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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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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백제(百濟) 땅(地)과 익산쌍릉(益山雙陵)
문 무 추천 1 조회 462 18.07.20 21:18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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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8.07.21 12:17

    첫댓글 1917년 일제식민지 시절 일본인 "야쓰이"란 자(者)가 약식발굴을 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도굴을 했든 발굴을 했든 간에 무덤속을 파헤친 것은 똑같은 일인데, 무슨 놈의 약식발굴이란 말일까.
    또 이 者(자)가 무덤속에서 무슨 짓을 하였을까? 왜 상자안에 인골을 남아 남겨 놓았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반도백제(半島百濟)을 증거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남겨 놓았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 인골(人骨)이 서력 620-659년전의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1천 수백년 전에 죽은 인골로부터 이와 같은 정확한 연대까지를 알 수 있다니, 대한민국의 과학계와 사학계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믿기 어려운 것은 왜지?

  • 작성자 18.07.21 12:25

    반도 서남땅에 백제왕조가 6,7백년 동안 영화를 누렸다면, 그 증거와 정황은 넘치고 넘쳐나야 정상인 것이다. 특히 지배계층에 속했던 8개의 대성(大姓)들은 흔적도 없이 사려져 버리고, 200개나 되었다는 城(성)의 유적은 외계인이 몽땅 파헤져 그 주춧돌마저 수송기에 싣고 가져가버렸나 보다. 현미경까지 동원해 찾아보아도 정황조차 발견할 수 없으니 말이다.
    또 백제 망시에 백제인들은 무슨 방법으로 돌궐(突厥:투르크)과 말갈(靺鞨)등으로 핍박을 피해 도주할 수 있었을까? 당시 백제인들은 경골술을 익힌 초절정고수 무리들이었을까? 또 충청,전라 땅을 말갈등이 나누어가졌지?
    상식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대한민국 사학계야!

  • 18.07.22 19:41

    그럼 익산쌍릉은 후조선 준왕의 무덤이라는 결론인지요...

  • 작성자 18.07.24 10:33

    안녕하세요. <비천>님!
    무더위가 나라를 온통 삼켜버린 듯 합니다.
    익산의 쌍릉은 무왕의 것도 아니요, 후조선 준왕(무강왕)과 그의 왕비 무덤도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반도조선을 만들기 위한 또 하나의 위작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충청도와 전러도 경상도남북도 지방에 78개가 나라가 있었다고 하면서, 하나의 나라가 수십여만호로부터 수천호까지로 이런 나라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 이곳 지방은 유물유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집 한채 지을 땅이 제대로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그 정황이나 유물유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말로 이야기할 뿐입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

  • 18.07.24 22:02

    그렇다면 익산 미륵사나 공주 무령왕릉.또는 불국사나 경내의 탑들. 석굴암.해인사 팔만대장경등이 실제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모두 위작인지요?

  • 작성자 18.07.25 11:29

    안녕하세요. <비천>님!
    미륵사. 무령왕릉. 불굴사와 경내의 탑들. 석굴암등은 모조품이라고 보면 타당할 것입니다. 해인사 역시 이름만 같은 사찰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 이력들을 살펴보면 역사서에 기록된 것들과 부합되지 않는 면들이 다수(多數)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애기는 : 지금 언급한 것들은 삼국시대와 고려의 것들인데,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가 반도 땅에 존재했었다는 근거나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高麗(고려)도 마찬가지지요.
    일반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하겠지만 역사서 원전에서 말하는 조선 영토속의 자연환경은 반도는 너무 작아 담을 수가 없습니다

  • 작성자 18.07.25 11:02

    당시의 이웃나라에서, 고구려나 백제를 침략한 나라에서 기록해 놓은 역사기록의 자연환경이나 지형지세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隋煬帝(수양제)는 여러 번에 걸쳐 고구려를 침략하고, 많은 세작(간첩)을 보내 고구려의 여러 지형과 진지, 군량등등을 염탐하고, 침략을 합니다. 이러한 수(隋)나라때의 고구려가 동서(東西)로 6천리에 걸쳐 있었다고 했는데, 반도 땅은 동서남(東西南)이 바다로 한정되기 때문에 땅이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가 없죠.
    또한 백제나 고구려는 요동지동 일천리 쯤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하죠. 이건 백제가 반도 서남에 자리잡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이런 근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 18.07.25 11:20

    일제(日帝)가 지들 스스로 이야기하는 자칭 '황기(皇紀) 2600년'을 위해 반드시 반도 삼국(三國)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삼국이 반도에 없었다고 한다면 지들이 스스로 자랑하고 있는 황기 2,600년은 그동안 "사기를 쳤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반도 땅에 많은 모조품들을 만들어 놓았고, 또 이들 삼국을 지들이 정복하고, 식민화했다고 하며, 이에 따라서 지들은 천손이고, 반도인들을 2등국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손(天孫)이란 하늘의 자손이란 뜻이죠.
    이걸 반도의 사학계는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합니다. 지금도 열도아이들은 그대로 믿고 있지요. 소수만이 긴가민가 할 정도구요. 이게 공교육의 덕택입니다.

  • 작성자 18.07.25 11:19

    이런 공교육으로 인한 결과는 가미까제식의 무조건식의 천황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집니다.
    폐허속에서 세계경제대국으로 일어선 그 속엔 바로 이러한 교육의 맥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역사요, 국민들에게 사기를 치며, 가르친 그 거짓의 역사는 오늘날엔 진실처럼 굳어져 누구도 이를 부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옛 조선을 이었다는 반도는, 스스로 2등국민으로, 식민화되어, 지금도 국민들 마음속에는 이런 유형의 생각이 흐르고 있습니다. 공교육의 무서움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댓글이 일어졌습니다만 대한민국은, 역사학계는 쿠데타이상의 혁명이 일어나, 기존의 식민화된 역사교육을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감사합니다

  • 18.07.26 01:19

    답글 감사합니다. 질문이 많은데 어디서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네여.카페를 통해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18.08.11 00:58

    안녕하세요 문무님.

    유주(요동/요서)위치가 지금의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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