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3부: 예복을 입지 않고 온 손님 이야기
성경에서 흰 예복이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이야기 중에서 "혼인 잔치와 예복을 입지 않은 손님"에 대하여 연구해 보면 흰 예복의 상징과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비유의 이야기를 해석하며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 (마 22:2,11)
1) 혼인 잔치에의 초청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속의 계획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비밀이 담긴 복음을 가르치시고, 그 복음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시고 회복시키셔서 하늘에 데리고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 구속의 계획의 일환으로 복음의 초청을 인간에게 보내시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초림하셨던 시대부터 세상 끝에 있을 재림 때까지, 세 번에 걸쳐서 복음의 초청을 인류에게 보내십니다.
1. 첫 번째 초청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싫어하거늘" (마 22:1~3)
첫 번째 초청은 예수께서 3년 반 동안 지상에서 복음을 전하시던 기간에 유대 민족에게 보내졌습니다. 유대 민족은 진리의 전수자로서 택함을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귀한 특권과 의무를 게을리할 뿐 아니라, 진리를 거절하고 싫어하여 진리이신 예수님을 못 박아 죽임으로써 그들의 은혜의 시간이 끝났습니다. 이야기에 나오듯이, 혼인 잔치의 초대장을 보낸 발송인은 임금이었고, 초청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그것을 큰 특권으로 여기면서 감사해야만 하였지만, 그들은 왕의 초청에 무관심하였으며 그 초청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잔치에 참석하라는 첫 번째 초청의 기별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과 칠십 인을 통해서 주어졌지만, 유대인들은 그 복음 잔치에 참석하기를 "싫어 하"였고, 그 초청은 그들의 관심을 이끌지 못하였습니다. 즉, 청함을 받았던 자들이 그 잔치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 두 번째 초청
"다시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찐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마 22:4~7)
두 번째 초청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 A.D. 34년 스데반이 그리스도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가 됨으로써, 국가적으로 이스라엘의 은혜의 시간이 마쳐질 때까지 보내졌습니다.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리의 초청을 거절하고 국가적인 은혜의 시간이 마친 후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할 때까지 보내졌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보내진 이 기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희생을 보여주신 후에 보내진 초청의 기별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구원을 위한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음에도, 유대인들과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은 끝내 그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오순절에 내려진 놀라운 성령의 권능이 기별을 전하는 종들에게 충만하게 임했지만, 두 번째 초청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백성으로부터 무시당하고 말았습니다.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5절)
3. 세 번째 초청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마 22:8~10)
세 번째 초청은, 지금 보내어지고 있는 초청으로서, 이방인들을 향하여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때부터 세상을 위한 은혜의 시간이 마쳐지는 순간까지 보내어지는 초청을 말합니다. 두 번에 걸쳐서 보낸 초청이 특별하게 선택된 유대 백성으로부터 거절당하자, 임금은 마지막으로 이방인들을 향하여 세 번째 복음의 초청장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초청을 받고 찾아온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 속에 "악한 자와 선한 자"가 함께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섞인 무리였습니다. 모두가 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임금의 말을 순종하는 사람들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다만 이기적인 혜택을 얻기 위해서 왕이 초대하는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로서, 왕이 혼인 잔치를 위해서 어떠한 희생과 수고를 하였는지는 무관심하며,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주어질 보상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잔치를 찾아온 악한 자들의 목적과 동기는 순결하지 않았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임금에 대한 감사와 사랑과 충성의 정신이 없었습니다.
2) 심판과 조사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 (마 22:11~14)
고대 시대의 풍습을 보면, 왕이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할 때 그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이 반드시 입고 와야 하는 예복을 함께 보내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이야기에 보면, 혼인 잔치에 가득 찬 손님 중 예복을 입지 않고 참석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비유에서도, 임금은 손님들에게 예복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왜 그 예복을 입지 않고 왔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손님들은 왕이 보내어준 예복을 입고 옴으로써, 왕이 자신을 초청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시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임금이 보내준 예복을 입는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고서 참석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잔치의 참석을 위해, 임금이 요구하는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엄청난 값을 치르고 준비한 예복을 입는 일을 소홀히 하였던 것입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라는 임금의 질문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임금은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는 최종 선언을 내렸습니다. 임금이 잔치에 참석한 손님을 심사하는 일은 심판을 표상합니다. 잔치에 모두 참여는 할 수 있지만, 잔치에 참석하여 그 향연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조사하고 심판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이 비유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음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은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매주 교회에 나가서 예배 드리는 교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모두 다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는 아닙니다. 영생이라는 최후의 보상을 나누어 주기 전에 먼저 누가 의인의 유업을 차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이미 결정된 심사 결과대로 상벌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니" (계 22:12) 예수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며, 그 결과에 따라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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