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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들으라
시편 81:1~16
오늘 저녁 봉독한 시편 81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잊을 수 없는 명절이요, 감명 깊은 절기인 장막절을 기념하는 시가 아닌가 짐작됩니다. 장막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바 있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장막절을 지킬 때 자기의 집을 떠나서 장막을 가지고 들에 나가 지내면서 옛날 자신의 조상들이 장막생활을 하던 것을 기념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이 시편을 읽는 동안에 예배드리는 큰 두 가지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하나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교훈을 받는 것입니다.
가령 본문 1절을 보세요.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2절에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 지어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찬송을 부릅니다. 큰 소리로 높이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찬송은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만 합니다. 찬송은 입으로 부를 뿐만 아니라 악기를 사용합니다. 여기 본문에도 소고를 치고 수금에다 비파를 곁들여 합주를 하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3절에 보면 나팔도 불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께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적인 집회에서 우리는 이것을 꼭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조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지 사람을 위한 행사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워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첫째 할 일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둘째 할 일입니다.
4절에 보니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은 훌륭하고 좋은 일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왜요?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에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땅에서 나그네들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들과 히브리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통역자로서 그 형들에게 말해 준 것이 창세기 42장 23절에 나옵니다. 애굽 사람들은 야곱의 집에 대해서 “방언이 다른 민족”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을 감사하고 더 은혜스럽게 여기기 위해서는 구원받기 전의 상태를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몇 가지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을 들었나니 이르시되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6절)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쓰러지게 만들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셨습니다.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진흙과 벽돌을 나르던 큰 바구니를 제거시키셨습니다. 그러니까 히브리 남자들은 짐을 지고 다니고 히브리 여자들은 광주리를 이고 다니거나 안고 다니면서 노예의 사역을 했습니다.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것을 다 벗겨 주셨습니다.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잊지 않고 기념하는 것이 장막절이요, 유월절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 민족이 3.1절을 잊을 수 없고, 8.15 광복절을 감격 속에서 지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민족이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함께 일어났던 것이 3.1 운동이요,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날이 8.15 광복절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산 역사로 그 당시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랜 세월이 흐르노라면 그 설움과 억울함 그리고 해방의 감격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거의 억울했던 일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주 국민으로서의 위치를 지킬 수가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하나님은 홍해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건지셨습니다. 그때 그들은 견디기 어려운 환난과 핍박 속에서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저희의 고난 당하는 모습을 보셨고, 그들을 치려는 원수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셨습니다. 뇌성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부르짖음에 대답하셨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고난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이 주어진 사건으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시내산은 은밀한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은 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처럼 은총을 베푸셨지만 이스라엘은 목이 곧고 완악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은망덕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뿐이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죄의 사슬에 매여서 종노릇하며 사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하나님은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셔서 하나님의 자녀, 그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해야 하겠는데, 그러지 못하고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썩어가고 있으니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결과밖에 없는데, 오늘 우리가 그와 같은 처지는 아닙니까?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처사를 참으셨습니다. “내가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너희는 거기에서 화를 냈고, 믿음이 없는 불만투성이의 백성이었지만 나는 계속 네게 은총을 베풀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출애굽기 17장 7절 말씀을 보세요.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주시고 인도하셨는데, 물 때문에 좀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고 모세와 다투며 야단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급했던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시여,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이러다가는 내게 돌질을 하겠습니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우리는 좀 다른 것이 있습니까?
이제 본문 8절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놓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의 모임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9절 말씀에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고 했습니다. 십계명 중에 첫째 계명의 말씀입니다. “나는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던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그러므로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우리의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죄의 종이 되어서 죽게 된 것을 불쌍히 여기사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그를 믿는 사람마다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구원받았으므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사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은 무엇이든지 한 가지를 자기의 신으로 섬기고 삽니다. 가장 많은 것이 자기 자신을 신처럼 생각해서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약한 자인 것을 말하는 것 뿐이야. 세상에서 누굴 믿어? 나를 믿지. 약한 인간들이나 하나님이 필요한 거야.” 이렇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자기 자신을 신격화하는 사람이 그가 원하는 것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극적인 것은 자기 영혼의 깊은 갈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그의 자만심이 무너지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자신을 믿는 분은 안 계십니까? 분명히 들으세요. 자신을 믿다가는 그 자신이 무너지고 부끄럼을 당하게 될 때가 옵니다. 나 자신을 신으로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라는 것도 오늘날에 제공된 하나의 인기 있는 신입니다. 물론 국가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신격화될 때 그 신은 값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 값은 인간의 자유 상실입니다. 국가를 신처럼 섬길 때 개인의 자유는 이 신에게 넘겨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잃음으로써 안전하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유가 없는 인간은 살았으나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것은 물론 정치적인 자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심령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자유로운 몸이지만 영적으로는 죄로 말미암아 구속되어 죄의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심령이 자유함을 얻음으로 참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국가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라 잃은 설움을 당한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도 나라 잃고 외국에 가서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혹 어떤 동포는 외국에 가서 우리 나라, 우리 정부가 하는 일이 못마땅해서 소위 반정부 운동을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래도 이런 조국이 있기에 그만큼이라도 대접받고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라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신격화 될 때 국민의 자유는 박탈당하고 행복은 빼앗기며, 결국 국가의 운명도 파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권자가 국가와 정권을 혼동하여 집권자를 신처럼 섬기라고 하게 되면, 나라의 장래는 너무 비참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온 국민이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위함에서 헌신이 있을 때, 참된 나라가 서게 될 것입니다.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가 다른 신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신을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런 모양, 저런 형태의 신을 섬깁니다. 그러나 그 신들이 우리에게 평화와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체험합니다. 돈을 섬기는 맘몬신이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오, 주님.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품안에서 참 평안을 찾기까지는 조급하고 불안하나이다.”라고 고백한 어거스틴의 말은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옛날 이사야 선지자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 55:1-2)
여러분, 우리는 지금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기계 장치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의 횡포에 우리의 자유를 잃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이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물질의 노예입니다. 그러므로 참 자유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택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10절 말씀에 “나는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면과 약속을 발견합니다.
무슨 권면입니까? “네 입을 넓게 열라”는 권면입니다. 입을 넓게 여는 것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의 욕구가 강렬해질 때 입을 넓게 엽니다.
시편 119편에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우리 속담에도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며 부르짖는 자녀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고야 맙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 씨름을 하였습니다. 야곱이 도무지 놓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말했습니다. “날이 밝아오니 나로 가게 하라!”
이때 야곱이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습니다. 못 놓아 드리겠습니다” 하자 하나님의 사자는 축복하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기도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구할 것입니까?
큰 것을 구하세요. 위대하신 하나님에게 위대한 것을 구하세요. 주님도 큰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의 수원지에 연결된 우리 기도의 파이프가 너무 작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그 작은 파이프를 통해서 졸졸 나오기 때문에 감사도 감격도 찬송도 승리도 없이 언제나 부족한 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네 입을 넓게 열라!” 우리가 큰 기도의 파이프를 연결해서 축복의 샘물이 폭포수와 같이 콸콸 쏟아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믿을 만합니다. 하나님께 바로 입을 넓게 열어 얻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입을 넓게 열면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주신 도전이기도 합니다. “너희가 구한 것보다 더 주나 덜 주나 보라” 하는 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그에게 구할만합니다.
구약성경 말라기 3장에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 격려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구하면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이사야서 1장 19-20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11절 말씀을 보세요.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리 주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치 아니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12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했습니다. 이것은 옛날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패역성을 탄식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패역한 사람을 벌하시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4절 이하의 말씀을 보세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죄로 욕되게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저희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여기 하나님께서 내어버려 둔다는 말씀이 거듭 나옵니다. 하나님이 내버린 심령, 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벌하시는 다른 방법은 적극적인 방법으로 죄를 범한 사람에게 고난과 멸망을 당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벌하시는 것이 그의 뜻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을 보세요.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 할지라도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 이제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삽시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순종의 비밀
(시 81:1-16)
찬송 347장
시편 81은 아삽의 시로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과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절기에 낭송되었던 감사예배의 시편입니다.
내용은 과거 하나님께 불순종한 광야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함으로 백성들의 영적 각성을 촉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여호와께 순종하는 자들은 구원을 얻지만 불순종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강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지만 믿음이 없어 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와 같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심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담대히 믿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우리가 사는 길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