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쓴 복음서이기 때문에 유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족보로 시작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이 족보가 메시지가 있고 설득력이 있다. 족보의 핵심은 예수님(1-17). 예수님이 시작과 끝이시다. 의도적으로 족보를 짠 것. 이런 구도를 유대인들이 다 아는 것이다. 이런 것을 inclusio(감싸다). 중간에 무엇이 들어갔든지 그것은 설명하는 것이고 강조는 첫 번째 것과 마지막 것이다(1, 17).
1절은 원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제일 먼저 나온다. 구원과 생명은 예수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로 끝나는 것이다. 창세기 5장에도 아담의 족보가 나온다. '몇 살까지 살다가 죽었더라'로 끝나는데 제2의 아담인 예수님의 족보는 ‘낳고, 낳고’로 끝난다. 예수님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다(요14:6). 예수님을 따라가면 진리로 빛을 비춰 주시고 생명의 길로 간다. 인간의 길은 선동하고 편승해서 가는 다수의 길이다. 인간은 생각 없이 다수와 유행을 따라간다.
2절부터 16절까지는 약속과 성취다. 우리의 깨진 삶을 회복하는 길이 약속을 붙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100% 이루어진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포로기까지 14대, 바벨론 포로부터 예수님까지 14대. 의도적으로 맞춘 것. 이보다 세대가 더 많은데 이것만 뽑아 놓았다.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가 다윗 왕조의 전성기와 쇠퇴기다. 이 땅에서의 다윗 왕국은 단절되었다가 메시야 왕국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6절에 다윗이 밧세바를 통해 솔로몬을 낳았는데 다윗의 아내라 하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표현한다. 수치스러운 일을 그냥 표현한 것이다. 11절에 여고냐는 여호야긴인데 이 사람을 실질적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친다. 삼촌인 시드기야가 마지막 왕인데도 그를 정통으로 보지 않는다.
그다음 바벨론 포로에서 예수님까지가 회복기(12-16). 3차로 귀환하는데 스룹바벨의 1차 귀환, 에스라의 2차 귀환, 느헤미야의 3차 귀환. 세 번 끌려가고 세 번 돌아왔다.
14대만 있는 게 아닌데 중요한 사람들만 뽑아서 편집해 놓았다. 14대, 14대, 14대로 나눈 용법을 ‘Gematria’라고 한다. 히브리 알파벳에는 자음만 있는데 그 알파벳은 숫자마다 가치가 다 있다. 다윗을 모음이 없는 히브리어에서는 DVD. D에 해당되는 음가가 4, V에 해당되는 음가가 6, 다시 D에 해당되는 음가가 4. 다 더하면 14. 14개씩 뽑았다는 것은 다윗이 핵심이고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네로를 666으로 암호화한 것과 같다.
‘다윗의 몸에서 태어날 씨를 다윗의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는 것과 그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2-16) 하는 말씀을 따라 다윗의 언약대로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 메시아라고 14대를 세 번이나 강조한 것이다.
살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다음에 '먹으면 죽는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인간은 의심하여 '죽을까 하노라'로 바꿔 말하고 마귀는 '죽지 않는다' 말한다. 우리 인생이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 다윗의 언약이 예수님으로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인생을 묶으면 산다.
예수님의 계보 속에는 다섯 명의 여인들이 나온다. 신분과 행동이 수치스러운 여자들이다.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에게서 베레스를 낳았다. 근친 임신이다. 기생 라합은 살몬에게서 보아스를 낳았고, 모압 여인 룻은 보아스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과부 재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 간음하고 살인하여 재혼했다. 마지막은 마리야다. 이렇게 바닥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의 약속이 임하면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수치에서 완전을 이루시는 하나님. 그래서 과거가 우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은혜가 우리를 결정한다.
마태복음을 쓴 세리였던 마태는 유대인들에게서 outsider 다. 그래서 마태는 이 여인들에게 초점을 두었다. 이방인이고 수치스러운 여자들조차도 약속을 치열하게 붙드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약속을 성취하시더라는 것. 세리와 같은 깨진 삶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구원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다. 우리 삶 가운데 깨진 부분이 있다면 약속을 붙들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으로 반드시 일으켜 주실 것이다.
요셉의 고난을 살핀다(18-25). 당시 요셉과 마리야는 정혼 단계였는데 동침하지 않고 1년의 기간을 둔다, 결혼하면 비로소 함께 사는 것인데 결혼도 안 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이 되었다. 요셉에겐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다. 처음에는 요셉이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이 일을 드러내서 궁지로 몰아넣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다. 이스라엘은 여인이 음행하거나 임신을 하면 돌로 쳐 죽이거나(신22:20-21), 이혼 증서를 써서 돌려보낸다(신24:1). 요셉은 너그러운 사람이다. 조용히 이혼 증서로 끝내려 했다.
그랬더니 천사가 나타나 다 설명해 준다. 마리아는 깨끗한 여인이고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이 모든 상황은 말씀에 대한 성취이다(사7:14).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제안하지 말라고 했더니 요셉이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18-25).
정리하면, 예수의 길을 걸어야 한다. 거기에 구원과 생명의 길이 있다. 예수로 시작해서 예수로 마치는 인생, 그 안에 생명이 있다. 예수님의 오심은 다윗에 대한 약속의 성취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내 삶이 깨지고 초라한 삶이라 할지라도 말씀을 붙들면 실패를 딛고 구원받는다. 말씀에 내 인생을 묶어 승리하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도, 순종할 때 약속의 성취를 본다.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보인다.