어르신을 위문차 오셨소이다.] 오삼계는 침대의 휘장 안에서 몇 번 신음소리를 낼 뿐 대답하지 않았 다. 하국상은 휘장을 들췄다. 오삼계는 눈살을 찌푸리고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고 있었다. 침대 위의 요와 이부자리는 피투성이였고 가슴팍 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붕대 사이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 다. 침대가에 두 명의 의원이 서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소보는 오삼계가 이토록 심한 상처를 입은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여 가슴 가득 끓어오르던 분노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는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삼계가 죽고 사는 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만약 죽는다면 아가를 구하는 일은더욱 어려워질 것이 아닌가? 그는 나직이 물었다. [왕야, 많이 고통스러우십니까?] 오삼계는 으윽, 하며 몇 번 신음소리를 내더니 두 눈을 부릅떴는데 눈 동자에 광채가 없었다. 하국상은 다시 말했다. [장인 어른, 위 자작 나으리께서 어르신을 뵈러 오셨습니다.] 오삼계는 어이구, 어이구, 하는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나는....나는 틀렸다. 너희....너회들은 빨리 가서 응웅....응웅 그 녀석을 죽여라! 모두....모두.... 그 녀석이 잘못한 탓이다.] 하국상은 감히 그 분부를 받들 수가 없어 아무 소리도 없이 휘장을 내 려놓고 위소보와 함께 밖으로 걸어나왔다. 방문을 나서자 하국상은 눈 물을 흘리며 말했다. [위 자작 나으리, 왕야....왕야께서는 이미 틀린 것 같습니다. 그 어르 신께서는 한평생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셨는데 이와 같은 종말을 맞 이하시다니, 진정....진정 하늘은 착한 사람을 돌보지 않는군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방귀 뀌는 소리 작작해라. 나라를 위해 무슨 충성을 했다는 거냐? 하 늘이 대매국노를 돌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마땅하다.) 그러나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하 총병, 내가 보니 왕야의 상처가 심하기는 하지만 꼭 별세하신다고 는 볼 수 없을 것이오.] [천지신명께서 보우하셔야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자작 나으리 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나는 관상을 볼 줄 알지요. 왕야의 얼굴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고귀한 상이지요. 장래 그가 누릴 벼슬과 부귀는 현재보다 백 배는 더 클 것이 오. 그런 부귀영화를 누리기 전에는 결코 돌아가시지 않을 것이오.] 오삼계는 친왕이라는 지극히 높은 벼슬에 있었다. 운남성과 귀주성의 모든 군민(軍民)의 정무(政務)를 그 한 사람이 관장하고 있었다. 작위 는 이미 절정에 도달해 있었고 관직도 이미 높을 대로 높았다. 위소보 는 그가 장래에 차지할 벼슬이 현재보다 백 배나 더 크다고 했는데, 황 제가 되는 것 이외에 무슨 벼슬이 평서왕보다 백 배나 더 클 수 있겠는 가? 하국상은 그 말을 듣자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황상의 은혜가 크시어 우리 왕야의 작위는 이미 절정에 달해 있으며 더 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저 위 자작 나으리께서 말씀하신대로 그 어 르신께서 이번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위소보는 그의 표정이 크게 변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을 너도 이미 알고 있었구나. 그 렇지 않고서야 내 말을 듣고 어째서 그토록 놀란단 말이냐? 내친김에 더 놀라도록 만들어 줘야지.) 그는 다시 말했다. [하 총병은 아무쪼록 안심하시오. 내가 그대의 관상을 보니 역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한 상이오. 앞으로 그대가 여러 모로 이끌어 주시 고 키워 주시기 바라오.] 하국상은 절을 하며 공손히 말했다. [흠차대인께서는 과찬의 말씀을 하시는군요. 대인께서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니 소장은 더욱 충성을 다하여 황상폐하와 대청나라의 은혜에 보 답하여 결코 흠차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기대해 보지요. 그대들의 세자는 부마가 되어 소보 벼슬에 태자 태보를 겸하였소. 과거 악비 나으리께서는 주선진(未仙鎭)에서 금나라 군사를 대파하시고 김올출로 하여금 똥, 오줌을 바짓가랑이에 싸도록 만든 큰 공을 세웠지만 고작 소보라는 관직에 봉해졌을 뿐이었소. 공주 의 남편이 되면 이런 크나큰 득을 보는 모양입디다. 하 총병, 잘해 보 시오.] 그는 밖으로 걸어갔다. 하국상은 놀라 식은땀을 손에 쥐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녀석의 말을 들으니 장인 어른께서 황제가 되려고 한다는 것을 비 꼬는 듯하다. 설마....설마 이 비밀이 누설된 건 아니겠지? 아니면 저 녀석이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터운지 모르고 나오는 대로 허튼소리를 마구 지껄인 것일까?) 위소보는 회랑에서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왕야를 찌른 자객은 체포했소? 도대체 어떤 사람이오? 누가 사주한 것 이오? 명나라에 충성을 하는 잔당들이 한 짓이오, 아니면 목왕부의 사 람들이 한 짓이오?] 하국상은 말했다. [자객은 여자이며 이름은 왕가아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합니다. 그녀가 공주의 궁녀라나요? 소장은 그 말을 믿지않습니 다. 흠차대인께서 옳게 보시니 저는 탄복해 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목씨 집안에서 파견한 자객 같습니다.] 위소보는 깜짝 놀랐다. (야단났다. 그들은 공주에게 죄를 씌울 수 없으니까 아가를 목왕부의 사람이라고 모함하여 아무렇게나 죽이려고 하는구나. 이거 정말 큰일이 다.) 그는 말했다. [왕가아라구요? 왕가아는 바로 공주의 곁에서 시중드는 궁녀인데? 공주 는 그녀를 매우 좋아하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지요. 그녀는 십칠팔 세의 나이로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가 수려하지 않습니까?] 하국상은 주저하며 말했다. [소장은 왕야의 상처에만 신경을 쓰고 있느라고 미처 자객의 모습을 살 펴보지 못했습니다. 그 여자는 이름을 사칭한 것이겠죠. 흠차대인께서 도 생각해 보십시오. 왕가아라는 궁녀가 공주의 총애를 받고 있고 평소 공주의 총애를 받았다면 반드시 예의를 차릴 줄 알며 부드럽고 온순한 성격을 지녔을 것입니다. 그런 궁녀가 어찌 왕야를 찌를 리 있겠습니 까? 결코 그 궁녀가 아닐 것입니다.] 그가 자객이 결코 공주의 궁녀가 아니라고 한사코 우겨대자 위소보는 더욱 놀라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이미.... 그녀를 죽였소?] [아직 죽이지 않았습니다. 왕야께서 치유되기를 기다려 친히 자세히 심 문을 해서 배후에서 지시한 사람을 알아낼 계획입니다.] 위소보는 약간 안심이 되어 말했다. [그대가 나를 안내하시오. 나는 그 자객을 한 번 만나 봐야 되겠소. 진 짜 궁녀인지 아닌지 내가 보기만 하면 알 수 있소.] 하국상은 당황하여 말했다. [흠차대인께 번거로움을 끼쳐 드려서야 쓰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이 자객은 결코 공주님의 궁녀가 아닐 것입니다. 유언비어가 나도는데, 대인께서는 아랑곳하실 필요 없습니다.] [왕야께서 자객을 만나시어 중상을 입으셨소. 만약 어떤 변고가 생긴다 면 그 누구도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본인이 북경으로 돌아가 면 황상께서는 자객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을 것이오. 또 어떤 사람이 지시했느냐고 물을 것이오. 내가 친히 보지 않는다면 황상께서 하문을 하실 때 어떻게 대답한단 말이오?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야 한단 말이 오? 군주를 속이는 죄를 나는 감히 지을 수 없소. 하 총병, 그대는 그 책임을 질 용기가 있단 말이오?] 그가 황제를 들먹이고 나오자 하국상은 더이상 할말이 없어서 연신 대 답했다. [잘 알았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위소보는 얼굴 가득 불쾌한 빛을 띄우고 화난 어조로 다그쳤다. [하 총병,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꾸 머뭇거리는 거요? 그대는 무슨 수 작을 부리는 거요? 흠차대신인 나를 데리고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이 오? 그렇다면 좋소. 어디 해봅시다. 황상을 대신하는 흠차대신인 이 위 소보가 이대로 물러서는지 두고봅시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가 사로잡혀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어 다급 한 나머지 협박조로 나왔다. 황상을 들먹이는 것도 사양하지 않았다. 하국상은 급히 말했다. [소장이 어찌 흠차대인에게 수작을 부리겠습니까? 하지만....하지만 실 로 곤란한 점이 있어서 그럽니다.] [무슨 곤란한 점이 있다는 것이오?] [흠차대인께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우리 왕야께서는 아랫사람을 엄하게 다스리시는데 소장이 비록 그 어르신의 사위라곤 하지만 왕야께서는 소 장에 대해서는 더욱 엄하십니다. 그 어르신이 불공평하다는 소리를 들 을까 봐 염려하기 때문이죠.] [정말 사위 노릇 하기란 쉽지 않겠구려? 왕야의 왕비는 소문에 들으니 까 진원원(陳圓圓)이라고 하며 천하 제일의 미녀라는 소문이 들리더군 요. 우리 대청나라가 이 강산을 얻은 것은 진 왕비와 깊은 관계가 있 소. 그대의 장모님이 수화폐월(羞花閉月)의 미인이라면 그대의 아내 역 시 침어낙안(沈魚落雁)의 미모를 지녔을 것이오. 그런 미녀와 함께 꿀 처럼 달콤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대는 사위 노릇을 얼마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이오. 못생긴 마누라를 얻은 사람도 사위 노릇을 잘만 합디 다. 그대는 다만 장모님을 자주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면 되는 것이오. 흔히 장모는 사위를 보고 침을 삼킨다고 하지 않소? 내가 볼 때 그대의 장모님이 그토록 아름다우시니 그 말을 거꾸로 해야 될 것 같소. 사위 가 장모님을 바라볼 때 침을 삼킨다고 해야 할 것이오. 하하하!] 하국상은 겸연쩍어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은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 시정잡배와 다르지 않다. 큰 벼슬아치의 위엄은 전혀 없구나.) 그는 위소보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소장의 처는 진 왕비의 소생이 아니외다.] 위소보는 탄식하며 말했다. [그것 참 애석하군. 그대는 재수가 나빴소.] 위소보는 엄숙한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가서 자객을 심문해야 하는데 그대가 쓸데없는 변명을 늘어놓으 며 그대의 장인, 장모를 들추고 나오니 정말 이상하군.] 하극상은 갈수록 화가 났으나 겉으로는 공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흠차대신께서 자객을 심문하시면 더욱 잘된 일이죠. 흠차대신께서 한 마디 물어보시는 것이 우리들이 백 마디나 천 마디를 물어보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야께서....왕야께서....] [왕야가 어떻다는 거요? 왕야께서 내가 자객을 심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흠차대신께서는 오해하지 마십시오. 대인께서 자 객을 만나 그 여자의 내력을 알아보면 우리 왕야는 감격할 따름이고 결 코 막을 이유가 없지요. 소장이 당돌하게 한마디하겠으니 대인께서는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휴! 그대라는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우물쭈물하는 것이오? 전혀 사 내대장부다운 기개가 없군. 아무래도 아내의 침대 앞에 너무 많이 꿇어 앉아 있었기 때문일 거요. 빨리 말하시오.] 하극상은 속으로 욕을 했다. (너희 위가 십팔 대 조상들은 모두 짐승들이다.) 그는 속으로 욕을 한 후에 말했다. [그 자객이 만일 공주님의 궁녀라면 대인이 보자마자 바로 그녀를 데려 갈까 두렵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왕야께서 그 자객을 보려고 하실 때 소장은 자객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지요.] 위소보는 생각했다. (이 녀석은 정말 교활하다. 내가 자객을 데려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미 리 받아내려고 하는구나. 제기랄, 그 자객은 나의 다정한 마누라다. 내 어찌 너희들이 내 마누라를 못살게 굴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이냐?) [그대는 자객이 결코 공주의 궁녀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런데 왜 걱정이오?] [그것은 소장의 추측이지요.] [그대는 내가 그 자객을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이오?] [그 말씀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흠차대인께서는 잠시 대청에 편안히 앉아 계십시오. 소장이 왕야께 여쭤 보겠습니다. 그 후의 일은 왕야와 흠차대인 두 분이 결정할 일이지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는 장인에게 볼기짝을 얻어맞게 될까 봐 매우 겁을 내고 있구나.) 그는 흐흐, 웃으면서 말했다. [좋소. 가서 품하시오. 내 그대에게 말하는데 왕야께서 정신이 있든 없 든 간에 그대는 즉시 돌아와야 하겠소. 그대에게는 왕야의 목숨이 소중 하겠지만 우리들은 공주의 죽고 사는 문제가 더욱 소중하오. 공주 전하 께서는 그대들의 세자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기회만 있으면 자결하려 하 오.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니 나는 빨리 그 자객을 만나보고 즉 시 돌아가야 하오.] 그는 오삼계가 혼수상태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핑계로 하국상이 침대 옆에서 시간을 지체할까 걱정이었다. 하국상은 허리를 굽혔다. [결코 지체하지 않겠습니다.] 하국상은 안으로 들어가 한참 후에야 다시 나와 말했다. [소장은 흠차대인께서 초조하게 기다리실까 봐 재빨리 품하고 왕야의 유시를 받들 여유도 없이 그냥 달려나와 대인을 모시고 가 자객을 심문 하려는 것입니다. 흠차대인, 가시죠.]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이고 하국상을 따라 안채로 들어갔다. 몇 곳의 회 랑을 지나 화원에 이르니 화원에는 수십 명이나 되는 시종들과 위사들 이 손에 무기를 들고 순라를 도는데 경계가 매우 삼엄했다. 하국상은 그를 데리고 한 채의 커다란 가산 앞에 이르러 한 무관에게 한 대의 금 비영전(金批令箭)을 꺼내 보이고 말했다. [왕야의 유시를 받들어 흠차대신을 모시고 자객을 심문하러 왔네.] 그 무관은 영전을 살펴보더니 허리를 굽혔다. [흠차대인과 총병대인께서는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는 한켠으로 물러섰다. 하국상은 말했다. [소장이 안내하죠.] 그는 가산의 동굴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위소보는 그 무관을 따라 들어 갔는데 몇 걸음 가지 않아 한쪽에 커다란 철문이 있었다. 문 옆에는 두 명의 무사가 지키고 있었다. 원래 이 가산은 지하 감옥의 입구였다. 세 곳의 철문을 지났는데 갈수록 통로가 밑으로 향했다. 그들은 이윽고 한 칸의 조그만 석실 앞에 이르렀다. 석실 앞에는 굵은 철책이 세워져 있고 그 철책 안에는 한 소녀가 땅바 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직이 흐느끼고 있었 고 몇 개의 유등(油橙)이 벽에 걸려 석실 안을 누렇게 물들이고 있었 다. 위소보는 재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두 손으로 철책을 잡고 눈을 크게 뜨고 그 소녀를 살펴보았다. 하국상이 호통쳤다. [일어서라, 흠차대인께서 너에게 물으려 하신다.] 그 소녀는 고개를 쳐들었다. 등불빛 아래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위 소보와 그녀의 눈동자가 얽히자 두 사람은 놀라 아, 하고 소리를 질렀 다. 그 소녀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손과 발에 묶인 쇠사슬에서 챙그 랑, 챙그랑,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녀는 말했다. [어떻게....어떻게 그대가 이곳에 있죠?] 위소보는 자객이 바로 목왕부의 소군주 목검명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하국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녀를 여기 가두어 두었소?] [대인께서는 그 자객을 알고 계십니까? 그녀는....그녀는 정말 공주를 시중드는 궁녀입니까?] 하국상의 얼굴에 나타난 의아함은 위소보와 목검병의 얼굴에 떠오른 의 아함에 못지않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저 소저가....저 소저가 오....왕야를 지르려고 했던 그 자객이란 말 이오?] [그렇소. 이 여자는 대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감히 하극상의 난을 일으 키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도대체 누가 지시한 일인지 대인께서는 아무 쪼록 상세히 심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소보는 약간 마음을 놓았다. (모두들 오해를 하고 있었군. 오삼계를 찌르려고 했던 자객은 아가가 아니고 목씨 집안의 소군주였구나. 그녀의 부친이 오삼계에게 해침을 받아 죽었으니 그녀가 오삼계를 찔러 죽이고 부친의 복수를 하려고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하국상에게 물었다. [그녀 스스로 왕가아라고 말합디까? 공주의 궁녀라고 말합디까?] [우리가 그녀의 성명과 교사한 사람을 물었으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려 고 하지 않았소. 그러나 그녀가 궁녀 왕가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지 요. 정말 왕가아인지 아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인께서 알려 주십시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군주가 사로잡혔으니 나는 마땅히 방법을 강구해서 구출해야한다. 그녀 역시 나의 마누라이다. 남자로 태어나 어느 한 여자만 편애해서야 쓰겠는가?) [그녀는 물론 공주님을 모시는 궁녀요. 공주는 그녀를 매우 좋아하고 있소.] 그는 목검병에게 눈을 찡긋해 보이고 말했다. [너는 어인 일로 평서왕을 찌르려고 했느냐? 너는 삶에 염증을 느꼈느 냐, 아니면 누가 교사한 것이냐?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기 전 에 어서 빨리 실토해라!] 목검병은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오삼계 그 대매국노는 도적을 아비로 삼고 대명나라의 강산을 오랑캐 에게 바쳤어요. 한인이라면 누구나 그의 목숨을 빼앗고 싶어해요. 애석 하게도 나는 그 간적을 죽이지 못했군요!] 위소보는 짐짓 노성을 질렀다. [나이 어린 계집애가 이토록 무법천지로 날뛰다니! 너는 궁 안에 그토 록 오래 있었는데 그만한 예의도 배우지 못했단 말이냐? 감히 대역무도 한 말을 지껄이는데 너는 목을 잘리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