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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살면서 언제나 제 2의 사춘기 제 3의 사춘기 등등
중2병이 도질 때면 탐닉하게 되는 대상이 제게는 바로 아르튀르 랭보긔
처음 알게 되었던 중고딩 무렵부터 이십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제나 세상에 대한 반항;과 저주와 어떤 감성과 저항정신;이 이따금씩
들고 일어날 때에 어김없이 빠져들게 되는 대상이 저에게는 바로 랭보라긔
얼핏 읽었던 말인지 들었던 말인지중에
십대에 랭보에 빠지는건 당연하지만 나이들어 랭보에 빠지는건 미친짓이다 라는
그런 말이 있는데 그만큼 랭보는 십대에 가질 수 있는 감수성과 날카로움과 울부짖음과 저항
이런것 모두를 번뜩이는 그만의 천재성으로 형체화했다고 볼 수 있긔
실제로 랭보는 살면서 지옥에서 보낸 한철, 일루미나시옹(채색판화집)
단 두권의 책을 냈는데, 이 두권은 모두 그가 15-20세 무렵에 지은 작품들이라긔
그리고 사실 그가 직접 (어머니의 돈으로) 출판한 작품은 지옥에서 보낸 한철 한권뿐이고
일루미나시옹은 그의 불멸의 스캔들 상대인 베를렌이 출판한 책이라긔
이 얘기는 이따가 더 설명하겠긔
1854. 10. 20 프랑스 샤를르빌 출생
위 사진은 1871. 9월 동료 시인 까르자가 찍은 사진이긔
랭보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우수한 학생이었긔 항상 수석이었고 중3과정은 그냥 월반하고
고딩과정으로 갔을만큼 명석했긔 한살 위인 형이 있었는데 이 형도 나름 똑똑했지만 랭보가
워낙에 천재라서 랭보가 몇학년이나 위인 코스로 같이 학교를 다녔긔;; 그래도 어릴때는 형이랑
장난도 많이 치고 다니고 그랬다고 하긔 랭보는 어학에서는 아주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지만
수학성적은 그다지였는데 그게 고의였다고 하긔 간단한 나눗셈조차 못하는척 했다고 하긔
여기에 대해서는 그가 열살 무렵에 쓴 시? 라고 하기보다 어떤 끄적임이 있는데
태양은 아직 뜨거웠다 라고 시작하는 연습장에 휘갈긴 글이 있긔
알렉산드라가 유명했었다는 사실이
내게 뭐 중요한가? 라틴 민족이 존재했는지
안 했는지 아는 것이 내게 대체 왜 중요하단 말이야?
그들이 살았었다 해도
그들은 나를 연금생활자 정도로 만들었을 테고.
그들 자신을 위해서 그들의 언어를 보전해 온 것뿐인데.
내가 선생들한테 뺨을 맞고 그로 인해 고초를 겪을 정도로
잘못한 게 뭐란 말인가.
빌어먹을 그리스어
이 빌어먹을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중략)
걸상에 앉아 바지가
닳도록 공부해봤자 좋은 일도 별로 없고.
빌어먹을!
구두닦이가 되려면 구두닦이 할 자리를 얻어야 하고
시험에 붙어야 해!
당신들에게 할당된 자리들은 구두닦이나 수위나
목축업자 같은 거지.
다행히도 나는 그런 자리는 원하지 않아.
빌어먹을!
실로 랭보의 모든 시 중 가장 공감이 많이 가는 작품이긔..ㅋㅋ 여튼 어렸을 때의 그는 오히려
신앙이 깊었다고 하긔 대위였던 아버지와 소지주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랭보가 여섯살 무렵부터
아버지는 집을 잘 나갔긔 아버지는 방랑벽이 심해서 이미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었고
심지어 랭보가 태어날 때도 집에 왔다가 랭보의 탄생을 기다리지도 못하고 그냥 집을 다시 나가버리긔;;
여기에는 어머니가 아주 성격이 엄하고 독하고 여러 이유가 있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누구의 잘못이 먼저였는지는
저는 판단못하겠긔 여러 말이 많아서요 여튼 시골마을에서 특이한 부모를 만난건 사실이긔..
첫 영성체를 받던 날 12살 랭보(1866)
이런 환경과 랭보자체의 방랑기질로 이미 그가 열다섯 열여섯 무렵부터 잦은 가출과 방랑이 시작되오
프랑스 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는 바깔로레아(프랑스수능)를 아예 포기하고(선생인 이장바르는 권했지만 본인이
시인이 되겠다며 질색했긔;) 파리로 나가 파리 꼬뮌에 합류하기도 하고 이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인생을 바꿔야 한다"며 스스로 방탕과 타락에 의한 견자(보는사람)가 되기로 했솨 결국
스스로 자신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천재가 되기로 결심한거긔
구구절절 많은 사연이 있지만 결국 베를렌에게 시 몇편을 보내고 그에 대한 답을 계기로
랭보의 네번째 파리행이 시작되긔.. 이때 랭보는 필체가 좋은 친구한테 대필을 부탁하기도 하긔 ㅋㅋ
여튼 랭보의 천재성을 알아채고 당시 신혼이던 베를렌이 랭보를 부르긔 그렇게 3개월간
베를렌의 집에서 지내게 되는데 이때 부인인 마틸드와 그 장인 장모의 눈치(당연한거긔;)에 드디어
베를렌은 랭보를 어느 허름한 다락방 하나 얻어주고 거의 동거에 들어가게 되면서 동성애로
발전하게 되긔.. 마틸드는 혹떼려다 종양을 얻은거긔..
베를렌과 랭보
여튼 가장 믿을 수 없는건 베를렌의 나이긔.. 1854년생인 랭보에 비해 베를렌은 1844년으로
10년 연상이었긔 저는 얼굴만 보고 한 25년은 더 먹었을거라고 생각했단 말이긔! 탈모란..;;
이렇게 열일곱 랭보와 스물일곱; 베를렌은 불같은 사랑에 빠지는데.. 더 놀라운건 베를렌 마눌님인
마틸드는 랭보와 동갑 혹은 한살 연상이었긔.. 그렇긔..베를렌이 가장 능력자였긔..
토탈이클립스의 마틸드
여튼 이 둘의 사랑은 토탈 이클립스를 보면 잘 나와있으니 생략하겠긔..
둘은 그냥 서로 헤어졌다가 다시 미칠듯한 그리움으로 합쳤다가 마틸드를 농락하는
줄행랑을 쳤다가 랭보를 부르기 위해 베를렌이 중병걸린 척 꾀병도 부렸다가 결국
랭보를 향해 베를렌이 총을 세발 쏘고 랭보의 손목을 그중 한발이 스치는 사건으로 쫑나긔
베를렌이 감옥에 있을때 랭보가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출판하고 베를렌에게도 보내긔
이걸 베를렌은 아들한테도 물려줄 정도로 소중히 간직하긔..
영화에서의 둘과 당시 그림으로의 둘
열살차이도 놀라운 감자지만 액면가는 더 놀랍긔..
베를렌이 감옥에서 나온후 둘은 베를렌의 면회신청으로 랭보가 가정교사로 있던 슈투드가르드지역에서
한차례 만나는데 이때도 심하게 다투긔.. 베를렌은 감옥에서 신앙을 갖게되고 이걸 랭보한테도 권하며
예수안에서 사랑합시다..하지만 랭보는 이걸 아주 거하게 거절하긔
그리고 둘은 아주 안볼 것처럼 하지만 랭보가 나중에 아주 궁핍해졌을때 '예수님의 사랑으로 도움을 주겠지'하는
심정으로 베르렌에게 편지를 보내며 돈좀 달라고 하오..;; 그렇긔 찌질한 구남친이긔;;
여튼 이때 베를렌은 아주 크게 노하긔 ㅋㅋ 당연하긔 아주 화나서 비꼬는 투의 편지를 보내긔 ㅋㅋ
하지만 둘은 그후에도 서로의 지인을 통해 소식을 주고 받긔;; 베를렌은 은근히 친구한테
"슈투드가르드 그놈, 슈투드가르드 그애,그 어린애.." 이런식으로 랭보를 칭하며 소식을 묻긔;;
찌질 구여친쉬먀..ㅋㅋㅋ 미련대박이긔.. 더 웃긴건 베를렌이 감옥에서 나오고 마지막으로 랭보랑 만났을때
랭보가 베를렌에게 일루미나시옹 원고를 주는데, 나중에 랭보가 소식이 아주 끊어졌을때, 故랭보의 이름으로
출판하긬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래도 그가 살아있으면 연락할까봐 그런거냐긬ㅋ
그외에도 베를렌은 저주받은 시인이라고 랭보를 비롯한 여섯명의 시인의 전기와 그들의 작품을 수록한
책을 출판하는데, 이 책으로 전까지 인기없던 랭보가 파리에서 일약 스타가 된다긔 ㅋㅋ 이때 이미
랭보는 시를 다 접고 전유럽, 아프리카, 중동을 쏘다니며 장사꾼이 되어있었긔 이 소식을 친구가 전하지만
정작 그는 시큰둥했고, 다시 문학을 하길 권유받을 때마다 그건 다 거짓이고 헛소리였다고 그에 대해 언급하기도
싫어했다고 하긔 (오늘날의 이불속 하이킥쉬먀..?)
한가지 사실은 랭보에게 불멸의 연인은 베를렌 하나였을지 몰라도 그는 사실 아주 선수였을지도 모르긔..
베를렌과 총격사건 이후 헤어지게 되자마자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광폭한 화가이자 시인인 제르맹 누보를 만나
유럽 전역을 여행하기도 하긔;; 그당시 그 총격사건으로 랭보와 베를렌은 파리에서 악명(동성애로)높았는데
누보는 이에 대해 "운명에 맞서 도전하는 용기를 보았다" 며 랭보와 함께 하긔;;
하지만 이 관계는 몇달 못가 끝나는데 누보의 지인들이 누보가 랭보와 함께 하면 제대로 성공
못할거라고 경고한 덕에 누보가 떠나게 된거긔 몇달간 누보와 랭보는 잡역을 하는둥 워홀러, 아르바이터로
살았던것 같긔 ㅋㅋ 그외에도 랭보는 아프리카에서 여러 흑인과 동성애를 하거나 그가 아파서 고향집에 잠시
돌아올때는 어떤 에티오피아 여인과 함께 왔고 아마 이 여인이랑은 아프리카에서 부부처럼 거의 6년을 살았던듯하긔
이 여인은 흑인인데 유럽인같은 생김새와 분위기를 가졌다고 하긔
이 여인과는 그가 본격적으로 무기 밀매에 뛰어들면서 떠나보낸거 같은데 그후 그가 거의 죽기전에는
결혼도 하고 싶어 하고 결혼해서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고 싶어했다고 하긔
에티오피아 하라르에서의 랭보(1883)
폭삭 삭았긔.. 고작 서른인데
그는 곡마단(써커스) 통역으로도 일했고, 커피 중개인, 무기밀매, 채석장 감독관, 군인, 그외 온갖 노역, 심지어
노예매매까지 했을거라는 설이 있긔
정말 신기한건 시인으로 살았던 그의 인생 전반기에서 가장 비판하고 비난하고 혐오했던 유형의 인간으로
그의 인생 후반을 살았던거긔
그가 아프리카에 있을때 파리에서는 베를렌의 일루미나시옹 출판으로 인해 그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고
젊은이 사이에서 일약 스타가 되지만 그는 거기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긔
그를 다시 파리로 부르는 편지가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유품에서 발견되었는데 아무래도 계속 간직하고는 있었던것 같긔
그가 시인이었을때, '나'는 '타자'이다 라고 했긔 아무래도 랭보는 평생을 '타자'로 살았던 모양이긔
'견자'가 되기 위해선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하고 방탕해야 하고 타락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떠한 억압과 통제에서도 벗어나려고 했긔
상인으로 살면서 그는 자기가 직접 피땀흘려 번 돈이 아니면 싫다고 했긔
시인과 상인.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극단의 길이지만, 결국 그가 살고 싶어했던 이상에는
가깝게 가는 길이었던 거긔
아니 어쩌면 그에 대한 모든 분석과 연구와 찬양은 다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르겠긔
아무래도 경지가 다른 사람이니 정말 단순한 맥락의 인생이었는지 모르겠긔
시인을 관두고 스물셋 무렵에는 오로지 아프리카를 가고 싶다는 욕망으로 네덜란드군에 지원했다가
바로 탈영해버리기도 하고 나귀나 말같은 짐승이 평생 한번 갔다가 숨을 거두는 경로의 여행을
생애 열다섯번 이상 그저 걷기도 했긔
처음의 끄적임도 태양은 아직 뜨거웠다로 시작할 정도로 태양에 대한 열망이 컸고, 결국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때문에 아프리카로 갔다가 너무 많이 걸어서 무릎에 종양이 생겨 한쪽다리를 절단하고
결국 전신으로 암이 퍼져 죽게 되긔 1891년 11월 10일 그의 나이 서른일곱이긔
그가 거의 죽기전 그를 돌보던 여동생 이자벨이 그린 그림이긔
마르세유병원의 당시 랭보 사망기록에는 그가 '상인'으로 되어 있긔 그는 죽기전에
"우리 인생은 불행이다. 끝없는 불행의 연속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일까?"
라고 했긔 따지고 보면 그의 인생은 행복했던 적이 없긔 부모도 사랑도 성공도 모두 그를 피해갔긔
자신이 천재인걸 잘알고 있었지만 출판에는 관심이 없었고, 십대시절 단 4,5년간 쓴 두권의 작품이
어떤 다른 예술가의 평생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보다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그는 지금까지도 백년을 앞서간 천재라며 칭송받고 있긔
심지어 랭보 이후의 모든 예술가는 그에게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정도긔
베를렌은 랭보와 헤어진후 시작에 몰두하기도 하지만 말년을 폐인처럼 보내긔 나중엔 그저 생계를 위한
작품활동만으로 연명했을 뿐이긔 그시기의 시는 아예 읽을 가치도 없다는 평가를 받긔
그는 결국 거지에 가까운 삶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긔
랭보가 가장 날카롭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난폭했던 십대 시절을
그 천재성의 집착과 갈구하는 애정을 받으며 살았던 베를렌의 심정은 어땠을지 궁금하긔
어쩌면 랭보와 같은 천재의 삶을 행복/불행으로 나눠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같기도 하긔
범인들에게 행복인 것도 그에게는 행복이 아닐 수 있으며 우리에게 고통과 불행인 것도
그에게는 그저 마땅한 삶의 연속일뿐일 수 있기 때문이긔
그래서 그들의 생이 그토록 짧을 수밖에 없는건지, 신기한건 고흐는 딱 랭보보다 일년 일찍 태어나 딱
일년 일찍 죽었긔 같은 나이에 죽은 거긔 그때에는 참 저주받은 천재가 많았던 시대인것 같긔
딱 스무살을 기점으로 인생의 전반을 시인으로 후반을 상인으로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았던 랭보의 삶은 그자체가 예술이며 하나의 시, 드라마인것 같긔
그의 난폭하고 거칠고 날카롭고도 전위적인 삶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긔
리버 피닉스가 토탈 이클립스의 랭보역으로 캐스팅된 상황이었지만 스물셋 나이로 죽게되고
잘 아시다시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 역을 차지하긔
분위기나 생김새는 리버 피닉스가 솔직히 더 잘 맞다고 생각하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랭보의 십대시절의 요망함, 그러면서도 사랑스러움
이런걸 표현하기에는 적합했긔,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랭보의 입덕작품이 된 것을 보면요ㅋㅋ
벤휘쇼는 아임낫데어에서 랭보역을 맡았긔 이밖에 키아누 리브스가 어릴적 인터뷰에서
랭보역을 맡아보고 싶다고 하기도 했긔 그외에 랭보덕후들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많고 물론 후세에도
계속 양산될거긔..그만큼 이 천재의 광기와 감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도 될 수 있겠긔
라투르의 그림 <테이블 모퉁이>
이 작품은 화가 라투르가 이 모임의 주류 작가들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들이 거부해
모퉁이의 작가들을 그린거라고 하긔.. 그리하여 남게 된 소중한 그림이긔
런던에서의 베를렌느와 랭보
- F. 레가미의 데생, 1896년
오른쪽이 랭보
폴 베를렌이 그린 랭보
랭보는 당시 어여쁜 미모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돌아보며 심지어 거기 아가씨!하면서 희롱;하기도 했지만
성격이 굉장히 괴팍하고 또 일부러 더 기행을 일삼았다고 하긔
여튼 기록에 따르면 177의 당시로서는 큰 키와 마른듯한 체구, 파란눈을 가진 미소년이었다고 하긔
근데 정작 본인은 자기의 외모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잘 씻지도 않고 옷도 넝마에 가깝게 입고 다녔다고 하긔
덕심자극..
피카소가 그린 랭보
Rimbaud Wounded, Jef Rosman
1873년 6월(혹은 7월 10일) 베를렌이 쏜 총에 손목을 맞고 다쳐 누워있는 랭보
중딩때부터 십년이 넘게 랭보는 저한테 한번씩 떠올라 탐닉;하게 되는 존재긔
아직도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해서 그런건지
그처럼 랭보는 짧은 생을, 그것도 시인으로 살았던 채 6년이 안되는 시간에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천재였나 보오
진짜 미친듯이 스압이 길어져 죄송하지만, 이것도 줄이고 줄였긔..
여튼 그냥 한번 써보고 싶었긔..
이미지 등 출처는 구글이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