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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설교 내용 요약
공관복음 강론 (23) 마태복음 7장 (3) 메시아에 대한 반응들
마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산상수훈이 이제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좀 더 확대해서 메시아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전체적으로 쭉 살펴보려고 한다.
1. 당시 이스라엘의 두 가지 반응
(1) 유대 대중은 호산나(히, 호시아 나 / 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침
(마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이렇게 대중들이 열광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모세 율법만 중요하게 본 것이 아니고 새 언약 선지서들에 나와 있는 예레미야 언약도 이미 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다윗의 후손이 메시아로 온다는 것은 선지서들의 새 언약에서 나오는 예언이기 때문이다. 새 언약의 내용은 알고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모세 언약에만 묶여 있었고 새 언약을 자기들의 삶에 적용할 이유가 없었다. 새 언약은 메시아가 오신 후의 일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이다.
(2) 유대 기득권층은 빌라도에게 고소함
(마 26:63-65)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하는 말을 들었도다
유대 기득권층은 빌라도에게 고소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대중들의 태도가 또 돌변한다. 대중들은 바나바를 살려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막 소리를 지른다. 이런 대중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나온다.
2. 시므온의 예언
(눅 2:28-35)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이사야 53장 종의 노래라는 말씀을 보면 메시아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되는 내용이 섞여 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 메시아로 인해서 질고도 사라지게 되고, 우리의 슬픔도 사라지게 되고, 우리의 허물도 용서받게 되고, 우리의 죄악도 용서받게 되고,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고,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고 하는데 정작 메시아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반응은 양면적인 것이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오신 분이 맞다. 그런데 사람들은 메시아를 멸시하고 버렸다. 이렇게 예언이 되어 있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게 예언이 되어 있고 시므온의 예언도 똑같은 것이다. 엄청나게 귀하신 분이 오셨는데 사람들에게서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고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기 때문에 대중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래서 그때 어미 된 너는 마음이 칼에 찔리는 것처럼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이런 양면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살펴보겠다.
3. 싸르크스의 긍정적 반응들
(1) 첫 번째 오해 : 종교적 오해(우상 숭배/수호신 숭배)
호산나를 외치는 대중 / 기쁘다 구주 오셨네
메시아는 우리를 위해서 오신 분이니까 병도 치료해 주시고 귀신도 쫓아내 주시고 대박이다 하면서 우상 숭배로 가게 되고 개개인의 수호신 숭배로 가는 것이다. 인간 본성의 종교적인 탐욕이 개인 구원 교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사렛의 지인들의 반응
(눅 4:22-30)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야곱의 아들로 나사렛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예수가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다 알고 있었던 나사렛 동네 사람들이 우리한테도 그런 기적들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자 예수님은 거절하신다. 그러자 예수님을 낭떠러지에 밀어 떨어뜨려서 죽여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메시아로부터 덕을 보려고 했다가 거절당해서 열 받은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다.
오병이어 현장의 오해
(요 6:11-15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요 6:26-2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요 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자기를 왕으로 삼을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피해서 산으로 가버리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고 먹고 배가 부르니까 나를 쫓아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돌이키게 만들기 위해서, 회개하게 만들기 위해서 일어난 표적인데 사람들은 일어난 사건만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게 웬 떡이냐?'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고, 그때부터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 심지어 제자들 중에서도 많은 무리가 떠나가 버렸고 12명만 남은 것이다. 대중이 떠나간 이유는, "한 끼 주고 끝이야? 장난하나?' 라고 하면서 가버리는 것이다.
가룟 유다와 나머지 제자들의 오해
(행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제자들은 메시아가 오면 로마의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고, 메시아를 다윗 왕 솔로몬 왕 시대의 영광을 되찾게 해 주실 분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고 끝까지 그런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부활하시는 것까지 보니까 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가룟 유다는 메시아의 초월적 권능을 끌어내기 위해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었음
예수님으로부터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만들어서 무력을 끌어내려고 한 것이 가롯 유다의 특징이었지만 안에 있는 내심은 다 똑같은 것이다. 이제 로마군이 쫓겨나가고 이스라엘이 다시 부응하겠구나 라는 기대를 가진 것은 똑같은 것이다. 수호신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그 신을 이용하려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가롯 유다를 이용하셔서 십자가의 사역을 감당하는 길로 들어서는데 가롯 유다가 오히려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두 번째 오해 : 휴머니즘의 오해
(마 26:6-12)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상상도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는데 제자들은 비싼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본주의 사상의 휴머니즘이다. 그것이 진보 기독교의 해방 신학 같은 것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을 몰아내고 군부 독재를 무너뜨리고 핍박받는 민중이 대접 받고 잘 사는 휴머니즘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 진보 기독교의 흐름은 본훼퍼라는 인물이 느닷없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 아니고, 18세기 계몽 사상부터 출발해서 쭉 성장해 온 인본주의 사상, 인간의 존엄성, 자유계약론, 천부인권론 이런 것들이 계속 누적이 되어 왔는데 그런 모습은 심지어 향유 복합 사건에서 부터 있었던 인간들의 사고 체계의 모습인 것이다.
진보 기독교의 해방 신학(이반 까라마조프)
소설 속 대심판관
도스토웨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아주 기막힌 구도를 제시를 한다. 세 형제 중에 둘째 아들인데 이반은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고 휴머니즘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막내가 신부가 되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막내한테 그 우화를 하나 들려준다.
대심판관이 등장하는 우화를 들려주는데, 러시아 정교를 지배를 하고 있는 대심판관이 예수 그리스도를 감옥에 쳐넣는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다.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내가 압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지금 이 사회는 인민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구도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 왔습니다. 인민들을 우리가 보살핍니다. 그런데 당신이 지금 다시 와 가지고 그들에게 자유를 이야기를 하게 되면 우리가 공들여서 만든 이 안정된 사회 체계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지만 당신을 가둬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휴머니즘 기독교이다. 진보 기독교로 정식으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본훼퍼 목사에 의해서지만 이미 도스토웨프스키가 이 구도를 이미 다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휴머니즘의 오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뒤에 해방 신학 신부들이 기관총을 들고 군부 독재 세력을 쏴 죽이는 남미 해방신학까지 만들어지는 것이다. 휴머니즘, 진보 사상, 인권 존중, 생명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면서 핍박 받는 소중한 민중을 짓밟는 소수를 우리가 죽여야겠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휴머니즘은 반드시 폭력을 수반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대폭발을 일으킨 것이 공산주의 혁명이다. 지주 자본가를 다 죽여버리고 노동자 농민들이 휴머니즘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공산주의 혁명으로 폭발을 해버린 것이다. 그런 오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메시아에 대한 그 오해인 것이다.
4. 싸르크스의 부정적 반응들
(1) 베드로의 공포
(눅 5:4-8)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 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 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대박이 나는 현장을 보고 사람들은 열광을 하는데 베드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 지금 베드로는 이렇게 내가 고기 잡아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 소소한 행복을 이 양반이 다 깨어 버리는 거 아닌가? 하면서 난리가 나는 것이다. 베드로에게는 지금의 작은 행복이라도 지키는 게 중요한 것이다. 초월적인 힘이 다가왔을 때 열광을 하면서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그룹이 있고, 베드로처럼 도망치는 그룹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두 가지 반응이 있는 것이다.
(2) 마 8장의 기적들과 가다라 주민들
(마 8:28-34)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 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소서 하니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두 사람이 귀신에 들려서 비참한 운명에 있다가 귀신들이 떠나갔고 이 두 사람이 삶을 회복했다. 그런데 반대편에는 돼지 떼가 몰살을 해버려서 자기들 재산이 날아갔던 것이다. 그러면 두 사람이 회복된 것과 돼지 떼가 죽은 것 중에 이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회복된 두 생명이 아니라 죽어버린 (살아있어야 하는) 돼지 떼인 것이다. 소중한 것은 남의 생명이 아니고 내 재산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불쌍한 두 사람을 살린 메시아가 귀한 분이 아니고 두 인생을 살리든 말든 그것은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고 내 재산이 줄어든 것 때문에 난리가 난 것이다. 당신 같은 메시아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귀신을 쫓아내는 어마어마한 초월적인 신적인 존재는 나한테 손해야, 우린 당신 필요 없어 우리한테 손해야,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5. 성령의 역사에 의한 반응
이 반응은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반응인 것이다.
(마 16:15-17)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성령께서 베드로가 그런 말을 하게끔 시키신 것이다.
(행 9:1-5)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 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것은 바울을 사도로 변화시키셔서 이방의 사도로 쓰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강권적으로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 사울이 사도 바울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6.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반응
(요 6:65-66)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제자들 중에는 인간적인 판단으로 메시아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모여든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자연스럽게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들 가치관을 가지고 메시아를 추종하기로 결정했던 사람들은 이제 떠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정해진 자들만 나에게로 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카르포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지명하신다는 것이다.
성서적인 반응은 하나님의 영역에서 진행하시는 일이며 인간의 영역에서는 성서적인 반응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지금 다 확인을 한 것이다.
7. 참고 : 사도들의 경우
(1) 쓰스와 허메(우상 숭배/수호신 숭배)
(행 14:8-1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 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 나 걷는지라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 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종교적인 제사, 종교적인 예배는 신과의 거래이다. 이용해 먹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것이며 그것은 인간의 종교적인 본능이다. 사도 바울이 이 현장에서 애쓴 것은 그들을 여호와의 길로 돌아서게 하는 것을 위해서 애쓴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하신 장면이 아니니까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이다.
(2) 귀신들린 여종과 은장색 : 돼지 떼 주인들과 같은 흐름
(행 16:16-23)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 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여종에게 들었던 귀신이 예언을 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복채를 자기들에게 가져오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귀신이 떠나가고 여종의 삶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여종의 주인들은 여종이 귀신이 떠나가고 삶이 회복된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돼지 떼 주인들과 같이 경제적인 이득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각자도생하는 자들의 실체이며 모든 인간의 실체이다.
(행 19:23-29)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 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신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아데미에게 계속 충성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데미 덕분에 돈을 벌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처지에 있는 인간들이 진리를 눈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종교를 만드는 것이다.
나에게 유리하겠다 싶으면 호산나를 외치는 것이고, 나에게 불리하겠다 싶으면 떠나소서라고 호소를 하는 것이다. 어떤 반응이든 진리와 관계가 없고, 어떤 반응이든 하나님의 뜻과 관계가 없고, 어떤 반응이든 성서의 계시와 관계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니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 같이 신중해라, 엉뚱하게 화를 당하지 말고 신중해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2.공지사항
다음 주 기도는 정진호 집사입니다.

첫댓글 강론 중 가룟 유다가 열심당적 메시아 기대를 가지고 예수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 그의 초월적 권능을 끌어내려 했다는 설명은 성서가 직접 밝히지 않은 추론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처럼 말씀드린 점을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