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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대왕 즉위 초에 성덕이 넓으시사
성자성손은 계계승승하사 금고옥족은 요순시절이요,
의관문물은 우탕의 버금이라.
좌우보필은 주석지신이요,
용왕호위 간성지장이라.
조정에 흐르는 덕화 향곡에 펴여 있고,
사해의 굳은 기운 원근에 어리었다.
충신은 만조정이요,
효자 열녀(烈女) 가가재라.
미재미재여.
우순풍조하니 일대건곤 성명세라.
이때에 삼천동 거하시는 이한림이라 하는 양반이 있으되
세대 잠영 지족으로 국가충신지후예라.
일일은 전하께옵서 충효록을 올려보시고 충효자를 택출하사
자목지관 임용하실새 이한림으로 과천현감에 금산군수 이배하여 남원부사 제수하시니,
이한림이 사은숙배 하직하고 즉시 치행하여 남원부에 도임하고 선치민정하니,
사방에 일이 없고 백성들은 더디옴을 칭송하고 강구연월에 문동요라.
시화년풍하고 백성이 효도하니 요군시절이라.
이때는 때마침 춘삼월이라.
춘조는 비거비래 쌍쌍하여 춘정을 도웁는데,
사또자제 이도령이 연광은 이팔이요,
풍채는 두목지라.
문장은 이태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
☆☆☆
이때에 도련임이 방자 불러 이른 말이,
"이곳 경처 어디메냐?"
방자놈 여짜오되,
"글공부 세우는 도련임이 경처 알어 무엇하시려오?"
이도령 하시는 말이,
"어허, 이놈! 네 모른다.
시중천자 이태백은 채석강에 놀아있고,
적벽강 추야월에 소자첨 놀았으니 아니 노든 못하리라."
방자 다시 여짜오되,
"서울로 이를진대 자문밖 내달아 칠성암 청련암 세금정이 어떠한 지 몰라와도
전라도 오십삼관중에 남원이라 하는 고을 광한루라 하는 곳이 놀음직하나이다."
이도령 이른 말이,
"광한루 구경가게 행장을 차리어라!"
방자놈 거동보소.
서산나귀 솔질 살살하여 가진 안장 지을 적에
홍연자각 산호편에 옥안금천황금륵 청흥사 고운 굴레 주먹 상모 덤벅 달아
압뒤걸이 질근 매고 층층 다래 은엽 등자 호피 돋움 새가 난다.
도련님 치레 보소.
신수 고운 얼굴, 분세수 정히 하고,
감태같은 채머리 해남을 많이 발러
반달같은 용려리로 설설 흘려비껴
궁초 댕기 석황 물려 맵시 있게 잡아매고,
보라 수주 잔누비 돌징 육사단 겹배자 밀화단추 달아 입고
분주바지 세포보선 통행전 무릎 아래 넌짓 매고
영초단 허리띠 모초단 도리줌치 대구팔사 갖은 매듭 고를 내어 넌짓 매고
청사도포 몸에 맞게 지어 입고,
궁초띠를 흉중에 넌짓 매고
맹호연의 본을 받아 갖은 안주
국화주를 왜화병에 가득 넣어 나귀 등에 넌짓 싣고
은죽산 부산 대 별간죽 길게 맞춰
삼동초 꿀물 맞게 추겨 천은설합에 가득 넣어
자주 녹비 끈을 달아 방자놈게 채운 후에
나귀 등에 섭적 올라 홍선 으로 일광을 떡 가리고
맹호연 본을 받어 호호달랑 호호달랑.
오작교 다리 가의 광한루 섭적 올라
좌우를 둘러보니 산천물색 새롭다.
악양루 고소대와 오초동남수는 동정호로 흘러지고
연자 서북에 팽택이 완연하고,
또 한곳 바라보니
백백홍홍 난만중에 앵무 공작 날아든다.
산천경개 둘러보니
반송솔 떡갈잎은 춘풍에 너울너울,
폭포유수 시냇가에 계변화는 벙굿벙긋,
낙락장송은 울울하고 녹음방초승화시라.
벽도화지 만발한데 별유건곤 여기로다.
난간에 비기어 앉아 한 곳을 바라보니,
어떠한 일미인이 봄새 울음 한가지로
온갖 춘정 못 다 이기어
두견화도 질끈 꺾어 머리에도 꽃아 보며,
함박꽃도 질끈 꺾어 입에 함쑥 물어보고,
옥수 나삼 반만 걷고
청산유수 흐르는 물에 손도 씻고 발도 씻고,
물도 먹음어 양수하고,
조약돌 덥석 주어 버들가지 꾀꼬리도 희롱하고,
버들잎도 주루룩 훑어 내어 물에도 훨훨 흘려보고,
백설같은 흰나비는 곳곳마다 춤을 추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숲숲이 날아들어 온갖 소리 다 할 적에,
춘향이 거동 보소,
춘흥을 못 이기어 추천을 하려 하고,
면숙마 추천줄을 수양버들 상상지에 칭칭 얽어 감아 매고,
세류같은 고운 몸을 단정이 놀릴 적에
청운같은 고운 머리 반달같은 용어리로 어리 설설 흘려 빗겨
전반같이 넌줏 땋아 뒤 단장 은죽절과 압치레 볼작시면,
밀화장도 옥장도며
광원사 겹저고리 백방사주 진속곳
서수화 유문 초록 장옷 남방사 홑단치마 훨훨 벗어 걸어두고
자주 비단 수당혜를 석석 벗어 던져두고
황건 백건 지우자를 뒤 단장의 떡 부치고
섬섬옥수 넌즛들어 추천줄을 갈라 잡고
백능 버선 두 발길로 섭적 올라 발 구를 제,
한번 굴러 힘을 주며 두번 굴러 통통 차니
반공에 훨적 솟아 가지가지 놀던 새는 평임으로 날아들고
비거비래 하는 양은 지황건이 난봉 타고
옥경으로 향하는듯 무산선녀 구름 타고 양대상에 나리는듯,
그 태도 그 형용은 세상 인물 아니로다.
☆☆☆
이도령이 정신이 어질하며 안경이 희미하여 방자 불러 이른 말이,
"저 건너 화류간에 아른아른 하는 게 무엇인지 알겠느냐?"
방자놈 여짜오되,
"과연 분명 모르나이다."
이도령이 이른 말이,
"금이냐? 옥이냐?"
방자 여짜오되,
"금생여수 아니여든 금이 어찌 나온다 하며
옥출곤강 아니여든 옥이 어이 있으릿가?"
"네 그러할진대 신선이며 귀신인가?"
방자 여짜오되,
"영주 봉래 아니어든 신선 오기 만무하고
천읍우습 아니어든 귀신 있기 괴이하여이다."
"네 말이 그러할진대 네 정녕 무엇인가?"
방자 다시 여짜오되,
"이 고을 기생 월매딸 춘향이란 기생아이
낮이면 추천하고 밤이면 풍월 공부하여
도도하기로 일읍의 낭자하여이다."
이도령 대희하고 이른 말이,
"그러할 시 분명하면 잔말 말고 불러 오라!"
방자놈 거동 보소.
도련님 분부 뫼시어 춘향 초래하러 갈 제,
논틀이며 밭틀이며 뒤쭉을 높이 찌고
껑충거려 건너가서 춘향 초래라는 말이,
"책방도련님 분부내려 너를 급히 부르신다."
☆☆☆
춘향이 깜짝 놀래어 이른 말이,
"너다려 춘향이니 오향이니 고양이니 잘양이니
종다리새 열씨 까듯 다 외워 바치라더냐?"
방자 이른 말이,
"추천을 할 양이면 네 집 후원에서 할 것이지
탄탄대로에 나와 에굽은 늘근 버들
장장채승 그네줄을 양수의 갈라 쥐고
백승 버선 두 발길로 백운간에 노닐 적에
물명주 속곳 가랭이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 같은 네 살결이 백운간에 힛득힛득하니
도련님 네 태도 잠간 보고 정신이 희미하여
너를 급히 부르시니 네 어이 거역하리?"
춘향이 거동 보소.
추천하던 그 태도로 한번 걸어 주저하고 두번 걸어 사양하니,
방자놈 이른 말이,
"네 교태 한번에 나의 수로 갈 데 있느냐?
사양 말고 바삐 가자!"
춘향이 거동보소.
옥태화용 고운 얼굴 백모래밭의 금자라 걷듯,
대명전 대들보 명매기 걸음으로 앙금살짝 거러와서 공경하여 예한 후에,
이도령 거동보소.
단순호치 반개하여 용사교담으로 말씀하여 이른 말이,
"네 얼굴 보아하니, 일국의 절색이라. 네 바삐 오르거라!"
춘향이 거동 보소.
추파를 잠간 들어 이도령을 살펴보니,
만고의 호걸이요 진세간 기남자라.
천정이 높았으니 소년공명 할 것이요,
오악이 조구하니 보국충신 될 것이매,
춘향이 흠모하여 아미를 숙이고 염슬단좌뿐이로다.
☆☆☆
이도령 하는 말이,
"네 연세 몇이며, 네 성은 무엇인가?"
춘향이 여짜오되,
"연세는 십륙세(16)오, 성은 성가라 하나이다."
이도령 거동 보소.
"허! 그 말 반갑도다. 네 연세 드러니 날과 동갑이요,
성짜는 드러니 이성지합이라.
천연일시 분명하다. 날 설김이 어떠하냐?"
춘향이 거동 보소.
팔자청산 찡그리며 주순을 반개하여 가는 목 겨우 열어 여짜오되,
"충불사이군이요 열불경이부절은 옛 글에 있아오니,
도련님은 귀공자요 소녀는 천첩이라.
한번 탁정한 연후에 인하여 버리시면
독수공방 홀로 누워 우는 내 아니고 뉘가 할가.
그런 분부 마옵소서."
이도령이 이른 말이,
"네 말을 드러보니 어이 아니 기특하리.
우리 두리 인연 맺을 적에 금석뇌약 맺으리라. 네 집이 어디매냐?"
춘향이 거동 보소.
섬섬옥수 높이 들어 한 곳 넌즛 가르치되,
"저 건너, 동편에 송정이오 서편에 죽림이라.
앞 뜰에 매화 피고 됫 뜰에 도화 피어
초당 앞에 연못 파고 연못 위에 석가산 묻은 곳이 소녀의 집이로소이다."
춘향을 보낸 후에 책실로 돌아와 춘향을 생각하니,
말소리 귀에 쟁쟁, 고운 태도 눈에 암암,
해 지기를 기다리며 방자 불러 이른 말이,
"오늘 해가 어느 때냐?"
방자 여짜오되,
"동에서 아귀 트나이다."
이도령 이른 말이,
"어허, 이놈 괘씸한 놈!
서로 지는 해가 동으로 도루 가랴? 다시금 살피어라!"
이옥고 방자 알외되,
"일낙함지 황혼하고 월출동령 달이 밖았소."
석반이 맛이 없어, 전전반측 어이하리,
방자 불러 분부하되,
"퇴령을 기다리라!" 하고 서책을 보려할 제,
맹자를 내어 놓고 읽을새,
"맹자견양혜왕하신떼 왕왈 수불원천리이래하시니 역장유어이오국호이까?"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시전을 들여라. 관관저구재하지주로다.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로다."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대학을 들여라. 대착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하며 재춘향이니라."
"아서라, 그 글도 못읽겠다!"
"주역을 들여라. 원은 형코 정코 춘향이 코 내 코 딱 데이니 좋고 하니라."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천자를 들여라.
하늘전 따지 거물현 춘향이 누루황 집우 집주 넓을홍 춘향아 거칠관."
☆☆☆
방자 여짜오되,
"천자가 도련님께 당치 않소."
도련님 대책하여,
"네 무식하다. 천자라 하는 게 칠서의 본문이라.
천자를 새겨 읽을게 들어보아라!"
"천개자시생천하니 태극이 광대 하늘천
지벽어축시생후하니 오행팔괘로 따지
삼십삼천공부공하니 인심지시 거물현
이십팔숙 금목수화토 지정색의 누루황
일월이 생하여 천지가 명하니 만물을 원하여 집우
토지가 두터 초목이 생하니 살기를 취하여 집주
인유이주야 O천하이광하니 십이제국의 넓을홍
삼황오제 붕하신 후에 난신적자 거칠황
동방이계명 일월이 생하니 소관부상의 날일
서산낙조 일모궁하니 월출동령의 달월
한심미월 시시부터 삼오일야의 찰영
태백이 애월을 낙대로 달 건지랴 점점 숙으려 기울측
하도낙서 벌린법 일월성신의 별진
무월동방 원앙금의 춘향동침의 잘숙
춘향과 날과 동침할제 사양 말고 벌릴열
일야동침의 백년을 기약 온갖 정담에 베풀장
금일 한풍이 소소래하니 침실의 들거라 찰한
베개가 높거든 내팔을 베어라 이만큼 올래
침실이 온하면 서열을 취하여 이리저리 갈왕
불한불열이 어느 때나 엽낙오동 가을추
백발이 장차 우거지니 소년풍도를 거둘수
추절한풍 사렴타가는 설한풍의 겨울동
소한대한 염려마소 우리님 의복에 감출장
부용작야 세우중에 광윤유태 윤달윤
이해가 어이 그리 긴고 인제도 사오시 남을여
외로이 정담을 이루지 못하여 춘향만나 이룰성
나는 일각이 여삼추라 일년사시의 송구영신의 해세
군자호구 이안이냐 춘향과 나와 혀를 물고 쪽쪽 빨아도 남을여짜이 아니냐."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방자 불러 이른 말이,
"하마 거의 야심이라. 초롱의 불 밝혀라! 춘향집 찾아가자!"
일개 방자 앞세우고 춘향집을 다다르니
인적이 야심한데 대접 같은 금붕어는 님을 보고 받기는듯,
월하의 두루미는 흥을 겨워 짝을 부른다.
이때 춘향이 칠현금 빗겨 안고 춘명곡 탈 때,
이도령이 그 금성을 반겨 듣고 글 두 귀를 읊었으되,
"세사는 금삼척이요 생애는 주일배라.
서정강상월이요 동각설중매라"
춘향어미 듣고 나와,
"신동인가? 선동인가?"
☆☆☆
이도령 이른 말이,
"선동이러니 할미집에 술 있다 하기로 내 왔노라." 하거늘,
할미 대답하되,
"이게 주가이 아니라. 이 아래 행화촌을 찾어갑소."
이도령 하는 말이,
"내 일정 선동이 아니로세."
방자 이르오되,
"이 골 사또 자제 도련님이 춘향 구경 와 계시니 잔말 말고 드러가소!"
춘향이 이 말 듣고 바삐 나와 소매를 부여잡고,
"들어가세. 들어가세."
춘향의 방을 들어가서 방안 치레 볼작시면,
청능화 도벽에 황능화띠를 띠고 황능화 도벽에 청능화 띠를 띠고,
왜경 대경 객게수리 이렁저렁 벌려놓고
자개 함농 반다지며 벽상을 둘러보니 온갖 그림 다 붙이었다.
어떠한 그림 붙이었는고?
부춘산 엄자릉은 간의태후 마다 하고 백구로 벗을 삼고
원학으로 이웃 삼아 양구를 떨쳐 입고
추동강 칠이탄에 낚시줄 던진 경을 역력히 그려있고,
진처사 도연명은 팽택 영을 마다하고
오류촌 북창하에 국파주를 취케 먹고
백학을 희롱하며 무현금 무릎 위에 놓고
소리 없이 슬픈 경을 역력히 그려 있고,
또 저편 바라보니 남양 초당 풍설중에
한종실 유황숙이 와룡선생 보려하고
걸음 좋을 적토마를 뚜벅뚜벅 바삐 몰아
지성으로 가는 경을 역력히 그려 있고,
또 저편 바라보니 상산사호 네 노인이 바둑판 앞에 놓고
어떠한 노인은 백기를 들고 또 한 노인은 혹기를 들고
또 한 노인은 구절죽장에 호로병 매어 후리쳐 질끈 잡아 요만름 하여 있고
또 한 노인은 훈수를 하다가 무렴을 보고 암상에 홀로 앉아 조으는 양을 역력히 그려 있고,
또 저편 바라보니
채석강 명월야에 시중친자 이태백은 포도주 취케 먹고
낚시 배 빗겨 앉아 지는 달 건지려고 물 밑에 손 넣는 양을 역력히 그려 있고,
백이숙제 채미경과 만고성인 공부자 그림,
오강의 항우 그림,
광충다리 춘화 그림을 역력히 그렸는데,
구경을 다한 후에 이도령 춘향다려 이른 말이,
"나도 태후집 자제로서 경성에 생장하여 청루미색과 좋은 계집 많이 보고 구경하였으되,
네 인물 네 태도는 세상사람 아니로다!
근원 있어 그러한가?
연분 있어 그러한가?
네가 일정 국색인가?
내가 미쳐 그러한가?
이리 혜고 저리 혜되 놓고 갈 뜻 전혀 없다.
만일 나 곳 안이던들 너의 배필 뉘가 되며,
만일 네곳 안이던들 나의 가인 뉘가 될고?
너 죽어도 내 못 살고 나 죽어도 네 못 살리로다!
나 살아야 너도 살고 너 살아야 나도 살고
너의 연세 들어 하니 날과 같이 이팔이라.
이도 또한 천연인지 반갑기도 그지 없다."
우리 둘이 잊지 말자.
깊은 맹세 맺을 적에 공단 대단 도리줌치
주홍 당사 벌매듭을 차례로 끌러놓고
면경 석경 드러내어 춘향 주며 이른 말이,
"대장부 정절행이 석경 빛과 같을진데
진토중에 빠져서도 천만년이 지나간들 변할소냐."
춘향이 재배하고 석경 바다 품에 품고 저도 또한 신을 낼 제,
섬섬옥수를 들어 보라 대단 속저고리 제 색 고름 어루만저 옥지환을 끌어 내며
옥수에 걸어들고 단정이 궤좌하여 이도령께 드릴 적에
가는 목 겨우 열어 옥성으로 여쭈오되,
"여자의 정절행이 옥지환과 같을지라.
진토중에 빠져서도 친만년이지나간들 변할 때 있을소냐."
이도령 옥지환 받아 금낭에 얼른 넣고,
춘향 보고 이른 말이,
"야심인적하였으니 잔말 말고 잠을 자자."
춘향이 거동 보소.
주효를 차릴 적에,
기명 등물 볼작시면 통영소반 안성유기 당황기며
동래주발 적벽대접 천은술 유리저에,
안주 등 물 볼작시면
대양푼에 가리찜
소양푼에 제육초에
풀풀 뛰는 숭어찜에
포드득 포드득 메추리탕에 꾀꼬요
우는 영계탕에 톰방톰방
오리탕에 곱장곱장
대화찜에 동래 울산 대전복을 맹상군의 눈섭처럼 어슷비슷 올려놓고
염통산적 양볶기며
낄낄 우는 생치다리 석가산 같이 괴어놓고,
술병치레 볼작시면
일본기물 유리병과
벽해수상 산호병과
띠끌없는 백옥병과
쇄금병 천은병과
자라병 황새병과
왜화 당화병을 차례로 놓았는데 갖음도 갖을시고.
술치레 볼작시면
도연명의 국화주와
두초당의 죽엽주와
이적선의 포도주와
안기생의 자하주와
산림처사 송엽주와
천일주를 가지가지 놓았는데,
향기로운 연엽주를 그 중에 골라 내어 주전자에 가득 부어
청동화로 쇠적쇠에 덩그렇게 그려놓고
불한 불열 데워내어 유리배 앵무잔을 그 가운데 데웠으니
옥경연화 피는 꽃이 태을선인 연엽선 뜬듯 둥덩실 띄워놓고,
권주가 한 곡조에
일배 일배 부일배 반취하게 먹은 후에
분벽사창 깊은 방에
둘이 안고도 놀고 업고도 놀고 노니
이게 모두 다 사랑이로구나!
"굽이굽이 깊은 사랑,
시냇가 수양같이 척 처지고 늘어진 사랑,
화우동산 목단화 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포도 다래 같이 휘휘친친 감긴 사랑,
연평바다 그물같이 얼키고 맺힌 사랑아,
은하직녀 직금같이 올올이 이룬 사랑.
청누미녀 침금같이 혼술마다 감친 사랑,
은장 옥장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남창 북창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이리 오너라! 오는 태도를 보자.
빵긋빵긋웃어라! 웃는태도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를 보자서라.
동정 칠백 원무산 같이 높은 사랑,
여천 창해 같이 깊은 사랑,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 없는 부부 사랑,
너는 죽어 무엇 되며 나는 죽어 무엇 되리.
생전 사랑 이러하면 사후 기약 없을소냐.
너 죽어 될 것 있다.
은하수 폭포수 만경창해수 일대장강 다 버리고
칠년대한에 일생진진 처저있는 음양수란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청학 백학 청조 용조 그런 새는 되려말고
쌍비쌍래 떠날 줄 모르는 원앙새 되어
녹수 원앙격으로 어화 등등
떠놀거든 나인 줄 알려므나.
사랑 사랑 내 간간."
"이제 싫소I 그것 내 아니 될나요."
"그러면 너 죽어 또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종로 인경이 되고,
나는 죽어 인경 마치 되어
새벽이면 삼십삼천
저녁이면 이십팔숙 그저 뎅뎅 치거든
남은 인경 소리로 알고
우리 둘이는 뎅뎅 춘향,
뎅뎅 도련임으로 놀아보자.
사랑 사랑 내 간간 사랑이로구나!"
"싫소! 그것도 아니 될나요."
"그러면 무엇이 되단 말인야?
옳다!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 죽어 해당화가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어,
나는 네 꽃송이 물고 너는 내 수염 물고
춘풍 건듯 불면 너울너울 춤을 추고 놀아보자.
사랑 사랑 내 간간 사랑이야!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나 죽어도 너 못 살고 너 죽어도 나 못살제.
사랑이 핍진하여도 갈릴 마음 바이 없다.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방아학이 되고
나는 죽어 방아고가 되어
경신년 경신월 경신시 강태공 조작으로
어화 떨구덩 하거든 날인 줄 알려므나."
☆☆☆
춘향이,
"싫소! 아무것도 아니 될나요."
"야, 그러하면 어찌 하잔 말인야?"
"품아시를 하여야 하지요."
"옳지. 너 죽어 위로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매 윗짝이 되고 나는 죽어 매 밑짝이 되어
사람이 손으로 얼른하면 천방지방으로 휘휘 둘러 돌리거든 날인 줄 알려므나.
사랑 사랑 내 간간 사랑이야!"
춘향이 하는 말이 ,
"아무 것도 아니 될나요. 위로 생긴 것이 부아나게 생겼소."
"오냐, 춘향아. 우리 둘의 업움질이나 좀 하여보자."
"애고, 잡성스러워라! 업움질을 어떻게 하잔 말이요."
"너와 나와 활씬 벗고 등도 대고 배도 대면 맛이 한껏 나지야."
"나는 부끄러워 못하겠오."
"어서 벗어라. 어서 벗어라!"
"나는 부끄러워 못벗겠오."
"에라 이 계집아! 안 될 말이로다. 어서 벗어라, 어서 벗어라!"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진 암캐 물어다 놓고
이는 빠져 먹던 못하고 흐르렁 흐르렁 어루는듯,
북해상의 황용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에 넘노는듯,
도련님 급한 마음 와락 달려들어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 안고
저고리 풀며 바지 버선 다 벗겨 놓았더니,
춘향이 못 이기여
이마 전에도 구슬땀이 송실송실,
"애고, 잡성스러워라."
"네가 뉘 간장을 녹이려고 이리 곱게 생겼느냐?
여봐라 춘향아. 이리 와 업히여라."
옷을 벗은 계집 아이라
어쩔 줄을 몰라 붓그러워 못 견디는 아희를업고 못 할 소리가 없다.
"애고 춘향아, 네가 내 등에 업혔으니 네 마음이 어떠하냐?"
"한정 없이 좋소."
"여봐라, 내가 너를 업고 좋은 말을 할 터이니 네가 대답을 하려느냐?"
"좋은 말씀 하량이면 대답 못할 것 없소."
"사랑이로구나. 사랑이야. 어화 둥둥 내 사랑이야. 네가 금인냐?"
"금이라니 당치 않소. 옛날 초한적에 진평이가 범아부를 잡으려고
황금 사만을 흩었으니 금이 어이 있으릿가?"
"그러면 네가 무엇인냐?
내 사랑 네가 내 사랑이지. 그러면 네가 옥인야?"
"옥이라니 당치 않소.
만고 영웅 진시황이 영산의 옥을 얻어 이사의 명필로 수명우천기수영창이라
옥새를 만들어서 만세유전을 하였으니 옥이 어이 되오릿가?"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네가 해당화냐?"
"해당화라니 당치 않소. 명사십리 아니여든 해당화가 되오릿가?"
"에라, 이 계집아이. 안 될 말이다.
내 사랑 내 사랑이제.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네가 반달이냐?"
"반달이라니 당치 않소.
금야 초상이 아니여든 반달이라니 당치 않소."
"네가 무엇이냐? 내 사랑 내 간간아. 네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생률 숙률을 먹으랴느냐?"
"그것도 내 아니 먹을나요."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를 뚝 떼고 강릉 백청을 가득 부어 붉은 점을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돝 잡아 주랴? 개 잡아 주랴? 내 몸 통채로 먹으랴느냐?"
"도련님 내가 사람 잡아 먹는 것 보았오."
"에이 계집아야. 안 될 말이다.
어화 둥둥 내 사랑이제.
이애 무겁다 그만 내리렴.
여봐라 춘향아 백사만사가 다 품아시가 있나니라.
나도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나를 업어야지."
"애고 여보 도련님은 기운 세어서 업었거니와 나는 기운 없어 못 업겠소."
"나도 너를 업고 좋은 말을 하였으니, 너도 나를 업고 좋은 말 하여라."
"그러면 업히시요. 좋은 말 하오리다." 하올 적에,
"둥둥 좋을시고,
진사급제를 업은듯,
동부승지를 업은듯,
팔도감사를 업은듯,
삼정승을 업은듯,
여상이를 업은듯,
부열이를 업은듯,
보국관서를 업은듯,
외삼천내 팔백주석 OOO 내 서방이제.
내 서방.
이리 보와도 내 서방.
저리 보와도 내 서방,
알뜰 간간 내 서방이제."
"사랑 노래 다 버리고 탈 승짜 노래 들어보소.
타고 놀자, 타고 놀자.
헌원씨 시용간과하야 능작태 무찌르고
탁녹야사로 잡어 지남거 빗겨 타고
남원천 구경할 제 이적선 고래 타고,
안기생 나귀 타고
일모장강 어옹들은 일엽선 돋워 타고
만경창파 어기야 어기양 하며 떠나간다.
나는 탈 것 바이 없어 춘향배 잡아 타고
탈 승짜로만 둥둥둥 놀아보자."
밤낮으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이 지경으로 놀아나니 형용이 온전하리.
홍진비래는 고진감래(苦盡甘來)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