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휴가
2025.8.25.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입추가 지났는데도 늦게까지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연일 최고온도 35도를 웃돌고 있다.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가 온난화되었고, 불볕더위와 열대야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무더위가 절정을 이르는 7월 말과 8월 초가 여름 휴가시즌이었는데 그 휴가 시기도 바꿔야 할 것 같다.
예전에 휴가를 간다는 말 대신에 ‘바캉스’를 떠난다는 말을 많이 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마도 프랑스 사람들처럼 유명해변으로 떠나는 휴가를 상상하고 있었을 것 같다. 중·고등 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여름 휴가라는 단어도 아예 없었던 것 같다. 1980년대 즈음에 대중교통이 정비되고, 자가용 시대가 도래하고서야 휴가문화가 완전히 정착된 것 같다. 스무 살 무렵, 또래 친구들과 동해안으로 ‘바캉스 여행’을 떠났을 때는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아가씨들을 보는 순간 눈동자가 고정되어 버리는 경험도 했었다. 당시의 여름 휴가는 바닷가 해수욕장으로 가서 즐기고 잘 노는 것이 휴가라고 생각했었다.
자가용 시대가 되었고, 휴가를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자가용 차를 구입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두꺼운 여행안내 책자를 산 뒤 정독을 했다. 인터넷을 뒤져서 휴가지를 물색하면서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서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네 명의 식구들이 떠나는 여름 휴가는 항상 치밀한 준비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했다. 많은 곳을 다니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휴가지에서도 즐거웠던 좋은 추억도 있지만, 무더위에 고생했던 기억이 더 많다.
이십 여년 전 어느 해에 가족 여름 휴가를 경북 북부지방과 강원도 남부를 돌아서 동해안으로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문경과 예천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오후 늦게 무렵 강원도 태백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비스듬하게 왼쪽으로 휘어지는 4차선 고속국도 구간이었다. 100km 정도의 속도로 가고 있었던 것 같다. 잠깐 졸음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쉴 수 있는 쉼터나 공간이 있으면 쉬었다가 갈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왜 이러냐?”하고 소리쳤다. “깜빡 졸음, 번쩍 저승”이 실행되려는 순간이었다. 승용차가 우측의 시멘트벽을 부딪치기 직전이었다. 40대 나이에 저승사자가 날 데리러 온 것이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못 간다고 전하려고 했으나 시간이 없었다. 급하게 핸들을 돌렸다. 불과 0,001초 차이로 대형 충돌사고를 면했다. 그러나 급격한 핸들 조작으로 인하여 앞바퀴가 차체 밖으로 튀어나오면서 타이어 옆구리가 시멘트벽을 순간적으로 쓸어 버렸다. 앞 타이어가 펑크 나면서 엔진룸이 주저앉아 버렸다. 하부의 엔진룸이 아스팔트 바닥을 쓸고 가면서 엔진오일이 담긴 기름 탱크에 구멍이 나버렸다. 나는 백미러를 보면서 조심스레 차를 세웠다. 다행히 뒤따르던 차량이 없었고, 도로 가장자리에 차를 세울 수 있는 장소도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차에서 내려 상황을 살펴봤다. 도로 한가운데 약 십여 미터 이상 검은색 엔진오일로 선명하고 가느다란 실선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차량의 타이어가 펑크 나고 엔진오일이 흐른 것 말고는 차량의 겉모습은 깔끔했다. 차의 시동을 껐다. 그러나 터져버린 연료통에서 남아있는 검은색 엔진오일이 남김없이 도로 위로 줄 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주워 담을 수도 없고 당황스럽기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도로 바로 아래에 카센터가 보였다. 안전을 위하여 트렁크를 올리고, 가족들을 피신시켜 놓고 카센터로 가서 이야기하니 금방 견인을 해서 정비소로 견인해 주셨다. 카센터 사장님이 부품센터에 전화하더니 지금은 휴가 기간이라서 금방은 부품을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사장님이 렌터카 회사에 전화해 줘서 바로 대여 차량이 왔다. 3일간 사용하겠다고 차량을 빌려서 남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일차 목적지인 태백으로 향했다.
태백은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이라서 대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했다. 밤에는 에어컨을 켜두지 않아도 될 정도이고, 산책하기에 적당한 온도였다.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을 넘나들면서 계곡과 동굴을 체험하고, 고산지대의 야생화 체험도 했다. 빌린 자동차로 더 이상의 사고 없이 예정된 휴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빌린 차량으로 식구들과 준비해간 여행 물품들을 대구까지 이동시켰다. 그리고 다시 그 렌터카를 타고 수리한 차량이 있는 봉화군의 카센터까지 와서 차량을 반납했다. 차량은 깔끔하게 수리되어 있었다. 나는 수리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욕심내어 계획한 그해의 휴가는 펑크난 타이어(tire)로 인해 피곤한(tired) 휴가였다.
젊은 시절에 휴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피곤한 휴가를 보냈다. 최대한 많은 것을 보기 위해 무리하게 돌아다녔다. 휴가를 가면서 타이어의 옆구리를 찢고 왕복 4차선 도로에 피를 토하듯 엔진오일을 쏟아부은 뒤에야 진정한 휴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여름 휴가도 휴식이 필요했다. 특히 나무가 있는 숲으로 들어가는 휴식을 취하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휴가라는 한자어를 사용했던 우리 조상님들이 현명했던 것 같다. 인간은 나무와 나란히 서서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서로 주고받을 때 진정한 휴식이 있다는 것을 ‘休’ 글자를 보면서 알았다. 올해의 휴가는 ‘산림휴양 통합플랫폼’을 들락거리면서 어렵게 1박을 예약하고 갔었다. 첫날 저녁 무렵에 주변 산책을 나섰다. 초파리가 눈앞을 아른거렸지만, 계곡의 음이온, 피톤치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산책하러 나갔다. 산책로를 조금 올라간 어느 지점에는 야생화 단지도 있었고,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고 있는 커다란 참나무 옆에 서서 ‘참 휴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자연휴양림이 인기가 많아 예약이 어렵다 보니 내 마음대로 ‘휴(休)’ 하기도 쉽지는 않다. 그래도 휴가를 간다면,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는 것보다는 좋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신선한 공기 캔을 상품으로 파는 세상이 되었다. 눈 호강, 입 호강보다는 피톤치드와 음이온으로 가득한 신선한 공기로 허파를 호강시키는 것이 경제적이고 좋은 휴가가 되었다.
숲속을 산책하면 신선한 공기를 공짜로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그곳에서 보잘것없는 작은 풀꽃들을 만난다면 더 자세히, 더 오랫동안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그 풀꽃들이 예쁘게 보이고, 사랑스럽게 보인다면 그 휴가는 더없이 좋은 휴가가 될 것이다.
첫댓글 땀 흘린 뒤의 휴가는 꿀맛입니다. 꿀맛에는 누군가의 봉사와 노력이 필요하구요~
휴가는 즐거운 것입니다. 근래 산림 휴양지가 인기가 있습니다. 백수들은 휴가 절정기를 피해서 다니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여름이 길어서 휴갈를 많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들의 안전도 지키고
책임완수 하여 휴가를 보냈으니 정말 다행이었네요 ~~
휴가 중에 일어난 사고로 황당했겠어요 그래도 렌트카를 이용할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휴가를 외국행으로 많이 나가니 산림욕장은 더 조용한 휴가처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