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출가했을 때, 자사(子思)가 희로애락이 일어나기 이전을 중(中)이라 했는데, 이 '중'이라는 것이 바로 공겁(空劫) 이전의 자기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후 <능엄경>을 보니, "설사 모든 견문각지(見聞覺知)를 없애고 안으로 고요함[幽閒]을 지키고 있더라도 여전히 법진(法塵)의 분별인 그림자다." 하였다.
견문각지가 없어지면 희로애락이 아직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인 것 같은데, '법진의 분별'이라고 말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의(意)는 근(根)이요, 법(法)은 진(塵)이다. 근과 진이 상대하여 순경을 만나면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일어나고, 역경을 만나면 성내고[怒] 슬픈[哀]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은 의근이 법진을 분별한 것이다.
아직 나타나기 이전이란 진(塵)이 밖에서 교섭하지 않고, 근(根)이 안에서 일어나지 않은 상태이다. 고요하여 응당 본체인 것 같으나, 앞에서는 동요하는 경계를 반연하였고, 지금은 고요한 경계를 반연하였다. 앞의 것은 참으로 법진의 거친 분별[麤分別]이요, 지금 것은 법진의 세밀한 분별[細分別]로서, 모두 그림자일 뿐 진실한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였다.
이것을 '고요함[幽閒]'이라고 표현하였는데, 다만 유(幽)가 뚜렷한 것보다는 낫고, 한(閒)이 요란한 것보다 낫다는 차이일 뿐, 공겁 이전의 자기와는 천양지차라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다시 자세히 점검하고 살펴서 허술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첫댓글 육근과 육진이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느낌에 갈애와 취착이 없기를.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