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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12장 26절.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10-섬기는 삶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은혜와 진리를 충만하게 받은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섬기는 삶을 삽니다. 은혜와 진리가 사람을 겸손하게 하며 섬기는 삶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섬김을 받는 삶을 원하지만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섬기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자신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주인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상이 없지만, 종으로 사는 사람들은 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이 세상의 가치를 뒤집어 엎어 이 세상이 강조하는 것들이 얼마나 가치가 없는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이 세상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나님 밑에서 사는 것을 사람들은 원하지 않습니다. 믿어지지도 않는 하나님을 섬기고 산다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마지 못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할지라도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죄의 생각들은 틈만 나면 죄 가운데 머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을 이끄시고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2장 26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입니다. 교회 교인들을 보면 예수님을 섬기려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예수님을 섬길 마음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섬기려는 사람들도 자기를 위해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가족들 가운데 누군가를 위해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한 부류는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자기를 위해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 사람들은 자기가 복을 받아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교회에 나와서 복을 받을 만한 일에 뛰어들어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분명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섬김은 땅에서 잘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땅의 복만을 원합니다. 그들의 신앙은 땅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천국이 있는지 없는 지는 죽어봐야 안다고 하면서 땅의 것에 투자하고 땅의 것을 모읍니다.
그러면 땅에서 잘되는 것이 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인 여러분들이 땅에서도 잘되고 하늘에서도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늘나라를 바라보지 않고 땅에서 잘되는 것만을 바라는 사람들은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선 그들은 탐욕에 자기 마음을 내주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커보이는 유혹이 찾아오면 쉽게 그것에 반응을 합니다. 마귀는 그런 시험을 하는 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특히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택한 자라도 미혹해서 지옥으로 끌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더 많이 유혹을 받을 까요?
마귀의 휴혹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으면서도, 또 유혹을 받으면서도 그것이 유혹인지도 모르고, 미혹인지도 모르고 빨려들어갑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처럼 순탄하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교인들이 거기에 몰입하게 되면 마귀가 이끄는대로 죄악의 길을 가게 됨으로 하나님을 등지게 되며, 설사 교회는 다닐지 몰라도 마음은 세상에 가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경고는 야고보서 4장 4절에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하면서 몸은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 그래서 실제로 예수님보다 세상에 더 마음을 쓰는 사람은 간음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몸은 교회에 나올지 몰라도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교회적으로나 교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폐쇄적이고 고립된 삶을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세상과 벗하고, 세상과 짝하고, 세상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그런 사랑은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사탄의 손안에 들어가는 것이며,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탄의 열차에 몸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가 그렇게 좋아했고 즐겨했던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과 함께 지옥의 불못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위해 교회를 찾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의 최후입니다.
다음으로 자기 가족들 가운데 누군가를 위해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요?어떤 사람은 그 마음에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보다는 가족들을 더 사랑합니다. 이런 사람도 천국에 합당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 26절을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이 이 말씀하신 이유는 여러분들의 가족들을 미워하게 만드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가족들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신의 형제와 골육의 친척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기끼어 원할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는 만일 여러분이 에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데 가족들이 방해를 한다면 그들을 외면하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히 제자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가족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막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그들로 인해 예수님을 떠나시겠습니까? 아니면 가족들을 떠나시겠습니까?
이 선택이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계속해서 동행을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생명과 풍성함을 누리는 기쁨으로 살지만 예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한 사람들은 마음에 곤고함과 허무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들을 최대한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가족들보다도 더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가족들을 사랑하되 주 안에서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여러분들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는 여러분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칩니다. 이 땅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을 찾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자식들을 향한 부모님들의 사랑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섬깁니다.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사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길 바라면서 온갖 뒷바라지를 다합니다. 그러면서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수고와 섬김으로 인해 아이의 장래가 멋지고 아름답게 만들어져 간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지를 압니다. 성령께서 그들 안에 계셔서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먼저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흐릅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섬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온전한 섬김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매일 같이 나아가셨습니다. 새벽에도 나가시고 한 밤중에도 나가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한 마음을 갖고 계신다면 여러분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벽에도 한 밤중에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골방에서 하나님을 찾으실 수도 있고 여기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찾으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집에서 하나님을 만나든,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든지 간에 여러분들의 관심은 여러분들 자신이나 가족들보다 예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데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시길 원하시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진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은헤와 진리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진리를 충만하게 부어주십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 사랑의 마음이 흐르셨습니다. 우선적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음이 흐르셨고, 다음으로 예수님은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마음이 흐르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제자들 자체를 향한 사랑과 또한 그들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위한 영적인 비전을 주시면서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는 세상을 향한 섬김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또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셔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워낙 크셔서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드리셨고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된 교회에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는 교회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기쁨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온전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셔서 예수님께 기쁨을 드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을 섬기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들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에 주인으로 영접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예수님이 여러분들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과 마음과 육신을 예수님께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자신을 내어드린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순종의 역사를 이루시고, 사랑의 사람들을 통하여 섬김을 이루십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신앙의 증거는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나온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이런 헌신된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때로는 잔잔한 역사를, 때로는 격렬한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여러분들은 이 두 가지의 역사에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잔잔하기만 하든지, 아니면 격렬하기만 하든지 하는데 치우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한 영혼, 한 영혼 조용히 구원을 이루시는 역사를 하실 때가 있고, 때로는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을 넘어 수많은 나라들에게 까지 놀라게 하는 역사를 이루실 때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온 세상 끝까지 전파된 복음을 듣고 몰려오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마지막 때의 대대적인 부흥은 어느 조용한 곳에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급격하게 퍼져나가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영적 흐름 속에서 우리 교회가 조용한 섬김을 이루기를 원하실 때가 있으십니다. 마치 예수님께 예수님의 형제들이 “당신이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신다면 절기인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자신을 나타내소서”하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너희 때는 항상 있지만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느니라”하시고는 형제들이 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난 며칠 후에 예수님은 조용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에 반해 십자가를 지시던 유월절에 에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는 예루살렘 온 성이 요동칠 정도로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시면서 들어가셨습니다. 교회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조용히 역사하실 때에는 조용히 순종하며 섬기고, 크고 떠들썩하게 역사 하실 때에는 복음의 나팔을 크게 불면서 순종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나님 자신의 일을 어떻게 이루시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영이 그 안에 충만한 사랑으로 섬기며 순종하는 충성된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사무엘상 말씀을 보면서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전의 등불이 희미해지고 하나님의 이상은 희귀하고 제사장은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사랑하고 제사장의 아들들은 자기들의 직분을 이용해서 악을 행하며 백성들을 범죄에 빠뜨리던 시대에 하나님은 엘리제사장에게 내가 너희 집을 폐하고 내가 원하는 새로운 제사장을 일으키겠다고 선포하신 후에 성전에서 잠을 자고 있던 사무엘을 만나셨던 것을 읽고 묵상하면서 이 시대에 새로운 사무엘같은 인물을 세워달라고 기도해야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기도를 시작했고 지금도 역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진정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길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 시대에도 보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고 활활 타오르는 강한 불길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일꾼들을 세우셔서 하나님 자신의 살아계심과 창조주요 만민의 구주이심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섬길 마음이 없으면서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는가하고 찾아봅니다. 자기의 외로움의 문제릃 해결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그들 마음 속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유형은 자기 이익을 위해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예전에 직장이 수원에 있어서 직장과 가까웠던 수원중앙교회에 잠시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대통령선거를 치루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선후보중 한 사람이 거기에 찾아와서 2층에 앉아 있었고 담임목사님이 그 대선후보를 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대선 후보는 거기서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지지해달라고 그 교회에 한 번 다니러 간 것입니다.
또한 이단에 속한 사람들 역시 그들이 망하게 하기로 목표를 삼은 교회를 전복시켜서 자신들의 단체에 묶어 놓기 위해 가만히 그 교회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전체에 영적인 혼란을 일으켜 결국 목회자를 몰아내거나 아니면 목회자까지도 이단에 흡수하는 일도 생길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마음에 그들이 교회에 들어가는 목적은 섬김의 의도가 아닌 파괴하기 위한 의도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은 사탄에게서 나온 악한 지혜입니다. 교회가 깨어있지 못하면 그들의 거짓에 한없이 무너집니다. 그들의 말을 듣는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거나 자신의 담임 목사를 향하던 눈이 점점 비판적으로 변하다가 예수님의 사랑을 잃게 되어 이단 교주의 편에 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미혹의 무서운 점입니다. 그런 악에게 조종을 받는 이단들은 결코 마음으로 사랑하거나 섬기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섬기는 시늉만 할 뿐입니다.
사탄은 강도처럼 죽이고 훔치고 빼앗으러 교회에 들어오지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일을 위해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교회를 섬기라고 세우신 목회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사탄은 자꾸만 여기저기 소리를 듣게 해서 목회자를 믿지 못할 대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권위를 부인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섬기는 목회자들의 말을 듣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귀를 막는 일을 사탄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사람들인 이단들을 통하여 교회를 허무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2장 2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그러면 예수님이 이끄시는 섬기는 삶을 살려면 무엇으로 섬길 수있을까요?
첫 번째가 하나님을 섬기는 부분에서는 예배가 우선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를 매우 가볍게 생각해서 매일 지각하거나 끝나자 마자 쏜살같이 도망치듯이 나가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일이 바로 예배를 매우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단순히 예배를 의무적으로 드리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좋아하고 즐거워합니다. 기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교회에 나와서 기도로 준비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 주간을 주님께 산 제사로 드리면서도 다음 주일에 모여 예배드리는 그 모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다른 날에 드리는 예배도 역시 소중히 여깁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모든 예배가 다 소중한 것은 하나님이 무엇보다도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루신 일과 지금 하고 계신 일과 앞으로 하실 일들이 말씀을 통해 선포될 때 주의 깊게 경청함으로써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해줍니다. 그래서 예배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계십니까? 예배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섬기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복을 주셔서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의 온전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섬깁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받으셔서 상을 주실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그것을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 번째는 복음을 전해서 이웃을 섬길 수 있습니다. 복음은 불신자들에게만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 신자들에게도 전해져야 하고 경륜이 오랜 성도들에게도 역시 전해줘야 합니다. 복음이 마음의 받은 바 소원을 굳게 하고 열정의 불을 일으켜 하나님을 섬기며, 또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들을 섬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복음을 듣고 받은 로마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5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다음으로 구제를 통해 이웃을 섬길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을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주신 이유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오늘날의 교회에게도 성령을 부으시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 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은 그 가난함으로 인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결국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가난함은 마음의 가난함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가난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가난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욱신적으로 부자라고 해서 그의 마음이 가난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신약성경만해도 많은 부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진 것이 업어서 못나누겠다고 하지 마시고 가지고 계신 그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시기 바랍니다. 하니님의 풍부가 여러분들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여러분들은 다른 성도의 짐을 함께 짐으로서 섬길 수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의 짐을 함께 진다는 것은 그들의 어려움에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오신 것처럼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의 짐을 함께 지면서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의 실천입니다. 이웃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서 고통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세군운동을 시작했던 윌리엄 부스와 캐서린 부스도 역시 부두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의 짐을 함께 하기 위해 자선냄비를 만들어 모금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려졌던 죠지뮬러 역시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은 고아들의 아버지라는 말씀을 보고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며 인도하심을 받다가 고아원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고아들의 어려움의 짐을 자신이 진 것입니다.
또한 윌리엄 윌버포스는 노예들의 삶을 보면서 노예해방을 위한 짐을 졌고, 마틴루터킹은 흑인들의 인권이 말살되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흑인인권운동을 위해 총에 맞아 사망할 때까지 흑인들의 짐을 졌습니다. 또한 수많은 외국 선교사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굶주림과 질병과 죽음으로 인해 죽어가던 이 나라를 위해 이 나라 백성들이 당하는 죄와 고통이라는 짐을 졌습니다. 그러므로 인해 이 나라가 지금처럼 영과 육의 건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의 실천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짐을 주시면서 “나의 짐을 지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위해 어려운 짐을 져야 합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을 위해 선교헌금을 모아서 선교지원을 함으로 함께 짐을 졌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도와달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과 순전한 복음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사도 바울과 함께 선교의 짐을 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성령께서는 누구의 짐을 지라고 부르시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마다 또 세상에서 행할 때마다 누군가를 긍휼의 마음으로 보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을 섬기라는 주님의 부르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면서 그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행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아주 가까이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순종하게 되며, 그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며 충성한 열매와 결실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 인내의 결실이 가을날 수많은 곡식과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하나님은 여러분들 자신을 하나님께 산제물로 드리고, 또 행함으로 인하여 큰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 귀한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하게 임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겸손히 섬기는 삶을 살기를 소원하며 그 일에 뛰어들어 그 일을 위한 짐을 기꺼이 지실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땅의 것을 얻기 위해 일했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섬기면서 따르는 그 자리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셨던 성령님이 여러분들 안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하나님 나라 역사에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