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5:30~38)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임을
여러 가지로 증거하는 내용이다.
증거로
첫째, 세례요한의 선포
둘째, 자신의 행적
셋째, 하나님이 친히 말하심을 제시한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펼치는 과정 중의 한 부분인 것을
섭섭하게 여기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것이 진실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과 진실은 가장 고귀한 가치와 열매를 가져 온다.
오히려 사실과 진실에서 벗어날 때 문제가 생긴다.
세례요한은 단순히 '조연'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에 대한 '구원 사역'에
참예한 대단한 역할을 한 것이다.
영화 등의 예술 작품을 예로 들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진심이라면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상관 있을까?
어렸을 때 베이스 기타 선율에 폭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앞에 드러나지 않지만 음악 전체를 꽉 채워주고
완성시켜주는 그 중후함과 무게감에 큰 매력을 느꼈었다.
이처럼 어떤 부수적 이익(인기, 주인공 등 세속적 욕망)에
매몰되어 있다면 결코 접근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
작품의 본질적 추구는 모든 요소들이 모여서
전체로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누가 주역이고 보조이고, 역할이 크고 작고는
정말 어리석고, 낮은 수준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보내심을 받은 충성된 자들은
보내신 이의 권한을 남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보내신 이의 위력과 권위도 그렇지만
자신의 본분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자각한다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대통령을 보낸 존재는 국민이다.
그런데 월권을 하고 국민을 해한다면 잘못해도
엄청난 잘못을 한 것이다.
목회자를 임명한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은
명예와 물질을 추구한다.
부폐된 모습이다.
<오늘의 명언>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지 않고
자신의 지식과 판단을 믿는 그가
바로 교마한 반역자이다. -찰스 스펄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이 없이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매일 스치는 사람들,
멀쩡한 듯 보여도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특히 너무나 무거운 곤핍과 문제 속에서 힘들어 하는 영혼이라면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세상이 알 수 없는 지경의
깊은 평화를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나라를 굽어 살피소서.
저를 포함한 믿는 이들이
죄로부터 궤도 수정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께 회개하며 돌아오게 하소서.
감사하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