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오회장님의 카톡에서]
[거울 (鏡)]
서울의 한여자고등
학교는 [거울 (鏡)]이
라는 교지(校誌)를 1,000 회 가까이 발행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전통입니다.
그 [거울(鏡)]이라는 교지를 생각하면서 [거울(鏡)]에 관한
한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民譚) 하나를 소개합니다.
시골에 사는 한 선비 가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갔습니다. 과거시험을 치른 후에 한양장터를 구경하게 되었습
니다.
어떤 만물상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참 신기한 물건 하나를 발견했는데 손거울 이었습니다.
값이 비쌌지만 시골 촌구석에서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안성 맞춤 선물이 될것 같았습니다.
집에 도착 하자마자 아내를 찾았으나 김을 매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잘 볼수 있는 벽에 못을 박고 거울을 걸어 놓았습니다. 아내 가 얼른 보고 기뻐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선비가 외출한 사이에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짐보따리는 있는 데 남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니 벽에 이상하게 반짝거리는 것이 걸려 있었습니 다. 일어나서 들여다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안에 예쁜 색시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한양에 과거보러 갔던 남편이 과거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예쁜 색시 하나를 데려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가슴이 떨렸습니다.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온갖 고생 다했는데 남편은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색시를 데려왔으니 지난 세월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방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습니다.
그때 시어머니가 들어 와 울고 있는 며느리의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어떤 색시를 데려왔나 싶어 거울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예쁜 색시는 커녕 바짝 늙은 할멈이 있었습니다.
아니 이 녀석이 할망구하고 바람이 났다니!.. 아들이 한심했 습니다. 첩을 데려오려면 젊고 예쁜 색시를 데려와야지 다 늙은 여자를 데려다 어디에 쓰려고 하나?
한심한 아들을 둔 시어머니가 속이 상해 퍼질러 앉아 웁니다.
집안에서 통곡소리가 난다는 얘기를 듣고 들에 있던 시아버지가 헐레벌떡 들어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가 확인도 할겸 거울을 들여다 봤 습니다. 거울 안을 들여다 본 시아버지가 갑자기 넙죽 엎드려 절을 하더니
“아버님, 안녕하셨습니까?”하고 인사를 여쭙더랍니다.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이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와 꼭 닮았던 모양입니다.
거울이 없던 시대에 있었던 민담입니다.
[거울(鏡)]이란 그 원래의 용도는 ‘자신의 겉 모습을 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고치기 위한’ 도구일 것 입니다.
그러나 거울은 겉 모습만이 아니라 내면의 세계를 비추어 본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때 거울이 필요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을 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과거의 나는 누구였나?
나의 뿌리는 어디서 시작되었나?
현재의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오늘아침 거울에 비친
나의모습은?
추레한 늙은이 인가?
멋진 어르신 인가?
아니면 중후한 노신사 인가?
혹 마귀할멈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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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와 탱칠이」
80년 후반에 한국t.v에서 웃고 떠들던 때가 그립습
니다. 소주 한잔 나누던 친구가 자기집에 개 2마리를 키우는데
한 마리가 죽어 화장터에서 화장하고
봉인당에 보관한다오 그리도 최고급 수의을 입혀
서~~ 남은 한마리도 병에 걸려 본인집에
서 매일 약주고 수액
을 마치고 있데요. 참 세상이 이렇게변할까 앞으로는 틀림없이 개.고양이 보다 못하
는 인간이되고 원룸
이 성행하고 인구는 줄고 결혼은NO 300
여개의 대학은 5년이
내 절반으로 줄고 삼촌 이모가 없어져
가는 시대로 변할것 같고! 돈 없는 부모는 설땅없고 젊은이들은 집에서.식당.열차.비행기.은행등 모든것 예약하고사는데 나이먹은 사람들은 옛것만 찿고 아버지.
선생님.심판.운전수도 필요없는 세상이 다가오는데 한줌 재
가 되어 구멍에 들어
가야 할 시대 난 미리 개.고양이를 섬기는 친구가 이해간다. 외롭고 즐거움을 못 찾는 그대 아쉽지만 오늘 아침 그대를 생각하면서 친구야 정신차려~~
- 居 山 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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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상평(苦樂常平)●
괴로움과 즐거움은 일상에 항상 있다.
한쪽에 치우치면 좋지 않다.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흔히 말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사람은 살아가면서 괴로움과 근심이 항상 따라붙는다.
아무리 금수저로 태어난 행운아라도 희로애락은 다 있고 생로병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괴로움에는 즐거움이 따르고 즐거움에는 괴로움이 따른다고 고락병행(苦樂竝行)이라 했다.
그래서 고해에 던져진 보통 사람들은 ‘즐거움과 슬픔은 이웃사촌’, ‘고통은 짧고 기쁨은 영원하다’ 등등의 선인들의 말에 위로를 받는다.
채근담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맛본 후에 얻은 행복이 오래 간다’고도 했다.
20년 가까이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연마하여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선생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은 일상에 항상 있는 것(常平)이고 서로 바뀌어 오고가는 것이므로 너무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다산이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에 은거해 있을 때 지역 병영에서 우후(虞侯)로 있던 이중협이라는 무관이 가끔 찾아와 분위기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3년여를 그렇게 출입하던 그가 한 번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임기가 끝나 서울로 가게 됐다고 했다.
섭섭한 표정의 그를 위로하느라 다산이 시를 지어주고 서문을 쓴 것이 ‘다산시문집’에 남아 있다.
앞부분에 즐거움과 괴로움은 한 곳에서 나온다고 한 말이 나온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이란 즐거움의 뿌리다
(樂生於苦 苦者樂之根也/ 낙생어고 고자락지근야),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이란 괴로움의 씨앗이다
(苦生於樂 樂者苦之種也/ 고생어락 낙자고지종야),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낳는 이치는 움직임과 고요함, 음과 양이 서로 그 뿌리가 되는 것과 같다
(苦樂相生 如動靜陰陽 互爲其根/ 고락상생 여동정음양 호위기근).’
그러면서 3년간이나 자주 찾아와 글을 써서 주고받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서글프지만 이후 고향에서 만나면 더욱 기쁠 수 있으니 슬퍼하지 말자고 다독였다.
일상 속에 계속 즐거운 일만 계속되면 좋으련만 그런 행운은 있을 수 없다.
또 좋은 일이 계속되고 고통은 찾아오지 않으리라 기대하지만 그 즐거움이 비극이 될 수 있어 낙극생비(樂極生悲)라 했고,
흥함이 다하면 슬픔이 찾아온다고 흥진비래(興盡悲來)라 했다.
반대로 고진감래(苦盡甘來)라, 고생을 참으면 즐거움이 따른다.
현실이 괴롭다고 좌절할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모 살아계시고 형제 탈이 없는 것이 삼락(三樂)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 맹자의 가르침을 생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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