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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미사 전례] (9) 하늘에서의 찬양이 땅에서도 울리는 대영광송
자신보다 하느님께 영광 드리도록 이끌어
여러분도 잘 아는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로 시작하는 「가톨릭 성가」 423번은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때와도 같습니다”(시편 90,4; 2베드 3,8 참조)를 기본으로 했습니다. 이와 연관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이 성가의 구절을 곰곰이 묵상하다가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하느님께 이렇게 청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 당신 눈에는 천 년도 지나간 어제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당신 눈에 만 원을 주십시오.” 그리고 조금 후에 하느님의 응답이 들렸습니다. “그래, 내가 주마. 그러나 하루만 기다리렴.”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그것을 위해 살아갈 때 하느님은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주시리라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 모인 교회는 오래전부터 대영광송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와 어린양께 찬양과 간청을 드렸습니다.
동방에서 전래한 이 찬미가의 저자나 작사 연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동방에서는 이 찬미가를 성무일도의 아침기도 중에 불렀습니다. 서방 교회에는 4세기에 흘러들어와서, 4세기 중엽에 교황 집전 성탄 미사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7세기의 「그레고리오 성사집」에 따르면, 사제 집전 미사에는 오직 부활 주일에만 허용했다가 얼마 안 있어 새 사제의 첫 미사에도 부르게 했습니다. 현재처럼 주일과 축일 미사에까지 확대된 것은 11세기 말경입니다.
대영광송은 시편, 찬가 등을 담은 전형적인 찬미가입니다. 서언인 천사의 노래, 본론인 하느님 찬양과 그리스도 찬양, 마지막은 영광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동들에게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노래’(루카 2,14)는 앞부분과 뒷부분이 서로 병행, 곧 하늘과 땅, 하느님과 사람, 영광과 평화로 짝을 이루면서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평화를 강조합니다.
본론의 첫 부분인 하느님 찬양은 ‘기리나이다’, ‘찬미하나이다’, ‘흠숭하나이다’, ‘찬양하나이다’, ‘감사하나이다’라는 여러 동사들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본론의 두 번째 부분인 그리스도 찬양은 그리스도에 대한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 하느님, 성부의 아드님’,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호칭들을 통해 그분의 본질과 신분을 장엄하게 밝혀줍니다.
이어서 그분께 용서와 구원을 청하는 세 번의 간청 기도로 이어집니다. 다음으로 ‘홀로’로 시작되는 세 번의 찬양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어떤 신이나 권력자와 비길 수 없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분임을 강조합니다. 유다인들은 시편을 읊고 나서 그 끝에 영광송을 바쳤고, 이를 본받아 초기 교회도 주요 기도나 찬미가를 영광송으로 끝맺곤 했습니다.(필리 2,6-11 참조)
자신의 영광을 더 우선시하며 살기가 쉬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대영광송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인도합니다. 이런 대영광송의 의미를 예수회 삶의 모토인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Dei Gloriam)가 잘 밝혀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교회] 사순 시기는 모두 며칠인가요?
“사순 시기는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때”(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규범 27항)입니다. 파스카 축제란 성금요일, 성토요일, 주님 부활 대축일의 “파스카 성삼일”이며 그 전야미사인 ‘주님 만찬 미사’로 시작합니다.(전례주년 19항) 그러므로 사순 시기는 ‘주님 만찬 미사’ 직전 성주간 목요일에 끝납니다.(전례주년 28항) 사순 시기의 시작일은 ‘재의 수요일’입니다.(전례주년 28항)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목요일까지를 세어보면 모두 44일입니다.
한편, ‘사순’(四旬; quadragesima)이라는 말은 ‘40’을 뜻합니다. ‘사순 시기’는 ‘40일의 기간’이라는 뜻이지요. 7세기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교회는 사순 시기가 ‘재의 수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라고 잘못 알고 있었고, 성삼일이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의 삼일이며 사순 시기에 속한다고 오해하였습니다. 사순 시기는 46일이 되었는데, 이를 40일로 맞추려고 사순 시기의 주일이 사순 시기에서 제외된다는 억지스런 주장도 나왔습니다.
원래 사순 시기는, 고해성사를 준비하는 참회자들이 성목요일에 있을 ‘화해예식’에서 죄사함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40일의 피정 기간으로서 사순 제1주일에 시작하였습니다. 당시는 고해성사의 기회가 평생 단 한 번뿐이었습니다. 죄가 있지만 고해성사의 기회를 아껴서 미루고 있던 대부분의 신자들은 참회자들의 피정기간에 스스로 동참하였으며 더 일찍 더 열심히 준비하려고 사순 제1주일 직전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고 단식하였는데, 이 관습이 퍼지면서 7세기에는 재의 수요일이 사순 시기의 시작일로 굳어졌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관습을 존중하여 보존하였기에 오늘날 사순 시기는 44일의 기간이 되었습니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8) 우리나라에는 성지가 없다?
성지(聖地)와 성지(聖趾)는 구분되는 용어
- 이스라엘 주님 눈물 성당. 성지(聖地)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생활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한 땅인 팔레스티나를 가리키는 용어’다.
성지(聖地, terra sancta), 예수님 활동하셨던 팔레스티나
성지(聖趾, loci sancti), ‘거룩한 장소’로 교회법상 ‘순례지’
겨울의 추운 기운이 물러나고 봄이 다가오면서 많은 분들이 성지순례를 다녀오셨거나 계획하고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사순 시기인 요즘은 성지순례 중 십자가의 길을 바치기 참 좋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은 우리나라에는 성지(聖地)가 없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 위원회가 펴낸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에는 전국 곳곳의 성지가 167곳이나 있습니다. 또 이 책에는 모두 실리지 않았지만, 각 교구에서 성지로 부르는 곳들도 더 있습니다. 그런데 “성지가 없다”니 이상하게만 들립니다.
먼저 성지(聖地, terra sancta, holy land)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봐야겠습니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은 성지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생활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한 땅인 팔레스티나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정의합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우리나라에 오신 적이 없으니 우리나라에 성지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성지’라고 부르는 곳들은 어떤 곳들일까요.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순교자들이 순교한 곳, 순교지를 ‘치명 터’라 불러왔습니다. 순교지를 성지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56년 세웠던 새남터 순교 기념탑이 계기가 됐습니다.
새남터 순교 기념탑에는 순교지인 새남터를 성지(聖址), 바로 ‘거룩한 터’라고 표기했습니다. 거룩한 땅이라는 의미의 성지(聖地)와도 구분되면서 ‘치명 터’의 의미도 담은 용어였습니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도 성지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이지요. 보편교회에서도 예수님의 삶과 수난을 상기시키는 장소, 성인들의 순교지나 묘소, 성모발현지 등을 거룩한 장소(loci sancti, holy place)라고 성지(聖地)와 구분해 불러왔습니다. 우리말로는 발자취, 자리, 터라는 뜻의 지(趾)를 사용해, 성지(聖趾) 혹은 성역(聖域)이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글의 전용화로 성지를 한글로만 표기하면서 거룩한 땅을 뜻하는 성지(聖地)와 치명 터를 일컫는 성지(聖址)를 혼용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순교지가 아닌 곳들도 성지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성지’라고 부르는 곳들은 교회법적으로 ‘순례지’(Sanctuariis)에 해당합니다. 교회는 신심 때문에 빈번히 순례하는 성당이나 그 밖의 거룩한 장소를 교구 직권자의 승인을 통해 순례지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교회법 제1230조) 국가 순례지의 경우 주교회의가, 국제 순례지의 경우 교황청이 승인하게 됩니다.
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 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성지를 크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성인·복자·하느님의 종이 순교한 곳이나 무덤이 있는 곳 중 지속적으로 전례가 이뤄지는 곳은 ‘성지’(聖趾),
국내 순교자들과 연관 있는 장소들은 ‘순교사적지’,
순교자들과 관련이 없지만 신앙선조들의 삶과 영성이 담긴 곳, 또는 교구 직권자가 순례지로 지정한 곳은 ‘순례지’입니다.
그냥 떠나는 성지순례도 좋지만, 내가 가는 곳이 어떤 의미를 지닌 성지인지 알아보고 순례한다면 성지순례에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알기 쉬운 미사 전례] (8) 모든 것을 정화하고, 세례의 은총을 청하는 성수 예식
하느님 자녀로서의 모상 되찾도록 정화
- 미사의 참회 예식으로서 성수 예식은 ‘세례-파스카-참회’의 관계를 탁월하게 드러내 주며, 미사에 제대로 그리고 흠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물은 동전 앞뒷면처럼, 모든 생명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파괴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여인에게는 우물의 물을 달라고 청하면서, 당신이 줄 물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절대 마르지 않는 샘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샘이리라.
물은 또한 정화와 쇄신의 힘도 있습니다. 특히 세례의 물은 우리에게 과거의 잘못을 씻어 주고 새사람, 곧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합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세례성사-생명의 축제」에서 세례수의 정화 특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수는 아이 안에 나타나는 둘도 없는 하느님 모상을 흐리게 하는 모든 것을 정화하고자 한다.”
교회는 자연적이고 우주적인 물의 기본적인 특성을 성서적 배경과 함께 전례에 도입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수 예식입니다. 물을 축복하여 가정에서 사용하는 관습은 이미 5세기경부터 전해 내려왔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북 유럽에서는 중세 초기 이래 수도원이나 묘지 등에서 물을 축복하고 행렬하면서 성수를 뿌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레오 4세 교황(847-855) 이래 성수 예식은 주일미사 전 예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비오 5세 교황은 이 예식을 「로마 미사 경본」(1570)에 수록하여 주일 낮미사 전 예식으로 고정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후에는 참회 예식에서 성수 예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는 “주일, 특히 부활 시기의 주일에는 통상적인 참회 예식 대신에 경우에 따라 세례를 기념하는 성수 예식을 할 수 있다”(51항)라고 하며, 부활 때 받은 세례를 상기시키며, 본래 하느님의 모상을 흐리게 하는 것을 정화하여, 주님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미사에 흠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성수에 지역의 문화와 풍속에 따라 소금을 넣을 수 있습니다. 소금을 넣을 때는 예언자 엘리사 이야기를 상기시키고(2열왕 2,19-22) 소금이 갖는 정화적인 상징성을 확인시키는 축복을 합니다. 성수의 본질적인 요소는 물과 축복기도이기에 꼭 소금을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성수 축복 이후에 사제가 성수를 뿌릴 때 교우들은 고개를 숙여 십자 성호를 긋고, 성가를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부활 시기가 아닌 때에는 ‘Asperges me’(‘우슬초로 정화수를 뿌리소서’ 시편 51,7)라고 하여, 에제 36,25-26과 1베드 1,3-5로 구성된 찬미가를 부릅니다. 반면에 부활 시기에는 전통적으로 ‘Vidi aquam’(‘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에제 47,1-2.9)과 스바 3,8과 다니 3,77.79 그리고 1베드 2,9에서 취한 찬미가를 부릅니다.
미사의 참회 예식으로서 성수 예식은 ‘세례-파스카-참회’의 관계를 탁월하게 드러내 주지요. 세례를 통해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모상을 되찾도록 정화시켜 주는 성수 예식은 미사에 제대로 그리고 흠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정결한 물을 뿌려 모든 부정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고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리라.”(성수 예식, 부활 시기 아닌 때, 따름 노래 2)
[사순 특집] 사순 시기의 음식들
절제와 보속 정신 깃들인 최소한의 식사, 참회하며 주님 수난 동참
사순 시기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며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깊게 묵상하는 이때에는 주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한 고행과 희생, 단식, 금육 등 절제의 삶이 권고된다. 음식의 양과 종류를 제한하는 금육과 단식은 구약 시대에서부터 볼 수 있다. 모세와 엘리야, 다니엘 등이 하느님과 신비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단식했다. 신약 성경을 보면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단식하셨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사순 기간 동안 낮에는 단식하고 해가 진 다음 한 끼만 먹었다. 연중 금요일에도 좋은 음식이나 고기와 술을 먹지 않았다. 음식의 절제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하며 참회와 회개, 마음의 정화로 또 다른 하느님 뜻에 마음을 여는 의미가 스며있다. 자기를 이기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계기로도 가치가 크다. 이런 배경으로 사순 시기에 음식을 절제하는 과정에서 자주 먹게 된 음식들을 몇 가지 꼽을 수 있다.
브레첼 - 기도하는 모습 닮은 빵, 사순 시기 대표하는 음식
매듭 모양의 ‘브레첼’(Brezel)은 프랑스의 바게트(Baquette)와 비교될 만큼 독일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빵이다. 짙은 나뭇가지 빛깔에, 가운데 매듭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개의 ‘팔’과 같은 모양이 특징이다. 영어 ‘프레츨’(Pretzel)로 익숙한 이 빵의 기원과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부분 가톨릭과 연관이 있다.
사순 시기에 육류 외에도 유제품 섭취를 피하는 단식을 했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밀가루, 소금, 물을 사용해 빵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브레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모양은 기도를 장려할 목적으로 수도자들 혹은 고대 로마인들이 양팔을 교차시켜 손을 반대편 어깨에 대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한 수도자가 어린이들이 팔짱 끼고 기도하는 것에 착안해 빵 반죽을 매듭지어 빵 모양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기도나 성경 구절을 외운 어린이들에게 상으로 브레첼을 주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독일 전역은 물론 특히 남부 지역에서 많이 먹는다는 브레첼이 정확히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111년 독일 제빵사 길드 문장에 브레첼이 등장하기에, 그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1185년 프랑스 알자스 지역 몽생오딜 수녀원의 원장 수녀가 편찬한 백과사전에도 브레첼 삽화가 삽입돼 있다.
브레첼이 지닌 종교적인 상징성이 부각되며 16세기 독일에서는 성금요일에 브레첼 먹는 것이 관습으로 자리 잡았고, 당시 신자들에게 브레첼은 사순 기간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여겨졌다.
생선 요리 - 연어·피쉬 앤 칩스 등, 육류 대체하는 메뉴
아일랜드 출신 패트릭 커닝햄 신부(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는 사순 기간에 저녁 식탁에서 자주 연어를 먹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는 “연어는 오메가3와 다량의 비타민 A를 함유하고 있어서 붉은 고기를 피하려는 신자들에게 좋은 음식 재료가 됐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에서는 이렇듯 생선이 사순 시기나 금요일에 고기를 대체하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영국의 대표적인 음식 ‘피쉬 앤 칩스’(Fish and Chips)도 비슷한 배경에서 금요일에 먹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영국에 이 음식이 널리 퍼진 것은 포르투갈에서 이주한 유다인들에 의해서다. 대서양을 접해 올리브오일이 풍부했고 대항해 시대를 개척했던 포르투갈은 유럽 최초로 생선을 튀겨먹는 문화를 만들었다. 포르투갈에 살던 유다인들은 일을 하지 않는 안식일에 율법을 지키기 위해 전날 미리 생선을 튀겨 놓고 안식일에 먹었다. 피쉬 앤 칩스는 영국에 온 유다인들이 생선튀김을 전래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포르투갈의 생선튀김 문화는 선교사들에 의해 일본에도 전해졌다. 일본의 ‘덴푸라’(天ぷら)는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나가사키를 통해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던 선교사들은 금육을 지키며 튀긴 생선을 먹었고, 교토·오사카를 거쳐 도쿄에 전파돼 덴푸라라는 이름으로 정착됐다.
맥주 - 중세 수도원에서 보급, 곡물 영양소 보충 역할
맥주는 기원전 3000년부터 양조된 가장 오래된 알코올음료이지만, 많이 알려진 대로 중세 유럽 수도원을 통해 지금과 같은 다양한 맛의 맥주가 제조됐다. 여기에는 사순 시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액체빵’이라고 불릴 만큼 곡물로 만들어진 맥주에는 많은 영양소가 들어 있기에 사순 기간 내내 단식을 해야 했던 중세 때에는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보충하는 역할을 했다.
수도자들은 방문객들이나 빈민들에게 맥주를 나눴다. 성 파올라 수도원의 경우 자신들이 소비하는 이외의 맥주 모두를 가난한 이들이 마실 수 있도록 했다. 1634년 뮌헨 정부에는 일반 양조업자들의 신고가 접수됐는데, 그것은 수사들이 나누는 맥주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현재 뮌헨의 대표적 브루어리 파울라너(Paulaner)는 1634년을 브루어리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당대는 또 30년 전쟁으로 많은 것이 황폐해지고 오염돼 깨끗한 식수를 마시기 쉽지 않았다. 유일하게 살균 과정을 거친 맥주는 그런 면에서도 도움을 주는 음료였다.
독일의 ‘복 비어’(Bock Bier)는 사순 시기에 태어난 맥주로 알려진다. 북독일 아인베크(Einbeck)에서 처음 양조된 복 비어는 강하고 힘찬 느낌의 풍미와 진한 도수를 가진 맥주였다. 수도자들은 맛있고 영양 많은 맥주를 예수님 수난을 묵상하는 때에 먹어도 좋을까 고민에 빠져 교황에게 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파올라 수도원 맥주는 Holy Father Beer, 성스러운 하느님의 맥주로 불렸다. 그리고 독일어로 구세주를 뜻하는 살바토르(Salvator)라는 이름이 붙었다. 1751년 살바토르는 공식적인 수도원 대표 맥주로 등극했다.
전례-기도하는 교회 (1) 시작하며 - 전례를 이해할수록 신앙은 자란다
본당에서 사목하면서, 전례 교육을 원하는 신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신자들이 원하는 교육의 내용을 물어보면, 대부분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때마다 전례 전공자인 저도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더욱이 과연 교회가 거행하는 전례를 다 설명하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가지게 됩니다. 사실 전례를 명확히 정의하고 ‘전례’라는 단어가 포함하는 모든 영역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폴 드 클레흐(Paul de Clerck)라는 프랑스 전례학자는 『전례의 이해』라는 책 서문에서 “전례를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전례를 공부할수록 전례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지혜와 유익함, 전례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전례를 이해해서 얻게 되는 신앙의 유익은 무엇일까? 그 예를 들면, 미사 거행의 순서와 구조를 이해할 때 신앙의 근본적인 구조를 깨닫게 됩니다. 미사는 시작 예식에 이어서 미사의 중심 중 한 부분인 말씀의 전례로 이어집니다. 이 부분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 그 중심을 이룹니다. 사실 이 첫 부분이 시작되는 방식은 대단히 상징적입니다. 미사 참례자는 모두 듣는이가 되고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미사의 시작인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인사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초대하고, 그 만남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미사의 시작 예식과 말씀의 전례는 바오로 사도가 말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라는 신앙의 구조를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고 말씀을 건네시는 분을 만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인간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전례는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성찬의 식탁 곧 구원으로 초대하고 계시며, 이 초대에 응답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처럼 전례를 이해할 때, 우리가 참례하는 미사성제는 이해할 수 없고 지루하지만 해야 하는 의무나 숙제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며 동시에 내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구원의 신비가 실현되는 장(場)이 됩니다. 물론 전례를 이성적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곧바로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깨닫고, 그 기쁨을 충만히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하는 만큼 사랑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거행하는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를 하느님과 더 친밀한 관계로 이끌어 줍니다.
앞으로 우리는 전례와 전례 거행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그 의미를 살펴보며 교회가 전례를 통해 거행하는 구원의 신비를 더 깊이 깨닫고 살아갈 자양분을 얻고자 합니다. 비록 전례가 포함하는 영역이 너무 넓어서 다 살피는 일이 어렵더라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가장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들을 이해하고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기회가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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