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기 손자 사진 찍기
손 원
세 돌배기 손자가 탄 세발자전거와 돌배기 손자를 태운 유모차가 대문을 나선다. 아내와 내가 하나씩 맡아 어린이집을 향해 간다. 오전 9시 해가 중천에 있어 햇볕이 뜨거워 가로수 그늘 아래로 한참을 간다. 바깥에 나오면 두 놈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내려서 아파트 사잇길을 이리저리 뛰어간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할아버지는 연방 스마트폰 사진을 찍는다. 발발거리는 놈을 뒤쫓아가 촬영하기란 쉽지 않다. 예쁘게 잘 찍어 보려고 혼신을 다한다. 찻길을 건너면 어린이집이다. 큰 놈을 들여보내고 작은놈을 유모차에 태운 채 되돌아온다. 소공원을 지날 때면 내려달라고 안달이다. 거기서 미끄럼틀을 오르내리고 관목 사이를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다. 이렇게 한 시간쯤 바깥바람을 쐬고 집에 오면 제풀에 지쳐 낮잠을 잔다. 두 놈이 손에서 멀어져 한두 시간 여유를 가질 수가 있다.
찍은 사진은 그때그때 가족 대화방에 올린다. 아기 사진을 보고 모두가 좋아하고 금방 반응이 온다. 가족 간 자리를 같이하지 않아도 비대면 대화를 할 수 있어 좋다. 애들은 직장서 나는 집에서 장소 불문 언제든지 카톡을 주고받는다. 누구나 돌배기 아이의 일상에 관심이 많다. 노는 모습을 촬영하여 실시간 가족 간 공유하기도 한다. 요즘 스마트폰은 문명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 늘 소지하고 있기에 언제든지 꺼내어 촬영하면 된다. 중2 때 카메라를 갖게 됐다. 그때 찍은 사진을 사진첩에 넣어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사진에 대한 남다른 조예는 없지만 신중하게 찍어 지인께 건네면 훌륭한 선물이 된다. 화질 좋은 스마트폰이 나오기까지 카메라는 나의 애용품이었다. 서랍 속에는 골동품이 된 카메라가 몇 개 들어있다. 그런 카메라 덕분에 어릴 때 찍은 자식들 사진도 비교적 많이 갖고 있다. 가끔 사진첩을 넘기며 과거를 더듬어 보는 것도 낙이다. 성인이 된 남매에게 남긴 소중한 선물이기도 하다. 백일사진 돌사진 놀이동산 사진이라면 특별한 것이 없다. 별생각 없이 찍은 몇 장이 인기다. 밥통 내솥을 머리에 뒤집어쓴 모습, 누나가 탄 세발자전거 뒤쪽에서 비켜달라고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돌박이 애의 모습이 앙증스럽다.
요즘 스마트폰은 종전 카메라 못지않게 화질이 좋다. 기능 면에서 전문가라면 몰라도 일반인들에게는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하다. 늘 휴대하고 있기에 언제든지 편리하게 촬영할 수 있다. 늘 손자와 함께 있기에 수시로 찍다 보니 보관된 사진 양도 꽤 많다. 제 부모나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사진까지 상당량 저장하고 있어 내 핸드폰에는 수천 장의 손자들 사진이 들어 있다. 첫돌 잔치 때는 일 년간의 영상물을 모아 스크린에 띄웠더니 훌륭하다고들 했다. 어릴 때 전 과정이 영상물로 저장되어 있으니 훗날 손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돌배기 촬영 기법은 순간 포착이다. 공원 화단에는 사철 예쁜 꽃이 핀다. 봄 장미, 여름 나팔꽃, 가을 국화, 겨울 동백꽃 화단 앞이라면 스마트폰을 꺼낸다. 꽃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기가 쉽지 않다. 손자 녀석이 잠시도 기다려 주지 않고 설친다. 어쩌다 기회가 포착되더라도 핸드폰 조작 몇초 만에 기회를 놓친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놈의 행동을 주시해야만 촬영에 성공할 수가 있다. 그렇게 찍은 사진도 다수 있으니, 할아버지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벚꽃이 한창이던 이른 봄 돌배기 손자를 안고 셀카를 찍으려니 애가 벗어나려고 난동을 부렸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나서서 찍어 주었는데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나마 손자와 함께한 추억의 벚꽃 향연을 간직할 수 있었다. 돌배기 손자도 할아버지 핸드폰에 자기 영상물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할아버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다가와 자기 영상물을 보여달라고 떼를 쓴다. 그래서 가끔 같이 보면 깔깔거리기도 한다. 어린 것이 재미있는 영상이 나오면 큰 소리로 웃고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영상물로 손자와 즐기고 싶어진다. 요즘 가족 단톡방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고모, 왕고모까지도 애들 영상물에 찬사를 보낸다. 외출 시 아내는 손자의 옷차림에도 신경을 쓴다. 가족 단톡방에 올릴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돌배기 사진 하나 없는 우리 세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길지도 않은 인생행로의 한때가 단절된 느낌이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하루에도 많게는 수십 장씩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렇게 한 평생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누구나 인생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기성세대는 어릴 때 찍은 사진이 없어 기저귀 찬 할아버지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어 아쉽다. 한 세대 후면 3대의 기저귀 찬 모습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매 순간의 영상물이 한평생 이어지는 것도 흥미롭다. 그것마저도 없는 기성세대의 한평생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가 찍은 영상물이 손자에게 소중한 선물이자 인생 기록물이 되면 좋겠다. (2023. 6. 17.)
첫댓글 손자 사랑이 지극합니다. 할아버지 노릇 하느라 수고 많습니다. 한 명도 출가를 못 시킨 입장에서 한편으로 부럽기도 합니다.
저도 많이 부럽네요. ㅎ ㅎ
누구나 가져야 할, 할아버지로서의 기쁨을 못 누리니 말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 6살 때 쯤 찍은 사진이 가장 오래된 사진입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면서
어딜 가면 사진부터 찍고 구경을 했습니다. 찍은 사진을 손자에게 보여주며 단란하고 행복한 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