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장 1~20절 선민의 특권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이 좀 더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비교하여 자기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셔서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셨기에 거룩한 백성, 의로운 백성이라고 착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편으로는 반발심도 생겼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반발을 예상한 듯 예상되는 질문들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 답변하는 방식으로 말씀을 이어갑니다.
유대인들이 반박할만한 첫 번째 예상 질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똑같은 기준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면 유대인의 유익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1절).
이에 대해 바울은 그 유익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 가장 큰 유익이라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2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계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차적으로 듣게 되고, 그 말씀을 맡아서 전하는 귀중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고 해서, 그 자체로 거룩해지거나, 의로워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맡은 만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유대인들(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고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그 미쁘심(신실하심)을 깨질 수도 있겠느냐(3절)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4절).
그러면서 시편 51:4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람이 거짓된 것이지, 하나님은 언제나 참되시고,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옳다고 말씀합니다(4절). 그러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예상될 수 있는 유대인들의 두 번째의 질문인데,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거슬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미쁘심(신실하심)으로 하나님의 의(義),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드러났다면 유대인의 불의함을 하나님께서 벌하시는 것은 부당한 것 아니냐?’는 질문입니다(5절, 7절).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거슬렀기 때문에 그것을 계기로 하나님의 의(義)가 더 드러나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의(義)를 부각(浮刻)시킨 결과가 되었기에 그 불의를 용납해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바울은 역시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6절).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6절). ‘자신들의 거짓(죄악)으로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면 용납받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7절), 그러니 선을 드러나게 하려고 악을 행하자고 궤변(詭辯)을 늘어놓는 유대인들을 책망합니다(8절).
그리고 그런 궤변을 늘어놓는 유대인들은 바울과 그 일행이 이러한 말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거짓된 말을 하는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고 반박합니다(8절).
그것은 유대인들의 궤변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방인들과 비교하여 낫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9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합니다(9절).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포합니다(10절, 시 53:3, 4). 유대인이든, 이방인(헬라인)이든 자신을 의롭다고 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10절부터 18절까지 시편과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죄악 된 인간들의 모습을 열거하고 있습니다(시 14:3; 14:2; 5:9; 140:3; 10:7; 사 59:7, 8; 시 36:1 참조). 인간의 완악함과 불신앙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할 말이 없게 만들기 위함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19절). 우리에게 율법이란 기준을 주심으로 우리가 이러한 의로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의로우심의 기준에 미칠 수 없는 죄인이야”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율법을 다 지켜서 의로운 삶을 살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그 율법을 통해 우리 스스로는 의인이 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길 원하신 것입니다.
[결단]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조금 더 의롭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죽임을 당해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나에게도 적용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도 의인이 아니야. 너도 죽어야 할 죄인이야”라고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교만을 내버려야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척, 의로운 척 하지 말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참된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이 진리 앞에 서서 겸손하게,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202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