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과 어머니
고영옥
해남반도를 향해 남쪽지방을 달리는데 잘 가꾸어진 감자밭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 장마가 올 무렵에 감자 꽃이 피는 줄 알았는데 이곳 남도에는 벌써 여기저기 감자 꽃이 보인다. 화들짝 반가운 마음에 감자 꽃 곁으로 달려갔다. 소박한 꽃잎에 입맞춤이라도 하고 싶다.
십 수 년 전 충주를 지나는 차 속에서 그곳이 고향이신 지인이 충주의 시인 권태응님의 감자 꽃 이라는 동시를 자랑스럽게 들려주셨다.
감자 꽃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이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나는 시에 매료되어 중얼 중얼 몇 줄 안 되는 그 시를 단박에 외워 버렸다.
문헌에서 그 시를 찾아보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시대적 배경까지 보게 되었다. 요약해 보면 “시인은 흔히 볼 수 있는 감자 꽃에서 줄기차고 끈질긴 민족혼을 발견했다. 시는 아무리 일제가 창씨개명을 요할지라도 우리는 어디까지나 한민족이다.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이고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일 뿐이다. 존재의 정체성만은 결코 변할 수가 없다 는 뜻을 저변에 깔고 있다."
그렇구나! 깊은 감동이 밀려온다. 일제 강점기에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민족의 얼이 짧은 시를 통하여 전달되어 온다. 민족의 독립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그 시대의 공통분모이었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시대적 과제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를 일깨우고 생각하게 한다.
그여름 친정집에 갔더니 아버지 어머니가 감자를 캐고 계셨다. 나도 같이 감자를 캤다. 여인네 속살처럼 뽀얀 감자가 참으로 소담스러웠다. 그런데 어떤 포기에 자주 감자가 댕글 댕글 달려있는것이다. 얼른 다 시들은 꽃잎을 살펴보니 자주꽃이었다. "엄마 자주 꽃 핀건 자주 감자네요!" 나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럼 자주꽃이 피었는데 하얀 감자가 달릴줄 알았어?" 당연한걸 왜그리 호들갑이냐는 듯이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엄마! 지금 나하고 엄마가 시를 읊고 있는거 알어." 어리둥절해 하는 어머니를 가운데 두고 아버지와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어머니도 뒤늦게 따라 웃으셨다. 맞아,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 그 자체가 시였어! 그때부터 나는 소박하고 정겨운 감자 꽃 이라는 동시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해 내는 진솔한 감자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흔히 못생긴 꽃이 호박꽃이요. 못 생긴걸 보고 감자 같이 생겼다 하는데, 그 못생김의 대명사인 감자는 쌀, 밀,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작물로 꼽힌다. 감자의 재배는 7000여 년 전 남미 안데스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되며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의 감자 흉작으로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하자 아일랜드 사람들이 신대륙 미국으로 대거 옮겨가는 집단이주의 계기가 될 정도로 사람들의 역사와도 관련 깊다고 한다. 한반도에는 조선 순조 때인 19세기 초반에 전달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긴 배고픈 농촌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는 구황식품(救荒食品)이었다고 한다. 요즈음은 소화가 잘 되며 각가지 영양분이 풍부한 감자의 재발견으로 그를 원료로 한 영양식품, 기호식품들이 줄을 잇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감자 꽃을 보면 땅 가까이 귀를 기울여 보고 싶어진다. 그러면 마치 땅속에서 감자의 알갱이들이 토실토실 살찌고 영그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땅속에서 영그는 덩이줄기 식물이 감자 말고도 고구마, 마늘 등 150종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줄줄이 동글동글 영글기로 치면 역시 감자만한 게 있겠는가? 지상의 열매들처럼 익어가는 과정이 보고 싶은데 다 익을 때까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으니, 마치 아이를 가진 엄마의 배에 귀를 대고, 그 생명의 숨소리를 듣고 싶은 심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꽃들은 꽃을 피워 그 아름다움을 과시할 뿐 아니라 그 식물의 자양분을 모아 열매를 맺고, 결실을 자랑하지만, 감자 꽃은 꽃에 영광에 머물지 않고 모든 영양분을 밑으로, 밑으로 보내어 알 감자를 키운다. 나는 내향성 체질로 둥글게 익어가는 감자의 성숙을 원만(圓滿)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만" 그러고 보니 내 어머니를 위해 만든 단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을 따르겠어요.”라는 꽃말도 어쩌면 그리도 어머니를 닮았는지! 어머니와 함께 구수한 감자를 폭삭하게 익혀 먹으며 다시 한번 시를 읊어보고 싶어진다.
첫댓글 교수님.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은 들지만 꼭 집어내지를 못해 그냥 올립니다. 많은 가르침 바랍니다. 여기까지도 감사합니다.
감자꽃이 피었음에 외면은 보았습니다. 이제 땅속에 있는 감자가 진짜 자주감자, 하얀감자인가를 직접 캐 보아야 그 문장맛이 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情>이 담겨질까 ? 조금 더 시간을 두면서 고민을 해 보기로 해요.
교수님 말씀에 따라 수정해보니 제가 보기에도 정감이 좀 생긴것 갔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권태옹이 아니고 권태응입니다. 제 아들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때 이 시를 깜찍하게 잘 외우길래 신기하고 기특하다고 칭찬했더니 무지 무지 쉽고 재미있는 시라고 자랑을 하더라구요. 저는 그 때 이 시를 외우려고 하는데 쉬운 것 같은데 잘 외워지지가 않아서 아들에게 창피를 당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맛있는 감자 먹을 때가 오는군요. 감자밭 감자논이 눈 앞에 보입니다.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아유저런 감사합니다. 제가 매사에 서툴 답니다. 작년에는 중요한 대회에서 "대화역을 태화역"이라 오타를처서 순위가 밀려난 적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립니다. 얼른 수정했습니다.
좋은 집이 뱃고동 소리 글 쓰신 선생님 이신가요? 제가 아직 새댁인데 기억력이 좋지 않아요. 미안합니다. 지적하지 않을려고 하는데 다른 선생님들께서 그렇게 기억 할까봐서 바로 잡는 의미이니 서운해 하지 마세요.
아아~ 천만에 감사할 다름이지요. 뱃고동소리 맞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새댁이 어디에서 비롯된 말인지 설핏 읽은것 갔습니다. 타인을 유쾌하고 즐겁게 만들어 주시는 군요.
민병기 선생님이 저를 기분 좋게 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설핏" 보다는 얼핏이든지 언뜻이 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국어 사전은 아직 안 찾아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까 자전거 타고 교회 가다 생각이 난 건데요. 제목을 "시와 엄마와 나" 라고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자꽃 핀 밭을 보고 감자꽃 시가 생각나고 엄마와 아버지와 감자 캐던 어린시절 대화까지 생각이 나셨잖아요. 제 생각에 내용과 제목이 딱 어울리는데요.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된 지금도 만나면 "엄마"라고 부릅니다. 그게 더 정이 가니까요. 하지만 제목으로 엄마가 좀 억지인것 같아서 어머니로 바꾸려고 컴을 열었습니다. 선생님의 조언을 참고하여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선생님은 열린 마음이라서 좋습니다. 저 같으면 꽁 했을텐데요. 고맙습니다.
감자하면 생각나네요. 시고모님은 80세가 넘으시도록 저희집에 오시면 " 난 네가 쪄주는 감자가 제일 맛있다." 미운맘보다는 시장으로 달려가 분나는감자 사다가 쪄드리던 생각이 나네요.( 자주감자는 아린맛이 난다는생각이) 고인이 되신 시고모님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감사드려요^-^*
다시 수정을 하셨군요. 감상 잘하고 갑니다.
가장 쉽게 외운 시가 바로 감자꽃이 아닐까 싶습니다....ㅎㅎ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