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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slim life, Remind Me/오페라 ‘투란도트’의 추억
11년 전으로 거슬러, 2007년의 일이다.
내 나이 이순(耳順)의 초입인 예순하나가 됐을 때로, 내 인생에 있어 내놓고 자랑할 만한 일 하나를 성취해냈던 해였다.
아직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서 미지(未知)였던 큰며느리 감에게 띄우는 편지 한 통을 쓴 것이 바로 그 일이다.
편지 한 통 쓰는 것이 무슨 대수인양 호들갑을 떠느냐고 하겠지만, 정작 편지를 쓴 주인공인 나로서는 자랑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
말이 편지 한 통이지, 실제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넉 달 나흘에 걸쳐 A4용지 247쪽에 12포인트로 쓴 것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내 혼신을 다해서 썼다.
내 그 편지 쓰는 것을 두고, 숱한 시비도 있었다.
아직 양가 상견례도 하지 않았는데 편지 쓸게 무엇 있느냐고 시비를 걸지를 않나, 편지를 쓰는 도중에 둘이 헤어지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면서 은근슬쩍 악담을 하는 주위까지 있었다.
그 시비를 다 감당해내면서 썼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도 나름의 작품성을 인정받듯이, 내가 쓰는 편지도 일단 쓰기를 시작한다는 것에 무게 중심을 뒀다.
‘지영이에게 띄우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쓴 편지는, 그 해 6월에 100권 한정판으로 한 권 책으로 출판되면서 세상 빛을 봤고, 또 그 해 12월에는 현실적으로 내가 쓴 편지의 수신인인 지영이를 큰며느리로 맞게 되는 너무나 큰 현실적 축복으로 이어졌다.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나’라고 스스로 호칭하는 이 사람은, 지영이가 ‘오빠’라고 부르는 내 아들 재윤이의 애비 되는, 뛰어날 기(奇)자를 성으로 하고 이름은 으뜸 원(元)자 불꽃 섭(燮)자를 쓰는 사람이다.’
편지는 그렇게 편지를 쓰는 주인공인 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 집 가문의 내력과 지나온 세월에 내가 경험했던 사연, 내가 아내와 인연 된 사연, 아들 둘을 낳아서 어떻게 키워왔는지에 대한 사연, 그동안 읽은 책이나 감상했던 영화나 들었던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어나갔다.
그 중에 하나가 오페라 ‘투란도트’와 관련된 사연이다.
지난 15년 세월을 살아온 서울 서초동 1549-3 월드메르디앙 703호에 입주하던 그 초기에 오페라 ‘투란도트’와 관련해서 나와 두 아들 사이에 있었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이 그 내용이었다.
그 대목을 여기 그대로 옮겨 적는다.
감동이라면, 오페라 ‘투란도트’에 얽힌 이야기를 또 이어 쓰지 않을 수 없다. 이 이야기는 우리 집, 그 삶의 역사에, 대대로 이어져 빛날 것이다.
삶은 순간순간의 선택이라는 구슬들을 잘 꿰어 놓은 시간의 목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얼핏 사람들은 그 선택이라는 것을 그 스스로 골라서 가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선택이란 것은 그 어느 것이 되었건, 신(神)의 점지에 의해서 운명적으로 다가 온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다가 온 운명 같은 선택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다.
돈을 열심히 벌었다거나, 공부를 열심히 했다거나,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거나, 무엇이든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더 깊은 곳을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또 다른 운명적 요소와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마치 의지적 요소로 보이는 것들도 모두 거역할 수없는 하나의 운명 또는 숙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페라 ‘투란도트’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나는 원래부터 직장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얻어 살았다. 출퇴근시간의 그 허송세월을 아깝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4년 전, 내가 서울남부검찰청 총무과장에서 서울지방검찰청 수사 제 3과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승용차로 1시간 반 거리의 목동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불편하여 서초동으로 이사를 하기로 작정을 했다.
이때, 평소 나와 친분이 깊은 단국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정종용 아저씨가 자기 친구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지은 지금의 집인 월드메르디앙 아파트를 소개했고, 그때는 아파트가 분양이 잘 되지 않는 때여서, 쉽게 분양을 받아 입주까지 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출퇴근하기에 승용차로 5분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어서, 월드메르디앙 회사 측에 대해 참으로 고마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회사 측에서는 도리어 분양이 잘 되지 않는 아파트에 입주했다고 고마워하면서 나에게 선물을 하나 챙겨주었다.
그때, 그 선물이 바로 우리 집을 발칵 뒤집어 버리는 단초가 된, 오페라 ‘투란도트’ 티켓 두 장이었다.
이 오페라는 그 재미있는 무협영화 ‘와호장룡’을 만든 중국 감독 장예모가 연출하는 것으로, 북경 자금성 공연에 이어 우리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하게 되어있는 우리나라 처음의 야외공연 오페라였기 때문에, 이미 장안의 화제가 만발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문화 예술을 남달리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런 오페라 공연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으나, 토요일이었던 그날 나와 재윤이 엄마에겐 너무나 소중한 또 다른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 티켓을 재윤이와 막내 재중이 몫으로 넘겨주고 두 형제가 같이 그 오페라를 관람하도록 미리 챙겨 놓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공연 하루 전날인, 금요일 저녁에 이르러, 큰 녀석 재윤이가 그 오페라 공연에 가지 않겠다고 한 거다.
아니?! 좌석도 스탠드 중앙 앞좌석 20만 원이나 하는 자리인데, 안 간다?!
재윤이의 뜻을 전해주는 재윤이 엄마의 말을 듣고 자기 개인의 볼일로 그러려니 지레 짐작하고, 재윤이를 불러 그 이유를 다그쳐가기 시작했다. 수사관 생활을 한 이 아버지의 추궁이 만만찮았을 것임이 짐작될 거다. 그렇게 10분을 다그쳤다.
“아버지! 꼭 그 이유를 들으셔야겠어요?! 아버지 스스로 아실만 하잖아요?!”
재윤이의 이 한마디, 이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나락으로 빠져들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었음에도, 이미 화가 치밀어 오른 난 아들의 그 말을 무시했다.
뒤이어, 재윤이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대면서 입으로 뱉어 낸 말 말 말들은, 그날의 우리 집 식구 모두를 온통 회한(悔恨)의 눈물 구덩이로 몰고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 아버지가 내일 오페라를 가지 못하시는 건, 엄마하고 같이 골프를 치러 가시기 때문이잖아요. 아버지하고 엄마하고는 골프를 치러 가시고, 저하고 재중이하고는 오페라 구경한다고 집을 비워버린다면, 외할머니는 저녁밥을 혼자 드셔야 하잖아요. 또 이 오페라는 우리나라 처음의 야외공연이고, 외할머니는 나이가 일흔이 넘으셔서, 지금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좋은 기회를 맛볼 수 있으시겠어요. 우리 젊은이들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야외 오페라공연을 볼 기회가 있으니 그때 봐도 늦지 않거든요. 아버지나 엄마 두 분 중에 한 분은 좀 양보를 하셔서 외할머니 모시고 오페라 구경 좀 가주세요.”
비록, 회한의 눈물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긴 했지만, 재윤이로부터 비롯된 이날의 감동은 두고두고 우리 집안의 빛나는 역사의 한 장(章)으로 기록될 것이다.
감동은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한참을 우시고 난 뒤, 겨우 눈물을 닦으신 외할머니께서 ‘노인네는 누구나 그 추운 야외에서는 오페라고 뭐고 다 싫어한다.’고 끝까지 우겨주셔서 결국 재윤이와 막내 재중이가 그 오페라 공연을 구경하러가게 되었었다.
“아버지! 역시 이 오페라는 감동이 많으신 아버님이 보셨어야해요. 그래서 여기 북경 자금성 공연을 담은 DVD를 하나 사가지고 왔으니, 함 보세요. 아! 근데요. 다 보시고 난 뒤, 커튼콜 때, 누가 관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박수를 받게 되는 지를 함 맞춰보세요. 상암 경기장도 아주 감동이었어요. 우레 같이 터져 나온 박수. 그걸 누가 받았을까요? 이것이 바로 제가 아버지께 내는 수수께끼입니다.”
오페라 ‘투란도트’공연을 구경하고 밤늦게야 돌아온 재윤이가 그 오페라 북경 공연실황을 담은 DVD를 나에게 넘겨줄 때만 해도, 난 재윤이가 그런 수수께끼를 내는 그 이유를 잘 몰랐었다.
그래도 아들 녀석이 낸 수수께끼를 아버지라고 하는 내가 건성으로 넘어갈 수는 없어, 그날 밤으로 그 오페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히 챙겨가며 다 봐 버렸다.
재윤이가 아버지인 나에게 낸 그 수수께끼의 그 깊은 의미를 그 오페라 거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알게 되었고, 재윤이의 또 그 깊은 지혜에 애비인 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윤이가 낸 수수께끼의 그 깊은 의미와, 애비인 내가 탄복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연을 지영이가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위해, 그 오페라 줄거리를 여기 요약해 본다.
“밤이면 밤마다 유령처럼 나에게 다가와 노닐다가 새벽이 되면 또다시 유령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
지영아! 이게 뭘까?
이 수수께끼는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공주 투란도트가 낸 세 개의 수수께끼 중에 첫 번째 것으로, 그 답은 곧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마지막 신의 선물이라는 ‘희망’이지.
이 오페라는 옛 아라비아의 이야기 집 '천일야화' 중 중국전설 '투란도트' 공주이야기가 바탕이 되어있어.
얼음으로 그 가슴에 띠를 두른 듯 차갑기만 한 중국공주 '투란도트'가 신랑을 맞이함에 있어 수수께끼 3개를 내고 그 수수께끼를 못 맞추면 죽음을 내리고, 맞추면 신랑으로 맞아들인다고 약속을 해.
용감무쌍한 신랑후보자들이 이에 도전하였다가 이미 수십 명이 죽임을 당한 상황에서 바로 어느 왕자 한사람이 새로이 도전을 하여, 드디어 수수께끼 3개의 답 '희망', '피', '투란도트'를 다 맞추어 버리지.
그런데도 성격이 원체 모질고 차갑기만 한 공주는 왕자가 수수께끼 세 개를 모두 맞추었음에도, 계속 그 왕자를 죽이려고 획책을 하는데, 이때 위기에 빠진 그 왕자가 그 목숨을 걸고 거꾸로 공주에게 수수께끼 딱 하나를 내어서는 그 수수께끼를 맞출 것을 요구하지.
왕자인 자기의 이름을 맞추라고 하는 수수께끼인데, 내일 새벽 동트기 전까지라는 조건을 붙이지. 왕자는, 만약 맞추면 공주의 뜻대로 죽어주고 못 맞추면 자기의 아내가 되어야한다고 요구하여 공주의 새로운 약속을 받아냈어.
약속을 하긴 했지만 약이 올라버린 공주는 그 왕자의 이름을 맞추어서, 종내는 그 왕자를 죽이기 위하여 거의 미치다 시피 해버리고 말아. 그 왕자를 알만 한 사람을 찾아내려 딱 그 하루 밤새, 온 중국천지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어가며 수소문 한 끝에, 결국 그 왕자의 하녀 '류'를 잡아들였어.
쉽게 입을 열지 않는 하녀 ‘류’에게 고문이 가해지기 시작했어. 하녀 ‘류’는 왕자의 이름을 대라는 공주의 요구와 함께 그 신체에 가해지는 그 모진 고문을 이겨내며 이렇게 노래를 부르지.
‘왕자님에 대한 나의 은밀한 사랑이 너무 커서, 이런 고문들은 감미롭기까지 해요. 나의 침묵으로 왕자님에게 공주님의 사랑을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더 이상 고통을 이기기 힘들어진 하녀 ‘류’는 이 마지막 노래를 절규처럼 남겨 놓고는, 병사의 칼을 빼앗아 자결을 감행했어.
‘나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요. 나는 이제 나를 믿지 못해. 나를 보내줘요.’
그리곤, 그때, 저 멀리 동녘 하늘은 이미 트이고 있었던 거지.
하녀 ‘류’의 그 마지막 절규는 그때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 다시 들어도 등때기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눈물겹기만 해.
당연히, 그때 재윤이가 낸 그 수수께끼, 내가 맞출 수밖에 없었던 거지.
바로 이 같은 감동은 이 오페라 전반에서부터 거의 두 시간이나 계속 이어지는 핑 퐁 팡 이라는 이상한 이름들을 가진 세 사람의 현자들의 지루한 논쟁을 다 들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내 아들 재윤이, 바로 이 지루하게 이어가는 오페라의 그 과정을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그 과정을 거쳐 애비인 내가 감동을 얻게 될 것임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낸 수수께끼를 맞춰낸 애비인 나에 대해, 그때부터 깊은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임을 또 다시 깨우친 계기가 되었던, 우리 집의 귀한 역사적 사건은 또 이렇게 지나갔다.//
우리 가족 모두를 눈물의 도가니로 몰아갔던 그때 그 순간을 내 살아생전 잊을 수가 없다.
내 그때, 대드는 두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지 않았었다.
우리 부부를 초대한 사람이 누군지 구체적으로 그 이름을 거명해서 그 초대를 거절할 수 없음을 말할 수 있었고, 장모님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었음을 밝힐 수도 있었고, 꿈을 키우고 그 키운 꿈을 일구어갈 희망찬 미래가 있는 젊은이들이 그 야외 오페라를 보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논리를 펼 수도 있었고, 심지어 ‘너 엄마와 미리 다 이야기 한 것인데, 왜 나만 가지로 그래.’라고 항변할 수도 있었다.
윽박지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변명과 윽박지름 없이 그냥 두 아들이 퍼부은 그 오욕을 그대로 덮어쓰고 말았다.
장모님이나 아내에게 덮어씌우는 것보다는 내가 덮어써주는 것이 더 낫겠다는 계산을 했기 때문이고, 논리로 따져 두 아들과 승부를 겨뤄 아비인 내가 이겨본들 내 덕 볼 것 없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내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이런 생각도 했었다.
‘너들도 어른이 되어봐라. 그때 가서 언젠가는 오늘 이 아비가 덮어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오열할 날 있을 거다.’
그래서 더 잊을 수가 없는 그때 그 순간이다.
첫댓글 하녀 '류의 절규'가 절정이구만... 그 오페라.
지금 다시 읽어면서도 감동이네...!
Wise Man !" ㅡ 재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