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속에서 꽃피운 명성 “나는 대장장이로 타고난 사람”
1977년 양구부터 강원도 인연 지속
양양시장 자리잡아 새로운 볼거리 제공
‘옛 대장간’ 명맥 잇는 60년 장인정신
주방용품·농기구 등 주문제작
“품질 우수해 한 번 쓰면 계속 구매”
아들에게 기술전수 가업 이어받아
참신한 아이디어로 제품개발 주력
속초 대포항 ‘칼 전문’ 분점 오픈도
양양대장간이 현재의 양양시장으로 이전하기 전인 2007년 김석수 대표가 일하는 모습. 예나 지금이나 대장간 풍경은 크게 달라진게 없다. 사진 오른쪽 현재 양양대장간 김석수 대표의 모습.
식칼, 과도, 회칼 등 주방용품과 호미, 낫, 도끼, 괭이, 쇠스랑 등 농기구, 한옥에 쓰이는 문고리, 해녀들이 물질할 때 필요한 섭낫….
이 모두가 대장간에서 대장장이가 망치로 쇠를 두들겨 직접 만들어내는 물건들이다. 대장간에서 만들어내는 물건도 가지가지지만 사용하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크기까지 요구하는 대로 만들다 보면 그 종류는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늘어난다.
양양대장간은 영동지역은 물론 강원도 전체에서도 몇 남지 않은 곳으로 ‘옛 대장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양양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는 김석수 대표가 충북 제천서 대장간 일을 시작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인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7세에 불과했던 김 대표는 동네 대장간에서 조그마한 쇳덩이 하나로 ‘뚝딱’하고 호미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대장장이’가 되기로 결심하고 곧바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7년 우연하게 양구에 있는 대장간을 인수하며 강원도와 인연을 맺은 김 대표는 양구에서 만든 각종 농기구를 양양에까지 납품했다. 당시에는 교통이 많이 불편하던 때라 물건을 보내기 힘들었던 김 대표는 1982년에 아예 양양읍 내곡리,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외곽도로 입구에 대장간을 새로 차렸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을 추진하던 양양군은 영북지역 최대 5일장인 양양시장의 새로운 볼거리 차원에서 시장 안에 ‘터’를 마련하고 양양대장간을 옮기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 대표가 대장간 일을 시작한지 어느덧 6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쇠를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들겨 물건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다.
예전에는 일일이 손망치를 들어야 했던 일의 일부를 기계가 해주고 있어 조금 빨라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대장간 일이 예전보다 결코 쉬워진건 아니다. 업종을 막론하고 수 많은 변화의 파고를 극복하며 ‘노포(老鋪)’에 이름을 올린 곳도 흔치 않지만, 노포가 그 명맥을 잇기는 더욱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동네마다 흔히 볼 수 있었던 대장간이 사라져간 이유도 공장의 대량생산에, 값싼 중국산까지 밀려들어온 데다 힘든 일을 마다하는 세태와도 무관치 않다.
양양대장간 김석수(왼쪽) 대표와 가업을 이어받고 있는 아들 김정태씨.
하지만 양양대장간은 김 대표의 아들 김정태 씨가 가업을 이어받기로 함에 따라 명실상부한 ‘노포’로서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40대 중반인 아들 김 씨는 중학교 때부터 고교, 대학을 거쳐 직장까지 서울서 자리를 잡았지만 기술전수를 바라던 아버지의 적극적인 권유로 13년 전인 30대 초반 나이에 양양으로 귀향했다. 김정태 씨는 처음에는 “더운 여름, 뜨거운 불 앞에서 일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아버지의 권유를 거절했지만, 결국 3개월 만에 아버지 뜻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김 대표는 당시 “멀쩡한 아들에게까지 힘든 대장장이 일을 물려주려 한다”며 부부싸움까지 했다고 한다. 양양으로 내려온 아들 김 씨는 “평생 배워도 다 못 배운다”는 대장간 일을 모두 익히기 보다는 아버지의 기술에 젊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결합된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대장간에서 만드는 물건 가운데 유독 ‘칼’에 관심이 많았던 김 씨는 다양한 종류의 칼을 만드는데 주력하면서 유명 관광지인 속초 대포항에 칼을 전문으로 하는 ‘양양대장간 속초점’까지 냈다. 속초점에는 작업실이 있지만 김 씨는 매일 오전 양양대장간으로 출근해 각종 기술을 연마하고, 오후에는 속초 가게를 운영하며 새로운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대량생산과 저가를 무기로 하고 있는 기성품에 밀려 대부분 사라진 대장간을 찾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취재 도중 마침 양양대장간을 찾은 손님에게 ‘철물점’이 아닌 ‘대장간’을 찾은 이유를 물었는데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대장간에서 만든 물건이 월등히 좋아 한 번 써본 사람들은 대장간 물건만 찾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믿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에 양양대장간 김 대표 부자는 오늘도 손에서 망치를 놓지 못하고 있다.
“저는 대장장이로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아버지 김석수 대표와 “내 스스로가 당당하면 어디 가서도 당당해질 수 있다”며 새로운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 김정태 씨.
쇠는 뜨거운 불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강해지듯, 대장장이 김 대표와 부자는 양양대장간이 지금까지 겪어온 세월을 넘어 노포로써의 명성과 자부심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망치질을 멈추지 않는다.
최훈 choihoon@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