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는 우리말 오용(5)/ '북한 민요'를 알아야: 이원우 소설가 ‧ 민요 가수(부산 시절)
89년 겨울 방학 때였다. 부산 화명초등학교 교사 시절-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무모한 여행을 떠난다. 1월 중순이었는데 나 혼자가 아니었다. 78명의 노인 학생들을 인솔한 거다. 최고령자는 90세 구익엽 학생(여) 대북시의 아동문학가 겸 언론 기관 종사자 임환창 선생과 의논이 되었다.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학생들이 그곳 방송국에서 민요 제창하는 뜻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내 얘기에 그가 동의한 거다. 그래 우리는 떠나기 전에 충분한 연습을 했다. 임환창 선생은 대북에서는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 세 개 방송국의 절충에 성공했다. 한데 결실을 못 보았으니, 87명이라는 노인들이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서로의 일정이 어긋나는 바람에 우리는 어느 방송국에도 설 수 없었다. 국위를 실추시켰다는 죄책감에 나는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한 여학생이 비행기를 타기 전 넘어져서 오른쪽 팔을 부러뜨리는 것 외는 사고가 없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사박오일 동안 아무 사고가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자.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 임환창 선생을 소개해 준 아동문학가 선용 문우에게도 미안하지 그지없고. 그래도 그 실패가 도로 위안(?)이 될 때가 있어서 안도의 숨(한숨)을 쉰다. 우리가 부를 민요는 ‘신고산타령’, ‘몽금포타령’, ‘군밤타령’ 등 북한 민요와 ‘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 남한 민요 여섯 곡이었다. 특히 ’아리랑‘은 통일이 되었을 때 남북한 겨레 5천만이 한데 어울려 제창할 수 있는 유일한 곡이라는 데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날 우리가 대북시의 어느 방송국 스튜디오 무대에 섰다 치자. 내가 지휘하는 가운데 모두가 맨 먼저 ‘신고산타령’을 입에 올렸을 거다.
신고산이 우르르 화물차(함흥 차) 떠나는 소리에 고무공장(구고산) 큰애기(큰아기) 단봇짐(단봇짐)만 싸누나/ 어랑어랑 어허야…
노인학교 문을 연 지 6년째였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노인 학생들은 함흥 차(咸興車)를 ‘화물차’로, 구고산(舊高産)을 ‘고무공장’으로 발성하는 오랜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여간해서는 떨쳐지지 않는…. 게다가 78명 중에는 새내기(?) 학생도 더러 있었으니 더 설명해 무엇하랴! 참, 신고산은 산이 아니라 마을 이름이라더라. 구고산도 그럴밖에.
또 있다. 산수갑산(삼수갑산)머루 다래 얼크러설크러졌는데 나는 언제 임을 만나 얼크러설크러질거나/ 어랑어랑 어허야…
삼수갑산(三水甲山)을 ‘산수갑산’으로 잘못 알고 있는 국민이 태반은 되리라. 하물며 노인들이랴. 방송국에서 ‘산수갑산’이 어쩌고저쩌고 했더라면? 그 우세를 내가 어찌 감당했을는지….
어쨌든 말이다. 남북통일이 되면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은 없어지고 모든 겨레가 한 노랫말로 민요를 부를 거다.
여담 하나. 우리가 부르려던 ‘몽금포타령’엔 ‘장산곶(長山串’ 이 나온다. 한자 중에 ㅈ 받침이 들어가는 유일한 게 串(곶 곶)이다. 웃긴다 해야 하나 어쩌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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