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웨슬리 알미니안)에 대한 오해
1. 자기를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죄인
웨슬레가 인간의 죄를 심각히 인지한 점에서 그는 종교개혁자와 맥락을 같이한다. 웨슬레에 의하면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생명을 상실했고 영적인 생명의 관계를 상실했다.
웨슬레는 인간의 죄를 강조하는 면에서 어느 학파 못지않게 강하다. 그는 말하기를, "이것이 이방종교와 기독교를 구분하는 첫 근거(the first ground)라고 한다. 그리고 이 진리는 "은혜를 받아 영안(grace healed eyes)이 열린 사람에만 알려진 진리요, 구원 받지 못한 자는 알 수 없는 진리로서, 이방인들은 자기의 부패를 깨닫지 못한다" 고 했다. 이것이 웨슬레다.
그러기에 웨슬레는''오직 은총(sola gratia)''을 주장하는 정통 신학자이다. 즉 장로교와 다르지 않다. 일부에서 웨슬레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한다(웨슬레는 결코 구원론에서 자유의지를 주장하지 않는다) 하여 그를 행위 구원론자라고 하는데 이는 웨슬레를 올바로 이해 못한 데서 나오는 잘못된 주장이다.
믿음을 행위로 보고 하나님의 구원을 인간이 자유의지로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음을 거부하면 구원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자는 웨슬레가 아니고 펠라기우스(Pelagianism)다. 펠라기우스주의는 이단이다.
2. 웨슬레는 그 당시의 칼빈주의자들과 어떻게 다른가?
웨슬레는 그의 동역자들의 그와 같은 질문에 답하면서, 죄를 강조하는 면에서는 칼빈주의의 끝에 (very edge of Calvinism) 이르렀다고 했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은총을 어떻게 역사 하시느냐(how to operate)에서 머리칼 하나의 차이(a hair''s breadth difference)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여기에 우리는 웨슬레가 개진한 은총관의 특징과 그 선교학적 공헌을 발견하게 된다.
3. 선행하는 하나님의 은총
그러면 웨슬레는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를 어떻게 보았는가? “하나님의 온전한 가르침(the whole council of God)”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과의 관련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이런 출발점에서 웨슬레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값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듣는 자의 호응(회개와 믿음)을 호소하곤 하였다. 웨슬레의 인간론은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어서 언급되어야 하는 실존적인 상황(existential reference)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해서 웨슬레는 인간의 죄 문제를 구속론적 구조(soteriological setting)에서 본 것이다.
웨슬레에 의하면 인간은 이미 은혜의 상태, 즉 선행적 은총의 역사아래 있다. 타락한 인간은 이미 은혜의 계약(a covenant of grace)아래 살고 있다. 웨슬레에 의하면 인간은 "선행적 은총에 의해서 이미 원죄의 죄책이 제거되었다."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원죄의 죄책은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제거되었으며, 모든 사람에게는 초자연적으로 약간의 선행적 은총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웨슬레가 말하는 인간의 복음에 대한 호응(곧 선행적 은총)은 완전히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 아래서 이해된 것이다.
웨슬레가 인간의 책임을 말하는 근거가 결코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적 인본주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서 곧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에 기인한 것이다.
웨슬레에 의하면, 이 은총은 선행적일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은총관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전하는 전도로 연결된다. 또한 선교에 있어서 교회의 책임을 올바르게 찾게 해준다. 즉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에 근거하여 낙관적인 소망을 갖는 동시에 교회가 선교하여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웨슬레 신학의 핵심 중에서 발취-
위의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점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탈레반 반군에게 납치 되었습니다. 반군은 인질의 몸값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이 때 인질들이 자유의지로 살아날 방도는 전혀 없고 우리 정부에서 탈레반 지도자와 협상을 벌려 몸값을 지불하고 구해오는 수 밖에 없다는 데는 칼빈과 웨슬레가 일치합니다. 만약 이 때 인질들이 어떤 행동을 취해서 풀려날 수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비행장까지 와서 대기하고 있는 KAL기에 탑승하면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자유의지론이고 펠라기우스 이단입니다.
특히 능동적인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자는 완전한 행위 구원론 자입니다.
웨슬레는 우리 정부에서 몸값을 지불하고 인질을 인솔해서 귀국하려는데, 구출된 인질이 비행기에 탑승하고 않는 것은 인질로 있다가 풀려난 사람들의 의사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정부와의 협상으로 자유의 길이 열렸는데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비행장까지 갈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정부에서는 협상만 해서 자유의 길을 열어 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들을 인솔해서 비행기에 탑승하게 하는 인도자(전도자)를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풀려난 인질들이 인솔자의 말을 믿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 곳에서 살겠다고 하면 어쩔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선행적 은총)이 있기 때문에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르도록 설득하는 것이 선교라고 합니다. 따라서 비싼 몸값(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지불한 대한민국 국민이 다 귀국(구원)하도록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칼빈의 주장은 풀려난 인질들의 의사에 관계없이 귀국하기 싫다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모두 강제로(불가항력적인 은총으로) 비행기에 태워서 귀국(구원)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구원 받는데 자유의지로 믿어서 받는다는 주장은 웨슬레 알미니안(감리교) 아닙니다. 특히 구원에는 인간의 능동적인 자유의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자는 이단입니다. [선행적 은총]은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는 개념이 아니고, 복음을 알아 듣는 능력을 말합니다.
따라서 모든 개신교(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교회......)는
1)오직 믿음 2) 오직 은총 3) 오직 성경
의 삼대강령에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중 한 항목만 동의하지 않아도 이단입니다.
원로 Essay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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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원문글이 다소 조악해서 문장을 조금씩 다듬어 옮기면서 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비록 교회역사의 이처럼 치열한 논쟁이란 바늘끝을 다투는듯한 쟁점을 통해 정통신앙을 수호하고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지켜온 공헌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비물질인 인간의 영혼에 벌어지는
바람같은 성령의 역사를 어쩌자고 이렇게 지나친 조직화와 세부적 도식을 만들어 규정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인체를 해부하듯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영혼이고 성령인데 머리카락 한 터럭만 달라도
이단이 될 듯한 아찔한 벼랑끝과 같달까?
알미니안을 이단으로 정죄한 도르트 회의가 다 무슨 소용인가. 지금 감리교는 웨슬레를 거쳐 단단한 개혁주의 신앙의 한 교파로 인정받고 있는 것을 말이다. 사실 칼빈은 웨슬레를 또 웨슬레는 칼빈을 통해 상호 보완하면서 한걸음씩 융화되었고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을 거쳐오지 않았나. 극단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또 종교적 독단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과정임을 믿는다.
하나님은 자석입니다 자석이 바다 모래사장을 훝으며 지나 갑니다 그순간 모래도 붙고 쇠붙이도 붙어 자석에 연합 됩니다 그런데 때가 되어 자석을 흔듭니다 그러니 확연히 드러나고 나타 납니다 모래는 떨어지고 쇠는 붙어 있습니다 모래는 붙어있고 싶어도 떨어지고 쇠는 당연히 붙지만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나무와 자석은 그본질이 다릅니다 예인데 어떤지요
자석과 만날 수 있는 성질만 달라붙고 불순물은 떨어져 나가게 된다는 아주 좋은 예시입니다^0^
영적 본질에 꼭 맞는 무언가를 정답처럼 제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우리는 더욱 자신의 주관적 확신에 매몰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실천하면서 절차탁마 하는 가운데
더 높고 아름다운 계시와 지혜로 채움받게 될 줄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제이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