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갈아야 보배
별종의 돌산인가 앙바틈한 산수경석(山水景石)
옥바치 손 거치니 유리(琉璃) 안에 노는 선동(仙童)
학여울 자갈톱에서 악 쓰 캐낸 백수정(白水晶)
*종자산(種子山-씨앗산 643m); 경기 포천. 남쪽 한탄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아기자기한 바위산이다. 진달래와 단풍이 좋으며, 북쪽으로 뻗은 줄기에 비경의 산이 여럿 있다. 수석 중 최고는 산수경석.
22. 만뢰구적(萬籟俱寂)
솔숲 길 호젓하고 계류는 쥐죽은 듯
보탑사(寶塔寺) 법고 일타(一打) 세상소리 다 깨워도
청산은 장좌불와(長坐不臥)로 면벽수행 일념(一念) 뿐
* 만뢰산(萬籟山 612m); 충북 진천, 연곡제 지나 남쪽 산자락에 비구니 도량인 아름다운 목조 보탑사가 있다. 정상부에 만뢰산성이 있고, 매우 고요한 산을 깨울까 싶어 발걸음도 조심스레 내딛는다.
* 만뢰구적; 밤이 깊어 모든 소리가 그치고 아주 고요해짐.
* 《山書》 제16호 선시 시리즈 20수 중. 2005. 12. 23 발행.
23. 산으로 누운 용
쥐방울 굴러가듯 쪽빛 섬 옹기종기
참꽃 핀 수정 너설 갯바람도 삽연(颯然)한데
붉은 용 청산이 된 채 물 그리워 눕나니
* 와룡산(臥龍山 789m); 경남 사천. 주봉은 민재봉이다. 새섬바위, 상사바위, 기차바위 등이 수려한 자태를구구연화봉(九九蓮花峰)으로도 뽐내는데, 거대한 용이 누워있는 형국이다. 높고 낮은 봉우리 아흔아홉이 연이어져 있다 하여, 부른다. 당찬 산으로 봄 진달래가 좋고, 쪽빛 한려수도를 바라본다.
24. 느림의 미학
대간선(大幹線) 은하철도 광속(光速)으로 달리는데
새하얀 목덜미에 찰거머리 붙었어도
천녀(天女)는 한 땀 한 땀씩 십자수(十字繡)를 뜬다네
* 함백산(咸白山 1,573m); 강원 정선 태백. 남한 6위의 고봉으로, 남한 쪽 백두대간의 목덜미 쯤 해당될까? 삼국유사에 묘고산(妙高山)으로 언급되었다. 능선이 장쾌한 산인데, 설릉이 특히 아름답다. 수마노탑과 적멸보궁을 지닌 정암사와, 야생화의 천국 은대봉, 대덕산이 가까이 있다. 페름기에 형성된 함백산층(咸白山層)은 지질학적으로 가치 있는 곳이다. 앞만 보고 무조건 내달릴 게 아니라,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리라? 이쪽 지역 소고기가 맛있다는 사실 아는 이 많지 않다.
* 우리는 자기주위를 돌아보면서 쉬엄쉬엄 사는데 익숙지 않다. 때 묻지 않은 설릉에서 ‘느림의 미학’을 되새겨보는 것도 괜찮다. ‘천천히’의 네팔 말은 ‘비스다리’‘비스다리’이고, 케냐 말(스와힐리 어)은 ‘뽈레’‘뽈레’이다.
* 영여추제(領如蝤蠐); 미인의 목덜미가 깨끗하고 흼을 비유하여 이름. ‘추제’는 새하얀 나무굼벵이를 뜻한다.(시경 위풍편)
* 은하철도(銀河鐵道)999; (일본어 ぎんがてつどうスリーナイン 긴가테쓰도 스리나인)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가 1977~1979년까지 창작한 만화 또는, 이를 원작으로 하는 레이지버스 애니메이션이다. 한국에서는 1981년 10월 4일에 오전 8시 특선만화로 1화(話)와, 2화가 최초 방영되고, 일주일 후인 10월 11일 12화, 13화 ‘화석의 전사’ 편을 속개하였다. 그 후 방송의 반응이 좋아 113화 전편을 수입하여 1982년 1월 3일부터 1983년 1월 16일까지 문화방송에서, 일요일 아침 시간대인 오전 8시에 2편씩 60분으로 묶어 정규 편성했다(위키 백과). 지혜부처인 문수보살의 제자 선재동자(善財童子; sudhana)가 55곳과 53명의 선지식을 방문하여 가르침을 구했던 경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만화가 만들어졌다. 다음카페 (사) 한국시조협회 자유게시판 전선구 2018. 3. 6에서 인용.
* 《山書》 제16호 선시 시리즈 20수 중. 2005. 12. 23 발행.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599(437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25. 남가새 예찬
부루말 잡으려고 깔아 논 마름쇤데
내 흑심 꿰뚫으려 표창(鏢槍)으로 날다 말곤
갯벌에 총총히 찍은 좀도요새 발자국
* 팔봉산(八峰山 361.5m); 충남 서산. 올망졸망한 바위봉 8개가 이어진 산으로, 남가새 열매모양을 띠고 있다. 산 가까이에 있는 해수욕장 밀물은 마치 백마 떼가(혹은 해신 포세이돈) 몰려오는 듯하다.
* 남가새; 높이 약 1m 정도의 한해살이풀로, 열매는 촉의 재상 제갈량이 적의 말을 무력케 할 목적으로 발명했다는 마름쇠(능철, 여철)를 닮았다. 맛은 쓰고 성질은 따뜻하며, 간경에 작용해 혈압을 낮춘다. 모래땅에 자라며, 꽃, 씨, 뿌리 모두 약용한다.
* 산음가 2-6 팔선과해도-팔봉산 시조 참조.
26. 삼돌이와 조우(遭遇)
콧노래 불며 올라 삼돌이에 꿀밤 줬네
감돌인 떫은 놈을 베돌이는 쓴 놈을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듯 악돌이엔 매운 것
* 삼방산(三芳山 979.7m); 강원 영월 평창. 평창의 진산(鎭山)으로 커다란 종(鐘) 모습이다. 예부터 평창은 교통중심지인 까닭에, 영평정(寧平旌 영월, 평창, 정선)세 지점의 통행을 감시하는 관방을 설치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보통 멧둔재에서 오르며, 나물산행지로 적합하다.
* 삼돌이; 사소한 이익을 탐내어 덤비는 사람인 감돌이, 일을 하는데 같이 어울리지 않고 따로 베도는 사람인 베돌이, 모질게 덤비기 잘하는 사람인 악돌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 삼부(입법, 행정, 사법)에 삼돌이 같은 자들이 요직을 독차지해 철밥통을 지키고 있다. 때가 돼도 물러나지 않는 얌체족이다.
27. 반(反) 앙굴마라(鴦掘摩羅)
걸신이 들린 건가 九九九도 모자라
천 번째 나를 먹고 암산(岩山)으로 입멸(入滅)하다
나한과(羅漢果) 못 딸 바에는 아귀(餓鬼) 된들 어떠리
* 땅끝 갈두리 사자봉(50m); 한반도 땅끝에 있는 암봉이다. 힘들게 종주한 땅끝기맥의 종단점(終端点)으로 이름이 멋지다. 필자의 국내산 공식등행(公式登行) 1,000 번째 봉우리이기에 감회를 읊어본다.
* 지족불욕(知足不辱)지지불태(知止不殆);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아니하고, 그칠 줄 알면 위태하지 않다!
* 앙굴마라(梵); 불제자의 한 사람.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열반(涅槃)을 얻는 인(因)이 된다는 사설(邪說)을 믿고 구백 아흔 아홉 사람을 죽이고 천 사람째 어머니를 만나, 어머니조차 죽이려하자 부처가 가엾이 여겨 정법(正法)을 들려주니, 개과(改過)하여 불문에 귀의하여, 뒤에 나한과를 얻었다 한다. 앙굴리마라(鴦掘利摩羅)로도 쓰는데, 지만(指鬘)이라 번역한다.
* 아귀; (佛) 범어(梵語) preta의 역어(譯語). 파율(破律)의 악업을 저질러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진, 늘 굶주리는 귀신이다. 몸은 태산만 하고, 입(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하다.
28. 취화신(醉畵神)
함박눈 그친 대숲 돌산에 벙근 천화(天花)
두 귀가 잘려나간 박명(薄明) 깔린 바람벽에
활활 탄 금 관솔불로 청산도(靑山圖)를 그리다
* 북설악 신선봉(神仙峰 1,204m); 강원 고성 인제, 백두대간. 여기를 금강산 신선봉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꼭대기는 바위무더기인데, 대취한 신선이 바람으로 겨울산을 그리시다.
* 《山書》 제15호 2004년. 설악8제. 일부수정.
29. 득선지난(得禪至難)
연무 낀 정문(頂門)에서 혈서(血書) 쓴 불립문자(不立文字)
콩팥 벤 고추바람 만다라화(蔓陀羅花) 쓸어가자
탁발승(托鉢僧) 줄탁((啐啄)을 놓쳐 산에 대고 삿대질
* 보련산(寶蓮山 764m); 충북 충주. 산은 한 송이 백련인데, 안개와 바람이 교대로 희롱한다. 제아무리 좋은 풍경도 안개가 잔뜩 끼면 볼 수 없듯, 뭐든지 성사되려면 때를 잘 만나야 하는 법이다. 괜히 산에 대고 신경질 내봤자? 삼국시대 장미(남동생)와, 보련(누나)이 성 쌓기 내기를 했다는 전설을 지닌 산성이 꽤나 유명하다.
* 만다라화; 천상계에 핀다는 성스러운 흰 연꽃(佛).
* 줄탁(啐啄); 선가(禪家)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상응하는 일. 벽암록 제16측 ‘경청의 줄탁 솜씨’ 참고.
알 속의 병아리가 성숙하여 바야흐로 바깥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부리로 알벽을 쪼는 것을 일러 '줄(口+卒)' 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그 알을 내내 품던 어미닭이 새끼의 출현을 짐작하고, 바깥에서 알벽을 쪼아 알 깨는 것을 돕는 행위를 '탁(啄)'이라고 한다. ‘줄탁동기’(啐啄同機)란 바로 알 안의 병아리 부리와, 알 밖의 어미닭 부리가 일치하는 순간, 그 알이 깨지는 찰나를 이르는 말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도 한다.
30. 비단강에 비친 산
왕게의 집게발이 불알을 꽉 무는데
잔나비 젖꼭지랴 압각수(鴨脚樹)에 맺힌 동아(冬芽)
금강에 쪽배로 띄운 멧돼지의 송곳니
* 천태산(天台山 714.7m); 충북 영동. 계류와 폭포가 좋고, A코스 암릉길이 조마조마해 불알이 오그라들듯 사납다. 수령 1,000년으로 추정되는 고찰 영국사(寧國寺)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 223호)가 단연 으뜸으로, 가지에 촘촘히 맺힌 겨울 싹은 영락없는 원숭이 젖꼭지다. 가을 이 나무와 그 주위는 온통 황금물결을 이루는데, 남쪽 금강(錦江)에 비친 산의 모습은 어떨까?
* 압각수; 은행잎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그리 부름. 공손수(公孫樹)라는 미칭도 있다.
* 《山書》 제16호 선시 시리즈 20수 중. 2005. 12. 23 발행.
* 2016. 1. 7 시조 중장 수정.
31. 갈산에 유년을 묻고
쥐눈이 강옥(鋼玉)마냥 새빨간 돌담불
막잠 잔 푸른 누에 고치실 토해내면
낙엽 진 소갈머리에 갈색 산태(山胎) 묻노매
* 태령산(胎靈山 451m); 충북 진천. 일명 장태산(藏胎山) 또는 길상산(吉祥山)으로,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유래를 지녔다.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아늑한 산인데, 설릉에 도드라진 정상부 돌무더기는 쥐눈이콩 닮은 루비로 반짝인다. 낙엽 진 갈빛 산성이 희미하고, 서쪽 입구 연곡제 근처에 이름도 특이한 ‘쥐눈이마을’이 있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1-572(418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32. 법계도(法戒圖)를 그리며
옥(玉)으로 여긴 젖통 뺏고 보니 돌이었네
삼혹(三惑)을 쪽쪽 빨다 종양 걸린 허파에
벌겋게 달군 불도장으로 법계도(法戒圖)를 찍느니
* 옥새봉(玉璽峰 450m); 충북 영동. 천태산권이다. 신라 효소왕 또는, 고려 공민왕이 옥새를 숨겼다는 전설이 있고, 봉우리 바위는 유방 혹은 둥그스름한 옥새를 닮았다. 6조가 자리했다는 육조골이 있다.
* 삼혹; 불도를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세 가지 번뇌로서, 견사혹(見思惑)·진사혹(塵沙惑)·무명혹(無明惑)을 말한다. 유가(儒家)에서는 술, 여색, 재물로 본다.(蒙求)
① 견사혹; 우주의 진리를 알지 못하여 일어나는 번뇌와 낱낱의 사물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하여 일어나는 번뇌.
② 진사혹; 알지 못하는 법문이 모래알처럼 많아서 일어나는 번뇌.
③ 무명혹; 미혹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지혜가 어두워서 일어나는 번뇌.
삼혹을 삼장(三障) 이라고도 한다. (원불교 용어사전에서)
* 법계도; 의상대사가 화엄사상의 요지를 210자(7字☓30絶)의 게송(偈頌)으로 압축한 54각의 네모꼴 도인(圖印). 중앙 法 자에서 시작하여 佛 자로 끝난다.
33. 호수로 가라앉는 산
산릉(山稜)을 찢어 발겨 속살만 파먹은 너
지검(智劍)으로 굴피 벗겨 청심(淸心) 뗏목 엮으면
검은 말 물방개 되어 수면 아래 잠기네
* 마적산(馬蹟山 605.2m); 강원 춘천. 동쪽에 소양강이 있으며, 원래 마고(麻姑)할미와 관계되는 마작산(麻作山)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겁탈하려든 청군에 죽음으로 맞선 회동마을의 ‘무작개’란 여인의 설화로 인해, 마적산으로 바뀌었다 한다. 배후령(背後嶺-오음리고개) 기점 2등 삼각점(내평 21/1988재설)이 있는 봉우리(784.7m 춘천시에서 慶雲山으로 명명)가 지도상 정상이나, 2003년 7월 ‘경춘선 철길산우회’에서 설치한 석비가 있는 봉우리를 정상으로 간주키로 한다. 부부목(夫婦木) 소나무와 용머리바위가 근사하다. 청평산, 부용산의 명성에 가려, 진작 춘천사람들은 산 축에도 끼워주지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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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5. 29 제8-25 지주은, 제26 고약한 습관, 제30 산사의 밤 등 3수는 산운2로 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