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敎臣의 生涯
1901년 4월 18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한학(漢學)을 공부하다 함흥보통학교를 거쳐 1919년 함흥농업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입학했으며,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가르침 아래 기독교에 入信하면서 진정한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이 조국을 구하는 길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1922년 도쿄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學敎)에 입학했으며, 1927년 졸업과 더불어 귀국하여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양정고등보통학교, 경기중학교, 송도고등보통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1927년부터 월간지 "성서조선(聖書朝鮮)"의 간행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하지만 1942년 3월호(제158호)에 실린 권두언 "조와(弔蛙)"가 조선의 민족혼을 찬양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면서 성서조선은 폐간 되고, 신앙 동지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성서조선 사건"이다.
출옥 후에는 흥남의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에서 5천 여 조선인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진력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그토록 바라던 광복을 불과 넉 달 앞두고 1945년 4월 25일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