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한테 벌써 들었는지 - 아마 승경이리라 - 정훈이가 차 안에 앉아서 채영
이가 집에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정훈인 채영을 만나려고 일부러 연락도
안하고 승경이 집 앞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할 수 없다 싶어 그냥
차를 돌려 한참 운전하고 가다가 안되겠다. 오늘은 어떡해서든지 채영이를 꼭
만나야겠다 싶어서 차를 다시 승경이 집 쪽으로 돌렸다.
승경이 집 골목에 차를 막 다시 세웠는데, 채영이가 준기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웃으면서 이쪽으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채영이가 웃고 있다. 채영이가
나 아닌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웃고 있다. 정훈인….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마치… 어렸을 때, 형이 아빠와 엄마랑 셋이 있으면서 하하 호호 하는 것을 멀리
서 바라보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외감을 느꼈다. 자신은 저 사이에 절대로
끼어들 지 못 할 거라는 불안감이 잠시 엄습했다. 정훈은 크락션을 작게 빵하고
한 번 울렸다. 준기와 채영이 동시에 이쪽을 쳐다보았다. 채영이 달려온다. 정훈
은 창문을 스르륵 내렸다.
[어머, 정훈아, 너가 여기에 웬일이야?]
[어, 너랑 얘기 좀 할까 하고.]
[어머, 어떻게 알았어, 여깄는지?]
준기도 어느새 채영 옆에 다가와 나란히 섰다. 준기와 정훈은 서로 이글이글 타
오르는 눈빛만으로 무언의 인사를 교환한다.
[그럼...... 여기서 잠깐 얘기하고 금방 들어가.]
준기가 채영한테 말한다.
[어디....커피숍에 가서 차 한 잔 하자, 채영아.]
정훈은 준기의 존재를 아예 무시한채 채영에게 말한다.
[어.....글쎄...]
채영은 둘의 눈치를 보며 더듬는다.
[타. 어디, 조용한 데로 가자, 채영아]
정훈의 말에 채영은 곤란해졌다. 슬슬 눈치를 보면서 채영이 준기에게 말한다.
[준기야, .....잠깐만 얘기하고 바로 집에 들어갈게. 넌 먼저 집…]
[그럼 나도 같이 가]
준기는 차 문을 덜컥 열고 얼른 뒷 자석에 홀라당 올라탄다. 정훈은 어이가 없
어 고개를 뒤로 돌려 준기를 쳐다봤다. 준기는 지이잉 하고 창문을 내리면서
밖을 보고 소리친다.
[얼른 타, 누나. 난 누나 보호자니까 누나를 보호할 의무가 있잖아]
[어? 어어....]
채영은 황당해 하는 정훈과, 뒷자리에 지네 집처럼 자리잡고 있는 준기를 번갈
아 보면서 서 있었다.
[채영아 앞으로 타.]
[어? 그..그래.]
[이쪽으로 와!]
준기는 안쪽으로 들어가며 뒷자리의 공간을 확보해 주었으나, 채영은 준기의
눈치를 보면서 슬슬 정훈이 옆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칫]
준기는 팔짱끼고 뒤로 더 푹 눌러 앉아 다리를 꼰다. 정훈은 속력을 냈다. 머리
속이 어지러웠다. 제길....왜 이렇게 꼬이는거야. 혹이 하나 달라 붙다니. 채영
은 차 안의 공기가 약간 장난이 아니라 한마디도 못하고 앞만 보고 있었다.
한편, 준기는 오히려 뒷 자석에 푹 파여서 마치 자기 차처럼, 앞좌석 뒤에 꽂힌
잡지를 넣었다 빼냈다 한다든지, 차 뒤에 놓인 티슈로 코를 푼다든지, 놓여있는
인형을 만지작 거린다든지 하면서 안정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셋이 도착한 곳은 어떤 카페.
정훈은 채영을 창가의 어느 좌석으로 안내했고, 바로 채영 옆에 준기가 철퍼덕
앉았다. 정훈이 눈에 힘주고 꼴아봤더니 준기는 쳇! 하면서 좀 떨어진 좌석에
가서 혼자 철퍼덕 앉는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디 제대로 무슨 말도 못부치겠다
싶었지만, 우선 정훈은 음료수를 시키고 앉아 있었다.
[그래, 무슨 얘긴데?]
채영이 궁금해서 먼저 묻는다. 하지만, 이런 시츄에이션에서 절대 얘기할 수
있는 정훈이 아니다.
[아니 ... 뭐....천천히 얘기할게. 커피나 나오면.]
준기를 슬쩍 쳐다본다. 자식. 안 보는 척 하면서 앉았는지 누웠는지 모르게 소
파에 푹 퍼져서 이쪽을 흘끔 흘끔 쳐다보고 있다.
드디어 음료수가 나오고, 채영은 자기 커피에 설탕 두스푼, 크림 두스푼을 넣
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는 정훈을 보더니만, 정훈의 커피 잔을 이쪽으로 끌어
와서는 능숙한 솜씨로,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설탕 두 스푼, 크림 두 스푼을
넣어 저어 주었다. 그걸 의자에 기대 앉아 보고 있는 정훈. 씨익 웃으면서 준
기 쪽을 흘끔 본다. 준기도 흘끔 이쪽을 보면서 눈썹이 약간 올라간다. 정훈은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그 때, 띠리리.... 하면서 준기의 전화가 울렸다. 준기는
받긴 했는데, 음악이 너무 컸는지, 잘 안 터지는지 이쪽을 잠깐 흘끔하면서
자리를 뜬다. 기회다. 준기가 저쪽에 가서 잠시 이쪽을 등지고 서있는 틈을
타서 정훈은 벌떡 일어나 채영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어어어.. 하면서 채영은
자기 소지품도 챙기지 못한채 정훈에게 끌려 가고 있었다. 벌써 이게 몇번째인가?
잠깐 전화를 하면서 채영의 테이블 쪽을 힐끔 쳐다본 준기는 다시 어어? 하면
서 제대로 뚫어져라 확인하듯이 쳐다봤다. 없다. 채영도. 정훈도. 자리에 가보
니 채영의 가방만 덩그라니 남겨져 있다. 얼른 창문 쪽으로 가봤더니 채영을
질질질 끌고 차에 채영을 억지로 태우고 있는 정훈이 보인다. 제길. 준기는 얼
른 채영의 가방을 들고 뒤따라 뛰쳐나갔으나 이미 늦었다. 시동을 건 정훈의
차는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열라 뛰어가 봤으나 속력이 제대로 붙은 자동차를
인간이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허헉대며 포기하고 제자리에 서 버린 준기의
핸드폰이 띠리리 하고 울린다. 얼른 폴더를 열었다.
[난데. 채영이 가방 좀 챙겨가라.]
정훈이다.
[어디 가는거야? 당장 안 돌아와?]
[할 얘기가 아직 안 끝나서 말이야. 채영이 잠깐 빌릴게.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라]
[야!!! 야!!!]
뚝. 끊겼다. 제길. 저…저런 신발놈 같으니라고.
한 편, 차 안에선 여유만만의 정훈이 씨디를 하나 집어넣고 있다.
[어디 가는건데?]
채영이가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묻는다.
[너한테 보여줄 데가 있어서]
[나 가방이랑 다 놓고 왔거든?]
[거기 가면 다 있어]
[뭐? 어디 가는데?]
[가보면 알아. 아마 너도 좋아할거야]
[이렇게 또 사람을 납치하면 어떡해? 준기가 걱정하잖아? 항상 너는 왜 내
생각은 안하니?]
정훈은 마음이 아팠다. 하긴 그랬다. 언제나.. 지금까지 늘 채영이한테 기대
기만 하고, 밤이고 낮이고 자기가 필요할 때 불러내서는 실컷 부려먹다가 집
에 데려다 주고.... 친구라기 보다 그렇게 채영이한테 아이처럼 기대기만 하
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하게 됐다. 하지만 너도 알겠지만 아까 그 상황에선 도저히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서]
[그럼, 지금 여기선 할 수 있어?]
채영이 물었다.
[아니. 거기 도착하면 해줄게]
채영도 이번엔 약간 기분이 상했다. 도대체 어딜 데려가는지는 모르지만 어
쨌든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안하고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교외의 작은 통나무 집이었다. 전원주택같은 곳. 작은 정원이 있고,
외국이나.. 그래. 유럽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예쁜 집이었다. 약간 삐
쳐있던 채영도 어느새 표정이 환해졌다.
[와....예쁘다. 여기 뭐하는데야?]
[들어와 봐]
마당으로 들어서는 대문은, 나무로 된, 허리까지 오는 문이라고 해야하나, 거기
에 걸쇠가 있어, 그걸 제끼고는 앞마당으로 발을 딛었다. 정훈의 뒤를 따라 들
어가면서도 채영은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다. 예쁘다 예뻐.
달빛을 받아 예쁘고, 조명을 받아 예쁘다.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집안으로 들어
가는 현관 앞에 도착했다. 정훈은 현관문을 열고 채영에게 먼저 들어가게 양보
해 주었다.
주춤거리며 집으로 들어가니 자동으로 현관에 불이 켜지고, 집 안으로 들어간 후
도 향긋한 나무냄새가 진동하는게, 채영은 마음이 많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제일 먼저 정훈은 주방에 서서 에프론을 두른다.
[뭐 한 잔 마실래? 말만 해]
[왜? 말만 하면 너가 다 만들어 줄 수 있어?]
채영은 활짝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그러엄~ 재료는 대충 사놨어]
[올~~~ 좋아. 그럼 맛있는 파르페 만들 수 있어? ]
[오! 좋아. 파르페. 아이스크림도 있고, 과일 통조림에, 웨하스. 오케이. 잠~시만
기다리세요, 손님!]
정훈은 냉장고와 찬장을 하나 하나 확인하면서 우렁차게 소리쳤다.
[피]
채영은 그냥 웃어버렸다. 오늘도 정훈이한테 납치당해 왔다는 걸 벌써 다 잊은듯
했다. 마루의 소파에 철퍼덕 앉으면서 채영은 주변을 돌아본다.
[진짜 여기가 뭐하는데야?]
[사실은, 아빠가 사주신거야]
[총장님이? 사 주셔? 너한테?]
[어]
[하! 갑부집 아드님이 여기에 계셨구먼. 왜? 생일 선물이라도 돼냐?]
[뭐, 그런것도 있구, 앞으로 결혼하면 여기서 살라구.]
[참 나...황당하다 정말....애들 교육상 안좋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니 부인 될
사람은 참 좋~~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은근히, 정훈이 부러워 죽겠다는 듯이, 다시 한 번 일어나
집안 구석 구석을 둘러본다. 와, 열라 넓다! 우와~ 죽이는데!! 캡숑이야! 우야쓰까~~
하면서 욕실이랑 방이랑, 서재 등을 돌아보는 채영을 바라보면서 정훈은 씨익
미소만 짓는다.
채영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카운터식 테이블, 정훈이 파르페를 만들고 있는
씽크대의 맞은켠에 놓여있는 약간 높은 의자에 앉았더니, 마침 정훈도 파르페를
다 만들어 웨하스를 꽂는 참이었다.
[자, 여깄습니다, 손님. 많이 기다리셨죠?]
[와... 먹음직스럽다. 이런거 어서 배웠어?]
[그냥 책보고. 너 오면 해줄려고]
[올~~ 웬 팬 서비스?]
[칫. 너가 내 팬이긴 하냐?]
[그러엄. 아직도 난 너 팬이지. 그럼 맛이나 좀 볼까?]
채영은 우선 웨하스를 뽑아서 끝에 묻은 아이스크림과 함께 한 입 입에 베어 물었다.
첫댓글잘읽어네요.....정훈이가 채영이를 불려 얘기하자 면서 카폐에 갔는데 준기도 따라 가는군요..못마당한 정훈이 아주 둘이 기싸움이 풍기는군요...채영이 어떻게 할줄몰라서 그냥 있네요....카폐에서도 서로 아주 못봐주네요.....준기전화온사이에 채영이 대리고 나가는군요....정훈이가 왜 채영이를 무슨말을 하려고 .....다음편도기대.....
첫댓글 잘읽어네요.....정훈이가 채영이를 불려 얘기하자 면서 카폐에 갔는데 준기도 따라 가는군요..못마당한 정훈이 아주 둘이 기싸움이 풍기는군요...채영이 어떻게 할줄몰라서 그냥 있네요....카폐에서도 서로 아주 못봐주네요.....준기전화온사이에 채영이 대리고 나가는군요....정훈이가 왜 채영이를 무슨말을 하려고 .....다음편도기대.....
아참, 여기에서 끊어지면 어떻게 하나요, 너무 짧아요~T.T
아음 넘 재밋어요 우후후후 담편도 기대할께요~~~
흠........ 준기속이 얼마나 탈까..... 잘봤어요
준기..........ㅋㅋ 너무귀여운거 아니에요 ? ㅋㅋㅋ 흐흐...... ㅋㅋㅋ 채영이랑 준기랑 빨리 잘됐으면 ㅋㅋㅋ
어떻게 될지.. ㅋㅋ 정훈이만 상처 받을것 같은데..
정훈이가 무슨 말을 하려나....
잘 읽었습니다
기대됩니다. 빨리 담편도 올려주세요!
오... 스토리 전개 맘에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