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들목 ]
박남규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다.
무명 솜이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있었지.
온 식구가 그 이불 하나로 덮었으니 방바닥만큼 넓었다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방바닥 온기를 지키느라
낮에도 바닥을 품고 있었다
아랫목은 뚜껑 덮인 밥그릇이
온기를 안고 숨어있었다
오포 소리가 날즈음, 밥알 거죽에
거뭇한 줄이 있는 보리밥
그 뚜껑을 열면 반갑다는 듯
주루르 눈물을 흘렸다.
호호 불며 일하던 손이 방바닥을
쓰다듬으며 들어왔고
저녁이면 시린 일곱 식구의 발이 모여 사랑을 키웠다.
부지런히 모아 키운 사랑이
지금도 가끔씩 이슬로 맺힌다
차가웁던 날에도 시냇물 소리를 내며
콩나물은 자랐고,
검은 보자기 밑에서 고개 숙인
콩나물의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벌겋게 익은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다.
구들목 중심에는 책임이 있었고
때론 배려가 따뜻하게 데워졌고 사랑으로 익었다
동지 섣달 긴 긴 밤, 고구마 삶아 쭉쭉 찢은
김치로 둘둘 말아먹으며 정을 배웠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을 맞고 싶다.
검은 광목이불 밑에
부챗살처럼 다리 펴고
방문 창호지에 난 유리 구멍에
얼핏 얼핏 날리는 눈을 보며
소복이 사랑을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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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니 할아버님, 할머님, 부모님, 작은 부모님, 사촌, 남동생들, 여동생들
4대 열식구가 넘는 식구들이 법석이던 시골집이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들이 보고 싶습니다.
사람은 곁에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 심신이 건강해지는 존재랍니다.
함께 밥을 먹든지,
함께 얘기 하든지,
함께 일을 하든지,
함께 잠을 자든지....
이런 것들이 안되면 자주 아프고 서글퍼지고
몸과 마음에 바람이 들고 구멍이 난답니다.
'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당신의 따듯한 말 한마디, 미소 한모금을 건내 보십시오.
그가 마음에 쌓인 아픔을 털고
훌훌 일어 날 겁니다.
삶은 짧고 인생의 동반자들을 기쁘게 해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니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따끈따끈한 '구들장' 을 내어 주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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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남규씨(70, 대구 달서구 본동)는 아픔 속에서 세 송이 국화꽃(세 권의 시집)을 피웠다.
박 시인은 10남매 중 여섯째로 위로 누님 다섯, 아버지 나이 50세에 첫아들로 태어났다. 귀한 아들로 태어났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25세 되던 해에 건설회사에 취업해 15년간 건설업에 종사하였다.
배움이 짧아 건설회사에서 잡일부터 시작했다. 남다른 성실함으로 작업반장이 되고, 얼마 후 소장이 됐다. 더 열심히 일해 이사까지 되었다.
하지만 IMF 때 회사가 어려워져 정리해고되면서 택시 운전을 했다. 어느 날 손님과 IMF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손님이 내리면서 명함을 건네주며 같이 일할 마음이 있으면 명함 주소로 이력서를 내보라고 했다. 2~3일 후 이력서를 제출하고 그분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분은 재력가로 제주도에 10만 평 땅을 가지고 있었다. 건설회사에서 익힌 현장기술과 조경기술로 그분의 조경농장 일을 하게 되었다. 첫 월급 80만 원을 받았다. 성실함이 인정되어 3년 후 열 배가 넘는 연봉을 받게 되었다. 60대 초반까지 조경농장 월급 사장을 하다가 62세에 건강이 좋지 않아 대구로 왔다.
2015년 7월 30일 서울 S 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치료 약은 없습니다. 언제 어떤 병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합병증을 치료하며 연장해가는 것이 최선입니다"고 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누나 따라 교회를 다녔는데 기도하던 중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남은 시간을 남을 위해 쓰기로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나와 가족을 위해 보냈다면 마지막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이웃을 위해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진단받고 3일 후 봉사단체를 찾아갔다. 어울림 무료급식소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하여 한주에 2일 봉사를 했다.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조급한 생각이 들자 한주에 4일을 봉사했다. 장 보는 일, 밥 푸는 일을 하였다. 8개월 봉사를 하던 중 쓰러져서 응급실에 갔다. 의사는 골수 검사를 한 후 백혈병으로 6개월 정도 길면 1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항암치료는 거부했다.
다른 의사에게 협진하게 되었는데 골수이식을 권했다. 그 교수는 백혈병으로 골수이식을 받고 복직한 의사였다. 2017년 2월에 기증자를 찾았고, 그해 6월에 골수 기증자를 만났고, 6월 20일 골수이식을 받았다. 무균실에서 한 달 동안 투병 생활을 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는 새벽이면 일어나 오늘도 아무 탈 없이 지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린다. 이식 후 6개월쯤 되었을 때 몸은 살았지만 얼마를 더 살지 모르는 불안함이 따라다녔다. 뭔가 남기고 가야 할 것 같아 "책 한 권 내고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릴 때부터 써 둔 글로 시집을 엮기로 맘을 먹었다.
아픔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것들을 담아서 2018년 3월에 '아프지 않아도 사랑하게 해 주세요'라는 첫 시집을 출간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모시고 출판 기념회를 했다. 2019년 10월에는 낮아지고 둥글어져 가고 있는 삶을 이야기한 두 번째 시집 '몽돌'을 출간했다.
올해 칠순을 맞아 '구들목' 세 번째 시집 출간을 했다. 아랫목과 위아래가 없어진 현대사회, 예절과 도덕이 뭉개지고 투박한 광목 이불이 필요 없는 요즘 '구들목'이 고향처럼 구수한 책으로 친구가 되고, 따뜻한 온기가 도는 '구들목'이 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책을 펴냈다.<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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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느끼다] 박남규의 '구들목'
박남규 시인의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어릴 때는 그 시절 모두가 그러하듯이 가난과 힘겨루기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쌓은 경험의 다양성이 그의 詩에 모태가 되고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또한 믿음으로 다져진 신앙심은 그의 삶에 모토가 되고 근간이 된 듯싶다.
60대 중반에 시인에게 닥쳐온 시련은 너무나 참혹했다. 일명 백혈병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절망 앞에 남은 6개월을 어떻게 보낼까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결론은 남은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감사하면서 남을 위한 봉사로 생을 마감하려고 무료급식소에서 밥 푸는 일을 시작했다.
그런 마음으로 봉사의 나날을 보내는 중 뜻밖의 낭보가 날아들었다. 나이가 많아 골수이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데도 적극적으로 골수이식을 권유하는 좋은 의사선생을 만났고 마침 딱 맞는 골수 공여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 모두가 그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그는 단언했고 지금도 덤으로 주어진 삶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
그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는지 완치 판정을 받기 전부터 이 땅에 작은 노래의 씨를 열심히 뿌리기 시작했다. 학산문학이란 작고 미약한 씨를 태동하고 발아시킨 것이다. 지난해 열 명으로 시작한 문학회는 올 6월에 시화전과 낭송회를 개최하였다.
지역 주민의 열렬한 성화로 시화전은 한 달간을 전시하여 지역주민의 시심을 자극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가을에는 지리산문학관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작지만 조촐한 낭송회를 열고 계속 교류를 가지기로 약속도 하였다. 학산문학회의 발전은 누구도 예견하지 못하리만큼 이 땅에 영향력을 끼치는 문학회가 되리라 믿는다.
또한 검은 광목이불은 아주 커서 방안을 가득 채웠다. 거실이자 식당이고 침실이었던 그 방에는 겨울이면 언제나 밥 먹을 때 외에는 이불이 깔려 있었다. 윗목에는 검정보자기를 쓴 콩나물시루가 있었고 시냇물 소리를 내면서 콩나물은 자랐고 그 콩나물이 식구들의 요긴한 반찬꺼리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그때 그 모습들이 활동사진마냥 눈으로 보듯이 그려지는 詩는 요즘에 와서는 흔치 않기에 더 눈이 가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詩는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더니 드디어 한국의 정서에 목마른 이국의 동포들에게까지 전해져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은 것으로 안다. 덤으로 주어진 나머지 삶에 강한 애착을 느끼며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는 박남규 시인에게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가호가 있기를 빈다. <시니어매일>
첫댓글 가시밭길 같은 인생길에서 주옥같은 글들이 만들어지다니 대단하네요!
구들장 의 검정솜이불 그때 그시절을 회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