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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렁박님.
주 안에서 님을 대함에 기쁜 마음을 가지며 반가움을 전합니다. 님께서 개혁주의신앙공동체에 호의를 가지시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찾아주시며 이곳의 글들과 함께 하시는 것 같아 무척이나 기쁘기도 합니다. 본 개혁주의신앙공동체가 더욱 님에게 신뢰를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님께서 찾아주심을 통해서나마 님과 복음의 교제의 친밀함을 갖는 벗이 되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먼저, 님이 질문한 내용을 보겠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장로교회에서 자랐으며 지금도 장로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최근 지상교회의 어지러움이 갈수록 심화되어 제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가 개혁주의 교회인지 감리교나 침례교회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만...지상에는 성경적 지식의 체계에 근거한 바른교회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여기지만 불완전한 지상교회에 출석하면서 구원의 즐거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바른 교회를 갈급하면서 목사님의 교회론을 공부하였습니다.
교회론 10강의 말미에는 "~ 교회가 성경적 지식의 체계에 근거하여서 세워져 가는 것으로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 않고서는 바른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그러는 한에는 그 교회는 참된 구원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됩니다. 성경은 지상의 교회 중 어느 교회는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계3 :1). 이런 교회에 속하는 한, 결코 자신의 구원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구원을 보증하는 유일한 지상적 기관, 곧 공동체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마16:18-19)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출석하는 교회가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라고 한다면 저뿐만 아니라 함께 소속된 가족들 의 구원은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인가요?
두렵고 떨리는 마음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님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1) 천상적 교회 (2) 지상적 교회, 그리고 (1) 완전한 교회 (2) 불완전한 교회로 구분하여서 보는 것은 교회에 대한 신학적 이해로 조직신학(교의신학)에 따른 것입니다. 조직신학은 교회론에서 ‘교회의 여러 가지 성격’을 가르치는데, (1) 전투적 교회와 승리적 교회 (2)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3) 유기체로서의 교회와 조직체로서의 교회로 설명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땅위에 존재하는 한에는 모든 형태의 악의 세력과 흑암의 권세를 대항하여 끊임없이 전투를 수행하는데, 이를 통해서 천상의 교회는 승리의 교회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지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에서 유형적인 면과 무형적인 면을 다 내포하고 있어 본질적으로 영적이어서 육안으로는 식별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 중에서 누구는 교회에 속하고 누구는 교회에 속하지 않았는지를 명확히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만 신자들의 신앙고백과 그 행위에서, 그리고 말씀과 성례에서, 또는 외형적인 조직과 정치에서 유형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이것은 조직체로 있는 유형교회에만 적용되는 구별일 뿐이며, 이 모든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교회는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주님으로 섬기며 그 신앙고백에 있는 한 믿음에 있는 것에서, 그리고 성령의 교통케 하심에 의해 믿음의 형제들과 복음의 진리와 함께 하는 생활에서,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진 믿음으로 세상에 대한 공동적인 반항에 있어 가는 것에서 유기체, 다시 말하면 신자의 공동체로서 유형적인 형태를 띱니다(루이스 뻘콥, 신복윤 역, 『기독교 신학개론』, 262-263).
이러한 사실은 벨직 신앙고백서 제17장‘하나님의 보편적이고 거룩한 교회와 교회의 유일하신 머리에 관하여’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인간이 구원받고 진리를 인식하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하나의 교회가 반드시 계속 존재해 왔고, 지금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다.
교회란 무엇인가? : 교회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혹은 부름 받은 신자들의 모임, 즉 모든 택하신 성도들이다. 교회란 말씀과 성령으로 구주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참 하나님을 참으로 인식하고, 옳게 예배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냥 제공된 모든 은혜에 신앙으로 동참하는 사람들의 교제이다.
한 나라의 시민 : 이 성도들은 같은 주님 밑에서 같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모든 은사들을 함께 나누면서 사는 한 도성의 시민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에 의하여 거룩하게 되는 이 땅위의 성도들을 가르켜 '성도'라 불렀고, 이들을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의 한 신앙항목인 '거룩한 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내가 믿사오며'는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시대를 위한 단 하나의 교회 : 항상 한 하나님이 계시고, 이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 오직 한 중보자만 계시는데 이분이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요, 온 양무리의 목자이시오, 이 몸된 교회의 머리이시다. 결국 한 성령, 한 구원, 한 신앙, 한 계약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오직 하나의 교회가 있을 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교회의 부분 혹은 형식들 : 교회가 상이한 부분과 형태로 나뉘는 이유는 교회 자체 내에 분열이 있기 때문이 아니요, 이 교회의 성도들의 다양성 때문이다. 하나는 전투적 교회요, 다른 하나는 승리적 교회이다. 전자는 지상에서 육과 세상과 이 세상의 주관자인 악마에 대항하여 전투하고 죄와 죽음에 대항하여 싸운다. 그러나 후자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 받았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한 후 하늘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주님 앞에서 기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양자는 서로 교제하며 일치를 갖는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유형교회는 위의 설명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완전한 교회와 그렇지 않은 불완전한 교회를 고려하게 됩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유형교회가 완전한 교회라 함은 교회의 본질적 이해와 그 성질에 따른 것으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 ‘하늘의 예루살렘/위에 있는 예루살렘/새예루살렘’으로, 그리고‘진리의 기둥과 터’로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지닌 구원 얻는 복음의 진리에 의해 세워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있는 생명체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전(殿)으로서 하늘 지향적, 곧 하나님의 나라가 염두에 두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는 그 자체가 언제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완전한 교회’의 성격을 띱니다. 이 교회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음에는 언제라도 일말의 의문이나 의혹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세상 끝날까지 그러합니다. 이에,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제21주일 54문에서는‘거룩한 공회(교회)에 관하여’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전 인류 가운데 영생을 얻도록 선택된 성도를 참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된 공동체로 모으시며 보호하시며 보전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인 나도 이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언제까지나 그 일원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라고 가르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장‘교회’1-3항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여 가르칩니다.
1. 보편적 또는 우주적 교회는 무형적이다. 그 교회는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그 아래 하나로 지금까지 모여들었고, 지금 모여들고 있고, 장차 모여들게 되는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의 충만이다.
2. 유형 교회도 복음 아래서는 보편적이요 공동적인 교회이다. 이 유형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참 종교를 신봉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하나님의 집이며, 권속이다. 이 교회를 떠나서는 즉 교회 밖에는 통상적으로 결코 구원받을 수가 없다.
3. 이 보편적인 유형 교회에서 세상 끝날까지 이 세상에서 성도들을 모으는 일과 온전케 하는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성직(聖職)과 성경과 성례를 제정해 주셨다. 그리고 그의 약속을 따라, 그 자신의 임재하심과 또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효과적으로 모아지며 온전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상에 존재하는 유형교회는 그러면서도 또한 불완전한 교회의 모습을 띠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교회가 아직 제대로 된 교회가 아니라거나, 그래서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거나 하는 따위의 것에서가 아닙니다. 비록 불완전한 모습을 띠고 있을지라도 그 자체로서 그리스도의 몸된 완전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완전한 교회가 아닌 불완전한 교회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불완전한 모습을 띠는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할 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장‘교회’4-5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4. 이 보편적 교회는 때로는 더 쉽게 볼 수도 있고 때로는 보기가 더 어렵기도 하다. 그 보편적 교회에 속하는 개 교회들은 그들 안에서 복음의 교리를 가르치고 받드는데 따라, 성례가 시행되고, 공동 예배를 순수하게 행하고 안하고에 따라 더 순수하기도 하고 덜 순수하게도 되는 것이다.
5. 지상에서는 아무리 순수한 교회들일지라도 혼잡함과 과오를 범한다. 그리고 어떤 교회들은 극도로 타락하여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사탄의 공회당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상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그 자녀들로 구성되나, 주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도 교회 모임에 나와 예배에 참여하기도 하고, 이 예배에는 어떤 사람들이라도 참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상교회 - 유형교회 -는 외형상으로는 항상 불완전한 모습을 띱니다.
님이여!
이런 까닭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가지고서 구원 받음의 여부를 말하게 되는 것은 교회 그 자체가 완전하냐 아니면 불완전하냐를 가지고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에서 말하는 것이겠는지요.
벨직 신앙고백서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보겠습니다.
참 교회의 표시 : 그리스도 이외에 그 누구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교회의 머리라고 허풍떠는 모든 교회는 참 교회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참 교회의 표시를 가진 교회만이 참 교회라고 가르친다. 이 표시 가운데 특히 예언자와 사도들의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합법적이고 신실한 설교가 가장 중요한 바 이 기록된 말씀과 설교 말씀은 모두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그래서 복음서는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라고 했다. 또한 교회 안에 있는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의 신앙과 한 성령을 가졌고, 따라서 한 하나님만을 예배하되 이 한 분만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온 마음과 모든 힘을 다하여 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유일한 중보자시오, 대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만 기도한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스도와 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떠나서 의와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들은 교회의 유일한 머리와 초석이 그리스도라고 믿으며, 이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매일매일 회개로써 성화되고 자신들에게 부과된 십자가를 인내로써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들은 거짓 없는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다른 지체들과 연결됨으로 평화와 거룩한 일치의 결속 가운데에 끝까지 견디어 나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동시에 이들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제정되었고 사도들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승된 성례전(세례와 성찬)에 참여하는 바 주님께로부터 받은 그대로 사용한다. 사도 바울의 "(고전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라고 하는 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 카톨릭교회가 신부들의 사도적 전승과 교회의 통일과 오랜 전통을 아무리 자랑하여도 우리가 이미 언급한 참 교회의 표시를 갖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은 참 교회가 아니라고 정죄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고전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라는 것과 '바벨론에서 나와' 이 바벨론과 관계를 끊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재앙을 이들과 함께 받지 말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 교회와의 교제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이 참 교회와의 교제를 이탈하여 이 참 교회로부터 분리해 나가고도 하나님 존전에서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부인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홍수로 온 세상이 파멸되는 상황에서 노아의 방주밖에는 구원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밖에는 결코 확실한 구원이 있을 수 없다고 믿는 바, 이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있는 그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향유하도록 자신을 내어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살기를 소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참 교회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교회는 참교회의 표시에 얽매일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참교회의 표시에 의해서 교회를 좁게 제약하지 않는다. 즉, 적어도 스스로 원해서든지 경멸적 태도 때문이 아니라 필연성에 의하여 억지로 성례전에 참여하지 못하든가 본의 아니게 이 성례전을 받지 못한고 박탈당했을 경우, 이러한 사람들이 결코 교회 밖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신앙의 실패로 신앙이 꺼져 가고 전적으로 오류 가운데로 빠져 들어간다고 해서 이런 사람들이 결코 참교회 밖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 밖에 있는 세상 속에서도 얼마 정도의 친구들을 가지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자신들의 모든 제사 행위를 박탈당했던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길을 잃고 나약해진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에게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곤 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렇게나 많은 심각한 허물을 발견했으나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들이라고 부른 사도시대의 갈라디아의 고린도에 있는 교회들이 어떠한 교회들인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님이여!
이런 것인데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구원 받았는지 또는 구원을 받지 못했는지의 여부를 고민하며 말할 수 있겠는지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를 가지고 구원 받음의 여부를 말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적 이해에 의한 교회 그 자체를 가지고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 모임을 가지면서 참교회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거짓교회로 존재하는 것에서입니다. 만일 이러한 교회인 한에는 여기서 결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을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죠.
님이여!
님이 본 제 글에서 무엇이라고 하였는지요.
성도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압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과 관련해서 사람이 되셨으며, 또한 만물을 자기의 발 아래 굴복시키고 교회의 머리가 되신 사실을 압니다. 성도는 총체적 개념에서 그리스도께서 머리로 계신 교회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만드시고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임재 하시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모시고 현재적이며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에 속한 천국의 백성들로 존재합니다. 때문에 지상에 존재하는 각 지역교회는 이런 사실을 생명의 도리로 붙잡고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공동체적으로 구현해 내는 일에 그야말로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의 말씀에 대해 순종하는 믿음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통해서 되어집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입니다(약 1;22).
그러나 순종의 성격이 맹목적이며 맹신적인 것으로 인해 종교적이며 자의적 열심으로 나타나서는 안됩니다. 성경적 지식의 체계에 근거한 '하나님의 열심'으로 나타나야 합니다(롬 10:2-3). 그렇지 않고서는 지상의 교회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천상적 보편의 교회를 반영(反映)해 낼 수 없습니다. 성경이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표현은 교회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생명의 본질로 삼는다는 얘깁니다. 때문에 교회가 성경적 지식의 체계에 근거하여서 세워져 가는 것으로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 않고서는 바른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그러는 한에는 그 교회는 참된 구원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됩니다. 성경은 지상의 교회 중 어느 교회는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계3 :1). 이런 교회에 속하는 한, 결코 자신의 구원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구원을 보증하는 유일한 지상적 기관, 곧 공동체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마16:18-19). 그 기준은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교회를 세워 가는 데서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은 구원의 본질이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로 계십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교회원들을 왕적 권세를 발휘하여 다스려 가십니다. 교회에 주신 말씀을 통해서 말입니다. 성경이 교회에 주신 유일한 은혜의 수단인 것은 그래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해 나가게 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늘 확인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왕의 통치를 받고 있는 실질이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분명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의 성격이 두드러집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해 나간 성도들이 주의 날에 함께 연합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갖고서 왕이신 하나님을 예배 - 예를 갖추어 절을 함 - 하며, 그때 지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그 나라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주의 날에 하나님을 예배하며,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의 왕권 통치가 가장 권세 있게 발휘되고 있는 증거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 참교회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거짓교회인지는 개혁교회에서는 그 구별을‘교회의 삼대 표식(표지)’으로 말해왔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함으로 전파되는 것에서 참교회를 말해왔습니다. 둘째, 성례 - 세례와 성찬 - 의 정당한 집행에서 참교회를 말해왔습니다. 셋째, 권징의 신실한 시행에서 참교회를 말해왔습니다. 여기서 참교회를 나타내는 표식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전한 전파이며, 이것에 의해서 성례의 정당한 집행과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 함께 말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교회의 표식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전한 전파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교회란 말이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생명의 주님이 되게 하시고 그분의 이름이 지닌 구원의 능력을 통해서 그분 안에 불러 모은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로서 생명의 주가 되심을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 받아 하나님의 한 자녀가 되었음을 고백하는 자들로 함께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한 믿음에 있는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교회로 모이는 것에서 성령을 통하여 그분에게로부터 오는 그분에 대해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굳건히 서나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회가 전하는 설교에서 모든 믿는 자들의 구원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이 전해지며, 그것에서 신자들이 가져나가는 믿음이 있게 한다면, 그래서 신자들이 그 믿음으로 신앙생활 하는 교회로 있어간다면, 그것은 참교회가 아닌 거짓교회이며, 이는 하나님의 구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가령 말입니다. 이번 달에 대학수능시험이 있는데, 이 시험이 있기까지‘40일 특별새벽기도회’이니 무슨 새벽기도회이니 하면서 신자들을 새벽에 교회로 오게 하여 모으며 하는 일이 기껏 신자들의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무사히 합격할 수 있게 기도하게 하며 성공을 기원하게 하고, 이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거나 신자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잘 되는 것인양 호도한다고 하면 이는 하나님께서 구하게 하신 기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죄의 본성을 좇아 탐심으로 살도록 미혹하는 일을 하는 것이니, 이렇게 말하는 설교에는 복음의 진리가 전혀 없는 거짓복음이요 하나님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입니다. 이러한 설교이고서야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가 있겠는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함으로 -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신 본의<원의>에 좇아 말씀을 전함 - 전파하지 않는 설교는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양 하며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며 힘을 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있고 사악한 영인 마귀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에 따라서 신자들도 마치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양 받아들이고 그 설교에서 말하는 대로 하는 것에서 자신들의 믿음을 말한다면 그 또한 그 믿음은 참된 믿음으로 말할 수 없는 거짓된 믿음에 불과하니 그 믿음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결코 볼 수 없습니다. 교회가 전하는 설교는 말입니다. 윤리나 도덕경을 강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전하는 설교는 말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들어 종교 영웅담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며, 그 인물들처럼 만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전하는 설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구속사에서 알게 해주시고 있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진리를 왜곡하여 이방 종교에서 말하고 구하는 축복에 마음이 끌림에 있게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성취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순전한 전파를 교회의 참됨으로, 곧 교회의 올곧은 바름으로 생각해 왔으며, 교회를 교회됨에 있게 하는 생명으로 여겨왔습니다.
이제, 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무리 하는 것에서 다음과 같이 끝맺을까 합니다.
님은“어렸을 적부터 장로교회에서 자랐으며 지금도 장로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님이 다니고 있는 최근의 교회 모습은 개혁주의 교회인지 감리교나 침례교회인지 헷갈리기도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님이 지금 장로교회를 다니고 있는 교회나, 또는 감리교회니 침례교회는 모두 개신교라고 일컫습니다. 개신교란 개혁신교를 뜻합니다. 개혁파 신교이죠. 이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항하는, 종교개혁 시대에 생긴 교회를 일컫는 것인데, 종교개혁자, 특히 칼빈에 의하여 세워진 개혁교회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루터파 교회를 비롯해서 종교개혁기와 그 이후에서 보게 되는 개혁주의 교회에 있어 나간 교회를 포함하고 있기에 이보다 훨씬 포괄적입니다. 어쨌든 님이 언급한 감리교회나 침례교회는 개혁주의 교회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이 교회들도 개혁주의 교회 속에 있습니다. 이는 이 교회들에 속해 있는 분들이 자신들의 교회를 개신교, 또는 개혁교회로 지칭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회가 어떤 교회로 있는 것이냐에 의해서 개혁교회이니 개혁주의 교회이니를 말하며, 이것을 개혁교회 또는 개혁주의 교회가 아닌 교회와 구분하고 분류하는 것에는 그 경계의 구분이 없어진 지금의 시대적 교회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님의 언급에서 보는 대로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이 외에도 성결교회도 있는데 그 모두에서 대체적으로는 개혁교회 또는 개혁주의 교회로 말하게 되는 복음의 바른 전파에서 떠나 있는 것에서는, 그래서 신자들을 바른 신앙에서 떠나 있게 하는 것에서는, 그에 따라서 교회를 참교회로 바르게 서나가지 않는 것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장로교회이든 또는 다른 어떤 교파의 교회에 있든지 간에 님이 속한 교회가 참교회로 잘 서나가고 있다면, 이는 참으로 주께 감사할 일이며, 님에게는 큰 기쁨일 것입니다. 만일 그런 것에서 님은“지상에는 성경적 지식의 체계에 근거한 바른 교회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여기지만 불완전한 지상교회에 출석하면서 구원의 즐거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라고 한 것이라면, 과연 구원의 즐거움 속에서 살지 않겠는지요. 교회의 모습이 불완전한지, 그렇다면 얼마나 불완전한지에 우리의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불완전한 모습 속에서도 님이 섬기는 교회가 복음의 순전한 전파에 의해 반듯하게 잘 서나가며, 그래서 신자들이 바른 신앙으로 잘 서나가고 있으며 님은 참으로 구원의 즐거움 속에서 살고 있다면 그 즐거움 속에 있는 매일 매일이 님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고 있는 순간순간일 것입니다. 그 즐거움이 참으로 오래 지속되며 잘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님이 즐거워하는 구원의 즐거움이 말씀의 순전한 전파에 의한 복음의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닌 다른 복음에서 구원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 의해서 가져나가는 것이라면, 님께서는 참으로 구원을 즐거워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에서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그래서 올바른 것으로 생각을 달리 가져나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말이죠. 님이 언급한 내용 중에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 중의 한 교회인 사데교회에 주신 말씀(계 3:1-6)에서“네가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라고 하신 것은 교회 - 그리스도인 - 에 주신 구원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그래서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에서 하시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당시 사데교회가 그들이 처음부터 주께로부터 받은 복음과 그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에서 그리스도께 가진 믿음을 보이고 말해 오려고 한 것에 있는 것에서 주께서는 사데교회에 그들이 처음에 복음을 어떻게 들었으며 또한 어떻게 믿었는가를 돌이켜 보고 떠올리게 하며 그것을 굳게 붙잡고 다시 주께로 돌아올 것을 권면하시기 위하여서 주신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지 않으면 주님은 그들에게 도적같이 임하여 미처 그들이 생각지 못한 때에 벌하실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게 하실 것이니 주께서는 자신 안에 있는 참생명인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은 교회를 그렇게 방임하거나 또는 유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데교회가“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하면서 그럼에도 그 교회에 꺼지지 않고 살아 있는 생명이 있음을“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다”고 하면서“흰 옷을 입은 자들이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연고니라”라고 말씀하시며“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라고 하시고는“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약속을 주심으로 자신의 교회에 대해 주께서는 믿음의 견인에 두시고서 보살핌에 의한 생명의 보전에 있게 해 나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님은 님 뿐만 아니라 님과 함께 소속된 가족들의 구원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보장 받을 수 없는 것인지를 염려하고 그 걱정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있을 일이 아닙니다. 결코 그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님이 진정 마음에 두고서 있어야 할 것은 님과 그리고 님과 함께 소속된 가족의 구성원들이 섬기는 교회가 참교회로 잘 서나가는 것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함으로 전파되고 이를 들을 수 있기를 위해 주께 은혜를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건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본의적인 뜻을 살펴 이해하고 알아가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기를 위해서 주께 은혜를 구합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글을 끝맺습니다. 날씨가 무더운 것에 힘들어 했던 때가 엊그제 인데, 어느새 날씨 기온차가 큼으로 쌀쌀함과 때에 따라서는 추위도 느끼기도 합니다. 곧 가을도 저만치 물러가고 겨울을 실감하게 되겠죠.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라며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첫댓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모인 교회에서 구원받았음을 보증받으며, 구원의 확신 속에서 교회를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늘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총을 구합니다. 이번 겨울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의 세밀하고 친절하신 가르침, 너무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