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네멋대로 해라."를 본다는 것은
"네멋대로 해라."의 전편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이슈...
"마음을 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일이다.
순진명쾌한 부잣집 막내딸 경이
친구의 죽음을 몰고온 소매치기 전과2범 고복수를 사랑하게 되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보는 이들이 단 한번도 의문과 우려를 품지 않은 것은 바로
경의 시선을 빌어 세상에 있을수 없을 것 같은
복수의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을 보는 것"에 관해서라면
월트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서 이창동의 "오아시스"까지
수없이 변주되어왔던 소재이니
"네멋"을 관통하는 그 단 하나의 이슈라는 것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다만, 각각의 변주들이 사용하는 음계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감성의 순도가 달라질 뿐이다.
"마음을 보는 것"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미녀와 야수"가 순수한 의미의 판타지라면
"오아시스"는 우리가 두 다리를 딛고 서있는 현실이다.
"미녀와 야수"가 장조의 행복감과 평화로움이라면
"오아시스"는 단조의 우울함과 껄끄러움이다.
왜 그럴까?
음계를 결정하는 것은 작가의 세상에 대한 시선이자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이 비집고 들어온 공간의 크기이다.
"오아시스"의 "마음보기"가 아름답지만 부담스러운 것은
그 안에서 팍팍한 현실이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타지와 현실을 양끝으로 하는 일직선상에서
"네멋대로 해라."는 어디쯤 자리잡아야 할까?
그 중간 어디쯤이라는 것은 틀림없을테지만 "네멋"에 대한 감상이
다양한 만큼 정확한(?) 좌표를 찍는 일도 각자의 몫일테다.
사정이 그러한 관계로 난 나의 좌표를 찍어보려고 한다.
(좌표를 찍는 동안 일부 "네멋"폐인들로부터 돌맞을 개연성이
농후한 내용이 드러날 수도 있겠으나 언급했듯이
나만의 좌표를 찍는 일이니 그간 이어온 "내멋대로"의 곤조를
끝까지 이어가고자 한다.)
"현실"이 차지하는 공간이 커질수록 음계는 단조로 수렴한다.
여기서의 "현실"이란 환경이나 처지의 의미가 아닌
대표적 갈등유발인자, 즉 "보편성으로 위장된 주류의 시선"을 말한다.
"오아시스"의 종두와 공주(참 역설적이기도 하다.)의 사랑이야기가
아름답지만 껄끄럽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내가 "보편성으로 위장된 주류의 시선"에 물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순수한 의미의 "마음을 본다는 것"의 의도가 상처를 입는 순간이며
이것이 바로 현실이다.
“네멋대로 해라.”에는 이 갈등유발 인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네멋대로 해라."의 복수가 처한 처지는 종두와 별반 다를바 없다.
게다가 뇌종양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처지만 놓고 보자면 복수의 입장이 더 난처하다.
다만, 복수와 경은 험악한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격리수용되는
행운을 안았을 뿐이다. 눈물겨운 작가의 노력이 아닐수없다.
참말로 인작가는 그럴듯하게 관객들을 속였다.
캐릭터의 일상성과 살아있는 대사를 끊임없이 뿌려대며
무대를 현실로 치장했으나 정작 "네멋"의 무대는 판타지에 가깝다.
(악인이 없음을 "네멋"의 매력으로 꼽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마음보기"라는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행위를 이야기하면서
현실과의 정면대결을 회피하고 끊임없이 도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17,18회에 이르러 복수와 경을 의미없는 상징으로 가득찬
여행에 동참시키고 결국 출발부터 호기좋게 던져놓았던
배수진(복수의 뇌종양)마저 적당히 거두어 들이고 막을 내림으로써
"네멋"은 판타지 쪽으로 한걸음 더 다가섰다.
(판타지를 향해 다만 몇걸음 더 다가서는데 그친 것만으로도
나는 이 결말에 대해 작가와 피디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바 있다.)
"네멋"에 대한 나의 실망은 인작가의 살아 숨쉬는 대사와
양동근과 공효진,이나영,신구의 놀라운 몰입으로 인한
현실성이 착시현상이었음을 깨달으면서 시작된다.
세상이 애써 외면하는 "마음보기"의 순수함을 틀어쥐고
현실과 맞짱 붙길 원했던 내 바람이 무너졌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판타지는 세상에 대한 넋두리일 뿐이다.
세상은 넋두리로 변화하지 않는다.
"네멋대로 해라."는 판타지에 가깝다.
내가 찍은 “네멋대로 해라.”의 좌표는 판타지와 현실의
2:8의 분할점쯤 되는 듯 하다. (판타지--네멋--------현실)
이쯤에서 나의 "네멋"보기를 끝낸다면
내가 "네멋"매니아(네멋폐인이 아니다.)가 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장조의 음계를 가진 “네멋”의 판타지에서는 단조의 냄새가 난다.
그 근저에서 <도취된 판타지>(미녀와 야수류의)와는 전혀 다른
주류적 가치관에 대한 의도적 반작용으로써의
두 주먹 불끈 쥔 인정옥의 악다구니가 느껴진다.
“네멋”의 장조음계는 작가의 세상에 대한 밝은 시선이 아니라
보고싶지 않은 현실에 대한 의도적인 밀어내기이다.
현실과의 맞짱 회피가 아니라
작가의 온몸으로 세상과 맞짱 붙어 지켜낸 의도된 판타지이자
“위선으로 점철된 주류의 시각”에 대한 개무시이다.
“복수와 경처럼 살겠습니다.”라는 작가의 변은
어쩌면 세상에 대한 도전과 주류에 대한 개무시를 천명하는 출사표이다.
결국 “네멋대로 해라.”는 100% 인정옥의 “네멋대로 해라.”이며
나는 지금까지 인정옥의 복수와 경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여기서 멈춘다는 것은 도취된 판타지에 안주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제 “네멋대로 해라.”를 품에 안고
나만의 “네멋대로 해라.”와 나만의 복수와 경을 만들기 위한
세상과의 한판 승부를 벌일 차례이다.
파묻혔던 “마음보기”를 들어내어 내 삶의 한 축으로 삼기위한
내것 아닌 “보편적 가치관”에 대한 맞장뜨기를 시작할 차례이다.
그렇게 만들어낸 나만의 판타지를
“주류의 가치관”으로부터 끊임없이 지켜내는 것….
“네멋대로 해라.”를 평생 마음속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도취된 판타지는 세상에 대한 넋두리일 뿐이다.
세상은 넋두리로 변화하지 않는다.
"네멋대로 해라."는 의도된 판타지이다.
다 쓰고나니 "네멋대로 해라."의 좌표를 찍는 것보다는
나의 좌표를 선택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다.
이제 "마음보기"를 움켜쥐고 나 자신이 현실과 맞짱을 뜰 참이다.
나만의 판타지를 위해서....
*쓰고나서 읽어보니 뭔말인지 잘모르겠으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슴...."내멋대로" 곤조!!!
카페 게시글
☆ 30 살 의 향 기 ☆
"네멋대로 해라." --- 너의 정확한 좌표를 밝혀라!!!
tak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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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9.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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