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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세계를 가르친 현대불교의 스승 10인
오늘날 한국 불교계에서 불교 명상에 대해 얘기하고자 할 때 대개 한국의 간화선과 남방불교 특히 미얀마불교의 위빠사나 명상수행이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회자되고 있다. 사실 위빠사나 수행법이 한국에 알려진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1990년을 전후한 시기에 주로 미얀마의 수행 선사들이나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법을 체험한 한국의 수행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그런데 30년이라는 비교적 길지 않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국의 불교 명상에서 위빠사나 수행은 빼놓을 수 없는 수행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위빠사나 수행법이 지닌 몇 가지의 특징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 수행법의 선두에 선 것이 미얀마 위빠사나 명상수행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법이다.
마하시 사야도(Mahāsi Sayadaw, 1904~1982)는 미얀마의 근대 불교 역사에서 불교 명상 분야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명상 스승이다. 이 외에도 모곡 사야도, 몬힌 사야도, 우바킹 등 여러 명상 스승들이 있다.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영향력과 국제적인 명성에서 마하시 사야도는 모든 명상 스승들에 단연 앞서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하시 사야도가 가장 왕성하게 전법 활동을 하던 시기인 1950년대를 전후한 무렵부터 미얀마에서 시작된 위빠사나 명상수행 운동은 21세기의 초반인 지금도 미얀마는 물론 전 세계에서 심신의 안정을 찾으려는 이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불교 명상이 되었다. 그는 출가자는 물론 재가 신자 모두에게 유익한 체계적인 수행 방법을 확립함으로써 위빠사나 수행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는 마하시 사야도가 단순히 명상수행의 지도뿐만 아니라 교학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이룬 교관(敎觀)을 겸수한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보인다. 그의 교학에 대한 성취는 생전에 수십여 권의 수행 관련 지침서와 불교 논서에 대한 번역 및 저술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이 같은 여러 업적으로 인해 마하시 사야도는 수행 지도의 여정에서부터 1982년 입적한 이래 지금까지도 미얀마의 불교계에서 매우 큰 존경을 받고 있다. 따라서 그의 생애와 사상을 더듬어 보는 것은 비단 미얀마 위빠사나 명상에 대한 이해는 물론 그의 지도하에 수행의 이익을 얻은 여타 국가의 제자들에 의한 불교 명상의 세계화 측면까지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 마하시 사야도의 생애
1) 출가와 염처 수행
마하시 사야도는 1904년 미얀마의 중부 도시 쉬웨보의 세이쿤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당시 미얀마는 영국령 인도 총독이 관할하는 식민지였으며, 식민지 정부의 지속된 기독교 우대 정책과 서구식 교육정책으로 불교의 종교 · 사회적 기능이 많이 약화하여 있던 상태였다. 원래 미얀마에서 승원은 왕조 시대부터 지역민들에게 정신적 안정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사회적 교육을 담당하던 곳으로 승려는 마을 주민들의 조언자이자 교사로서 글을 읽는 방법과 불교를 주로 가르쳤다. 특히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해당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한 승원 교육은 미얀마가 낮은 문맹률을 유지할 수 있게 한 중요한 기능이었다.
이 시기 사야도는 나이 여섯 살에 세이쿤의 피마나수도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출가자로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6년 후 스승 우 아디짜(U Adicca)로부터 신 소바나(Shin Sobhana, 상서로운 자)라는 법명을 받았다. 20세가 되자 출가자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그는 1923년 비구계를 구족한 후 4년 만에 정부 공인의 초 · 중 · 상급의 빨리어 시험을 모두 통과하였다. 이후 더 나은 공부를 위해 만달레이와 모울메인의 수도원에서 공부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던 우 소바나는 《대념처경》의 염처수행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주석서 및 복주까지 심도 있게 연구함으로써 붓다의 교법과 수행에 대하여 확신하게 되었다.
그 후 우 소바나는 위빠사나 수행 지도로 널리 알려진 밍군 제타반 사야도(Mingun Jetavan Sayadaw)가 있는 타톤을 방문하여 4개월간의 집중 수행을 통하여 좋은 성과를 이루었다. 그는 1938년 그의 고향인 세이쿤으로 돌아와 첫 제자 3인에게 위빠사나 명상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1941년 6월 정부가 주최한 법사[Dham-macariya]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위빠사나 수행의 교리적 측면과 실제 수행적 측면을 이해하기 쉽게 적은 교본을 저술하여 수행을 지도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부터 그의 수행 지도에 대한 평판이 미얀마 중부의 쉬웨보와 사가잉 지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원래 사야도의 호칭인 마하시(Mahāsi)는 ‘큰 북’이라는 뜻으로 그의 고향 세이쿤의 마하시승원(Mahāsi Kyaung Taik)에 있는 큰 북에서 유래했다. 이 북이 울리는 것을 신호로 제자들이 마하시 사야도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였는데 이후 사야도의 이러한 이력으로 인해 우 소바나란 법명 대신 마하시 사야도라는 호칭이 미얀마 전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 마하시명상센터(Mahāsi Sasana Yeiktha)
마하시 사야도의 일생에서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 우뜨윈(Sir. U Thwin)과의 만남이었다. 우뜨윈은 미얀마의 대부호이자 열정적이고 신심 깊은 불자로서 당시 버마인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버마 국민들을 위해 헌신했을 뿐만 아니라 불법의 진흥과 포교를 위해서 크나큰 노력을 하였으며, 이 같은 공로로 정부로부터 ‘최고광영진리훈장(Thado Thiri Thudhamma)’이라는 명예로운 훈장을 받았다.
마하시 사야도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우뜨윈은 사야도로부터 위빠사나의 가르침을 듣고 마하시 사야도야말로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온 명상 스승임을 깨닫고는 양곤으로 돌아와 당시 미얀마의 수상 우누에게 보고하였다. 1949년 11월 우누 수상은 마하시 사야도를 우뜨윈의 기증으로 설립된 양곤의 명상센터의 지도법사로 초청했다. 이후 이곳은 마하시 사야도의 이름에 따라 마하시 명상센터(Mahāsi Sāsana Yeiktha)로 알려졌고 이때부터 정신적 스승으로서 마하시 사야도의 가르침이 미얀마 전역에 퍼지게 되었으며 수행하고자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와 외국의 수행자에게도 문호가 개방된 수행처가 되었다.
3) 교관 겸수와 6차 결집 주도
1952년 미얀마 정부는 마하시 사야도에게 아가마하판디타(最勝賢者, Agga Maha Pandita)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이 칭호는 계정혜 삼학을 성취한 승려에게 주어지는 칭호이자 예우로서 시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고결한 인품과 덕성 및 교학의 성취에 의해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로운 칭호이다.
빨리 문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마하시 사야도는 교관을 겸수한 승려였으며 1954년 5월 17일 제6차 불전결집(Chatta Sangiti)이 양곤에서 개최되었을 때 제1차 결집에서 마하가섭 존자가 담당했던 질의자와 편집자 역할을 맡았으므로 사람들은 마하시 사야도를 6차결집 질의자(Chatta Sangiti Pucchaka Sayadaw)라 불렀다. 이는 빨리어에 능숙해야 함은 물론 원전에 대한 이해도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마하시 사야도가 그 임무에 적합하다고 미얀마 승가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때 개최된 제6차 불전 결집은 미얀마 승가뿐 아니라 다른 상좌부불교 국가인 스리랑카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및 베트남과 일본의 승려들도 참여한 매우 의미 있는 불전결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하시 사야도는 냐웅얀 사야도(Nyaungyan Sayadaw)와 함께 인근의 태국과 캄보디아의 승단을 방문하여 이 결집에 참가를 요청하는 사절의 역할을 맡았다. 그 결과 제6차 결집은 약 2,500여 명에 달하는 각국의 승려들이 참여하였으며 가장 완벽하다고 여겨지는 빨리어 삼장이 편찬되었다.
이 외에도 사야도는 수행 지도에 관한 저술 등을 합하여 약 70종에 이르는 저서와 역서를 펴냈으며, 특히 《청정도론(Visuddhi-magga)》의 빨리 원전을 미얀마어로 번역하여 주석을 달아 편찬하였고, 1966년에는 《청정도론 해설서(Visuddhimagga-nissa-ya)》를 저술하여 제자들을 가르쳤다. 《청정도론》은 불교 명상은 물론 수행에 대한 이론도 다루고 있기에 상좌부불교권에서 수행을 지도하려는 이에게 필수적인 교과서로 간주되는 문헌이기도 하다.
2. 마하시 수행법의 확립
18세기 중엽 미얀마의 승려 메다위(Medhāvī, 1728~1816)는 위빠사나 수행의 지침서에 관한 첫 번째 저자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는 ‘붓다의 교법이 쇠퇴하였기에 깨달음은 현세에서 불가능하며 오로지 미래의 붓다인 메테야(미륵불, Metteya) 시대에 다시 태어날 만큼 충분한 공덕을 쌓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믿었던 당시의 신행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나아가서 도덕적 순수성에 만족하고 더 이상 수행하지 않는다면 수행의 종교는 소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였다.
메다위의 이 같은 주장은 명상에 대한 미얀마 불교계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위빠사나 수행도 1900년 이전까지는 일부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승려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었을 뿐 일반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마하시 사야도에 의해 위빠사나 수행법이 체계화되고 대중화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1) 마하시 수행법 개관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법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체계가 있다.
첫째, 수행을 시작하려는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사항으로 계행 구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출가자라면 출가자로서 계행을 재가자라면 8계의 준수를 강조한 것으로 이는 수행 중에 계행이 원만하지 못하여 일어나게 되는 번뇌나 망상 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정한 계행은 수행을 하려는 사람에게 있어 도의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예비 수행으로서 다음의 ‘네 가지 보호’ 즉 ① 붓다의 공덕을 회상하는 불수념(佛隨念), ②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에 대한 자애관(慈愛觀), ③ 신체의 32부분의 부정함에 대해 숙고하는 부정관(不淨觀), ④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수념(死隨念)에 대한 숙고를 통해 본격적인 수행에 앞서 심신의 안정을 꾀한다.
셋째, 선정에 들기 위해 한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이 아닌 모든 알아차림의 대상에 명칭을 붙임으로써 집중력을 강화하는 수행을 하고 있다. 즉 사마타 없이 위빠사나만을 수행하는 순수 위빠사나로서 사념처(Satipaṭṭāna)의 수행을 통한 지(智)의 획득을 강조한다.
넷째, 사제 간의 인터뷰를 통해 수행을 점검받는다. 이를 통해 수행자는 자신의 수행에 대한 척도를 알 수 있게 되며 수행상태를 보고하기 위해 더욱 정진하게 된다.
2) 좌선
계행을 구족하고 결의한 수행자의 구체적 행법으로 좌선과 경행[행선], 그리고 일상의 알아차림이 있다. 좌법으로는 가부좌나 반가부좌, 또는 평좌 등이 있지만 자신에게 맞는 좌법을 선택하면 되며 굳이 결가부좌를 할 필요는 없다. 나아가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개별 현상에 명칭을 붙임으로써 그 현상에 대하여 개념을 부여하여 알아차림을 심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숨을 들이쉴 때 배가 부풀어 오르면 마음속으로 ‘부품’이라 알아차림 하고, 배가 꺼지면 ‘꺼짐’이라고 알아차림 한다. 배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치하도록 알아차림 한다. 배의 움직임을 분명히 알기 위해 숨을 깊게 쉬거나 일부러 천천히 알아차림 하게 되면 오히려 쉽게 피로하게 될 수 있으므로 평소의 호흡대로 해야 한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지속하다가 수행이 진전되면 ‘부품’과 ‘꺼짐’의 알아차림 사이에 간격이 있을 수 있다. 이때는 ‘부품-꺼짐-닿음’ 등으로 알아차림 한다.
수행 중 마음에 망상이 일어나면 마음속으로 ‘망상’ 또는 ‘망상함’ 등으로 알아차림 한 후 다시 ‘부품’ ‘꺼짐’으로 돌아가 알아차림 한다. 이때 떠오르는 망상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현상에 명칭을 붙여 알아차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망상은 사라지며 이후 다시 배의 ‘부품’ ‘꺼짐’ 등의 알아차림으로 돌아간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모든 정신적 현상과 물질적인 현상들이 생겨날 때마다 ‘봄’ ‘들림’ ‘맛봄’ ‘냄새 맡음’ ‘닿음’ 등으로 명칭을 붙이면서 각 현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과정까지 면밀하게 알아차림 한다.
마하시 사야도가 배의 움직임을 일차적인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호흡할 때마다 일어나는 분명한 현상이기에 일부러 찾을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알아차림에 용이하여 수행자들로 하여금 집중이 잘되게 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대념처경》에 설해진 수행의 주제 중 풍대(風大)의 요소로 마하시 수행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3) 경행
마하시 명상센터에서는 경행은 정진의 요소를 향상시키고 좌선은 삼매의 요소를 향상시킨다고 하여 경행 또한 중요시하고 있다. 수행 중 정진과 삼매의 두 요소가 균형이 이루어져야 지혜가 계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수행처에서는 경행 1시간 좌선 1시간 정도로 병행하고 있다. 걷는 수행의 경우 평소의 걸음보다 보폭을 줄이고 약간 천천히 걷는 것이 몸의 균형을 잡기에 유리하며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림 하기에 좋다. 중요한 것은 걸음을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왼발’ ‘오른발’ 하는 식으로 명칭을 붙여 왼발이 나가는지 오른발이 나가는지를 알아차린다. 이때 왼발을 다 걷고 난 후 오른발을 내딛는 식으로 매 발걸음의 처음과 끝을 집중하여 알아차림 한다.
이 발걸음을 알아차림 하는 데는 몇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왼발’ ‘오른발’ 하는 식으로 알아차림 한다. 이후 알아차림이 향상되면 ‘듬-내려놓음’ 또는 ‘듬-나아감-내려놓음’ 등으로 각 발걸음을 세분하여 알아차림 한다. 이처럼 알아차림 하다 보면 좌선 시와 마찬가지로 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때 발걸음을 멈추고 마음속으로 ‘망상함’ ’망상함‘ 등으로 좌선 시와 동일하게 현상들을 알아차림 한다. 만일 알아차림이 세밀해지면 마음속에 일어난 의도를 먼저 알아차림 한 후 발걸음을 세분하여 알아차림 한다. 이처럼 걷는 동작과 다리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이 경행의 기본 행법이다.
4) 일상 알아차림
명상센터에서 수행자의 일과는 오전 3시에 기상하여 오후 11시에 취침에 들 때까지 일상생활에서도 알아차림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림을 이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마하시 명상센터에서는 모든 움직임에서 마치 병자처럼 천천히 움직이면서 알아차림이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수행자는 앉고, 서고, 걷고, 눕는 등의 여러 가지 일상의 행동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느낌 등을 놓치지 말고 알아차림 하려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밥을 먹을 때도 음식으로 손을 뻗고, 입으로 가져오고, 음식을 씹는 등의 매 행동에 대해 주의 깊이 알아차려야 하며 이때 선행하는 알아차림과 후행하는 알아차림이 끊어지지 않고 매 순간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5) 수행의 진보
마하시 사야도는 수행의 진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지혜가 얻어진다고 말했다. 즉 수행자가 모든 현상에 대한 알아차림이 깊어진다면 집중의 대상인 물질적인 특성과 그것을 주시하는 정신적인 특성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구별하는 지혜[名色區別智, nāmarūpa pariccheda ñāna]인 위빠사나의 지혜가 생겨난다. 이어서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지혜인 연섭수지[緣攝受智, paccaya pariggaha ñāna]와 모든 현상이 항상하지 않음을 인식하는 무상관지[無常觀智, aniccānupassanā ñāna], 이 모든 무상함이 곧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고관지[苦受觀智, dukkhānupassanā ñāna], 이어서 이러한 정신적인 현상과 물질적인 현상에는 나 또는 나의 것, 또는 나의 자아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무아관지[無我觀智, anattānupassanā ñāna]가 생겨난다. 이어서 수행자가 수행을 계속해 나간다면 오래지 않아 모든 부처님과 아라한, 성자들이 경험한 도지(道智)와 과지(果智) 그리고 열반법을 스스로 체험하게 되며, 바라밀이 출중한 사람들은 이 법들을 7일 이내에 체험할 수도 있다.
3. 국제적 전법 활동의 성과
마하시 사야도는 비단 미얀마 국내의 전법에만 그치지 않고 그 역량과 의지를 인근의 국가로도 펼쳐 나갔다. 당시 스리랑카불교는 명상보다는 교학의 전통이 더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었기에 위빠사나 명상 분야에서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스승이 없었다. 이 때문에 스리랑카 정부에서 마하시 사야도를 초청하였지만 6차결집 기간이었기에 마하시 사야도는 제자 중에서 뛰어난 명상 법사 3인을 보냈다. 이들의 지도하에 좋은 결과를 이루어낸 스리랑카 수행자들의 후원에 힘입어 스리랑카 전역에 12개소의 상설 명상센터와 17개소의 비상설 명상센터가 개설되었으며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지에도 마하시 명상센터 분원이 차례로 세워졌다.
이후 사야도의 상세하고 분명한 위빠사나 수행 지도에 따라 수천 명의 외국 사람들이 수행의 이익과 법에 대한 실질적인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마하시 명상센터에서는 《대념처경》과 《청정도론》을 수행의 기본 지침서로 삼아 좌선과 경행을 병행하며, 지도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수행을 점검받음으로써 초보 수행자라 하더라도 수행하고자 하는 열의와 인내심만 있다면 분명하게 효과를 체험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이 같은 특징으로 인해 그동안 마하시수도원에서 수행법을 배우고 돌아간 서구의 여러 수행자에 의해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이 착실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중 우 빤디따 사야도('사야도'라는 말은 스승 혹은 선사라는 존칭이다), 찬메 사야도, 우 실라난다 사야도, 우 자나카 사야도('찬메 사야도'와 같은 분이다. '찬메센터'를 세우신 분이 우 자나카 사야도), 와사와 사야도 등의 미얀마 승려들과 냐나포니카, 아나가리카 무닌드라(인도 재가불자로서 서양제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신 지나락키타 등의 외국 승려들, 그리고 조셉 골드스타인, 잭 콘필드 등 마하시 사야도로부터 지도받고 큰 성과를 거둔 수행자들이 마하시 사야도의 위빠사나 수행법을 여러 방식으로 전법하고 있다. 마하시 명상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1949년 마하시 명상센터가 개관한 이래 2019년까지 본원과 분원을 통해 배출된 수행자들의 수는 490만여 명을 상회하고 있다. ■
정기선 ksliner@hanmail.net
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외래교수. 동남아시아의 불교 의례와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미얀마불교의 적수의례〉 〈스리랑카 불치사 공양의례 일고〉 〈불교의례의 좌법고찰〉 등과 역서 《실제적인 위빠싸나 명상수행》 등이 있다. 현 미얀마 불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