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안전 운전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은 많습니다만 의사소통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HMI, 즉 human-machine interface에 엄청난 개발비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자동차에 엄청나게 많은 기능이 제공되기 때문에 운전자가 불편하지 않게 그 많은 기능들을 조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주행 보조 장비들이 늘어나면서 자동차가 스스로 판단하고 조작한 사실을 운전자에게 알려줘야 할 필요까지 생겼습니다. 정말로 자동차와 사람이 대화를 해야 할 지경입니다. 그리고 음성이나 제스처 인식이 이제는 더욱 중요한 HMI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자동차가 다른 자동차와, 그리고 교통 시스템과 무선으로 소통하는 V2V 또는 V2I 등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즉 할 말이 점점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안전한 교통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소통 가운데 하나는 여전히 표지판이나 신호등과 같은 사람과 교통 인프라의 의사소통일 것입니다. 이것들은 운전자나 보행자가 그에 따라 안전하게 운전 또는 보행하도록 하기 위한 핵심적 소통 수단입니다. 그래서 신호등이나 표지판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불빛이나 기호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아쉬운 표지판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법으로 정확한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즉 부가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표지판들이 문제입니다. 대부분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신호등 밑에 ‘직진 후 좌회전’이라 써 있는 표지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차선의 통행 방법을 안내하는 보조 표지판들도 그렇습니다. 버스 전용 차로가 있는 곳에는 차선 모양 표지판 아래에 진행 화살표와 함께 차선마다 각각 ‘버스 전용’, ‘1차로’, ‘2차로’, ‘3차로’ 등의 방법으로 써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길게 ‘전방 200m **앞 교차로’ 등과 같이 어느 교차로의 통행 방법을 설명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설명하기도 합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요즘 눈을 혹사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글씨가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는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교통 표지판의 경우에는 파악할 만큼 가까이 다가서면 이미 늦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해외에서 운전할 경우 제가 알아볼 수 있도록 기호로 표시한 안내 표지판을 만나면 정말 반갑습니다. 즉, 국제화 시대라고 하면서, 외국인 100만명 거주라고 하면서도 우리나라 표지판은 매우 국내용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동차 선진국인 독일에도 ‘Einbahnstrasse’와 같이 읽기도 어려운 자국어 표지판이 있기도 합니다. 일방통행로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기호로 설명한다면 훨씬 멀리서도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외국인들도 손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직진 후 좌회전’이나 차선 통행 방법 안내는 정말 손쉽게 기호로 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렇지 않아도 표지판이 홍수인 시대에 표지판의 면적을 줄일 수 있으므로 혼선을 방지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또 최근 부쩍 늘어난 교통 시설물이 있습니다. 바로 원형교차로입니다. 교외의 작은 교차로에 원형교차로를 설치하면 불필요한 신호등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대도시에도 원형교차로를 이용하여 끊김이 없는 교통 흐름을 유도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사용 방법의 교육이 선행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원형 교차로는 무조건 교차로 안에서 주행하는 차량이 우선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원형교차로 안에서 내 쪽으로 오는 차가 보이기만 해도 정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육의 문제가 전부는 아니더군요. 아주 이상하게 생긴 원형 교차로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외에서 T자형 삼거리를 원형 교차로로 변경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경우는 T자의 교차점에 원형교차로의 원 중심이 놓여야 정확한 원형 교차로입니다. 그런데 좌우 직진 도로는 그대로 둔 채 아래쪽에서 합류하는 도로만 반원을 통하여 진입, 진출하는 이른바 ‘반원형교차로’를 만들어 놓은 곳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아마도 접도 구역을 변경하지 않는 최적의 설계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런 반원형 교차로는 매우 위험합니다. 좌우로 직진하는 차량은 여전히 자신이 직진 차로를 달리고 있으므로 우선 순위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원형 교차로에 진입하는 후순위 차량임에도 말입니다. 아주 큰 사고의 원인이 됩니다.
이렇듯 교통 시설물들은 소통과 효율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명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명료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최소한 나라면 이 표지판, 이 원형교차로를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