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의 스타2 대회인 블리즈컨이 이틀 전에 본선 무대를 했습니다.
사실 16강 전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전망은 어두웠습니다.
그것은 스타2 분야에서 한국의 위세가 갈수록 약해져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때 세계 대회 16강을 모두 한국 선수가 차지했던 적도 있었을 정도로 그 지배력이 압도적인 적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탑 클래스에 들지 못하는 한국 선수들이 아메리카, 유럽 서킷으로 가서 거기 시드를 다 차지했다는 뜻)
2018년 GSL 대 World (한국 대 세계)에서 세랄이 한국의 4대 강자인 박령우(8강), 이신형(4강), 조성주(팀전), 김대엽(결승)
을 모두 이기고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블리즈컨까지 세랄의 우승,
2019년 GSL 대 World는 외국 선수들의 결승까지 연출되면서 그 위세를 잃고 있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세랄도 모자라서 17세의 신성인 레이너까지 세랄과 거의 동급으로 성장. 이 강자들을 주로 상대하던
닙, 쇼타임, 히어로마린, 이레이저, 타임 등까지 실력이 늘면서 중국의 신성들에게 밀린 워3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사실 당연한 흐름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e스포츠 인구가 세계 최고의 종목인 롤로 빠지면서
스타2는 신규 유저의 유입이 뚝 끊겼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고수 층 대부분은 스타1 프로리그 종료로
협회의 선수들이 스타2 판에 유입되었던 2012년 때 이후로 7년 동안 변동이 없었습니다.
일종의 고인물 화가 된 것이고 반대로 유럽에서는 신흥 강자들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스타1의 역사를 보자면 강도경, 김동수, 송병석, 김대건 같은 선수들이 쭈욱 강자로 군림했다고 할 수 있고
세랄은 기욤 패트리 같은 선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어두운 전망 속에 16강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선수 8명, 해외 선수 8명이 듀얼 토너먼트 방식으로
붙게 되었는데 예상 외로 한국의 고인물들이 경험을 앞세워서 우세를 보였습니다.
A조에서는 저그 초강세를 증명하면서 한국의 박령우, 어윤수가 올라갔고
B조에서는 세계 최고의 테란인 조성주가 외국 테란 신성인 타임에게 리벤지를 하면서 세랄과 함께 진출.
C조에서는 다양한 전략를 가진 프로토스 김도우가 입대 전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며 레이너와 함께 진출.
D조에서는 2017년 블리즈컨 우승자인 저그 이병렬과 올해 GSL에서 2회 준우승을 한 프로토스 조성호가 진출하면서
8강 중 여섯 자리를 한국 선수가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이렇게 그랜드파이널이 열리게 되었고 그럼에도 한국이 우승할 거라는 전망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단 두 명이기는 해도 알짜배기인 세랄과 레이너가 건재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8강전에서 세랄은 동족전에서도 최강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어윤수를 3:0으로 제압.
레이너 역시 조성호의 저항에 고전했지만 3:2로 이기면서 4강에 올랐습니다.
한국 선수끼리 치뤄진 나머지 8강 매치는 저그 최강의 시대에 탑클래스 저그인 이병렬을 김도우가 그림자 이동 다크템플러라는
전력을 앞세워서 3:2로 제압하는 파란을 연출했습니다. 4강이 모두 저그로 채워질 거라는 예상을 깨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머지 8강전은 2019 GSL에서 우승한 한국 최고의 저그 박령우와 조성주의 대결이었는데 화려한 컨트롤을 앞세워
GSL 4회 연속 우승까지 한 이력이 있는 조성주이기에 접전이 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박령우가 원사이드한 3: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4강은 세랄과 레이너의 대결이 되었습니다.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가까운데 레이너가 스승의 회초리를 부러트리면서
청출어람을 이루어냈습니다. 3:2 승리를 하며 결승에 올라간 것이었죠. 세랄도 무서운데 그것을 능가하는 선수가
등장한 것이니 한국 선수가 우승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김도우는 계속 저그만 상대해야 하기에 전략이 바닥날 것이었고 박령우는 오래 전부터 지적되었던
동족전의 약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우려 속에 4강전이 시작되었고 박령우는 타종족전은 세랄 급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역시 원사이드하게 김도우를
3:0으로 쓸어버리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모든 선수가 인정하는 탑클래스 저그인 박령우가 2019년 두번째 시즌에서야 GSL 우승컵을 들어올렸던 것은
그의 동족전이 치명적이라 할 정도로 떨어졌기 때문이었기에 대부분은 무난한 레이너의 우승을 점쳤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결승전은 처음부터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스타1 프로게이머 경력도 있는 박령우가 스타1의 저저전과 비슷한 양상인 뮤탈-저글링을 활용하고
맵 곳곳에 땅굴벌레를 뚫어서 엄청난 기동성으로 레이너의 혼을 빼놓는 경기를 하면서 그야말로 일방적인 승리를
한 것입니다. 3세트에서 극초반 저글링 올인(스타1의 4드론 같은)이 실패하면서 패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 네 세트 모두
이런 속도전으로 완승을 하면서 4:1 스코어로 블리즈컨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어쩌면 이 우승은 한국의 마지막 불꽃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신흥 강자가 단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 그 고인물들은 곧 차례대로 군대를 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변에서 훨씬 밀리는 한국이 무난하게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역습을 해내었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게임 DNA가 얼마나 엄청난 지를 보여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스2 팬으로서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면
기욤 패트리에 의해서 밀려나는 것 같았던 한국 스타1에 임요환이 등장하면서 대 역습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스타2도 그런 신성이 나타나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안 되겠지만 말이죠. ㅎㅎ
첫댓글 우리나라는 워3, 스2를 너무 홀대했죠. 글로벌 강자들에게 밀리는게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롤은 어떤가요? 최근 가장 핫하다는 총게임은 우리나라는 거의 안하니 패쓰하더라도
롤도 유럽에도 중국에도 밀립니다...
작년 8강 탈락 올해 4강탈락..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요즘 스타를 안봐서 선수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재미있게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