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를 크게 틀어놓고 떠드는 사람들과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찜질방 분위기에 내일 산행도 떨치고 서울로 올라가려다가 소주 한 모금 더 마시고 요행이 잠이 들어 새벽 일찍 터미널 앞 종로약국에서 칠보를 거쳐 산외로 가는 버스를 타지만 목적지인 산성리 삼리마을은 안 간다고 해서 난감해지는데 실은 신태인과 칠보를 오가는 미니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태인에서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다행히 지피에스를 보고 제일 가까운 도로에서 내려 어스름한 산성산자락을 바라보며 대칠교로 동진강을 건너서 새벽녘의 추위에 떨며 확장 공사 중인 도로를 따라가 산성마을에 도착하니 비로소 안도가 된다.
지도의 화암사가 아닌 화엄사를 지나 이정표가 서 있는 능선으로 붙어 서걱거리는 얼은 낙엽들을 밟으며 산성산(162.6m)으로 올라가면 낡은 삼각점(정읍408/1984재설)과 빈 벤치 두 개만이 멍청하면서도 덤벙거리는 손님을 반겨준다.
북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기분 좋은 널찍한 산길을 따라가다 동쪽으로 꺾어 가시덤불들을 뚫고 포장도로를 건너 높게 솟은 175봉을 넘고 167봉으로 내려가니 역시 가시나무들이 기승을 부리는데 예초기나 낫으로 정비를 한 흔적들은 계속 이어진다.
임도를 만나 도움이 영 안 되는 산행 안내도를 보며 임도를 따라가다 능선으로 붙어 가파른 산길을 지나 공터에 통신탑이 서 있는 비봉산(x332.4m)으로 올라가 가야 할 상두산과 국사봉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 컵으로 은근하게 밀려드는 고독감을 달래고 다시 가시나무와 칡넝쿨들을 헤치며 임도를 건넌다.
낮지만 가파른 능선을 힘겹게 치고 올라가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5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물래봉(379.0m)의 삼각점(갈담448/1984복구)을 확인하고 돌아와 405봉을 넘어서 지독한 가시덤불과 칡넝쿨들을 뚫고 흉측한 채석장을 바라보며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지금재로 내려간다.
귀찮은 마음에 왼쪽의 임도로 들어가 사면을 치고 능선으로 붙어 코끼리의 몸통을 잔혹하게 쪼아대는 채석장의 소음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흐릿한 족적을 따라가다 상두사에서 오는 널찍한 산길과 만난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바위틈에 삼각점(갈담23/1997재설)이 숨어있고 정상 석 옆에서 태극기가 펄럭이는 상두산(574.3m)으로 올라가면 파란 하늘 아래 모악산으로 이어지는 모악지맥의 산줄기가 펼쳐지는데 국사봉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어 마음이 급해진다.
통나무 계단들이 놓여있는 미끄러운 낙엽 길을 한동안 지나 복호와 개티를 잇는 기재를 만나서 이정표를 무시한 채 힘없는 다리를 끌며 임도를 터벅터벅 걸어가다 다시 가까운 능선으로 붙는다.
481봉을 힘겹게 넘고 몇 번이나 속은 끝에 두루뭉술한 둔덕에 이정표만 서 있는 국사봉(X535.3m)에 올라가 예상보다 시간이 늦어 전에 다녀온, 정상 판이 있는 헬기장 봉 왕복은 생략하고 서둘러 교통이 좋을 엄재 쪽으로 향한다.
403봉을 넘고 진땀을 떨어뜨리며 된비알을 올라 삼각점이 있는 453.1봉을 애써 외면하고 갈림길에서 남서쪽으로 꺾어 일몰에 젖어 드는 독금산을 바라보며 어둑해지는 능선을 바삐 따라간다.
랜턴을 켜고 388봉에 올라 미답 지라 아쉽기는 하지만 밤이라 무리하지 않으려 독금산을 포기하고는 남동 쪽으로 이어지는 지맥을 한동안 돌아다니며 찾다가 낙엽에 묻힌 긴 밧줄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밧줄을 서너 번이나 잡으며 급사면으로 이어지는 지맥 길을 뚝 떨어져 번번이 길을 못 찾고 돌아다니다가 가시덤불들을 뚫고 엄재 바로 전의 안부에서 불빛이 뻔히 보이고 개들이 짖는 호동마을로 내려가 주민에게 길을 물어 논들을 횡단해 원백여길을 만나 49번 지방도로의 신정삼거리에서 순창과 전주를 오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추위에 떨며 30분을 동동거리다 반대에서 내리는 주민에게 정거장을 다시 확인하는 사이에 쏜살같이 달려오는 버스에 손을 흔들지만 허망하게 놓치고는 예전 기억이 나는 큰 도로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사람 한 명 구경할 수 없는 텅 빈 도로를 처연하게 걸어가다 작은 가겟집에서 소주 한 병을 사 추위를 달래고는 주인의 충고대로 바로 앞 정류장에서 금방 온다는 차를 기다리지만 50분이나 더 떨다가 구세주같이 달려온 버스를 잡아타고 전주역으로 가서 23시 13분 마지막 KTX에 오른다.
첫댓글 야산에서 홀로 맹감덩굴 칡덩굴과 싸우는 산행은 이제 그만해야지 생각하는데 그런거 없으믄 넘 서운하고~
들날머리 교통편이 원정산행의 어려움이죠
남의 동네 사정을 꿰뚫고 다닐 수도 엉꼬
고생많았음다요
고난과 인내의 산길이지요. 제주에 계시겠네요.
@킬문 오늘 대설주의보라 내일 할라산 눈구경 예정~
와우 12시간 산행하셨네요. 살살하세요 ㅎㅎ
사람 한명도 없는 적적한 산길입니다... 전주 나가느라 1시간 30분 버스 기다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