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출간에 있어
가장 미흡한 것이 자료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재학 당시의 사진(우리,또는 공주시내)
둘째는 우리들의 글(현재 10사람 제출)
현재의 사진을 찍기위해 10시경에 공주에 도착,
우리 모교의 정문과 후문(재학당시는 정문), 사밤대학과 최근 준공된 대학본부,
그리고 그 옛날 신관리 우리들의 강의실이었던 최초 석조건물을 찍고, 금강변에 이사온 새 이학식당, 중국집 부흥루로 향했다.
부흥루는 동초선생님을 모시고 여러 번 들렸던 곳이다.
내가 가장 보고싶은 곳은 중국집 복산춘이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없어졌단다.
그 옛날 입학하고 얼마안되어서 우리 고마들이 모두 복산춘에 모였는데,
그때 장형(따꺼) 감내형이 양소매를 걷고 오른 손을 치켜들고 다음과 같이 포효했던 것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젊다. 고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그렇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내형은 이야기한 대로 그대로 실천에 옮겨 현재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공산성에 올라 금서루와 쌍수정을 보니,
이괄 생각보다는 그 당시 여기 잔디밭에서 열심히 교련훈련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같으면 유적지에서 언감생심 그런 일을.
12시경에 '청주해장국'집에서 보고싶은 얼굴들을 만났다
유붕자원이 방래하니 불역 낙호아.
감내형이 대구에서, 정헌이가 서울에서 어려운 걸음을 했다.
전자책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인고 3개학급이 각각 차 1대씩 유구 탑곡리 명곡리에 체험학습을 나왔단다.
정헌이가 식사비용과 전자책 성금으로 10만원을 기탁하면서 귀가했고,
감내형과 나는 동초선생님이 현재 살고 있는 집과 물재(이원구)선생님이 사시던 터를 찾아가 역시 사진을 찍었다.
이어 '명과학연구' 수업을 마친 중회형과도 전자책에 대한 협의를 가졌다.
오늘 협의된 내용을 정리하면,
- 가급적 옛날 그 당시 사진,혹은 현재의 사진(근황,동정)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좋으니까
각자 휴대폰으로 찍어 임윤수휴대전화로 보내어 화보 자료사진으로 사용하자.
- 제출 글이 적으니까, 학보에 나와있는 글은 그 사람의 동의를 얻어 실어보자.
(휴대폰 문자로 보낸 후 카페에 공지하는 방법)
- 은사님 항목을 화보, 학보, 다음에 넣자.
- 장르별이냐. 인물별이냐도 고민해 보자.
- 결정은 일단 카페에 올린 후 첨가하거나 삭제 여부를 물은 후에 하자.
- 21기 고마들의 옛 번호 순대로 명렬표를 만들되, 전화번호 대신 앨범에 나와있는 주소만을 기재하자.
감내형의 옛날 사진을 올립니다.
소중한 사진, 혼자서만 간직하지 말고 다같이 공유합시다.
1968년 국어과 수험표 122번 육민관고등학교 정호완 군(지금하고는 글쎄 너무 다른 느낌,
구체적으로 지금은 온화한 모습인데 이 사진은 북한 노크귀순자 같은 전투적인 모습이란 말야)
졸업식 후 교정에서의 모습, 새신랑 같은 젊고 싱싱한 모습들,
그런데 왜 둘이서? 제대군인이라서? 왜 서로 보는 방향은 다를까?
세 분 은사님을 모시고 찍은 국어과 1정강습 B반 대표 정호완(왼쪽 세번째 줄 끝)
강귀수 선생님 뒤가 남상선, 조재훈 선생님 뒤 오른 쪽이 김춘자(1976년 8월)
상선이와 춘자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카페 연락주기 바랍니다.
첫댓글 꽃다운 봄은 다시 보리밭으로, 파란 이야기가
행운과 함께 이봄을. 수험표 사진이 지금과는 딴판이라는 김교장의 말에 공감이..
재건복 차림이었을 겁니다. 1961년에 유행하던.. 곰나루 모꼬지는 흘러가는 강물처럼 소박한 모습이었으면..
사진 있으시면 요즘 것도 괜찮고요,많은 성원 바랍니다. 노소가 동락하는 거니까요. 학보글 올림에 다른 이의
없으시면 간단한 편집자 주를 달아 <옛날은 가고 없어도> 정도로 하여 스캔 떠서 올리는 방법도 괜찮은 듯하오만...
건강한 봄을 맞으소서. 요즘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 주말 드라마에 대마도가 임진왜란의 전초기지라는 영상을 보며
참으로 참담함을... 군신은 어디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