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중심, 교통의 요지, 대덕연구단지와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조성되어 있는 한국 최대의 과학 및 연구도시, 대전.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라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노잼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행을 떠나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미 국내에는 청정 자연을 뽐내는 강원도와 제주도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서울도 볼거리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하지만 좋은 곳도 여러 번 가니 새로울 것이 없어졌다. 해외여행이 힘들어진 이때, 낯설지만 재밌는 볼거리가 있는 국내 여행지를 찾다 보니 대전에 있는 '소제동'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소제동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증이 더해지면서 대전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소제동은 어떤 곳인가?
소제동은 지금은 자라진 '소제호'라는 큰 호수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소제동을 제대로 알려면 일제 시대부터 알아가야 한다. 약 50제곱 미터, 축구장 일곱 배 정도의 크기였던 소제호를 일제 시대 일본인들이 메워 마을을 만들었고, 이어 대전역이 세워졌다. 논밭이 대부분이던 대전에 1904년 경부선이,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대전은 교통의 요충지로서 발전해나갔다. 경부선 철도의 개발과 함께 철도 근로자들이 소제동에 모여살게 되면서, 한때 소제동은 '철도 관사촌'으로 불렸다. 대전이 철도와 함께 성장해온 만큼, 철도 관사촌이 자리 잡았던 소제동은 대전의 역사와 함께 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100여 채의 관사가 있었던 소제동은 도심이 옮겨가면서 성장을 멈추고, 점차 노후화되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30여 채 이상 철도관사가 밀집되어 있는 곳은 소제동이 유일하다. 1920-30년 대 일본식 가옥과 1960-70년대 시멘트 가옥이 함께 조화를 이뤄 만들어진 소제동의 골목길은 다른 장소에서 찾을 수 없는 골목의 모습이 독특함을 자랑한다. 좁은 골목 사이로 낡은 건물들이 틈틈이 모여있지만 그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다. 오히려 다음 골목에는 어떤 집에 숨어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곳이다.
소제동이 왜 주목받고 있는가?
사람들이 떠나버려 도심 속에서 외딴섬이 된 소제동은 2009년 도시환경정비 사업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재개발 계획으로 묶여버린 기차역 주변, 낡은 동네로만 여겨졌던 소제동이 다시 생명을 얻게 된 것은 민간 주도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부터다. 2016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가게를 열면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들은 버려졌던 가옥에 현대적인 감성을 더해, 갤러리, 음식점, 카페 등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현대적인 디자인이 더해졌지만, 오히려 옛 분위기가 두드러져 '뉴트로 (Newtro)'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곳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고 있다. 오래된 것들을 치워버리기 보다, 옛것 그대로 현재를 더하는 모습은 언제나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제동은 지역 문화 예술 활동의 장이자, 사람들이 모여드는 문화 공간으로 완벽하게 재탄생하며 대전을 대표하는 문화 관광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뉴트로의 성지로 인기인 소제동에서 둘러봐야할 곳
독특한 골목 풍경 덕분에 그저 골목만 둘러봐도 재미있는 곳이 소제동이다. 이곳의 터줏대감은 올해로 9주년을 맞는 '소제 창작촌'이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예술 창작 레지던시로 근대 문화유산인 옛 철도관사에 자리 잡고 있다. 이어 1972년에 문을 연 성실 여관을 카페로 개조한 '소제 화실'은 유화를 전공한 어머니와 디자인을 전공한 딸이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카페이지만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정감 가는 공간이다.
소제동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혁혁한 공을 세웠던 곳은 역시 맛집과 레스토랑이다. 울창한 대나무 숲 사이로 블렌딩 티를 판매하는 '풍뉴가'는 입구부터 내부까지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곳이다. 마치 숲속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집 안의 대나무 숲은 놀랍게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5년간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는 사이, 자연 대나무 숲이 만들어진 것이다.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풍경 아래, 다양하게 만들어진 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특별하다. '온천집'은 풍뉴가와 더불어 외관이 멋진 곳으로 꼽힌다. 새하얀 자갈밭 한 켠에 인공 온천이 있어 눈길을 끄는 이곳은 일식과 한식을 결합한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일본 료칸에 온듯한 외관과 인테리어에 한 번, 샤부샤부와 포케 등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메뉴에 한 번 더 놀라게 되는 곳이다.
소제동에서 인증 사진 맛집으로 꼽히는 곳은 '치앙마이 방콕'이다. 라탄 소재의 조명 갓,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물안개와 소품들, 그리고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외관의 모습까지. 인스타그램의 감성을 듬뿍 채워줄 수 있는 공간 디자인에 먼저 매료되는 곳이다. 이름과 분위기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태국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쌀국수, 볶음밥과 더불어 현지에 가까운 음식들을 판매한다. 치앙마이식 뼈찜, 쏨땀, 카오쏘이 등 태국 요리가 고팠던 이들의 마음을 채워주는 메뉴들이 있어 늘 사람들로 붐빈다.
예술 문화 관련
소제 창작촌
주소 대전광역시 동구 시울1길 1 (소제동 299-94)
https://blog.naver.com/tarzan9
소제 화실
주소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 새둑길 154 2층 (소제동 299-504)
운영시간 매일 11:00-21:30 화요일 휴무
https://www.instagram.com/cafe_soje/
음식점 및 카페
풍뉴가
주소 대전광역시 동구 수향길 31 (소제동 299-73)
운영시간 매일 11:00-21:00
https://www.instagram.com/png_soje/
온천집
주소 대전광역시 동구 수향길 17 (소제동 299-69)
운영시간 매일 11:30-21:00 브레이크 타임 15:00-17:00
https://www.instagram.com/oncheonjip_soje/
치앙마이 방콕
주소 대전광역시 동구 철갑3길 8 (소제동 299-617)
운영시간 매일 11:30-21:00 브레이크 타임 15:00-17:00
https://www.instagram.com/chiangmai_bangkok/
이밖에도 비밀 정원을 콘셉트로 경양식을 재해석한 슈니첼과 굴라시를 맛볼 수 있는 독일식 레스토랑 '슈니첼',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그래픽 디자인과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사로잡는 '베리 도넛', 대만의 야시장 거리와 음식을 재해석해 빈티지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동북아', 소금을 테마로 한 인테리어와 요리들이 눈길을 끄는 '솔트' 등, 신선한 도전이 느껴지는 다채로운 공간이 소제동 거리에 만들어져 사람들의 발길을 계속 이끌고 있다.
소제동에 대한 단상
누구는 소제동의 옛 역사를 보고, 왜색이 짙은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부르며 재개발을 진행해야 하는 곳이라고 여긴다. 물론 이곳은 일본인 철도기술자들을 위한 공동 주택이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일부 주택에는 일제 강점기의 주택이라 여길 만한 요소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면서 점차 이곳의 주택은 상황에 맞게 변형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소제동은 한국 근현대사의 모습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00년의 시간 동안 대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곳이기에 함부로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소제동이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고 여겼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늘 부러워했던 것이 있었다. 유럽 어디에나 가나, 수백 년이 넘는 건물을 지키며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전통을 일상에서 이어가는 모습이 참 멋있고, 부러웠다. 소제동은 이렇게 다른 나라의 모습을 부러워했던 마음을 해소시켜주는 곳이었다. 계속해서 현재의 모습을 보전하며, 이곳의 역사를 알리는 곳으로 남아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