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여자’ 저작권 조용필 아닌 음반사에
저작권 강화 주장 뒤엔 외국 대형 문화기업 있어
‘가왕’ 조용필이 10여 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지만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4년간 활동하지 못했던 조용필은 79년 ‘창밖의 여자’로 재기에 성공했다.
‘창밖의 여자’가 담긴 앨범은 한국 최초로 100만장이 팔렸다. 이후 ‘단발머리’ ‘못찾겠다 꾀꼬리’ ‘친구여’ ‘킬리만자로의 표범’ ‘꿈’ 등을 발표하며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가수로서 80년대를 풍미했다.
이제 최고 인기가수의 자리는 기꺼이 후배들에게 물려주었지만 조용필의 명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헬로’ 등 이번 새 앨범의 노래들도 뒤떨어지지 않는 시대감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저작권’ 문제가 튀어나왔다. 조용필의 인기곡 중 일부의 저작권이 작사·작곡을 한 그에게 없다는 것이다. 신중현의 아들이자 록밴드 ‘시나위’의 리더인 신대철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조용필의 노래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고추잠자리’ ‘여행을 떠나요’ 등 31곡의 저작권이 모 음반사에 있다고 말했다.
1986년 조용필은 음반 프로덕션 계약을 체결하면서 ‘저작재산권 일부 양도’조항에도 같이 동의했다. 이로써 방송권과 공연권은 조용필이 갖지만 배포권과 복제권을 음반사가 소유하게 됐다. 즉 방송이나 공연에서 노래하는 권리는 조용필에게 있지만 음반을 내거나 음원으로 판매하는 등의 권리는 음반사에 있는 것이다. 조용필은 ‘당시 음반 판권을 넘기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소송도 했지만 결국 음반사가 승소했다.
조용필 노래의 저작권이 음반사에 있다는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없지만 도의적으로는 문제가 있다. 신대철 역시 그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1980년대만 해도 저작권의 개념이 희박할 때였다. 노래를 만들고 불러도 음반이 팔리는 대로 수익을 나눠받는 게 아니라 처음 받은 계약금 정도로 끝내기도 했다. 잘 모르고 저작권을 넘겨준 경우도 많았고 때로는 강제로 회사나 투자자에게 귀속되는 경우도 많았다. 또 노래가 대중에게 전달되는 방법이 한정돼 있으니 수익도 단순하게 나눴다.
지금처럼 노래방도 있고 음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시대에는 저작권이 더욱 복잡하고 중요해진다. 음원의 판매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곳이 음반 제작사, 가수, 작곡가가 아니라 음원 유통사인 경우도 많다. 얼마 전에도 원작자가 얻는 수익이 너무 적다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음원 가격이 전체적으로 상승하게 됐다. 원작자가 받는 금액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유통사가 얻는 수익지분이 그대로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무형의 재산, 아이디어에 대한 소유권인 저작권이 점점 강화되는 배경에는 외국의 대형 문화기업들이 있다. 영화·음반·책 등의 저작권을 가진 회사들은 저작권을 작가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늘리려 하고, 저작권이 존재하지 않는 과거 문화유산의 2차 저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선진국의 문화는 개발도상국에 쉽게 흘러가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에 저작권 강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최근의 저작권 강화는 너무 강자의 논리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아티스트를 내세워 이익을 보장하는 것처럼 하면서 사실은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저작권에 대한 논의가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펼쳐질 필요가 있다.
김봉석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