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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 康兆.
#高麗史127卷-列傳40-叛逆1-康兆-001
○康兆穆宗時累官中樞使右常侍出爲西北面都巡檢使.
강조는 목종 때 여러 관직을 거쳐 중추사 우상시(中樞使右常侍)로 되었으며 외직으로 나가서 서북면 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로 되었다.
穆宗寢疾知金致陽謀變遣皇甫兪義往迎顯宗又知殿中監李周楨附致陽權授西北面都巡檢副使卽日發遣仍徵兆入衛
목종이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김치양의 반역 음모를 알고 황보유의(皇甫兪義)를 파견하여 현종(顯宗)을 맞아 오게 하고 또 전중감(殿中監) 이주정(李周楨)이 김치양에게 아부하는 것을 알고 임시로 그를 서북면 도순검 부사(西北面都巡檢副使)로 임명하여 보내면서 즉일로 강조를 불러들여 숙위하도록 하게 하였다.
兆聞命行至洞州龍川驛
그래서 강조가 명령을 듣고 출발해서 동주 용천역(洞州龍川驛)에 도착했다.
內史主書魏從正安北都護掌書記崔昌曾坐事被黜深怨朝廷常欲構亂二人俱謁兆紿言:
이때 어떤 사건에 걸려 좌천되어 조정을 원망하면서 항상 반란을 꾸미려 하고 있던 내사 주서(內史主書) 위종정(魏從正)과 안북 도호 장서기(安北都護掌書記) 최창(崔昌) 두 사람이 함께 강조를 찾아와서 거짓말을 하기를
"主上疾篤命在頃刻太后與致陽謀奪社稷以公在外*(??){手}握重兵恐或不從矯命徵召. 足下當速還本道大擧義兵保國全身時不可失."
“임금의 병세는 위독해서 목숨이 경각에 있다. 그리고 태후는 김치양과 함께 사직(社稷)을 탈취하려고 음모하고 있는바 당신이 외방에서 중병(重兵)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혹시 복종치 않을까 염려하여 왕의 명령이라고 날조하여 소환한 것이다. 속히 본도로 돌아가서 크게 의병(義兵)을 일으켜서 나라를 보위하고 일신을 보존하여야 할 것이다. 기회를 잃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兆深然之以爲王已薨朝廷悉被致陽 誤便歸本營.
강조가 그 말을 옳게 여겨 왕이 이미 죽고 조정은 모조리 김치양에 의하여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곧 본영(本營)으로 돌아갔다.
太后忌兆來遣內臣守岊嶺使遏行人
한편 태후는 강조가 오는 것을 꺼리어 내신(內臣)을 파견하여 절령을 수비하고 행인들을 차단케 하였다.
兆父患之爲書納竹杖中令奴剃髮爲僧詭言妙香山僧報兆云:
강조의 부친이 그것을 근심하고 편지를 써서 한 종의 머리털을 깎아 묘향산(妙香山) 중으로 가장하게 한 후 죽장(竹杖) 속에 편지를 넣어 강조에게 전달하게 하였는데 그 편지에 이르기를
"王已賓天姦兇用事可擧兵來以靖國難!"
“왕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간신이 국정을 잡고 있으니 병사를 거느리고 와서 국난(國難)을 안정시켜라!”라고 하였다.
奴晝夜急走至兆處氣竭而斃.
그 종이 밤낮으로 길을 재촉하여 기진해서 뛰어갔으므로 강조 있는 곳에 도착하자 죽었다.
兆探得杖書愈信王薨
강조가 죽장 속의 편지를 찾아내어 보고는 더욱 왕이 죽은 것으로 믿었다.
遂與副使吏部侍郞李鉉雲等領甲卒五千至平州知王未薨兆喪氣垂頭良久
드디어 부사(副使)인 이부시랑(吏部侍郞) 이현운(李鉉雲) 등과 함께 무장 병력 5천 명을 영솔하고 평주(平州)에 와서야 왕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의기가 저상되어 오랫동안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諸將曰: "業已來矣不可止?" 兆曰: "然" 遂決意廢立
이때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이미 왔으니 그칠 수 없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강조도 “그렇다”하면서 드디어 왕의 폐립(廢立)을 결심하였다.
不知王已迎顯宗乃遣分司監察金應仁率兵往迎
그는 왕이 벌써 현종(顯宗)을 맞으려고 사람을 보낸 것을 모르고 분사 감찰(分司監察) 김응인(金應仁)에게 병정을 거느리고 가서 맞아 오게 하였다.
先奏王曰: "上疾彌留國本未定姦黨窺覦又偏信庾行簡等讒諛賞罰不明致此危亂今欲定分以係人心除惡以快衆憤已迎大良君詣闕恐聖情驚動請出御龍興歸法寺卽掃盪姦黨然後迎入." 王曰: "已知所奏."
또 왕에게 먼저 통고하기를 “상감의 병환은 중한데 후계할 태자를 아직 세우지 않았으니 악당들이 왕위를 엿보고 있는데 유행간(庾行簡) 등의 아첨과 참소만을 곧이 듣고 상벌이 공정하지 못하여 이런 위험한 혼란을 초래하였습니다. 이제 명분(名分)을 바로잡음으로써 민심을 수습하고 악당을 제거하여 뭇사람의 분노를 풀어 주기 위하여 이미 대량군을 맞이하였습니다. 궁중에 들어갈 때 상감을 경동케 할 염려가 있으니 용흥(龍興) 귀법사(歸法寺)로 나가 있으면 즉시 악당들을 숙청한 후 맞아들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말하기를 “이미 그 말하는 바를 알고 있다”라고 하였다.
#高麗史127卷-列傳40-叛逆1-康兆-002
是日應仁與兪義到神穴寺奉顯宗還
이날 김응인과 황보유의가 신혈사(神穴寺)에 도착하여 현종을 데리고 돌아왔다.
翼日鉉雲率兵入迎秋門大譟穆宗驚懼執行簡送兆所
다음날 이현운이 군사를 데리고 영추문(迎秋門)으로 들어가면서 일제히 떠들어 대니 목종이 놀라고 겁이 나서 유행간을 찾아서 강조에게로 보냈다.
給事中卓思政郞中河拱辰皆奔于兆.
급사중(給事中) 탁사정(卓思政)과 낭중 하공진(河拱辰)은 모두 강조에게로 달아났다.
兆至大初門據胡床崔沆出自省兆起揖
강조는 대초문(大抄門)까지 와서 호상(胡床)에 걸터앉았는데 최항(崔沆)이 성(省)에서 나오니 강조가 일어나 읍(揖)하였다.
沆曰 : "古有如此事乎?" 兆不應於是兵士
최항이 말하기를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는가?”라고 했으나 강조는 응대하지 않았다.
入穆宗知不免與太后仰天號泣率宮人小竪及蔡忠順劉忠正等出御法王寺.
이때에 병사들이 마구 밀고 들어가니 목종은 폐위를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태후와 함께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면서 궁인, 내수들과 채충순(蔡忠順), 유충정(劉忠正) 등을 데리고 법왕사(法王寺)로 나갔다.
兆坐乾德殿御槢下軍士呼萬歲兆驚起跪曰:
강조가 건덕전(乾德殿)에서 왕이 앉는 탑(榻) 아래에 앉아 있으니 군사들이 “만세”를 불렀으므로 강조는 놀라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말하기를
"嗣君未至是何聲耶?"
“후계 임금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라고 하였다.
俄而兪義等奉顯宗而至遂卽位於延寵殿.
그 후 곧 황보유의 등이 현종을 받들고 와서 연총전(延寵殿)에서 즉위하게 하였다.
兆廢穆宗爲讓國公
강조는 목종을 폐위시키고 양국공(讓國公)으로 되었다.
使閤門通事舍人傅巖等守之遣兵殺致陽父子及行簡等七人
합문 통사 사인(閤門通事舍人) 부암(傅巖) 등을 시켜 궁성을 경비하게 하였고 병사를 파견하여 김치양 부자(父子)와 유행간 등 7명을 죽였다.
流其黨及太后親屬周禎等三十餘人于海島.
그리고 그 도당과 태후의 친속 이주정(李周楨) 등 30여 명을 섬(島)으로 귀양 보냈다.
穆宗使沆請馬於兆送一匹
목종이 최항을 시켜서 강조에게 말(馬)을 청구하니 강조가 말 한 필을 보냈다.
又於人家取一匹穆宗及太后乘之出自宣仁門向忠州行至積城縣
그래서 민가에서 또 한 필을 얻어서 목종과 태후가 타고 선인문(宣仁門)으로 나가 충주(忠州)로 향하여 적성현(積城縣)까지 갔다.
兆遣尙藥直長金光甫進毒穆宗不肯飮
그때 강조가 파견한 상약 직장(尙藥直長) 김광보(金光甫)가 목종에게 독약을 주었으나 거절하고 마시지 않았다.
光甫謂隨從中禁安覇等曰: "兆言: '若不能進毒可令中禁軍士行大事報以自刃.' 不爾吾與若等俱族矣."
그래서 김광보가 수행원 중금(中禁) 안패(安覇) 등에게 말하기를 “‘만약 독약을 먹일 수 없거든 중금(中禁) 군사(軍士)를 시켜 큰 일을 수행하여 놓고 자결했다고 보고하라!’고 강조는 말했으니 그렇게 안 하면 나와 너희들은 모두 멸족(滅族) 당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夜覇等弑之以自刎聞取門扇爲棺權厝于館
그날 밤에 안패 등이 왕을 죽이고 자살했다고 보고하고 문선(門扇)을 관(棺)으로 삼아 시체를 우선 관(館)에 두었다.
兆使人以縣倉米作飯祭之.
강조는 사람을 시켜 겨우 현(縣) 창고 쌀로 밥을 지어서 제사 지내게 하였다.
顯宗以兆爲中臺使鉉雲爲副使尋授兆吏部尙書參知政事.
현종이 강조를 중대사(中臺使)로, 이현운을 그 부사(副使)로 임명하였으며 그 후 얼마 안 가서 강조에게 이부 상서 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 벼슬을 주었다.
#高麗史127卷-列傳40-叛逆1-康兆-003
元年五月契丹主以兆弑君欲發兵問罪
원년 5월에 거란(契丹)의 임금이 강조가 임금을 죽였다는 이유로 군대를 보내 문죄(問罪)하려 하였다.
王聞之以兆爲行營都統使鉉雲及兵部侍郞張延祐副之起居舍人郭元侍御史尹徵古都官員外郞盧 爲判官右拾遺乘里仁西京掌書記崔冲並爲修製官檢校尙書右僕射上將軍安紹光爲行營都兵馬使御史中丞盧 副之兵部郞中金爵賢及皇甫兪義爲判官少府監崔賢敏爲左軍兵馬使少府少監崔輔成副之興威衛錄事高幹*大樂丞金在鎔爲判官刑部侍郞李昉爲右軍兵馬使刑部郞中金丁夢副之內謁者柳莊爲判官禮賓卿朴忠淑爲中軍兵馬使禮賓少卿李良弼副之尙書都事高延慶司宰注簿庾伯符爲判官刑部尙書崔士威爲統軍使戶部侍郞宋隣副之左司員外郞皇甫申試兵部員外郞元穎爲判官率兵三十萬軍于通州以備之.
왕이 그 소문을 듣고 강조를 행영 도통사(行營都統使)로, 이현운과 병부시랑 장연우(張延祐)를 행영 도통 부사(副使)로, 기거사인(起居舍人) 곽원시(郭元侍), 어사(御史) 윤징고(尹徵古)와 도관 원외랑(都官員外郞) 노전을 판관(判官)으로, 우습유(右拾遺) 승리인(承里仁)과 서경 장서기(西京掌書記) 최충병을 수제관(修製官)으로, 검교 상서 우복야 상장군(檢校尙書右僕射上將軍) 안소광을 행영 도병마사(行營都兵馬使)로, 어사 중승(御史中丞) 노정을 그 부사(副使)로, 병부 낭중(兵部郞中) 김작현(金爵賢)과 황보유의(皇甫兪義)를 판관(判官)으로, 소부감(少府監) 최현민(崔賢敏)을 좌군 병마사(左軍兵馬使)로, 소부소감(少府少監) 최보성(崔輔成)을 그 부사로, 흥위위 녹사(興威衛錄事) 고간(高幹)과 대악승(大樂丞) 김재용(金在鎔)을 그 판관으로, 형부 시랑(刑部侍郞) 이방(李昉)을 우군 병마사(右軍兵馬使)로, 형부 낭중(刑部郞中) 김정몽(金丁夢)을 그 부사로, 내알자(內謁者) 유장(柳莊)을 그 판관으로, 예빈경(禮賓卿) 박충숙(朴忠淑)을 중군 병마사(中軍兵馬使)로, 예빈소경(禮賓少卿) 이양필(李良弼)을 그 부사로, 상서 도사(尙書都事) 고연경(高延慶)과, 사재주부(司宰注簿) 유백부(庾伯符)를 그 판관으로, 형부상서(刑部尙書), 최사위(崔士威)를 통군사(統軍使)로, 호부 시랑(戶部侍郞) 송린(宋隣)을 그 부사로, 좌사 원외랑(左司員外郞) 황보신시(皇甫申試)와 병부 원외랑(兵部員外郞) 원영(元穎)을 그 판관으로 임명하여 30만 병력을 통솔하고 통주(通州)에서 방어케 하였다.
#高麗史127卷-列傳40-叛逆1-康兆-004
十一月契丹主自將步騎四十萬號義軍天兵渡鴨綠江圍興化鎭
거란의 군주가 친히 기병과 보병 40만을 거느리고 의군천병(義軍天兵)이라 하면서 압록강을 건너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하였다.
兆引兵出通州城南分軍爲三隔水而陣一營于州西據三水之會兆居其中一營于近州之山一附城
강조가 병령을 이동시켜 통주 성(通州城) 남녘으로 나가서 전군을 삼분(三分)해서 강을 격해 진을 쳤는바 하나는 통주 서방에 집결하여 삼수(三水)의 요소(要所)에 거점(據点)을 두고 강조가 그곳에 있었으며 또 하나는 통주 근방 산에 진 치고 마지막 하나는 통주 성을 의지하여 배치하였다.
而營兆以劒車排陣契丹兵入則劒車合攻之無不摧靡契丹兵屢却兆遂有輕敵之心與人彈.
그리고 검차(劒車)를 배열했다가 거란병이 들어오면 검차들이 일제히 공격하니 적병은 걸음마다 좌절되었다. 이렇게 거란병을 누차 물리치니 강조에게는 드디어 적을 경시하는 마음이 생겨 사람을 데리고 바둑을 두었다.
契丹先鋒耶律盆奴率詳穩耶律敵魯擊破三水砦鎭主告契丹兵至兆不信曰: "如口中之食少則不可宜使多入!"
거란의 선봉 야율분노(耶律盆奴)가 상온(詳穩) 야율적로(耶律敵魯)를 데리고 삼수의 보루를 공격하였으므로 그 진주(鎭主)가 거란병의 내습을 급보했으나 강조는 곧이 듣지 않고 말하기를 “입안의 음식과 같다. 적으면 안 되니 많이 들어오게 하라!”라고 하였다.
再告曰: "契丹兵已多入." 兆驚起曰: "信乎?"
이어 또 급보하기를 “거란병이 이미 많이 들어왔다”라고 하니 강조는 놀라서 “정말인가?”
라고 하면서 일어섰는데
恍惚若見穆宗立于其後叱之曰:
이때 강조는 정신이 황홀(恍惚)해져 목종이 눈에 어리더니 이어 후면에서 목종이
"汝奴休矣天伐詎可逃耶?" 兆卽脫鍪牟長跪曰: "死罪死罪."
“네 놈도 그만이다. 천벌을 면할 수 있느냐?”고 꾸짖는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그만 투구를 벗고 펄썩 꿇어앉았다. 그리고는“죽을 죄를 졌습니다”
言未訖契丹兵已至縛兆裹以氈載之而去
고 하였는데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란병이 닥쳐 와서 강조를 결박하여 전(氈)으로 싸서 메고 갔다.
鉉雲亦被執.
이현운도 역시 거란병에 잡혀 포로가 되었다.
契丹主解兆縛問曰: "汝爲我臣乎?" 對曰:
거란의 군주(君主)가 강조의 포박을 풀어 주고 묻기를 “나의 신하가 되겠는가?”라고 하니 강조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我是高麗人何更爲汝臣乎?" 再問對如初
“나는 고려 사람인데 어찌 너의 신하로 고쳐 될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또다시 물어도 그 대답이 여전하였다.
又剮而問對亦如初
또 칼로 살을 베어 내면서 물어도 대답은 역시 처음과 같았다.
問鉉雲對曰:
그런데 이현운에게 물으니 이현운은 대답하여 이르기를
"兩眼已瞻新日月 一心何憶舊山川." 兆怒蹴鉉雲曰:
“두 눈으로 이미 새 일월을 보았거니 어찌 한 마음으로 옛산천만을 생각하랴! (兩眼已瞻新日月, 一心何憶舊山川)”라고 하였으므로 강조가 노하여 발길로 이현운을 걷어 차면서
"汝是高麗人何有此言?" 契丹遂誅兆.
“너는 고려 사람인데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가?”라고 하였다. 거란의 군주는 드디어 강조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