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현섭은 벌겋게 부어오른 다리가 몹시 아팠다. 교실에서 담배를 피운 것이 발각돼 오전 내내 학생부실에서 벌을 받고 매를 맞았다. 선도위원회에서 무거운 징계가 내려질 거라는 학생주임의 말은 현섭의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를 메달아 놓았다. 현섭은 불도 켜지 않고 찬밥덩이처럼 방안에만 누워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현섭의 엄마가 학교로 불려갔다. 학생주임 선생님 앞에서 엄마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잘못했습니다,선생님.제 아이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제발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이번 일은 지난번과는 달라요. 학생이 교실에서 담배를 피웠으니 그걸 그냥 두면 교육이 바로 서겠습니까. 이번만큼은 무거운 징계를 면할 수 없를 거예요."
엄마는 사탕을 조르는 어린아이처럼 울며 애원했다. 하지만 가슴 가득 눈물만 채운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과의 불화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엄마의 가슴은 상처 투성 이었다.
"엄마, 잘못 했어…"
"내가 정말 너를 잘못 키웠구나!
엄마도 이젠 지쳤다. 여러 번 학교에 불려갔지만, 이번 같은 일은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야." 엄마는 넋이 나간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참을 수 없는 실망과 배신감으로 서글픈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학교에 있는 동안 줄곧 현섭의 마음은 무거웠다. 사소한 영웅심으로 저지른 일이 모든 이들을 이토록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현섭은 징계문제로 온종일 학생부실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부모를 다시 모시고 오라는 학생부 선생님의 지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 섰을때,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창문이 모두 닫혀 있는 밀폐된 조그만 거실에 엄마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현섭이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스 밸브가 열려있고, 거실은 가스 냄새로 가득했다.
오래 전부터 현섭의 문제로 우울해 하던 엄마가 마침내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이다.
"엄마!! 정신 차려! 엄마~~아!!"
현섭은 미친듯이 엄마를 흔들었지만 말이 없었다.
몸은 이미 해면처럼 풀어져 있었다.
그 순간 엄마의 얼굴 근육이 파르르 떨리며, 마른 입술 사이로 작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 왜 이래. 이게 뭐 하는 거야!"
현섭이 울부짖는 소리에 엄마는 가파른 신음만 뱉어냈다.
"엄마! 엄마! 정신 차려 봐!!"
그때서야 간신히 실눈을 뜬 엄마는 작은 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엄마가 널 잘못 키운 거니까, 엄마가 죽어야지. 어서 엄마 두고 나가. 어서…"
현섭은 엄마에게 물을 갖다 드리고 꽉 닫힌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간신히 의식이 돌아온 엄마를 끌어안고 울었다.
"엄마, 괜챦겠어? 병원에 가야지."
"자식 잘못 키운 에미가 무슨 염치로 살겠다고 병원엘 가. 어서 나가. 나가라구…"
엄마는 몸을 반쯤 일으키다가 다시 쓰러지며 울부짖었다.
그때, 현섭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사태를 짐작한 아버지 얼굴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일렁거렸다. 엄마에게 우울증까지 만들어주고도 모자라 죽음까지 결심하게 한 아들을 아빠는 용서할 수 없었다.
아빠는 매를 들어 닥치는 대로 현섭을 때렸다.
"너 같은 놈은 죽어야 돼. 사람이라면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아버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평소에 사랑으로 대해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는 가누지도 못하는 몸을 일으켜 이성을 잃은 아버지 팔에 매달렸다. 현섭의 여동생도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었다.
"여보! 당신이 참으세요. 이러다 애 죽이겠어요. 잘 못 했다고 빌 쟎아요, 여보!"
"필요없어. 이런 못된 놈은 이제 필요 없다구!!"
얼굴까지 창백해진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정없이 매질을 했다.
잠시 후,
실신할 것만 같은 엄마가 현섭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 아버지의 매질은 그쳤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고 밖으로 나갔다. 죽도록 매를 맞은 현섭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울었다.
마디마디 도려 낸 것 같은 아픔이 송곳처럼 현섭의 몸과 마음을 찔러왔다. 잘못은 했지만 죽도록 매질을 한 아버지가 현섭은 너무나 야속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손끝이 떨려왔다. 그리고 목숨까지 끊으려 했던 엄마도 너무 미웠다.
현섭은 누워 있던 몸을 반사적으로 일으켜 세웠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집과 학교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일로 해서 엄마가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목덜미까지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이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섭아! 현섭아! 잠깐 일어나봐."
현섭은 눈을 부스스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잠깐만 나와 봐라."
굵은 아버지 목소리에 현섭은 거실로 나갔다.
어두운 거실 한가운데에는 촛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케이크 위에 놓여진 열여섯 개의 촛불이 빨리 오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케이크 바로 옆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오늘이 네 생일이 거 아니?"
엄마의 말에 현섭은 눈물이 핑 돌았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고개 숙인 아버지 얼굴에서도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잘못했어요, 다음부터는 엄마, 아빠 마음 아프게 하지 않을께요…"
"생일날 너를 때렸다고 아빠가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는데…"
아버지는 슬픈 눈으로 현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목 메인 소리로 말했다.
"많이 아팠지. 아빠가 너무 속상해서 그랬어. 착하기만 했던 네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어서 말야. 아빠를 이해해라. 자식은 매를 맞고 하루만 아프면 되지만, 부모는 두고, 두고 마음이 아픈 거야."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는 더 슬퍼 보였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너하고 현정이는 엄마, 아빠가 살아가는 이유야. 자식은 부모에게 불씨와도 같은 거야. 어둠을 밝혀주기도 하고, 때로는 차가운 손을 녹일 수 있는 따스한 불씨가 되기도 하지. 지금 우리가 아프지만, 아픔이 때로는 길이 될 때도 있어. 고드름은 꺼꾸로 매달려서도 제 키를 키워 가쟎아. 아빠는 널 믿어."
현섭은 젖은 눈으로 케이크의 촛불울 껐다. 그리고 엄마가 잘라준 케이크 한 조각을 입 속에 넣었지만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사방은 너무나 고요했다. 분주하게 초침을 실어 나르던 시계는 벌써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스크랩 해갈께요 ^*^
오랜만에 촌장님의 글을 접하니 감사의 눈물이 날려고 하네요 이제 건강하시지요 부모님의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에 잠시 머뭄니다...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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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촌장님의 글을 접하니 감사의 눈물이 날려고 하네요 이제 건강하시지요 부모님의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에 잠시 머뭄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