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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굳게 다문 비문(秘文) 일래
(一)
거처로 돌아온 산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서탁(書卓)에는 장문(長文)의 서신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전
부 한지(韓紙)가 누렇게 면색되었고, 묵빛 글씨도 연하게 퇴색
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오래 전에 받은 서신인 듯했다. 그
중 전서 몇 장이 대황촉(大黃燭) 불빛에 내용을 드러냈다.
- 총수(總帥) 전(前).
제(題) : 반여량 건(件).
문번(文番) : 사십삼.
글을 읽을 줄 알며, 필법(筆法)이 명인(名人)의 경지에 올라
있음. 그의 동기감응법은 안철주의 동거감응법과 틀림.
혼신을 다해 기력(氣力)을 짜내는 듯 감여를 펼치고 난 후에는
극심한 탈진 상태를 겪음.
기산옹(奇算翁) 배(拜).
- 총수(總帥) 전(前).
제(題) : 반여량 건(件)
문번(文番) : 일백이십칠.
나이는 이십오, 륙 세로 추측.
대관장의사(大棺葬儀社)에게 거둬짐. 그 전에는 유리걸식(流離
乞食)하고 다녔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았음. 상방에 모습을 드
러낼 당시, 워낙 피골이 상접해 목내이(木乃伊:미이라)를 보는
듯했다 함.
기산옹.
"벌써 일 년이나 지났군."
산귀는 전서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영락 십이 년... 일 년 전에 받은 전서였다.
산귀는 전과 같은 우(遇)를 범하지 않았다. 안철주가 제일 먼
저 동기감응으로 감여를 한 곳은 구강부(九江府) 덕화(德化)였
다. 그곳은 바로 원방파 총단이 있는 강서성이지 않은가. 거리
도 삼백오십여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그때 바로 회유(懷柔)
했어야 옳았다. 그랬다면 원방파가 다른 세 감파를 누르고 정
상에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을.
동기감응은 누가 뭐라고 해도 탁월한 감여법이었다. 네 감파가
일제히 그를 부정하면서도 암중으로는 그의 행방을 부지런히
수소문한 까닭이 거기 있었다. 만약 안철주가 네 감파 중 한
곳에 몸을 담은 상태였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으리라.
우유부단(優柔不斷)하게 망설인 것이 실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철주의 동기감응을 인정하고 회유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렇게 되면 그 동안 익힌 삼원산방 감여
법은 한낱 휴지조각이 되어버리지 않겠는가. 또한 총수라는 직
위는?
익히기가 극도로 난해한 동기감응을 받아들인다면 후인(後人)
도 제대로 양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주축이 되어 주었던 원로
감여가들도 설자리를 잃고 만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산귀가 망설이는 동안 안철주는 끊임없이 감여를 했고, 소문은
날개를 단 듯 중원 구석구석에 퍼져갔다.
합방파, 합국파, 원국파...
평소에는 발걸음도 늘여놓지 않던 세 감파의 감여가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확실히 안철주의 동기감응은 감여가를 매혹시키는
마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다른 세 감파의 총수들도 산귀와 똑같은 고민에 골머리를 앓았
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계륵(鷄肋)이라고나 할까?
이번에는 달랐다.
함구령(緘口令)을 내려 소문이 상방성 밖으로 번지는 것을 막
았다. 뿐만 아니라 원방파에서도 특출한 경지에 오른 원로 감
여가 일곱 명을 상방성에 파견해 반여량이 점지한 묘혈을 감정
하게 했다. 동기감응의 실체를 알아보려는 조처였다.
"허허허! 너무 예민하신 것 아닙니까? 나이래야 이제 겨우 스
물 여섯인데 감여를 익혔으면 얼마나 익혔다고..."
원로 감여가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길을 떠났다. 그런데...
- 반여량이 상방성 칠천 석 거부(巨富)인 홍달(洪達)에게 골라
준 묘혈은 상산령(象山嶺) 정중앙이었습니다.
용이 꿈틀거리듯 구절양장(九折羊腸)을 이룬 산들이 북풍(北
風)을 막고, 지(之) 자(字)로 움직여 산 밑 만하촌(晩夏村)을
거친 다음, 회돌아 거대한 주봉(主峰)을 이뤘습니다.
득수위상장풍차지(得水爲上藏風次之)라.
생기(生氣)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머문다. 고
로 바람을 막는 방풍(防風)에 역주할 것이며, 사라지는 생기를
간수하는 장풍(藏風)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볼 때, 묘혈(墓
穴)의 뒤편에 위치해 묘를 보호하는산, 현무(玄武)로는 이상적
입니다.
진산(鎭山)에서 동쪽으로 흘러 나온 산맥은 청룡(靑龍), 서쪽
으로 뻗어 내린 산들은 백호(白虎), 남쪽으로 만하촌 너머에
있는 조그만 구릉은 안산(案山) 역할을 하는 주작(朱雀).
주산(主山)은 여인의 몸, 좌청룡은 왼 다리, 우백호는 오른 다
리의 형태. 혈처(穴處:산의 기(氣)가 모인 곳)는 옥문(玉門)이
되고, 안산은 사내의 남근(男根) 형상입니다.
지세를 전반적으로 개관하여 묘를 잡는 형국론(形局論)으로 볼
때 최적의 요처이며, 저희 원방 감여로도 흠잡을 데 없는 길지
였습니다.
- 주봉은 둥글고 단엄(端嚴)하여 여인의 형상이었고, 안산은
구릉이었습니다. 조산(朝山)은 좌정한 남자의 모습.
여인이 장부(丈夫) 앞에서 비스듬히 누워 애교를 부리는 모양
세로 음양조화(陰陽調和)가 빼어났고, 좌선룡우선수(左旋龍右
旋水)로 산수(山水)까지 가미되어 천지인(天地人) 어느 것 하
나 나무랄 데 없는 길지였습니다. 옥녀단장형입니다.
- 반여량이 감여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는 나경도 없이 묘혈자리를 골라 앉았습니다 후에 나경으로
방위를 조사하고 산법으로 셈해 보니 길지가 분명했습니다. 그
러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이어졌습니다.
좌정(坐定)한 채로 지감(地感)을 느끼던 반여량은 갑자기 격한
신음을 토해 냈습니다. 안색이 검붉게 물들고, 당장이라도 칠
공(七孔)으로 검은 피를 주르륵 흘려 낼 것 같았으며, 꼭 감은
눈썹이 부르르 떨려 극심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 여실했습니다.
그 다음,
"휴우! 묘혈(墓穴)은 바로 이곳. 천광은 석자 세 치, 조금 얕
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 이상은 안 됩니다."
기어 들어가는 음성으로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가리킨 반여량
은 탈진한 듯 쓰러졌습니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섬뜩함을... <하략(下略)>
한결같이 극찬(極讚)이었다.
형국으로 보든 산방으로 보든 나무랄 데 없는 명당이었음이 틀
림없다. 때문에 이런 서신들을 보내 왔을 게다. 감여라면 누구
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이 허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극찬
을 해야 했으니 그 마음인들 오죽 쓰라렸으랴.
천광이 석 자 세 치라...
천광을 어느 깊이로 파느냐는 중요했다. 일반적으로 천광은 넉
자 이상을 파 내려가야만 한다. 석 자 세치라면 너무 낮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반여량은 분명히 석 자 세치라고 말했다.
옳을 것이다. 석 자 세 치 밑에 생기가 가두어져 있고, 그 이
상 파 내려간다면 대기와 접촉한 생기는 바람 따라 흩어지고
천하의 명당은 평범한 묘혈로 변하고 만다.
또한 음양(陰陽)으로 논하더라도 산 자는 양, 죽은 자는 음이
다. 그래서 생자(生者)의 집을 양택, 사자(死者)의 집을 음택
이라 한다.
장자(葬者:死者)는 음양(陰陽)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양의 기
운인 생기에 의지해야 한다. 음택은 시신과 땅이 만나 생기를
얻는 곳. 너무 깊으면 생기를 건드리고, 너무 얕으면 홍수가
일어났을 때 관이 유출되고 만다.
문제는 반여량이 점지해 준 명당이란 곳이 전부 강서성에 있다
는 점이었다. 그것도 명산이 아닌 평범한 야산에. 모두들 돌인
줄 알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보옥이라는 식이랄까?
강서성에만 천여 명을 헤아리는 감여가들이 눈에 두지도 않던
곳이었다. 그런 땅에 음택을 정했고, 실사를 해보니 다시없는
길지라? 세상에 이렇게 기가 막힐 노릇이 어디 있는가.
산귀는 반여량이 동기감응을 펼치는 모습에 주목했다.
고통스런 침음... 잔뜩 구겨진 인상...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 내리고...
보지는 않아도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안철주와는 분명히 틀렸다.
그는 동기감응을 펼치면서 전혀 힘들어 하지 않았다. 숙련(熟
練) 여부를 논할 수도 있다. 아직 완벽하게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탈진 상태를 겪는 것이라고.
모르는 소리다.
동기감응은 내공과는 전혀 무관하다.
도가(道家)에서 말하기를 도(道)의 궁극(窮極)에 이르면 천지
교감(天地交感)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도가팔선(道家八仙)이 그 경지일까? 천지교감에 이른다면 자연
의 기를 읽어낼지도 모른다.
그 외에는 불가능하다.
특히 양생(養生)이 목적이라면 또 모를까 무도 수련을 목적으
로 하는 무인들의 내공법은 특정한 기운을 집중적으로 배양한
다. 불균형을 자초하는 격이다. 천지자연의 기를 읽어 내려면
백지(白紙)처럼 완벽하게 비워진 그릇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
야 모든 기운을 고루 흡수할 수 있다.
인간 본연의 기로 자연의 기를 감지하려면 같은 주율(周率) 속
에서 동조(同調)해야만 한다. 그런 사람만이 동기감응을 펼칠
수 있다. 즉, 동기감응은 수련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영능
(靈能)을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된다. 지닌 능력을 일깨우는
것이지 수련에 의해 터득되는 것이 아니다.
숙련 여부와는 관계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접근 방식
이 다르다는 말이 된다. 안철주와 반여량은 각기 다른 방식으
로 자연의 기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동기감응의 실체는 무엇인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감여법을 일거에 무너뜨린 동기감응... 어느 것이 옳은가? 동
기감응이냐, 아니면 원방감여인가?'
산귀는 일 년 전에 던졌던 물음을 다시 끄집어냈다.
장문의 서신에는 반여량에 관해 조사한 모든 내용이 담겨 있었
다. 그러나 그 글귀들 속에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지는 못
했다.
'이제 곧 알게 되겠지. 이번 여행에는 내가 직접 따라간다.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어떻게 묘혈을 고르는지... 반드시 허
점이 있을 거야. 그걸 찾아내지 못하면 내 일생은...허허! 부
질없는 짓에 일생을 바친 격인가? 허허허...!'
무가중에서 감파를 무시하는 문파는 없었다.
감여가와 무림인의 관계는? 이와 입술의 관계였다.
감여가는 명당을 찾아 중원을 떠돌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지리
에 익숙했다. 그들은 택지나 음택을 봐주는 한편 유사시에는
길 안내를 해주며 막대한 은화를 벌어들였다. 특히 다른 지방
으로 원정(遠征)을 나갈 경우, 감여가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무가(武家)들이 이룩한 연전연승(連戰連勝)의 이면에는 감여가
들의 숨은 공로가 지대했다.
사감파(四堪派)가 지지하는 문파는 곧 패주(覇主)라는 말이 나
돌 정도로.
그런 전례를 곽가장이 깨고 말았다.
'큰일입니다. 무가들이 곽가장을 본받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신계각(神啓閣)과 비슷한 조직을 만들고 있어요.'
삼합형국파의 총수인 면수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하지만 산
귀는 그 말이 가슴에 가시처럼 틀어박혔다. 꼭 곽가장에 아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
'정말 큰일이에요. 이대로 가다가는 밥벌이조차 제대로 할
지...'
삼원형국파의 총수 낙월노인.
그는 말을 하면서 산귀를 흘끔 쳐다보았다.
'허허허! 원방파는 곽가장의 그늘에서 숨도 못 쉰다면서요?'
삼합산방파의 총수인 무자는 노골적으로 면박을 주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닌가? 감파 총수들끼리는 서로 깍듯이
예의를 지켜야 할 처지였다. 그런데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다
니. 모두다 곽가장 때문이었다.
옥순산(玉荀山) 전투(戰鬪).
당시, 혈조수(血爪手)라는 사도인(邪道人)이 낭인(浪人)들을
포섭하여 공공연히 청부업(請負業)을 자행하는 바람에 강서무
림이 시끄러웠다.
강서무림인은 연수하여 혈조수를 치고자 했지만 그들의 소재를
파악할수 없었다. 당연히 제일 먼저 동원한 사람은 원방감여가
였다.
무림인은 막대한 은자를 보장했고, 강서성 제일감파인 원방파
는 혈조수를 찾아 나섰다.
북으로는 장강(長江)에서부터 남으로는 해남(海南)까지, 서쪽
으로는 누산산맥에서부터 동으로는 상해(上海)까지 두루 퍼져
있는 감여가 만여 명.
그러나 그들은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혈조수의 뛰어난 지략과 소림사의 대력금강권(大
力金剛拳)과 버금간다는 혈조팔식(血爪八式)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원방파 다음으로 나선 무가가 곽가장이었다.
그들에게는 신계각이라는 특이한 단체가 있었고, 그곳에는 아
무리 깊은 심심절곡(深深絶谷)에 숨어들어도 귀신같이 찾아내
는 엽견(獵犬)같은 자들이 숨죽이며 실력을 양성하고 있었다.
옥순산 전투는 너무 싱겁게 끝났다. 당시의 전투로 곽가장은
전력의 절반이 감소되었지만, 신화를 일구어 내는 기틀을 마련
했다. 원방파는 그들의 신화를 뒷받침해 주는 밑거름 역할을
충실히 한 셈이다. 그런 신화와 밑거름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곽가장이 탄생되었다.
얼마 전, 산귀는 곽가장주의 초대를 받았다. 내용은 그리 즐겁
지 못했다. 반여량이 소문대로 동기감응 감여를 하는지 관찰해
달라는 것. 감파의 총수에게 그런 일을 부탁한다는 것은 무척
큰 실례였다.
곽모천은 산귀가 응할 것을 알고 있었다.
타 감파가 원방파를 질책할 때마다 부드러운 미소로 응대하는
이면에는 감여에 대한 열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사람이다.
그랬다. 산귀는 옥순산 전투로 인해 감여가들이 엉뚱한 일에
신경 쓰지 못하게 된 것을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생
각했다.
대가로 주겠다는 은자 삼십 냥은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산귀
는 은자 한 냥이라도 여행에 동참했으리라.
오로지 진실한 감여를 밝히고자 하는 열망.
동기감응에 대한 뿌리 깊은 호기심 때문이다.
썩은 진물이 줄줄 흐르는 시신은 누구인가? 곽가장 무인들에
대해서는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고 있지만, 삼각.사당의 장
(長)들을 바싹 긴장시킬 만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
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번 여행만은 꼭 동참하고 싶
었다.
음기를 찾아 나선다?
원방 감여와 동기감응 감여를 비교할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합니다!
즐감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항상 감사 합니다.그리고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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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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